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여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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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 Right by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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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고등학생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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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맛

덥다. 더웠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더위가 운동장 표면을 뜨겁게 달군다. 지칠대로 지쳤는데도 주저 앉을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카카시는 터덜터덜 걸어 나무 그늘을 찾는다. 운동장 한 귀퉁이에 있는 나무 아래에는 학생이 꽤 들어차 있었다.

 

“수고했어.”

 

카카시는 건네져오는 수건을 거절하지 않는다. 온몸이 찐득거렸다.

 

“개학 하자마자 무슨 농구야, 농구는.”

“미안, 미안. 근데 너 아니면 오비토 막을 사람이 없는 거 너도 알잖아.”

“나도 이제는 못 막는다니까.”

 

그 말대로였다. ‘그 사고’ 이후 활동이 줄며 체력이 달리는 카카시와 다르게 오비토의 운동량은 더 늘었으니까. 사실상 오비토를 막는다는 것도, 오비토의 약점을 알고 수 싸움으로 승부를 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선방했다.”

“얼마나 남았어?”

“오 분.”

 

이들은 일반계 고등학생 주제에 제법 제대로 된 농구 경기 형식을 지켰다. 네 쿼터로 이루어진 게임은 5대 5, 총 열 명이서 승부했는데, 이 학교는 제대로 된 코트도 없었다. 열 명의 학생은 서로 부딪히고 밀어내며 흙바닥을 구르면서도 뭐가 그리 재밌다고들 웃었지만.

뙤약볕 아래에서의 경기는 오 분만 진행해도 힘들다. 그런데 친구를 열 명 넘게 모으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교체 선수는 기껏해야 한두 명. 대부분의 사람이 풀타임으로 뛰어야 했다.

 

“애초에, 농구 선수들도 이렇게 안 한다니까.”

“오비토는 왜 농구는 안 한 대?”

“사람 때리는 게 더 좋다는 걸 무슨 수로 말려.”

“취향 참…. 쟤도 알고 보면 성격 나빠.”

“이제 알았냐.”

 

주고 받는 대화는 평범하다. 카카시는 바닥에 놓인 물병을 집어들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병에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우치하 오비토. 카카시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물 받으러. 곧 경기 끝나니까.”

“네 물병을 가져오지 그랬냐.”

“귀찮아.”

 

왔다갔다 하는 게 더 귀찮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굳이 말로 뱉지는 않았다. 커플 사이에 끼어들어봐야 피곤해지는 건 끼어든 쪽이다. 쯧쯧, 혀를 찬 겐마는 다시 경기가 한창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카카시가 돌아오면, 경기는 거의 끝나갔다. 카카시는 부러 경기장 바로 앞에서 오비토를 기다린다. 스코어는 45대 53. 오비토 팀의 승리라고 봐도 되었다. 남은 시간은 일 분 남짓. 카카시는 옅게 눈살을 찌푸렸다.

햇볕이 따가웠다. 흐르는 땀은 진득했고, 보기만 해도 짭조름했다. 코트 위에서 날아다니는 듯한 오비토는 보는 사람까지 더워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원스레 웃고 있어서. 이런게 역설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오비토는 체질적으로 열이 많았다. 냉한 편인 카카시와는 다르게. 해서 매 여름이면 그는 카카시에게 달라붙었고, 카카시는 끈적거린다며 불평해도 밀어내지는 않는 게 두 사람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열 많은 사람이 어째 코트 위에서는 더운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지.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건가보다. 싫은 것도 참을 수 있는 것.

 

삐비빅! 삐빅! 삐비빅…

일정한 패턴으로 알람음이 울린다. 15분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였다. 열 명의 남학생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었다. 그 와중에 오비토만이 홀로 꼿꼿이 서서 카카시에게 다가왔다.

 

“더운데 왜 그늘에 안 있고.”

“너 목마르잖아.”

