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거짓말쟁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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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 Right by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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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토 생존 IF

거짓말쟁이의 고백

평생 어떠한 날이라는 것에 그리 의미를 부여해본 적 없었다. 일 년 중 특정한 하루에 관심을 부여해본 역사는 없었고, 알더라도 그것은 기일 따위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카카시는 오늘이 모월 모일이라서 무엇을 해야겠다, 하는 결심 따위는 해본 적 없다는 소리다.

 

 

 

벚꽃이 피는 봄이었다. 닌전의 후유증은 수습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오비토는 살아남았으며, 어떻게든 사형을 피했다. 그는 꽤 관대한 처분을 받아 나뭇잎의 암부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을 사람들조차 그에게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사쿠라의 생일이 있었다. 사스케도 간만에 마을로 돌아왔으며, 아이들끼리 간단히 생일을 챙기는 듯했다. 카카시 역시 퇴근길에 그 자리를 들러 축하 인사와 함께 간단한 선물을 건넸고. 그때가 벚꽃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니까, 고작 며칠 전이었다는 뜻이다.

 

밤바람은 아직 서늘했지만, 그렇다고 추울 만큼은 아니었다. 완연히 봄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카카시는 불꺼진 거리를 걷는다. 간만의 퇴근이었다. 삼 월에서 사 월로 넘어갔지만, 어쨌든 삼 월 삼십일 일자의 퇴근이었으므로 카카시는 아직 삼 월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관저에서 사택으로 향하는 길은 짧지 않다. 카카시가 지내는 사택은 마을 외곽에 있는 목조 주택이었다. 사내가 유년기를 보냈던, 마을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어 여러 공격에서도 비껴간 곳. 그래서 사택에 가는 길에는 꽤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 시간만 해도 그렇다. 불 꺼진 건물들 사이로 어떠한 사정에서인지 드문드문 켜져있는 불빛,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불. 멀리서 아직 영업 중인 술집, 그리고 만개한 벚꽃…. 아직 단단히 나무에 매달린 벚꽃은 흩날리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이곳은 해가 잘 드는 거리라서, 꽤 빨리 꽃망울을 터트린 모양이었다. 벌써 이렇게 만개한 것을 보면.

멀리서 속삭임이 들려온다. 사랑한다는 말이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작은 속삭임들…. 달콤한 연인의 밀회인 듯 했다. 좋을 때긴 했다. 세상은 비로소 평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저들은 이 행복을 즐길 자격이 있었다. 발걸음이 멎고, 카카시는 툭, 등을 벚나무에 기대었다. 만개한 꽃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별이 떠있었다.

 

 

 

“카카시. 집에 가야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꽤 긴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달이 기울었으므로. 오비토는 어지간해서는 카카시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었으나, 더 늦어졌다가는 얼마 쉬지도 못하고 다시 집에서 나와야 할 터다. 카카시는 오비토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어 쉬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그러나 옮기는 걸음걸이는 느리다. 그 걸음이 목적지에 닿는 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해도 오비토는 다시 카카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카카시 역시 마찬가지로 오비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느리게 이어지는 그 걸음이 끝내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

 

 

 

사 월 일 일이라고 출근을 하지 않는 법은 없다. 이 날은 공휴일도 아니고, 어떠한 날도 아니었으므로. 거짓말쟁이의 날은 어디까지나 어린애 장난과도 같았다. 어린애나 믿을 만한 동화처럼.

 

카카시의 하루는 늘 같았다. 골치 아픈 서류를 처리하고, 닌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재각각의 민원을 처리하는 일들. 이따금 다른 일이 있었지만, 대부분 이 안의 일들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고, 그 말은 카카시가 특별하게 다룰 일이 없었다는 뜻이라. 사내는 오늘 나름대로 한가한 하루를 보냈다.

외근에 나간다 한들, 결국 마을 내라서. 몇몇 이들이 벚꽃 아래에서 애정 행각을 하는 것과, 솔직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 그리고 차마 밝힐 수 없는 속내를 사 월 일 일의 힘을 빌어 밝히는 일까지 카카시는 모두 지켜보았다.

