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준호른] 붉고 푸른 하늘2

댐준 전제 삼국지 AU

* 간단히 정리해보는 캐릭터들의 직위

대장군 - 병마의 대권을 관장하는 무관 최고직. 대만이 실각하기 전에는 바로 그 아래 자리 표기장군까지 올랐고 복직은 대장군으로 했다는 설정

승상 - 현대의 국무총리 같은 자리

상서령 - 문관이며 상서성(상소문이나 왕의 연설문 같은 황제와 신하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치적 문서를 관장하는 부서)의 수장. 해당 연성에서는 태자가 된 백호의 스승 역도 겸하고 있다는 설정

위장군 - 궁성의 수비와 황제의 호위를 맡으며 금군의 통솔을 맡는 자리. 품계로는 대장군 다음 자리인 표기장군에 준함.



구두 상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대만은 치수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상서령은 아직 성치 않은 몸이니 괜히 쓸데 없는 짓 하지 마시오."

"...승상이야말로 쓸데 없는 걱정은 접어두시오."

등 뒤로 들린 목소리에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대만은 걸음을 재촉했다. 궁 앞에는 그를 기다리던 소수의 사병과 그가 타고 온 말이 묶여 있었다. 말을 묶어둔 끈을 풀고 안장에 오른 대만은 병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는 모두 돌아가도록 하거라. 호출이 있을 때까지는 편히 쉬어도 된다. 나는.. 상서령을 뵈러 가야겠다."

병사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대만은 그대로 말을 몰았다. 멀어져 가는 대만과 말의 뒷모습을 보며 병사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서두르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가?"

"허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구만. 방금 상서령이라 하는 말 못 들었어? 그 분 만나뵈러 가는 거니까 저리 서두르시는 거지."

"그니까 그게 왜..."

"아이 참, 답답한 친구네."

여전히 사태파악이 안된 친구를 보며 병사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쓱 살피더니 한껏 낮춘 목소리로 친구의 귀에 속삭였다.

"..장군께서 몇 년 째 마음에 두고 계신 분이 상서령이시지 않나."

"에에?! 정말인가?"

"정말이고 말고. 국경지대에 계실 때도 상서령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유독 마음을 쓰셔서 모르는 이가 없었는데.. 자네 정말 눈치가 없구만 그래."

병사는 혀를 차며 대만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병사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대만은 도성 북쪽 끝에 있는 상서령 준호의 저택에 도착했다. 주위에는 수십명의 사병들이 저택을 둘러싼 형태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이 병사들은... 서장군의 사병들인가. 병사들을 눈으로 훑는 대만의 시선을 눈치챈 병사들은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상서령을 만나러 왔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지?"

"네, 장군."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문을 열어줬다. 말에서 내려 저택의 문을 지나치자 하인들이 나와 그를 반겼다. 

"상서령은 지금 어찌하고 계신가?"

"침상에서 쉬고 계십니다. 서장군님과 같이 계십니다."

"서장군과?"

"예, 태자 저하께서 오셔서 함께 얘기를 나누셨는데 저하께선 황궁으로 돌아가셨고 서장군님은 준호님과 할 얘기가 있다하셔서 같이 계십니다."

어쩐지 병사들만 보이고 서장군은 안 보인다 했더니.. 대만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준호의 호위를 봐주고 있는 고마운 이였지만 대만은 그것이 마냥 달갑지 않았다. 황실 수호라는 중대한 일을 두고 다른 일을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준호의 호위를 맡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폐하께서 허락하신 일에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준호의 방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의 방 근처까지 왔을 때, 대만은 방 안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멈칫거렸다.

"서장군께는 면목 없습니다.."

살짝 열려 있는 문 틈으로 안을 살피니 침상에 앉아있는 준호와 그 앞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하인은 문을 열고 대만이 왔음을 알리려 했지만 대만은 이를 저지했다. 

