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가 OO에게 차입니다

제목이 곧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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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어쩌다가 벌컥 그런 말이 튀어나온걸까. 셜록 홈즈는 놀랍지 않았다. 진실은 몸을 감추고 있다가도 때가 되면 밝혀지는 법. 자신의 때가 지금이었을 뿐이다. 아주 이르지만, 아주 아주 이르지만. 자신의 뜬금없는 고백을 들은 파트너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론 파트너로서, 같은 뒷말을 기대하고 있지만 셜록 홈즈는 입술을 꾹 닫은 채로 말을 끊어버렸다. 유진은 거기서 말이 끊겼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더듬더듬 대답한다.

“호, 홈즈. 미안하지만 한번도 당신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빙 둘러 말하는 거절이다. 홈즈는 마치 기대했던 말을 들은 듯이 소파에 몸을 깊숙히 누이고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알고있네.”

“안다고요?”

“내가 바보도 아니고, 자네가 날 어떻게 보는지는 뻔하지. 자네의 눈빛, 말하는 어투만 들어도 알아.”

“그, 그럼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유진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부끄러움, 당황, 어이없음…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내가 말했지, 자네를 보기만 해도 안다고. 자네는 읽기 너무 쉽네. 홈즈는 웃으면서 파이프 끝을 잘근 물었다.

“글쎄? 왜 오늘이어야 했을까? 자네가 일본으로 떠나는 전날밤이라서?”

아마 그럴 것이다. 미코토바 유진은 동쪽으로 떠나는 배를 타고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파트너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에 감춘 채로 살아갈 생각이 없었다. 뻔히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 그것을 털어놓아야 직성에 풀렸던 것이다. 아마도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

“자네가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묻고싶었어.”

“제가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요?”

“그래. 이상형 말이야. 명탐정 셜록 홈즈에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남아서는 안되지. 자네보다 젊고. 잘생기고. 능력 있고. 똑똑한 파트너가 사랑한다는데 거절당하는 이유를 듣지 않고서야 자네가 떠난 뒤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

진심인지, 농담인지 말을 뚝뚝 끊어가며 강조하는 홈즈의 어투에 당황했던 것도 잊고 미코토바가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의 파트너다. 사랑고백 같은걸 할 때도, 언제나의 셜록 홈즈다. 미코토바는 이 장난스러운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랑했던 단 한사람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지난 시간동안 도망치듯 일부러 잊고있던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낸다. 미코토바에게 사랑은 달콤함보다 씁쓸하고, 가슴 아린 기억이다.

“…온화하고 강단 있는 한 떨기의 난초와 같은 일본 여성이요.”

“그래.”

“그런 여성이 저를 엎어치기 했을 때 첫눈에 반했지요.”

“그래.”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겁니다.”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군.”

“네. 맞아요.”

유진은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야메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한 것보다 아프지 않았다. 믿음직한 동료는 파이프를 피우며 편하게 앉아있고, 테이블에는 따뜻한 허브티와 커피가 올려져있다. 늦은 밤의 런던 거리는 조용하고 창 밖의 희뿌연 안개 너머로 은은한 가로등 빛이 반짝인다. 유진은 아야메를 떠올리는 것이 더이상 괴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야메와의 추억은 아름답게 박제되어 그의 숨소리, 눈빛, 머리카락 한 올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치 두사람이 처음 만난 날처럼 행복했다. 미코토바는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잊은 채로 추억에 푹 잠겨 파트너에게 아야메에 대해 말했다. 첫만남, 오해, 역경, 사랑……. 일본으로 가는 전 날, 마치 그동안 아야메에 대해 묻는 것은 금기시하였던 것이 오늘을 위했던 것처럼. 그는 아야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그에게 고백한 파트너를 향해 쏟아냈다.

진실은 몸을 감추고 있다가도 때가 되면 밝혀지는 법. 미코토바의 사랑에 대한 진실도 오늘이 때였던 모양이다. 홈즈는 그것을 질투하지도, 분해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은 채로 소파에 몸을 편히 기대고 들어야만 했던 것을 이제야 들은 표정으로 가만히 경청했다.

미코토바 스사토는 펜을 기울이며 고개도 따라 기울였다. 편지를 쓰는 스사토의 손은 어느순간 멈추어 허공을 맴돌았다. 셜록 홈즈는 상체를 스사토 쪽으로 한껏 기울이며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았다. 여느 때처럼 기행을 뽐내는 셜록 홈즈를 방 안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스사토는 여전히 곰곰히 생각에 빠져 고민한다.

“왜 그러지? 미스 스사토.”

“편지하니까 생각난건데, 최근 아버지께서 정인이 생기신 것 같습니다.”

“…….”

“미코토바 교수님이요?”

류노스케가 깜짝 놀라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키자, 미코토바가 펜을 내려놓았다.

“편지를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나, 상대에 대해 말하는 말투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스사토 씨의 심경이 복잡하겠네요……. 그래서 상대는 누구랍니까?”

예의보다 호기심이 앞선 류노스케가 스사토를 쳐다본다. 스사토가 뭐라 대답하려 입을 열기 전에 셜록 홈즈가 빙글 돌며 두 사람이 사이를 지나친다.

“잠깐! 이 명탐정이 한번 추리해보지……. 미스 스사토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온화하고 강단 있는 한 떨기의 난초와 같은 일본 여성, 아닌가?”

자신만만하게 추리를 늘어놓은 명탐정을 상대로, 스사토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니요. 들은 것 뿐이지만, 조금은 성가시지만 의지할 수 있는, 화려한 작약과도 같은 서양 분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이상형을 맞추는건 추리도 뭣도 아니잖아? 대충 스사토 짱이 어머님을 닮았겠거니, 하고 스사토 짱의 이미지를 말한거지?”

아이리스는 홈즈가 틀릴 줄 알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홈즈는 말도 안된다며 바닥에 벌렁 누워서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아이리스나 류노스케가 바닥에 눕지 말라며 놀랐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파트너. 십년이 지나서 이상형도 달라진거야? 그럼 나도 십년간 자네의 옆에 있었다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거야? 조금은 성가시지만 의지가 되는 화려한 작약과도 같은 서양 사람……. 유진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모르다니 분명 바보에, 얼간이에, 멍청이가 분명하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을 질투하며 홈즈는 머리 속으로 파트너를 그렸다.

보고싶어. 미코토바.

어쨌든 바다 건너에 있는 자신의 사랑따위 전해지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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