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싫

[공구이담] 너는 내 어디가 좋으니.

1747자

너는 내 어디가 좋으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상히, 이담이 그렇게 말을 건네자 공구는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더니,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홱– 소리를 내며 화살이 시위를 떠나 과녁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꽂혔다. 기실 둘은 활쏘기 내기를 하던 중이었고, 비등비등한 상황에서 공구의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지막 한 발을 저렇게 쏘았으니 공구의 패배임이 자명했으나 이미 둘 다 승부의 여부는 관심조차 없었고 특히 공구가 그러했다. 그 말을 들은 이상.

그는 얼굴에 새빨갛게 열이 올라, 잠시 어쩔 줄 모르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티가, 많이 났습니까.

많이 났지. 여태 모른 체 하기도 힘들었네.

으아...... 공구는 부끄럽다는 듯 목까지 새빨개져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제 마음을 설마하니 들켜버릴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이미 알고 계셨다 하니, ......언제부터 들켰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저 자신도 언제부터 품었는지 모른 이 애정을.

......들켰다 생각하니 불쑥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나를 밀어내시면 어떡하지, 이 마음 접으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그러나 이담이라면 필시, 애정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구태여 억제할 필요가 무어 있겠느냐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두라며— 그렇게 말할 터였다. 하나 때늦은 첫사랑을 겪는 청년—실은 청년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은 아무리 성현이라 한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밀어내실 건가요.

아니. 내가 뭣 하러 그러겠나.

이미 활은 제자리에 정리해둔지 오래. 화살을 정리하러 과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란히 걷는 동한 이담은 여전히 달아오른 낯을 한 공구에게 언듯 장난스럽기까지 한 말을 건네었다. 그래, 내 어디가 그렇게도 좋던가. ......그저 선생님이라 좋았습니다.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를 혹 기억하십니까.

처음 만났을 때라면.

이곳에 오기 전이요.

그 말에 이담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정말—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린 과거를 떠올린다. 이 육신을 얻기조차 전. 기러기 한 마리를 비단에 싸 안고, 제자들 몇 명을 이끌며,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던 목소리, 지금과 똑같은 순박한 눈. 이제는 더 낯설어져버린 그 낯을 잠시 떠올린 이담은 다시 제 앞의 사내를 바라본다.

......물론. 기억하네.

......그때부터 선생님을 흠모했던 것 같습니다. 연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이도 워낙 오래되어.

제 오만을 깨우쳐주신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여전히 공구의 귀는 붉었다. 이담은 그렇게 제 마음을 진솔히 털어놓는 공구를 보며, 어쩌면 나는 이 아이의 연심을 눈치챘을 때부터 이런 순간을 상상했던 것인가— 싶어졌다.

......그런가.

이담은 공구를 한동안, 그렇게 보다, 이내 휙 몸을 돌리며 과녁을 향해 다시 걸었다.

그럼 한 번 잘 꾀어 보게.

......예?

혹시 아는가. 내가 자네에게 넘어가서 언젠가, 그 연애놀음이란 걸 하게 될지.

반쯤은 진담인 말이었다. 이담은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뺨에 조금 열이 오르는 듯하였다. 공구는 방금 들은 말이 잘못 들은게 아닌지—싶어, 몇 초 가량을 굳어있다, 이내 환하게 웃으며 이담의 뒤를 따랐다. 마음껏 구애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이지. 방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설마하니 이 연심을 보답 받게—받을 지도 모르게—될 줄은 몰랐거늘.

이담이 공구에게 입을 맞춘 일은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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