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호열백호] 계단에 락스칠해놨으니까 조심하세요.

회사원? 양호열x청소부? 강백호

-호열 백호 서로 모르는 사이.

-정장 걸친 호열이랑 점프수트 입은 백호 보고싶어서 썼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렁차게 인사하는 청소부에게 호열이 미소를 지으며 마주 인사했다. 보통 환경미화원은 중장년의 여성들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기하게도 이 건물에서 일하는 미화원은 커다란 체격의 젊은 남자였다. 어느 정도로 큰 체격이냐하면...과장 조금 보태서 기지개를 펴다가 천장에 구멍을 낼 수 있을 정도?

사실 청소를 하게 되면 대체로 허리를 숙여서 바닥을 닦고 있는지라 호열도 그가 그 정도로 큰 줄은 몰랐다. 그냥 덩치가 좀 좋네, 정도였지. 그러다 어느 날엔가 막 걸레질을 마친 남자가 허리를 곧게 펴며 허공을 향해 하품을 할 때, 복도에 즐비한 문틀보다도 반뼘은 더 높게 올라온 빨간 머리가 눈에 들어오며 새삼 깨달았더랬다.

미화원은 사람이 없는 시간에 주로 일을 하다보니 타 직종에 비해 근무시간이 평범하지 않은 호열과 마주치는 일이 꽤 잦았다. 만날 때마다 호탕하게 인사하는 청소부를 무시하기는 미안해서 대답을 해 줬을 뿐인데, 저쪽에선 내적 친밀감이 많이 쌓인 모양이었다.

호열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계단을 오르는 중에 "어!" 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헉! 지금 출근하는 거에요? 고생이 많으시네."

호열은 속으로 그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일요일 아침 5시였으니까.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창문을 등지고 선 호열은 계단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던 남자가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것에 적당히 반응해주며 마저 올라갔다. 처음 봤을 땐 꽤 사나운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미성년자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그 나잇대 청년으로 보였다. 

"아, 저기, 그, 뭐라고 불러야하지."

계단 반 층을 다 오른 호열이 코너를 돌아 복도로 나가기 직전, 남자가 호열을 불러 세웠다. 호열은 내딛으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힐끔, 그가 찬 명찰뱃지를 봤다. 강백호.

"네, 왜 부르시죠 강백호씨?"

"헉, 제 이름을 어떻, 아 명찰있지 참."

눈이 땡그래지며 놀랐던 남자가 이내 헤헤 웃으며 손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었다. 

"별 건 아니고, 이쪽 계단 통째로 락스칠할거라서 혹시 몇 시간 내로 나가실거면 반대쪽 계단 쓰라구여."

"아...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별 말씀을."

머쓱했는지 뒷머리를 쓱쓱 만진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옆에 세워둔 대걸레를 잡았다. 아마 락스가 희석된 물이 담겨있을 파란 플라스틱 양동이에 대걸레를 푹 집어넣는걸 곁눈질로 본 호열은 고개를 돌려  제 사무실로 향했다. 

남자 청소부, 아니 강백호와 말을 트기 시작한 건 그 날 부터였다. 계단에 락스 발라 놓을거라는 얘기에 대답만 해줬을 뿐인데 갑자기 친한 척 말을 거는 백호에게 호열은 조금 당황했다. "그쪽은 내 이름 아는데 왜 나한텐 이름 안 알려줘요! 알려줘!" 하고 떼를 쓰는 그에게 마지못해 이름을 알려준 후론,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불렸다.

"아! 호열아! 좋은 아침!"

"...응, 좋은 아침."

통성명을 하고, 몇 번 백호 혼자 사소한 이야기를 털어 놓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놨다. 백호는 생각보다 어리게 봤던 호열이 저랑 동갑이라 놀랐고, 호열은 하는 행동이 어려 보였던 백호가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근데 맨날 양복 빡세게 차려입고 무슨 일해? 사무실에 명패도 없던데."

"뭐어 그냥, 사무직이야. 그러는 너는? 어쩌다가 청소부가 됐어?"

그 체격에 그 힘이면 물류센터 같은 곳이 돈도 더 많이 벌지 않나? 덧붙인 호열의 말에 백호가 멋쩍게 웃는다. 

"사실 청소만 하는 건 아냐. 이것저것 해. 청소는 보통 다른 업무랑 근무 시간이 안 겹치니까."

"아하."

어쩐지 그럴 것 같긴 했다. 호열은 그가 나눠준 샌드위치 반쪽을 입에 넣으며 멍하니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새벽 하늘을 올려봤다. 

근데...어쩌다가 얘랑 이런 관계가 됐지? 호열이 그 생각을 더 이어가기 전, 백호가 보온병에서 녹차를 따라 건네줬다. 양 손에 뜨끈하게 전달되는 온기와 귀에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가 들어오는 것이 조금 마음에 들어서, 호열은 조금 더 앉아 있었다. 덕분에 젤 형태의 락스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음에 화장실 청소할 때 써봐야지...

오늘은 출장 가는 장소가 조금 멀었다. 평소보다도 한 시간 일찍 일어난 호열은 퀭한 얼굴로 씻고, 머리를 넘기고,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아직 여명도 밝지 않은 시간이었다. 

컴컴한 하늘에 한숨을 쉬며 택시를 탔다. 회사에서 보내 준 택시였기에 기사도, 호열도, 서로에게 일절 관심을 갖지 않고 텅 빈 거리를 가로질렀다. 