 

날이야 어떻게 되었든 업무는 변하지 않았다. 카카시는 마을을 둘러본 뒤, 올라온 서류들을 검토하고 도장을 찍었다. 그의 도장은 최종 승인 허가였으므로, 대게 자세히 살펴봐야만 했다. 대강 훑어봤다가는 돌이킬 수 없었으니까. 하니 양보다도 그 내용과 과정이 일의 피로도를 올렸다.

그날따라 서류의 내용조차 안온했다. 아카데미의 새로운 학기, 새 닌자들의 현황, 봄 축제에 관한 내용과 조금 이른 여름 축제의 기획…. 카카시는 이러한 평화가 좋았다. 될 수 있으면 영원을 바랄 만큼. 피곤을 참을 수 있을 만큼. 그래서인지, 늦어지는 업무에도 그리 힘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책상 위의 서류가 끝에 다다랐다. 카카시는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 퇴근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으나, 힘은 없었다. 카카시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잠깐의 체력 회복이라는 핑계였다.

카카시는 초침이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그렇게 당황스러운 것 또한 아니었다. 내내 숨어있던 오비토도 모습을 드러냈다. 퇴근 준비를 도울 수는 없었지만, 카카시가 퇴근 준비하는 것을 앞에서 바라보는 게 그의 마무리 일과 같은 것이기도 했으므로.

 

차곡차곡 정리되는 서류를 오비토는 바라보았다. 카카시의 일이 마무리되고, 남은 것들은 남은 이들이 처리할 수 있는 선이었다. 설령 급한 일이 생긴다고 해도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카카시는 그것을 분류하고, 벗어두었던 옷을 걸치며 서 있는 오비토를 바라보았다. 멀찌감치 서 있던 오비토는 자연스럽게 카카시에게 다가갔다.

 

“퇴근해야지.”

“준비 중이잖아.”

“그런 것 치고는 늦는데.”

 

실제로 카카시는 평소보다 느릿느릿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곤하다거나, 힘이 없다는 이유보다는, 굳이 서두르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해도 서류 정리가 끝나면, 짐을 챙기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짐이랄 것도 없었으니까.

 

갈 준비를 모두 마친 카카시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비토는 어리둥절하게 카카시를 바라보았지만, 무슨 말을 꺼내지는 않은 채였다. 카카시가 시계를 보면 그 바늘은 열한 시 오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 월의 첫날도 끝이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의 오비토라면 분명 오늘 어떠한 장난이라도 쳤을 것이다. 그는 개구진 소년이었으므로. 카카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카카시는 갈 준비를 마쳐놓고 앉은 채 골몰한다. 피로가 누적되고, 벚꽃은 화사하게 피었으며, 봄은 그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그래서 카카시는 답지 않은 짓을 해보기로 했다. 사 월 일 일 열한 시 오십육 분의 결심이었다. 카카시는 창문을 열었다. 밤벚꽃은 그것대로 운치있었다.

 

“오비토.”

“응?”

“내일 땡땡이칠까?”

 

오비토가 멍청한 얼굴로 카카시를 바라보았다. 카카시는 눈을 부드럽게 휘며 웃는다. 그 말은 청산유수다. 카카시는 유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벚꽃이 많이 피었더라고. 내일 하루 정도는 출근하지 않는다고 별일이 생기진 않겠지. 뭐, 생긴다면… 이 참에 은퇴라도 할까?”

 

오비토의 표정은 여전히 바보 같았다. 멍하니 입을 벌려서는 놀란 눈으로 카카시를 응시했는데 카카시는 부러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봄이잖아. 아이들도 많이 놀러다니더라고. 연인도 늘어나더라.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것도 한 몫 하겠지만, 계절의 덕도 지울 수 없겠지.”

“하지만, 너는, 나는….”

