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묵맹] 출항

이게 무슨 내용일까요?? 저도 모릅니다...

글러먹음 by 호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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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맹 의 연성 문장

이 다음엔 꼭 나로 인해 울어야 돼.

#shindanmaker

인생을 안다면 신선이라 어찌 사람이겠소


[ 경 발할라에서 제일 인간같지 않은 사람 : 동양 사상 편 : 묵적(묵자) 축 ]

이담이 혀를 찼다. 인간이 없는 곳에서 인간다움을 논하니 이런 결말이 나는 게야. 장주가 동조했고 양주와 열어구는 뒤에서 고개만 끄덕였다. 현수막을 받은 공구가 떨떠름한 얼굴로 관리자의 날개(팔?)에 그것을 걸었다. 관리자는 시답지 않은 것을 본 것마냥 몸을 부르르 떨며 현수막을 내팽개쳤다. 내로라하는 논객들 사이에 작은 침묵이 가라앉았다.

"서양 사상은 누가 되었소?"

"레오폴드요."

"아."

공구는 그 촌스럽기까지 한 현수막을 고이고이 접어서 조심스럽게 묵적에게 전달해주었다. 설문조사를 시작할 때 말렸어야 할 것을 일이 이리 커졌다 사과하는 공구를 바라보던 -솔직히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묵적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 있지요, 하고 덧붙이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묵적은 제가 인외 취급을 받아도 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언젠가 묵적의 집에 들렀던 순황은 거실 한 쪽에 그 현수막이 아주 크게 걸려있었단 소리를 했고, 가끔 인간이 아닌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목격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는 했다. 붓다는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아주 짤막하게 평가했다. 헛된 일이로구나.


고양이를 들고 있던 맹가가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묵적이 고개를 까닥였다. 너 생각보다 동물 잘 다루는구나. 맹가는 제 어깨 위에 얌전히 양 앞다리를 놓고 늘어진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이야? 그럼, 칭찬이지. 묵적은 여상스러운 눈길로 노곤노곤한 고양이를 꾸욱 눌렀다. 고양이가 맹가의 품 안에서 작게 울었다.

"의외네."

"또 뭐가."

"동물들은 나 안 좋아하더라고. 네 품에 있어서 그런가 얌전하네."

좀……. 가깝지 않나?

맹가의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적은 귀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고양이의 등거리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이리 다정한 손길을 발할라의 동물이 거부할 일이 없을 텐데, 까지 생각했던 찰나, 거진 한 시간을 안고 있어도 조용하던 고양이가 하악대며 맹가의 품을 거세게 뛰쳐나갔다. 묵적은 평온한 얼굴로 도망가는 고양이의 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반사적으로 손목을 붙잡은 맹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얀 손등 위로 난 붉은 실선에서 피가 방울져 떨어졌다.

"치료하고 가."

"괜찮은데."

"파상풍 걸린다?"

"발할라에 그런 병이 돌겠- 으악!"

"따라오기나 해. 너 목에도 상처 났으니까."

그제야 목덜미가 따끔거렸다. 맹가는 손목을 붙잡힌 채 묵적의 뒤를 따라갔다.

순황이 말한 것처럼 묵적의 집 거실 한쪽엔 그 괴상망측한 현수막이 치렁치렁하게 걸려있었다. 잠깐 앉아있으라며 묵적이 맹가를 소파에 떠밀었기 때문에 그는 졸지에 그 기이한 현수막을 정면으로 마주봐야했다. 빳빳한 방수천 위로 성의 없이 적힌, 가장 인간답지 않은 철학자라는 글씨가 맹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었더니 묵적이 거실과 복도 사이의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 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뭘."

"현수막. 네 앞에 있는 자가 인간이 아니라고 증명해주는 물품이잖아."

"우선, 난 저 설문조사 참가 안 했어."

"나보고 금수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네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묵적은 답하지 않았다.

생전에 도구를 잘 다루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맹가의 상처를 치료하는 묵적의 손길은 제법 정중하고 친절했다. 맹가는 순순히 묵적의 지시를 따랐다. 재킷과 니트는 소파 팔걸이에 벗어놓고 셔츠 깃을 끌어내리자 그새 굳은 피가 방울져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묵적의 시선이 -정말 제 목덜미만 바라보고 있는건지 맹가가 파악할 길은 없었지만- 드러난 목에 닿자 맹가가 몸을 떨었다. 가만히 있어, 하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낮았다.

알코올 솜이 닿자마자 퍼지는 찌르르한 감각에 맹가가 다시 몸을 떨었다. 묵적은 이번엔 제지하지 않았다. 차가운 알코올이 피가 흘렀던 길 위로 똑같이 흘렀고, 이 기묘한 침묵이 어색해서 맹가는 괜히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묵적의 시선과 손길은 집요한 면이 있었고, 맹가는 항상 이 집요한 눈길에 약했다.

