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선] 이것저것

백업 by 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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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영이는 매년 축제 때마다 공연을 해. 춤동아리여서 매번 하는 거지. 공연하는 걸 학생들이 좋아하거든.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보영이는 그야말로 무대 체질이야. 평소에도 조금 꾸미는 보영이지만 무대에 가면 완전 반짝반짝하게 화장하잖아, 보영이는 그렇게 화려한 게 무대에서 잘 받거든. 그리고 키가 커서 더 돋보이는 것도 있고. 이 정도면 김보영이 왜 신소재공학과에 갔는지 의문이 들 정도야.

아무튼 보영이는 이 축제를 매년 열심히 준비해. 근데 이걸 선이가 조금 싫어해. 약간 머리 속에서 두 개의 의견이 충돌하는 거지 그야말로. 선이는 보영이가 예쁘게 꾸미고 무대하면서 즐겁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좋아해. 근데 너무 유명해지는 것 같고 무대에서 끼 부리니까 조금 그런 거지. 윙크하고 이런 거는 자기만 보고 싶은데 몇 백명 앞에서 그러고 누가 찍은지 모를 직캠은 여기저기 올라오고 사람들은 보영이 보고 선이 입장에서는 곤란하지.

아무튼 올해 축제 때는 보영이가 어떤 춤 추게 됐는지 물어봤는데 Say My Name을 춘대. 그것도 완전 학생 컨셉으로, 그래서 과잠에 완전 새내기 스타일로 입을 건가 봐. 선이는 보영이가 그 완전 설레는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춘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선이는 일부러 대충 반응해줬어. 어엉 그래 춤 잘 춰. 선이는 이때 알아채지, 와 나 질투하네? 보영이는 선이의 반응 보고 바로 알아챘겠지. 되게 안 그런 것 같아 보여도 자기 사람, 그니까 선이한테는 특히나 섬세한 보영이거든. 보영이는 그런 선이 반응 보고 뒤에서 씨익 웃었을 것 같아. 다 계획이 있었거든.

그렇게 축제날이 다가왔어. 선이는 보영이의 공연이 궁금하다가도 이내 다른 사람들이 보영이를 보고 예쁘다 예쁘다 할 걸 생각하니 뭔가 보영이를 뺏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막막해졌어. 근데 어쩌겠어, 보영이가 꼭 보러 오라고 전화까지 했는데. 선이는 스탠딩석에 섰지. 앞에서 한 일곱 번째 줄 정도였나? 선이는 앞에 나오는 무대들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보고 있었겠지. 그러다가 보영이가 있는 동아리 순서되면 눈빛 싹 바뀔 듯. 보영이 올라오자마자 웃으면서 보영이 바라볼 듯. 근데 선이가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소리 지르거나 손 흔들지는 못 하고 그냥... 바라봤어. 그때 보영이가 선이 한 눈에 찾고 손 흔들어 줄 것 같아. 입모양으로 뭔가 뻐끔뻐끔 말해. 선이는 눈을 크게 뜨고 보지. 보영이가 하는 말은 이거였어. 언니, 사랑해!!

무대가 시작됐어. 역시 보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 할 때라 반짝반짝 빛나 보였어. 선이는 웃으면서 봤는데 보영이 파트가 또 나왔지. '너와 나로 채워질 Timeline 또다시 두근거려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의심하지 마 알고 있잖아 너에게만 Runnin' runnin' go' 이 파트를 완전 선이랑 눈 마주치면서 하는 거야. 웃으면서. 선이가 좋아하는 환한 웃음 지으면서. 그러면 선이는 멍하니 보다가 보영이가 손하트 날릴 때 그제서야 환하게 웃을 듯.

+) 둘이 무대 끝나고 나갈 것 같아. 언니, 무대 어땠어? 좋았어. 그래? 다행이다 ㅎㅎ. 보영아. 응? 사랑해. ...!! 언니 나도 사랑해!!

2.

선이를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보영이와 그 마음을 몰라주는 선이 보고 싶다. 보영이랑 선이는 5년째 알고 지낸 사이. 보영이는 선이를 계속 짝사랑 하고 있고 선이는 그런 보영이 마음을 아예 몰라. 선이가 '보영아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이렇게 물어봐도 보영이는 망설이다가 '...응, 없어' 이렇게 대답할 듯. 왜냐면 괜히 있어, 라고 대답했다가 선이랑 사이가 멀어지는 게 더 무서웠거든. 

보영이가 선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별거 없어. 보영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해줘서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웃는 것도 예쁘고, 착해서 좋아하게 되고. 좋아한다는 감정이 이렇게까지 간질거리는 마음인 줄은 몰랐어.

고등학생 때 만나서 계속 좋아하다보니 둘다 어느새 성인이 됐겠지.. 그러다가 하루는 둘이 술 마시다가 보영이 취중진담 할 것 같다. 언니이... 언니 진짜 바보같아. 으응? 언니는 그렇게 똑똑하고 공부도 잘 하는데 왜 내 마음은 몰라...? 무슨 소리야 내가 너 마음을 얼마나 신경 쓰는ㅡ 언니는 내가 언니 좋아하는 거 모르잖아... 보영이 이 말 하면서 눈물 뚝뚝 흘릴 듯. 선이 그러면 당황해서 어어 왜 그래애..... 이러면서 달래줄 듯. 그러면 보영이는 괜히 울컥해서 언니, 내가 언니 좋아한다고, 왜, 왜 대답을 안 해주는데... 선이는 그러면 이 말 듣고 뭐라 할 말이 없을 듯. 선이는 보영이를 친하고 아끼는 동생 그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3. 

보영선은 뭐니뭐니 해도 얼굴합임. 고양이상 보영이 강아지상 선이. 키라키라한 보영이 단아한 선이. 얼굴합이 미친 씨피... 그래서 그런지 되게 둘 볼 때면 여름이 생각나는 것 같아(급전개 무맥락). 여름에 둘이 하복 입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손 잡고 하교하는 거 보고싶음. 햇볕 아래서 땀은 흐르는데 마냥 기분 나쁘지는 않은, 더운데도 손을 잡고 같이 집 가는 그런 청춘 레즈...

4.

보영선 카톡 훔쳐보기~~~

(맨 처음 문자 잘렸음)

(첫 번째 문자는 보영이의 '언니 우리 내일 데이트 할래??')

다음 날 둘이 즐겁게 데이트 했다는 얘기...

+)) 추가

소방서에서 일하는 소방관 보영이랑 선이. 하루는 출동 갔다가 결국 불길 끝에 동료 한 명이 희생됐어. 보영이는 그 다음 날 밤에 퇴근하지 않고 소방서 건물 옥상에서 난간에 기대서 멀리 쳐다보고 있었을 것 같아. 그리고 그걸 발견한 선이가 보영이 옆에 기대서 있었겠지.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보영이가 먼저 말했을 것 같아. 언니, 만약에, 만약에 있잖아. 우리가... 서로를 못 보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찰나에 빛났다고 안심하며 웃으며 서로를 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아니면 우리가 소방관으로 서로를 만난 걸 후회하게 될까. 선이는 보영이의 덤덤한 말을 들으며 가만히 있다 대답할 것 같아. 보영아, 우리가 남들이랑 다른 건 맞아. 우리는 마음 놓고 편하게 서로를 사랑하지도 못 하고,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사랑하고 있잖아. 근데 나는 우리가 이렇게 소방관으로 만났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우리 관계가 더욱 특별한 거 아닐까. 보영이는 선이 말을 한참을 곱씹다가 결국 내려갈 것 같아. ...언니 춥다, 내려가자. 그래, 우리도 빨리 퇴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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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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