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헨바흐.

사망소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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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이상할만큼 화창하다. 언제나 안개가 낀 런던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마치 여름날의 일본처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나가는 익숙하고도 낯선 하늘에 따뜻한 바람이 분다. 그런가, 생각해보면 아야메를 떠나보냈을 때도 이런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아야메가 그의 등을 다독여주는듯 하여, 더욱 버틸 수 없었다. 아야메를 잃은 일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냈던 집에서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슬픔을 묻어두고 사는 것은 미코토바 유진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런던행 배에 몸을 실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애써 잊어가며 마음을 달래겠노라고.

그 때와 똑같은 하늘에서, 똑같은 바람이 부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나보다. 아무리 런던까지 도망쳤어도 미코토바 유진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야메는 언제나 유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 스사토를 두고 도망치듯 일본을 떠나 먼 이국의 땅에 있을 때도 유진의 곁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셜록 홈즈도 그러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유진은 울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였다.

셜록 홈즈가 죽었다.

사고였다.

그 명탐정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최후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이상한 약품실험을 하던가, 집에서 폭발물을 관리하던가 하는 위험한 일을 하곤 했지만, 매번 화내며 혼내는 마음과 다르게 셜록 홈즈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액운은 그를 피해가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랬던 셜록 홈즈가 사고사라니, 말도 안된다.

장례는 조촐했다. 토비아스 그렉슨을 비롯한 그와 친분이 있는 야드의 형사 몇이 전부였다. 분명 홈즈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 그 사람들은 한명도 오지 않았다. 연을 끊은 것일까? 아니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명탐정처럼 그들도 이미 그의 곁에 없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홈즈는 남의 이야기는 마구 들추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알고있는 것이라곤 명석하지만 사회성 없는 명탐정이라는 것 뿐이다.

미코토바 유진은 울지 않았다. 분명 두사람이 함께 생활하던 221B로 돌아가면 눈물이 쏟아지듯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무너지겠지만 적어도 장례가 끝날 때까지는 제정신으로 있고 싶었다. 함께 살며 마음을 나누던 사람이 죽은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않나? 아무렇지 않은 척 서있는 것은 자신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줄걸 그랬다. 더 어울려줄걸 그랬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후회 밖에 남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빨리 떠나는 것인지. 어째서 미코토바 유진이라는 남자는 언제나 남아서 그들을 기리는 역할인건지…….

홈즈의 마지막은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어째서 스위스로 향한 것인지, 그곳에서 누굴 만나려했던건지, 어째서 파트너인 미코토바 유진은 데리고 가지 않은건지. 주먹을 꽉 쥐자 홈즈의 마지막 편지가 형편없이 구겨졌다.

《나의 친애하는 파트너에게.

말도 없이 먼저 먼 땅으로 떠나는 것에 유감을 표하네. 나는 지금 프랑스 행 배를 기다리는 중이야. 목적지는 스위스라네. 자네를 두고가는 것을 서운해하지 말아. 내 돌아오는 길에 런던에서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더이상 고통당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몹시 기뻐하고 있네. 물론 그것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고, 그 때문에 내 친구들, 특히 친애하는 자네가 고통을 겪겠지만 나는 이미 기로에 섰고 그 어떤 결말보다도 이보다 더 마음에 들지는 못할걸세.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 온 편지가 속임수라는 것을 이미 알아챘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네를 두고 간 걸세.

영국을 떠나기 전에 내 모든 재산은 마이크로프트 형에게 넘겨주고 왔네. 자네에게 남길 것은 푸른 봉투에 동봉했네. 기억해, 푸른 봉투야.

잊지말게, 나는 자네의 영원한 벗이라는 것을.

셜록 홈즈.》

그 편지의 내용은 누가봐도 사고사가 아니지 않은가. 셜록 홈즈는 희생의 기로에 섰고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밖에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야드에 호소했지만 스위스에서 사고사 판명이 난 죽음의 재수사는 불가능했다. 바보같은 남자. 이 편지가 유언장이 될 줄 알았으면서 미련하게 그걸 혼자 가? 아무리 스위스라도 미코토바는 따라갈 자신이 있었다. 홈즈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홈즈는 그를 믿지 않은 것일까? 혹은 그를 지키기 위해 혼자 떠난 것일까? 속내는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흐려지고 작은 물방울들이 어깨를 젖어간다. 아직 눈물을 감출만큼 비가 오지는 않는다. 아직은 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미코토바는 편지를 품 안에 넣고 몸을 돌렸다. 이대로 221B로 돌아가 그가 없던 것처럼 잘 살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한번 아야메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쳤던 미코토바 유진이다. 셜록 홈즈의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왓슨 교수에게…아니면 겐신에게라도 찾아가 짐을 정리하고 새 집을 찾을 때까지만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이번에도 도망치나?”

익숙하지만 낯선 낮은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어느새 구석에 서있던 남자는 깜짝 놀랄정도로 홈즈를 닮았다. 하지만 유진은 이내 정신을 차린다. 단정하게 넘긴 검은 머리, 빳빳한 검은 정장, 비가 얼마 오지 않는데도 비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미 펼쳐진 검은 우산, 왼손 약지의 반지. 옆구리에 낀 서류가방과 푸른 봉투. 깨끗한 구두. 아마 이 남자가 홈즈의 형…정부관료라던 마이크로프트 홈즈일 것이다. 처음보는 사이에 인사가 먼저겠지만, 날카로운 말에 유진은 오늘따라 심기가 뒤틀려 삐뚤게 대답한다.