 

덥다고 하지 말고 마셔. 찬 물 받아왔어. 카카시의 말에 오비토가 웃는다. 한쪽 얼굴이 약간 일그러지지만, 그조차도 개구지다. 쾌활한 웃음이기도 했다. 카카시는 저 웃음이 퍽 좋았다. 카카시의 낯 위로도 부드러운 미소가 올라온다. 비록 마스크를 쓴 채라서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네가 사.”

“내가 이겼는데?”

“지면 운동 때려쳐야지.”

 

카카시의 말에 오비토가 웃는다. 그도 그렇지. 사실 이렇게 몇 점 안 남기고 이긴 거 들키면 혼날 걸. 오비토의 말은 장난스럽다. 고작 학교에서 하는 농구에 진심을 다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부상의 위험이 있었으니까.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긴다.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었다. 하아…. 여름 방학은 끝났는데, 어째 여름은 끝날 생각이 없는 것 같냐. 오비토가 중얼거린다. 그 말대로였다. 하필 오늘이 말복이다. 가장 더운 때. 카카시는 중얼거린다. 말복이니까. 이제 선선해지겠지….

 

 

 

◇◈◇

 

 

 

말복이라지만 저녁은 꽁치였다. 애초에 보양식을 먹을 만큼 절기나 절일을 챙기는 편도 아니었으니, 특별한 음식을 먹을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은 TV를 켜둔 채 식사를 시작한다.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한다. 그리고 오가는 젓가락은 꽁치나 가지 등에 닿는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학교에 가야했다. 오늘이야 개학이니 단축수업을 했다지만, 내일부터는 꼼짝없이 학교에 갇혀있을 게 분명했다.

 

“오늘은 왜 훈련 안 갔어?”

“개학이기도 하고, 오늘 날씨 너무 더워서.”

 

삽십육 도가 말이야? 이런 날에는 더위먹어서 훈련 못해. 오늘 실외 훈련 예정이었거든. 오비토의 말에 카카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십육 도의 날씨와 뙤약볕에 네 쿼터짜리 농구를 풀로 뛴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야자 신청 했어?”

“아니.”

“왜?”

“그냥. 더워서.”

 

선생들 난리 나겠네. 오비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카카시는 대답하는 대신 꽁치를 한 입 더 먹을 뿐이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식기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간간이 이어지는 TV 소리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아서. 평화로운 고요였다.

 

 

 

“나, 너랑 같은 대학 갈 거야.”

“왜.”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더 좋은 대학 가야지.”

“너 지금 인문계 전국 1위 대학을 무시했어?”

“넌 체육계잖아.”

“상관없어. 그 학교가 뭐, 체육이라고 프로 배출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나 간다고 하면 전액 장학금 대주면서 쌍수들고 환영할 걸.”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오비토는 좋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프로로 뛸 수 있을 수준이었다. 카카시는 그걸 알면서도 물은 것이고.

 

“그러는 너도 이사갈 집 볼 때 투룸 이상으로 보잖아.”

 

당연히 내가 같이 살 거라고 생각하니까. 오비토의 말에 카카시는 아무런 부정도 않는다. 떨어지기에는 이미 서로의 삶에 너무 깊이 침투해버렸다. 완전히 나눌 수 없다면 차라리 붙어있는 게 나았다. 카카시와 오비토는 이미 완전히 독립된 두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공유했다.

 

“이사는 언제 갈 거야?”

“시험 보고 바로.”

“왜 그렇게 일찍?”

“합격자 발표 뜨면 집 금방 빠져.”

 

카카시의 말에 오비토는 웃는다. 결국 두 사람은 붙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과를 보지 않더라도. 그것을 굳이 지적하지 않는 대신, 오비토는 다른 주제를 입에 올린다.

 

“카카시.”

“응.”

“너 이제 곧 성인이지.”

“뭐.”

 

한 달 정도 남았다. 오비토는 지난 지 오래였고. 내내 틀어진 TV 뉴스를 향했던 카카시의 시선이 오비토를 향한다.

