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온] 드랍

백업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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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ger warning: 사망

도하랑 온이는 소방관이야. 같은 소방서에서 일하는데 선후배 관계에서 연인으로 바뀐 그런 사이. 둘이 사귀는 건 그 소방서에 근무하는 소방관 모두가 알고 있었을 걸? 아무튼 그 날은 도하가 느끼기에 느낌이 안 좋았어. 뭔가 그냥 찝찝했어. 그래서 괜히 일 하다가도 불안해져서 볼펜 끝을 잘근잘근 씹었어. 이상하다... 이상해... 도하는 중얼거렸지. 그러는 도하 뒤로 온이가 나타나서 사탕 하나를 줬어. 형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알겠어 이거 먹고 힘내 형. 도하는 온이가 준 사탕을 만지작 거리다가 주머니에 넣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출동령이 내려졌겠지. 도하랑 온이는 다른 대원들이랑 같이 출동했어. 가면서도 상황에 대해 대충 듣긴 했는데 실제로 가서 보니까 화재의 규모가 어마어마한 거야. 대충 눈으로만 봐도 다 소훼된 것 같았어. 도하는 호스를 들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온이를 보며 말했어. 온아, 살아서 보자. 온이는 갑자기 도하가 자신을 보고 하는 말에 이상했지만 고개를 끄덕였어. 

화재 진압은 오래 걸렸어. 방화범이 불길을 이곳저곳 남기고 건물 안에는 인화성 물질도 많아서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았거든. 온이는 안에서 화재 진압을 하다가 나와서 진압하는 쪽으로 중간에 교체됐어. 그때 갑자기 불길이 크게 터졌어. 온이는 불길이 거세지는 모습에 놀랐어 근데 갑자기 생각나는 거야. 아, 우리 형. 온이는 급하게 무전했어. 형, 형, 민도하, 수사 1팀 팀장 민도하 대답해! 온이는 걱정되는 마음에 눈물을 꾹 참고 소리쳤어. 그때 도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온아 왜 화내. 무전 너머로는 도하의 희미한 목소리와 불길에 타들어가는 건물의 소리가 들렸어. 온이는 무전 너머로 말을 하려다가 도하의 말에 멈췄어. 온아, 형이 꼭 살아서 보자고. 살아서 퇴근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 미안하고 사랑해. 그 말이 끝나고 온이가 상황파악을 하기도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무전은 끊겼어.

온이는 이성을 잃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 그걸 간신히 동료들이 붙잡았고. 화재 진압은 8시간 만에 끝났어. 온이는 불길이 다 그치고 다 까매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지. 온이는 손을 벌벌 떨면서 그 형상에 다가갔어. 형, 아니지? 형 아니잖아 맞잖아. 온이는 도하가 이미 떠났을 거라는 게 뻔한 걸 알면서도 차마 얼굴 위에 덮여져 있는 수건을 치울 수가 없었어. 온이는 헬멧을 벗고 얼굴 위에 올려져 있는 수건을 치웠어. 민도하였어.

온이는 재에 새까맣게 타버린, 불길에 피가 고여있는,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을 쓰다듬었어. 형, 말 좀 해봐. 일어나 봐, 형, 형. 온이는 답 없는 도하를 보고 울음이 터져나왔어. 온이는 이미 차가워진 도하의 몸을 끌어안았어. 형, 나는 형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사랑해가 아니네. 

도하의 장례식은 빠르게 지나갔어. 영정사진에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도하의 웃는 얼굴이 있었고 온이는 그 사진을 보며 또다시 울음을 토해냈지. 

그 사고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이는 도하의 유서를 발견해. 도하의 사물함 깊은 곳에. 그곳에는 유서와 자신에게 써놓은 편지가 있었어. 유서는 일단 도하의 가족에게 전해줬고 온이는 자신에게 쓴 도하의 편지를 붙잡았어. 읽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 결국 읽었어. 편지 봉투를 뜯자마자 보이는 '온에게'를 보고 울었던 것 같아. 온이는 마음을 가다듬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어.

온에게.

온아, 형이야 민도하.

원래는 편지 이런 거 안 쓰려고 했는데 고민하다가 결국 써.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이걸 읽고 있을 때면, 난 이미 없겠지. 그래도 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내가 불길에 휩싸인 그 순간에 너가 내 옆에 없었다는 거에 난 안도할게.

우리가 너무 소방서에만 있었다는 게 속상하기도 하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데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지 못 하고, 그 흔하다는 레스토랑에서 밥 먹기나 같이 놀이공원 가는 것도 못 했잖아. 그냥 너무 아쉽고 미안해.

그래도 난 너가 나보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있어 진심이라는 걸 보고 널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

온아,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이걸 쓰는 순간에도 목이 막혀서 뭐라 써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한테 그랬지, 소방서에 들어오고 적응하면 유서 써야 한다고.

나는 그때 그 말 진심 아니였어. 난 네가 유서를 쓰는 날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너는 너무 착해서 이 세상에 남아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잖아.

너 대신 내가 희생했다는 것에 난 안심하고 있겠지.

우리가 만약, 만약에, 소방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루하루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거라는 불안함에 살지 않고,

이렇게 유서와 편지를 쓰지 않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온아, 내가 정말로 사랑하고 내 전부인 온아.

우리 다음 생에는 평범한 일반인으로 만나자.

그때는 데이트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자.

그리고 나 없다고 상심하지 말고, 잘 지내야 해. 

찬란하게 빛났던 우리의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더라도, 그 찰나만큼은 누구보다도 밝게 빛났던 우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우리 진짜 다음 생에서는, 다음 생이 있다면 눈부신 햇살 아래서 만나자.

우리는 서로 기억할 수 있잖아?

아무튼, 이 편지 보고 울지는 마.

사랑해.

너를 사랑하는 도하가.

온이는 이거 보고 원망하고 또 죄책감에 눌려서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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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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