"그만 물러나시오. 내가 알아서 들어가겠소."

대만의 말에 하인들은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불러달라 하며 자리를 떠났다. 대만은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서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보기 좋은 일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신경이 쓰였다. 혹여 나에겐 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거라면...

"제가 쓰러진 후에 연회장의 봉쇄가 반드시 필요했기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지만 이렇게 저택의 경비까지 맡게 되실 줄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드릴 말이 없군요."

태웅의 말에 준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지만 기운이 없어보였다. 아직 완전히 해독이 되지 않았는지 침상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위태로워보였다. 금방이라도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 대만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든지요."

"..왜 이런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대장군 때문입니까? 예상 못했던 질문에 준호는 말문이 막힌 듯 태웅을 쳐다봤다. 놀란 준호와 달리 태웅의 표정은 담담했다. 오히려 그런 시선으로 볼 거라는 걸 예상한 듯한 얼굴이었다.

"암살을 모의한 자들의 자백서.. 저도 봤습니다. 대장군을 끌어들여 주모자로 몰 계획이었다고.."

"..."
"대장군을 지키려 스스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신 겁니까?"

태웅은 가만히 준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준호의 답을 기다리는 그의 시선에는 약간의 의아함, 약간의 분노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의 시선에 담긴 뜻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하시군요. ..서장군의 말씀대로입니다. 물론 폐하나 태자 저하를 위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정 장군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번 누명을 쓴 사람에게 다시 누명을 씌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그 사람이 또 같은 아픔을 겪는 게 싫었습니다."

하지 않은 일로 허망하게 보낸 세월이 10년이 넘었다. 긴 세월 속에서 대만은 갈 곳 없는 분노와 절망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헤맸다. 그 모습이 준호의 눈에는 별이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3년 전, 대만의 누명을 벗긴 건 자신이 아니라 승상이 된 동문이었다. 그가 그 때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싶다 청하지 않았다면 대만은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빛을 되찾는 일에도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와의 교류는 오래 되었지만 정작 그에게 힘이 되어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만이라도 그를 도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험하다는 건 알았습니다만 다른 이에게 할 부탁도 아니었으니까요."

"...."

준호의 시선이 창문 밖 하늘로 향했다. 마치 저 먼 국경지대에 있을 그를 떠올리는 듯 지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잠시 밖을 보던 시선을 거둔 준호는 태웅을 쳐다봤다.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의 담긴 것은 아까와 달랐다. 

"쓸데 없는 말이 많았군요. 폐하나 태자 저하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하다니 반역죄라 해도 할 말이 없군요. 서장군께서도 부디 방금 말은.."

"그리 생각치 않습니다."

"예?"

"..반역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태웅은 뭔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렸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조금 전, 하인이 가져다 준 준호의 식사를 가져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태자 저하 때문에 식사를 못 하시지 않았습니까. 죽이 식습니다."

야윈 준호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는 태웅의 태도에 준호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대만 역시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끼익 거리며 문이 열리고 방 안에 있던 두 사람은 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놀란 준호와 달리 태웅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놀라지도 않고 불쾌해하지도 않고 그저 대만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장군, 어찌 여기에... 분명 도착은 이틀 뒤라고.."

"황궁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하여 조금 서둘렀습니다. ...준호야"

문가에서 성큼성큼 걸어 준호의 앞까지 다가온 대만은 손을 뻗어 준호의 뺨을 어루만졌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야위고 초췌해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갑작스레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놀란 준호는 몸을 움찔거렸지만 손길을 피하진 않았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어. 하다못해 치수에겐 얘기 했어야지."

"자, 장군.. 그것은..."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두 분이서 편히 말씀 나누십시오."

태웅은 둘을 향해 정중히 인사한 뒤에 방을 빠져나갔다. 대만은 그 모습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준호의 뺨을 어루만지다가 조금 전까지 태웅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GL
#BL
캐릭터
#권준호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