침묵 속에서 내달린 끝에 도착해서 내린 호열은 탁해진 눈으로 초고층 건물을 목이 꺾이도록 올려다 봤다. 엘레베이터도 못 쓰게 하면서, 이런 건물의 옥상까지 걸어서 오르게 하다니. 언젠가 때려치고 만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호열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사직서를 쓰며 계단을 하나하나 올랐다. 옥상 문을 열고 나가니 높은 곳에서 으레 부는 거센 바람이 호열을 훅 스치고 지나갔다. 저도 모르게 왁스로 넘긴 앞머리를 살살 만져 본 호열은 끊임없이 몸을 치고 지나가는 강풍에 머리는 그냥 포기하고 문을 닫았다. 

적당히 난간 앞까지 걸어간 호열이 한쪽 무릎을 꿇고 가방을 다리 사이에 놓았다. 평범해 보이는 서류 가방에서 부품을 한 개씩 꺼내며 착착 조립하자 순식간에 그럴싸해보이는 라이플이 만들어졌다. 

호열은 어딘가 헐거운데가 없는지 한 번 손바닥에 툭, 털어본 뒤 바닥에 엎드려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시키고 조준경에 눈을 댔다. 거리에 맞춰 미리 세팅해둔 조준경 안으로 보이는 호텔은 어제 작업자가 한 칸만 일반 유리창으로 바꿔 놓은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일부러 접근시킨 사람과 열렬하게 몸을 섞느라 헐떡이기 바쁜 대머리를 감정없이 시야에 담은 호열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멈추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머리에 박히며 목표가 뻣뻣하게 굳어 침대 밑으로 쓰러지는 것까지 확인한 호열은 엎드린 자세에서 무릎을 당겨 일어나 앉았다. 조립했던 속도보다도 훨씬 빠르게 총을 분해해서 가방에 순서대로 담은 호열은 탄피를 주머니에 넣고 옥상 문을 열었다. 

일을 마쳤으면 최대한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나 잡히지 않는 것까지가 임무다. 호열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거의 날 듯이 뛰어 계단을 내려왔다. 앞으로 3층. 이대로 나가 두번째 골목을 돌면 택시가 대기 중일 터였다.

"엉? 양호열?"

"...?"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호열이 순간 삐끗했다가 얼른 중심을 잡았다. 반 층 아래에 백호가 대걸레를 든 채로 놀란 눈으로 호열을 올려 보고 있었다. 

"너가 왜 여깄어? 이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백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모습에 호열도 속으로 외쳤다. 임무 중에 만난 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살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호열이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채로 멈춰 서 있자 백호가 "아," 하고 입을 뗐다. 

"이 밑으로는 락스 발라놔서 지금 내려가면 안되는데...급한 거 아니면 좀 이따 가라. 아니면 반대쪽으로 가등가."

"어...어...지금 가야 하는데. 밟으면 안 되는거야?"

"어...희석 별로 안 한걸로 칠해놔서 너 구두랑 옷에 튀면 탈색될텐데...그렇게 급하면 걍 딴데로 가면 안되냐?"

"......"

호열이 가방 손잡이를 꽉 쥐었다. 모습을 들킨 것도 모자라 말까지 섞었다. 회사에서 알면 모가지가 따이는건 호열이었다. 호열이 마른 침을 삼키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하는데, 그런 호열의 눈에 백호의 손이 보였다. 아주 미미해서 일반인이라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호열의 눈에는 보였다. 지금 내려가야 한다는 호열의 대답에 백호의 손이 대걸레를 조금 더 세게 쥔 것을. 

......흔들리던 눈동자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여명도 밝지 않은 이 깊은 새벽에, 계단에서 락스 청소를 하며, 그냥 지나가겠다는 말에 같잖은 변명을 대며 손에 쥔 도구를 강하게 잡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자. 

평소 인사하고 지냈던 동갑이라는 사실을 지우면 아주, 아주아주 수상한 존재였다.

"...너 뭐야."

"...청소부인데?"

"여긴 네 구역도 아닌데?"

"청소부한테 구역이 따로 있나? 부르면 가는거지."

호열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호출기가 진동한다. 왜 아직도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았는지 묻는 회사일 테다. 호열은 진동을 무시하며 제 소지품을 상기했다. 

가방에 있는 라이플은 분해되어 있을 뿐더러 근접전에선 못 쓴다. 외투 안쪽 주머니엔 손바닥만한 공기총이 있고. 바지를 걷으면 종아리에 군용 단검이 매어져있다. 

뭘 써야 효과적으로 한 번에 죽이고 튈 수 있지. 호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그 와중에 백호의 한쪽 손이 작업복 주머니로 조심성 없이 들어가는 모습에 호열도 품 속에 손을 넣었다. 뭘 꺼내든, 위쪽에 있는 자신이 조금 더 유리했다.

백호는 계단 반 층 아래서 그런 호열을 물끄러미 올려봤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당황하더니, 지금은 뭔가 무서운 표정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백호도 좀 멀리 나온 곳에서 호열을 마주쳐서 당황하긴 했다. 

뭐, 자기도 알선소에서 소개해준대로 멀리 나와서 새벽같이 일을 하는데, 호열도 그럴 수 있겠지. 근데 저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건 뭐람? 그렇게 급한가.

백호가 힐끔 계단 밑을 내려봤다. ...조심해서 내려가면 될 거 같기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발에 비닐이라도 씌워준다고 할까. 그렇게 생각한 백호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착각계 좋지 않나요.^^

-근데 이건 이제 목숨이 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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