“이번에도 도망치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서 런던행, 홈즈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서 어딜 갈 셈이지?”

“…당신과는 상관 없을텐데요.”

“상관 있다마다, 221B를 버린다면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되지.”

유진은 모자를 푹 눌러쓴다. 지금껏 한번도 홈즈를 찾아온 적도 없는 주제에.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었다. 물론 진짜 형이라면 자신만큼, 어쩌면 자신보다 더 힘들겠지만 그것이 유진을 괴롭힐 이유가 되지 않는다.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화풀이인가? 유진은 이미 충분히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홈즈에게 의지가 되지 못했다…그래서 홈즈는 그를 두고 혼자갔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나날이 하며.

“초면인 상대에게 무례하군요.”

“섭섭하군. 동시에 뿌듯하기도 해.”

“무슨 소리죠?”

“자네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뜻이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남자는 우산을 쥐지 않은 손으로 지팡이를 한바퀴 돌렸다가 유진 쪽으로 바싹 다가가 그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향수 냄새. 종이 냄새. 그리고……. 화학약품의 냄새. 유진은 남자를 다시 마주본다. 불쾌할정도로 셜록 홈즈와 닮은 얼굴. 그리고 검은 머리.

“당신의 그 머리색……. 염색이군요?”

“그래서?”

“염색한지 얼마 안됐어요. 염색약의 냄새를 지우려고 향수를 뿌렸군요.”

“그렇군.”

원래 머리는 홈즈처럼 금발이려나? 가까이 다가가자 양복도 입은 적이 얼마 없어보였다. 소매가 전혀 닳지 않았고 생활감이 없었다. 그리고 목에는 텍을 방금 뜯은 흔적이 있다. 늘 빳빳한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새 양복이라서 빳빳한 것이다.

“양복도 새거고요.”

“으흠.”

“홈즈는 마이크로프트가 정부 관료라고 했어요. 그런 사람이 장례식장에 새 양복을 입고올만큼 양복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돼요.”

“훌륭해.”

유진은 용기를 내 남자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왼손 약지의 반지를 살짝 빼본다. 남자는 그런 그를 지켜보며 그저 미소짓는다.

“반지 자국이 없어요. 반지를 낀지 얼마 안되었거나…불륜을 하고있겠네요.”

“나는 어느쪽으로 보이나?”

“반지를 낀지 얼마 안되어보입니다. 반지에 흠집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당신은 모든 것이 새것이네요. 당신의 머리도, 옷도, 반지조차도. 마치…….”

새 사람처럼.

“당신은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아니군요?”

“내 입으로 단 한번도 그렇게 말한 적은 없네만.”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무언가…놓쳤다. 비가 올 줄 알았다는 듯한 저 우산? 아니다. 어차피 변덕스러운 런던 날씨에 염색약이 지워질까봐 가지고 다니던 거겠지. 반지에 이니셜이라도? 아니다. 아니야. 어째서 저걸 놓쳤지? 그의 서류가방 옆에 끼어있는 저 푸른색 봉투.

“그 봉투는 셜록 홈즈가 제게 남긴 것이지요.”

남자는 순순히 푸른 봉투를 유진에게 넘겼다. 봉투를 받아든 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지도 않고 푸른 봉투를 반으로 갈랐다. 또 반으로 갈랐다. 그 반을 다시 가른다. 흩어진 푸른 조각 사이에서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종이가 흩날린다.

“홈즈는…봉투에 동봉된 것을 제게 남긴다고 했습니다. 봉투에 동봉된 것은 이 종이가 아니라 봉투를 가지고 온 사람 그 자체, 바로 당신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맡아줄텐가? 나를.”

“…….”

유진은 손에 남아있는 종이를 털어내고 진심을 담아 홈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홈즈는 주먹을 얻어맞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우산은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하지만 홈즈는 예상하고 있던건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당신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습니까? 파트너.”

“그 말을 기다렸어.”

유진은 셜록 홈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홈즈는 그것을 잡고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와 빗방울을 털더니 안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낸다.

“솔직히 말하면 편지를 보자마자 자네가 알아채면 어쩌나 했지. 자네를 너무 고평가했나보군.”

“야드가 찾아와서 당신이 죽었다고하는데 유언장 같은걸 가짜라고 생각할 리 없잖아요. 그래서 이 소동은 다 뭡니까?”

“영국의 높은 분에게 찍혀서 말이네, 사신의 눈을 피해서 잠시만은 마이크로프트로 살아가려고.”

“저한테 미리 말해줬을 수도 있잖습니까!”

“자네는 연기를 영 못해서말이야. 장례식까지는 숨기자고 생각했어.”

유진은 홈즈의 입에 물려있던 파이프를 뺏어서 냅다 던져버렸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홈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진을 바라봤다. 유진은 그것이 마음에 들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정말 개자식입니다.”

“자네는 그런 개자식을 사랑하고 말이지.”

예. 아무래도요.

자존심 때문인지 마지막 말은 내뱉지 않고 유진은 날아간 우산을 쫓아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버린다. 아무래도 오늘은 왓슨 교수에게도 겐신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221B로 돌아갈 운명인가보다. 빗방울이 세차게 얼굴로 달라붙었다. 이정도면 조금 울어도 티나지 않겠지. 미코토바는 조금 울었다. 눈치빠른 홈즈에게 티나지 않을정도로, 정말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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