매화 샘플
ㄱㅅㄱ님 소설 작업물/24.10.16
고생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다 통하는 같은 의미의 말이 있다. 집안에 사고가 나면 어른을 불러라. 집안에 큰일이 나면 어른을 불러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같으면 어른을 불러라. 천씨 집안이라고 해서 그런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그런 이야기는 진즉 한 번 들어 보았을 것이다. C,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빨리 어른을 불러야 한다. 온전한 문장은 아닐지라도 의미는 잘 전달되도록. 애정 어린 호칭이 아닌 이름을 세 글자 또박또박 호명하면서.
하지만 C는 입으로 어른을 부르는 대신 손가락으로 지시한다. 저기서, 저기로. 크게 옮겨지는 손가락. 까맣게 그을린 목재가 겉으로 튀어나온 곳. 고개를 돌리면 바로 마주하는 눈높이의 사람을 향해 다시금 고개를 까딱인다. 너, 해. 목재를 갈아라.
상식적인 선에서 상상할 수 있노라면 집 천장의 목재를 가는 것 수준에는 자연히 업자를 부르기 마련이다. 천장까지 손을 뻗어, 목재를 뜯어, 새 것을 올리고, 그것을 고정하기까지 몇 단계의 과정. 말로 표현하면 단순한 몇 가지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뜯어보면 하나하나에 몇 시간씩이나 걸리는 일들의 연속. 말도 안 되는 요구이지만 C는 이런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C는 지금 일부러 이런 일을 지시하고 있다.
C의 손가락 끝에 L의 시선이 붙어 따라간다. 조금 그을린 목재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들었다. 지어 놓고 단순한 목재 장식으로 멋을 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다. 고택의 수리가 이루어지면서 만들어진 방향, 고택이 유지된 이유. 그러니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L 머릿속에 아주 들어있었다. 가장 쓸모없다고 여기고 싶은 정보가 어쩔 수 없이 들어 있었다.
L은 철부지 도련님의 얼굴을 본다. 당당한 얼굴, 내가 뭘 잘못했어? 여전히 당당한 표정. 누가 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라 요구를 해도 절대로 듣지 않을 듯한 단호함. 물론 L의 기준으로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누가 들어도 생각하리라, 제멋대로인 사람.
마지막으로 L은 재차 속으로 한숨을 뱉는다. 이 망나니 도련님을 어떡하면 좋을까? 물론 그 망나니라는 수식어는 L 본인의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살포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답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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