“너와 나라고 봄이 찾아오지 않은 건 아니잖아?”

 

침묵이 내려앉는다. 새하얀 눈 같은 머리카락도 이제는 익숙했다. 어릴적의 오비토는 꼭 여름을 빼닮았는데, 지금은 겨울도 무척 잘 어울리는 듯했다. 카카시는 웃는다.

 

“농담이야.”

“…?”

“오늘 사 월 일 일이거든. 아이들이 그러더라. 거짓말 하는 날이라고.”

 

카카시가 몸을 일으켰다.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 카카시는 가만히 서 있는 오비토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는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입을 떼기까지의 몇 초 안 되는 순간, 오비토의 귓가에는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와 카카시의 옅은 숨결만이 닿았다.

 

“좋아해.”

 

짧은 말이었다. 카카시가 가볍게 한 걸음 물러나자, 오비토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것까지 거짓말. 여느 때처럼 웃는 카카시의 말은 가벼웠지만, 오비토는 무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거짓말이라니까, 오비토.”

 

오비토가 뒤늦게 시계를 바라보면 시간은 열두 시를 넘겨 있었다. 오비토는 생각한다. 저것이 정녕 거짓말인지. 그리고 그는 문득 떠올렸다. 어릴 적 들었던 어떠한 동화를. 신분을 속이고 무도회에 간 사람의 이야기를. 그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꼭 시계 바늘이 도는 것처럼.

 

동화에서 마법은 열두 시가 되면 풀렸다. 신데렐라의 거짓말은 자정이 되면 막을 내렸다. 화려하게 치장한 드레스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언제나와 같은 현실이다. 이제는 오비토도 현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현실을 잘 아는 만큼 카카시라는 사람 역시도 잘 알았다.

 

“오비토, 대답 좀 해. 그렇게 재미없었어?”

 

카카시의 말은 여느 때와 같아보인다. 그러나 오비토는 알았다. 그 말에 어떠한 감정이 묻어나고 있음을. 그 사실은 카카시 역시도 알 것이다. 마법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끝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거짓에서 현실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다른 게 있다면 카카시는 그것을 한 순간의 아쉬움으로 여기려 했고, 오비토는 그렇지 않았을 뿐이다.

오비토 역시 봄의 기운을 빌린다. 밤의 고요를 빌린다. 먼저 뱉어놓고, 끝내 유지하지 못한 용기를 오비토가 이어나간다. 시간은 그새 열두 시 이 분이 되었다.

 

“난 너 좋아해.”

 

거짓말도 아니고. 지금은 사 월 이 일이니까. 오비토는 카카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은 올곧았으며, 또한 투명헀다. 신데렐라가 남긴 유리구두 마냥. 거짓말은 꼭 맞는 신발 앞에서 들통나버린다. 오비토는 그 말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네 고백도 사 월 이 일이었지.”

 

카카시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는다. 오비토는 저것이 긍정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 그 카카시가 자신의 고백이 사 월 이 일에 이루어졌음을 모를 리 없었다. 거짓말이라는 거짓으로 숨고 싶었을 뿐. 오비토는 웃는다. 모든 진실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미제 사건을 해결한 탐정처럼, 사랑을 찾아낸 왕자처럼.

 

“거짓말은 여기까지야.”

 

카카시, 네 고백은 정말 거짓말이야? 묻는 말은 분명한 확신에 차 있었다. 거짓말이라는 답은 애초에 상정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휘날리는 바람 사이로 벚꽃 잎이 조금 딸려들어왔다. 일부는 책상 위로, 일부는 바닥으로, 그리고 우연치 않게도 두 사람의 머리 위로 꽃잎이 내려앉는다. 봄의 향기가 물씬 퍼졌다.

 

“다시 말할게.”

 

오비토가 씩 웃는다. 그 웃음은 개구진 소년을 닮았다. 사 월 일 일의 힘을 받아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닮았다. 카카시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오비토의 입이 열린다.

 

“카카시, 나를 정말 좋아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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