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Zoopraxiscope

M1STYP1CTUR3S by Ki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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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oopraxiscope : 최초의 영사기 중 하나.

* 칠흑의 반역자 5.3 스포일러 포함


1.

 

“자네가 그런 기계에도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말하던 알피노는 제법 난감하다는 투였다. 시선에 손에 들린 기계에서 떠나지 않던 것도 기억한다. 긴 가죽끈에 구하기 힘들다는 렌즈까지 두 개나 달린, 제법 무거운 기계였다. 소년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어, 후닥닥 내려놓았던 것도 선명히 기억한다.

게렐 카타인이라는 사람은 그런 것들과 본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다. 스테파니비앙의 제자로 기공방에 들어가서도, 총을 망가트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시드에게도 조언을 구해가면서 말이다. 괜찮아지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겨우 최근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 모든 미숙함은 그녀의 자존심을 갉아먹지는 못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초원에서 온 사람들은 그런 기계들과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곤 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초원의 습성 같아 사랑스러웠을 뿐이다.

 

“여기, 이 손잡이를 돌리면 움직이는 그림이 벽에 비친다고 하던데,”

 

소년은 설명하며 손잡이를 돌리는 시늉을 하다가, 그것을 그대로 놓았다.

 

“안타깝게도 이건 에테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짚이는 바가 없군. 그래서 시드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알려줄 것 같아서 이쪽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네.”

“그걸로 뭘 하려고?”

“뭘 하려던 건 아니었네만……. 그 갈레말드에서 유행한다고 해서 말이야.”

 

소년은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기계 앞부분의 렌즈에 얼굴을 가져다 댔었다.

 

“그 움직이는 사진으로 솔 황제가 직접 연극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해서.”

 

왜,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새롭고 신기한 것에 열광하고, 그것이 우리와 닮은 것을 보여주면 그것에 깊이 빠져들지 않는가. 그 말을 하며 소년은 테이블 뒤로 빙그르르 돌아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기계의 손잡이를 이번에는 진짜 돌렸다. 희미한 빛줄기가 벽에 흰 자국을 남기다가 픽, 불어 끈 촛불처럼 사라졌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사실, 나보다 침략을 직접적으로 겪은 자네가 더 확실한 견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나는 그런 전쟁을 일으킨 남자가 예술과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이 이번에는 그 기계의 렌즈를 그녀 쪽으로 돌리고서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아니.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할까. 쉬는 건 우리 모두에게 오랜만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움직이는 사진과 관련된 기계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 같던데, 이건 보여주는 것도 만드는 것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같더군. 나중에 시드에게 사용 방법을 듣게 된다면, 싸우는 모습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어?”

 

그건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소년은 그렇게 덧붙였으나, 그 말이 없어도 게렐은 아마 순순히 찍혀주었을 것이다. 그런 말 아래의 의도는 이제 숨을 쉬듯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고, 성장이라면 성장일 것이다.

아무튼, 그것이 그 기계에 대한 가장 첫 기억이다.

기계의 이름은 한참 나중에 알피노가 그 렌즈를 그녀에게 다시 들이댔을 때 알게 되었다.

뭐라더라, 그래, 시드는 그것을 ‘영사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다.

 

 

2.

 

기실, 아모로트에 그것이 없을 리 없었다.

아모로트의 것이 우선했는지 갈레말의 것이 우선했는지 알 수는 없어도. 그러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정도의 질문일 것이다. 두 개 모두 만든 사람이 에메트셀크, 솔 조스 갈부스라는 사실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게렐은 그 삼각대의 다리에 손을 올리고서 한 바퀴 그 주변을 빙 돌아보았다. 주재료가 나무인 데다가 금속으로 마감된 부분마저 온화한 황동색이라 그 삼각대는 기계를 받치는 것치고는 제법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래전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틀어놓은 움직이는 사진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이거나, 그녀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갈레말드의 시간임이 분명하기에.

 

고대인들은 밀물처럼 들어와 물병에서 컵으로 쏟아지는 물처럼 빠져나갔다.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형상에서 무엇을 찾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이는 윙윙 울리는 목소리로 웃었고, 어떤 이는 울면서 떠났다. 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들어오는 이보다 적은 사람이 떠나갔다.

 

갇혔다는 말이 더 올바르리라. 그녀는 저 많은 고대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건너에 위치한 문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를 타고 가는 거라면 모를까. 아모로트는 거대했다.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기이한 건물들이 늘어서 짙푸른 색으로 빛나는 그 도시가 그녀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 탓이다. 만든 이의 우울이 옮은 탓이라고 여기고 끝낼 문제가 아니었다.

지칠대로 지친 명계의 총아를 집어삼킨 우울이 아무리 옮겨 붙었다고 한들, 그녀가 느끼는 우울의 근원은 그녀의 것이 아니던가. 그 깊이가 다른 푸른빛임에도, 그녀는 그런 계통의 모든 색에서 그 남자를 찾을 수 있었다.

 

삼각대를 기어오른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높은 곳에서 풍맥의 흐름을 읽어 그것을 타고 빠르게 떠나버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걸어가는 것보다는 적어도 덜 걸리니까. 그 도시에 왜 왔는지는 그 도시의 대리석을 디디고 선 순간에 잊어버렸다. 가끔 너무 짙은 우울은 무기력과 동일하기에. 차라리 다른 이를 하나 더 데리고 돌아오는 편이 좋으리라. 알피노라던가, 알리제라던가. 린도 좋으리라. 떠나기 전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무엇을 하든 그 아이들과 있으면 우울해하는 것마저 허락받아 마땅한 일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그 지긋지긋하고 우아한 도시를 떠나기 위해 등을 돌리고 어쩔 수 없이 맞은편의 스크린을 마주해야 했을 때, 게렐 카타인는 그녀가 평생 잊지 못할 폭설을 다시 보았다.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그 사이로 낯익은 얼굴들이 인사를 건네고, 나무로 된 문이 다가오고, 그것을 밀고 들어가면…….

 

여전히 소리는 없다.

시드는 그 기계들은 소리를 녹음할 수 없는 기계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어쩐지 게렐은 문득 자신이 그 목소리를 잊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불쑥, 화면 밖의 누구에게 주려는 듯이, 김이 솟아오르는 컵이 내밀어지고.

 

게렐 카타인는 도망쳤다.

그 움직이는 그림이 그리던 것이 이슈가르드에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한때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게렐은 그녀가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볼 수 없음을 안다. 다시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붙잡히게 된다면, 분명 그런 것에 붙잡힐 거라고 줄곧 생각했기 때문에. 손끝에 걸리듯이 남은 영사기 다리 뒤편의 갈레말 제국 마크를 굳이 손톱으로 긁고 벅벅 문질러 없던 것처럼 만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조만간 그녀도 원초 세계로 돌아가겠지. 그리고 머지 않은 시일에 아모로트는 정말로 바닷속의 환영이 되어 흩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도 그 영사기는 누군가의 기억을 벽에 비추고 있을까?

바다에 잠겨서까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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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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