약을 안 발라도 된다 곪아서 터질지도 모른다 같은 사소한 실랑이 끝에, 묵적은 조심스럽게 맹가의 목덜미와 손등에 연고와 거즈까지 과할 정도로 꼼꼼히 붙였다. 발할라에 거주하는 모든 사상들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자가치유능력이 있어 연고는 필요 없을 것 같다 말한 것 뿐인데 그게 더 화근이 된 것 같았다. 묵적은 손등에 거즈를 고정하는 테이프를 네 개나 붙이고 나서야 맹가에게서 손을 뗐다. 아까보다 더 서늘하고 무감한 시선이 맹가의 얼굴을 훑었다.

"울었어?"

"안 울었거든." 맹가가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소독약 때문에 생리적인 눈물이 삐져나온 것이 분명했다. 묵적의 눈썹이 치켜올라가자 맹가가 기겁하며 팔걸이에 내려놓았던 옷을 끌어안았다. 뭔가 심기가 불편하면 저렇게 눈썹이 일그러졌다. 얼른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손목이 붙잡혀 이끌렸다. 졸지에 맹가는 앉아있는 묵적 위에 반쯤 엎드려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자세가 됐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는 것을 씹어삼키고 있으니 조용한 손길이 앞머리 아래에 가려진 눈가를 쓸었다.

얘 진짜 왜 이러지. 그러나 맹가가 그것을 말하는 것보다 묵적이 조금 더 빨랐다. "이다음엔 꼭 나로 인해 울어야 돼." 

묵적은 친절하게 그를 시내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맹가가 중얼거렸다. "이 새끼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하루도 안 되어서 맹가는 상처 위에 붙였던 거즈를 떼어냈다. 하얀 피부 위로 자국이 남았으나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는 옷 소매를 좀 더 내리는 것으로 손등에 남은 흉터를 가렸다. 그는 평소처럼 유학가에 모인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나누었고,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 선학들에게 인사를 돌리곤 잠자리에 들었다. 맹가는 유학자들 중에서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가 눈을 떴을 땐 레오폴드가 창틀에 기이하게 몸을 걸친 채 양손으로 토끼를 들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 안녕하세요."

"… 아침부터 여기서 무얼 하고 있어, 알도 레오폴드."

"토끼 밥 주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아침 햇살을 받은 레오폴드가 선하게 웃었다.

멋대로 창틀 넘은 건 죄송해요. 토끼가 아직 어린데 뜀박질을 너무 잘해서.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저희 쪽은 다들 8시 즈음에 일어나서 이런 새벽(오전 6시 30분이다)에 일어나계시는 분은 정말 간만에 뵈어요. 따위의 말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레오폴드는 맹가의 대답을 바라고 떠드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품에 끌어안은 토끼의 하얀 귀가 쫑긋거리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맹가는 천천히 레오폴드의 뒤를 따라갔다. 어제오늘 아침부터 인간 아닌 것들만 보고 있군. 공구가 알려주었던 소식을 상기한 맹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선배님."

"응?"

"출항 이야기 들으셨어요?"

"무슨 이야기."

"배 타고 나간다던데. 바다 생겼대요!"

"이번엔 또 누가 올라와서?"

"그거까진 못 들었어요. 해양생태학 권위자라고 했는데."

맹가는 바다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레오폴드는 나뭇잎을 투과한 빛에 파랗게 물든 마당에 토끼를 내려놓고 집 안으로 홀라당 사라졌다. 어정쩡하게 잔디가 깔린 마당에 서 있으니 발치에 고양이며 토끼며 같이 있으면 안되는 동물들이 한데 모여 그의 발을 묶었다. 맹가는 잠시 레오폴드가 동물을 조종하는 능력도 있는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레오폴드가 바구니에 간식거리를 잔뜩 담아서 다시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맹가는 디즈니 프린세스마냥 주변에 온갖 동물들을 대동한 채 여전히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디즈니 프린세스?"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요."

집에 멋대로 들어간 것을 용서해준 답례라며 간식 바구니를 선물로 받았다.