 

“왜?”

“그냥. 우리 사귈까 해서.”

“갑자기?”

“너라면 뽀뽀해도 괜찮을 것 같아.”

 

오비토의 말에 카카시가 오비토를 바라보았다.

 

“기다려.”

“한 달?”

“내 생일. 그때까지 여름이 안 끝나면, 그럼 사귀어보고.”

 

때마침 TV 소리가 들린다. 무더위는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구 월이다. 구 월 중순. 백로와 추분의 사이였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여 밤이 길어지기 전의. 카카시의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

“대학 합격도.”

 

카카시가 오비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종례가 막 끝난 참이라, 교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선이 카카시와 오비토를 향한다.

 

“아직 결과 안 나왔는데.”

“어차피 붙을 테니까.”

 

오비토의 말에 카카시는 무어라 말을 더 얹지 않는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굳이 정정할 의욕도 없었으므로.

 

“그보다, 오늘은 별로 안 덥네.”

 

카카시의 말이었다. 평범한 말인가 싶다가도 ‘그 말’을 떠올리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말이 되어서. 오비토는 고개를 저었다.

 

“더워.”

“안 더운데.”

“더워질 거야.”

 

오비토의 말에 카카시가 한쪽 눈을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누군가 오비토를 부른다.

 

“야, 오비토! 빨리 나와! 게임 시작할 거야!”

 

오비토는 씩 웃는 채로 카카시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제서야 카카시는 깨닫는다. 여름이 그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오비토는 카카시를 데리고 여름을 향해 갈 생각이었다.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선선했다. 그러나 운동장 위에서 뛰는 이들은 아니겠지. 카카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뛰어다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소금내가 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유독 푸르고 높았다. 가을이 되어가는 증거처럼.

 

그리고 오비토가 점프해 슛을 때려넣는다. 이거지! 누군가 소리친다. 오비토 역시 환하게 웃는다. 반짝이는 건 땀방울인지, 오비토 그 자체인지. 카카시는 굳이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시간은 금방 흐른다. 하프로만 진행한 경기는 금세 막을 내렸다. 경기는 오비토가 속한 팀의 압승이었다. 오비토는 이긴 기념으로 사탕한 알을 깨물어 먹는 채 웃으며 다가온다. 땀에 젖은 셔츠가 축축했다. 카카시는 결국 묻는 것이다.

 

“더워?”

 

오비토는 환하게 웃는다.

 

“응, 덥다. 아직 여름인가봐.”

 

그 말 한마디에 카카시는 가을로부터 여름까지 끌려오는 것이다. 웃는 낯은 무엇보다 시원한 주제에, 그 뜨거운 열기만큼은 여름의 것이 분명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주위는 어느새 고요해졌다. 대부분의 학생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책가방을 메고 어딘가로 향했다. 갈 곳이 서로밖에 없는 것은 이곳의 오비토와 카카시가 전부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은 여름으로 끌고가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오비토가 카카시를 끌어안았다.

 

“성인 된 거 축하해.”

“응.”

“우리 연애하자.”

 

카카시가 오비토를 마주 끌어안았다. 축축한 등판조차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평소라면 질겁을 했을 끈적거림도 오비토라면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카카시는 웃는다. 여름 같은 사람이다. 추위에 몸부림치는 사람은 밀어낼 수가 없는 계절이다. 사람이고.

 

“그래, 좋아.”

 

떨어지는 승낙에 오비토는 어느 때보다 말간 웃음을 지었다. 빈틈 없이 꽉 끌어안았던 두 사람은 곧 서로의 코 끝이 닿을랑 말랑 한, 그렇지만 그 눈은 맞출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한다.

 

“네가 좋아.”

“…나도.”

 

카카시가 슬쩍 마스크를 내렸다. 그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이 맞닿는다. 그리고 혀가 맞닿는다. 혀에 닿는 것은 여름의 맛이다. 그해 여름의 맛은, 조금 짜고 아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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