바다 이야기는 정말 맹가만 몰랐던 모양이었다. 다산이 들뜬 얼굴로 그 소식 들었냐 하며 맹가의 앞에서 출항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손으로 무언갈 만드는 것에 재주가 있어 기계도 배다리도 직접 설계하던 이였으니 새로운 기술과 그것의 검증에 즐거워하는 것이 당연할 테다. 맹가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생 최대의 목표가 모두가 마음 속의 인의예지를 갈고닦는 일이었던 맹가에겐 생소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율곡도 퇴계도 전부 바다 이야기밖에 안 했으므로, 맹가는 지나가던 프랜시스를 붙잡고 항구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프랜시스는 선뜻 그를 데리고 항구로 향했다. 나름 구색을 갖춘 새까만 범선이 하얀 돛을 펄럭이면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멀뚱히 서 있는 맹가의 옆에 다른 사상가들이 모여들었다. 배 타고 나가서 탐험하고 온대요. 콜럼버스라도 올라온 모양이던데. 의외네요, 관리자는 그런 사람 제일 싫어할 줄 알았는데. 쌈박질은 여기 이 사람도 잘 하잖아. 방금 누구야? 맹가가 제레미의 어깨에 위협적으로 팔을 두르는 것을 시작으로 웃음이 터졌다.

어쨌든 그는 이 소란의 대상자가 아니었으므로, 맹가는 웃음꽃이 터지는 기술자들 사이를 슬쩍 빠져나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랐다. 바닷바람이 길게 늘어진 앞머리를 헤집고 뒤로 넘어갔다. 풀숲이 밟히는 소리가 났고 곧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집요한 손길이 목을 매만졌다. 거즈 뗐네, 하고 묻는 건 의문이 아니었다.

"… 손 놔, 차가워."

"적정체온인데."

"네가 뱀처럼 차가운 거야."

맹가는 매몰차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묵적의 손을 잡아 미끄러트렸다. 맹가보다 머리 반 개 정도가 더 큰 묵적은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몸을 끌어안았다. 화들짝 놀란 어깨가 크게 튀었다. 서늘한 손길이 카디건 안쪽을 파고들었다.

"추워."

"봄에 가까운 날씨지 않나?"

"너 차갑다고…. 놔, 빨리. 구설수에 오르기 전에."

"가야."

"왜."

"내가, 바다에서 죽으면, … 울 거니?"

"같잖은 소리를 하는구나."

맹가는 기어코 묵적을 떨어트리는 것을 포기했다. 허리에 둘둘 감긴 하얀 팔은 철학자의 것이라기엔 기술자의 것에 더 가까웠다. 잘 짜인 근육의 결을 손으로 살살 쓸어내면서 -묵적이 좋아하는 행위 중 하나였으므로- 맹가가 속삭였다. "나는 다산이 죽어도 울지 않아." 묵적은 여전히 그의 어깻죽지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허면, 맹가야. 내가 너 때문에 울면 너는 속상해할 거니?"

"… 뱀이 그런 소리를 해도 괜찮은 거 맞는지."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인간이 아닌 것들은 동물이 따르지 않아."

"레오폴드는?"

"동물을 사랑하는 규격 외 존재와는 사정이 다르지."

묵적이 동물을 사랑하지 않았었나. 맹가는 흐릿한 기억을 헤집었다. 동양 사상은 천지 만물은 모든 것이 이어져 있으니 함부로 다른 것을 경시하지 말라는 사상관을 공유했다. 묵가 사상이 동물을 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을 테지. 맹가가 긴 숨을 내뱉었다. 찬바람이 그들 사이를 헤집고 사라졌다. 모든 이를 사랑하겠다는 이가 한 명만을 눈에 담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인간으로선 당연한 일이 아닌가. 맹가는 다시금 길게 숨을 내뱉었다.

"묵적."

"맹가야."

"알았으니까 일단 놓고-"

"인생을 모르는 우리가 신선이라고 생각하니."

"… 알면 인간이겠나 싶습니다만." 아, 벗어나기엔 틀렸다. 맹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에 색조가 비슷한 머리칼이 한데 뒤엉켜 나부꼈다. 묵적의 사상은 신선을 닮았으나 맹가의 사상은 신선보단 인간에 가까웠다. 인간은 제 일생 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니 맹가는 인간이다. 인간이 신선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었고…. 비틀거리는 몸을 묵적의 어깨에 기댄 맹가가 속삭였다.

"가지 말라 하면 안 가실 위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출항이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맹가는 묵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묵적은 맹가가 포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있었고, 오래 기다린다고 묵적이 돌려줄 애정도 아니었다. 맹가는 마음을 정리하고 이상을 펼치는 것에 노련한 이였다. 그러니까 그는 돌아올 다산만 반겨줄 것이다. 바다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면 다산의 죽음에만 눈물을 흘릴 것이고 다산의 귀환에만 눈물을 흘릴 것이다. 묵적이 으르렁댔다.

"이 다음에는 꼭 나로 인해 울어야 돼."

"어련할까."

울지 않을 것이다. 제 허리를 감싼 팔을 토닥이며 맹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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