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준호른] 붉고 푸른 하늘 1

댐준 전제 삼국지 AU

* 쓰다보니 언급이 안됐는데 황제는 안선생님이고 태자는 백호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장군, 우선 앉으시오."

"됐으니 설명부터 하시오."

책상 앞에 앉은 남자를 노려보며 대만은 손에 든 검을 꽉 쥐었다. 국경을 침범하는 외적을 막아내라는 황제의 명을 받아 수도를 떠난 지 2년. 황제의 명을 충실히 수행한 끝에 더 이상 국경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내고 돌아온 그를 반긴 건 황궁에서 벌어진 독살사건이었다.

"...며칠 전, 황궁에서 연회가 있었고 거기서... 태자 저하를 독살하려는 시도가 있었소. 다행히 태자 저하는 무사하시지만.."
"태자 저하가 무사하신 건 나도 알아.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상서령... 준호가 독을 마셨는지야."

대만의 말투가 바뀌자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입조심 하시오. 대장군. 여긴 황궁이오.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그대도 모르지 않을텐데?"
"말 돌리지 말고 얘기해. 왜 준호가 독을 마신거냐고!"

쾅! 책상을 내려친 소리가 두 사람이 있는 방 안에 울려퍼졌다. 남자는 아까보다 더 싸늘한 표정이 되어 대만을 노려봤다. 

"...관직에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쫓겨나고 싶은 거냐. 듣는 이가 많다. 네 처지를 생각해서 신중히 행동하라 몇 번을 말해야 아는 거냐."

남자의 말에 대만은 쳇 소리를 내며 시선을 피했다. 대장군 정대만. 그는 한 때 촉망받는 무관이었으며 황제가 의지하는 관료 중 하나였다. 대만은 황제의 신뢰에 끝없는 충성으로 보답하겠노라 다짐했다. 이런 황제의 총애는 주변인들의 시기를 불러모았고 이는 반역자라는 모함으로 이어졌다. 대만은 황제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당시 황제는 대만을 보호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대만은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십수년을 방황 속에서 살아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당시 모함이 거짓이었음이 겨우 밝혀져 대만이 다시 관직에 복귀했다. 

'짐이 미안하오. 그대가 무고함을 알았지만 지켜주지 못했소.'

대만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과하던 황제의 모습을 평생 잊지 않겠다 다짐했다. 한 번은 폐하를 의심하고 원망했지만 두 번은 없노라고.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다고 대만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외적을 막는 일로 고심하던 황제에게 스스로 가겠다고 말한 건 그런 마음에서였다. 이런 대만에게 황제만큼 중요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상서령, 권준호였다. 관직에서 쫓겨난 대만을 복직할 때까지 신경써준 사람이면서 그의 맞은 편에 앉은 남자, 승상 채치수와는 동문수학한 이였다. 그런 그가 연회에서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대만은 수도에 입성하자마자 바로 치수를 찾아온 것이다.

"...그대도 알다시피 태자 저하는 후사가 없는 폐하께서 자신의 사생아라 데려오신 분이오. 그래서 저하의 출신을 의심하는 이도 많았지. 이번 독살 건은 그런 이들이 태자 저하를 독살하기 위해 벌인 일이오."

치수는 다시 말투를 고치며 말을 이었다. 

"연회가 있던 날, 상서령은 태자 저하에게 술을 청해 받았소. 자신의 생일이니 선물로 태자 저하께 술을 받고 싶다 했다고.. 저하께서 그러셨소. 그런데 그 술잔에 독이 들어있던 것이오."

"..상서령은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오. 근데 어째서...."

대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준호는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대만과 둘이서 식사를 할 때도 술은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고 덕분에 상과 함께 나오는 술은 전부 대만의 몫이었다. 그걸 준호와 동문수학한 치수가 모를 리 없었다. 대만의 말에 치수는 한숨을 쉬었다. 

"..이 다음은 상서령에게 직접 들은 것인데... 일부러 마셨다고 했소."

"일부러?"

"암살범들의 독살 계획을 미리 알고 일부러 태자 저하의 잔을 받은 것이라 했소이다."

'잡혀온 이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가담한 이들 대부분이 가문의 세가 막강한 자들입니다. 실제로 피해가 생기지 않은 이상 잡히지 않을 게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을 두면 장차 폐하는 물론이고 태자 저하께도 큰 화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제가 마시고자 한 것입니다. 저하께 청하면 잔을 내려주실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생각이었소?'

'그럴 리가요.. 해독제 준비는 연회의 호위를 맡았던 서장군에게 준비시켜뒀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멀쩡하지 않습니까?'

"팔다리가 저려 거동도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멀쩡하다고? 준호 그 녀석은 대체.."

대만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전부터 위험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인상이 있긴 했지만 설마하니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해서 상서령에게 무모한 짓하지 말라 했소. 하지만... 상서령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온 것도 이해가 되더이다."

"..무슨 말이오?"

치수는 대답 대신 책상 위에 죽간을 하나 올려놓았다. 말려있는 죽간을 쭉 펼쳐서 대만에게 보라는 듯 손짓했다. 펼쳐진 죽간에는 이번 독살에 가담한 이들의 이름과 그들의 자백이 적혀 있었다.

"....출신이 분명하지 않은 자가 폐하의 후사를 자청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대장군의 뜻에 따라 진행...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죽간에 적힌 자백에는 대장군 대만이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제 이해가 되시오? 상서령은 장군이 또 모함을 받을까 걱정했던 것이오. 겨우 제 자리를 찾은 그대가 다시 누명을 쓰고 황궁에서 쫓겨날까 염려한 것이오."

"..."
"그래서 그대가 오기 전에 해결을 보려 한 것이지. 정말이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나에게 먼저 상담했어야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대만을 두고 치수는 혀를 차더니 죽간을 다시 덮었다. 

"암살범들은 모두 잡아들여 옥에 가둬두었소. 반역의 죄를 물어 엄하게 처벌할 것이니 대장군께서는 아무 말말고 가만히 계시오. 그들은 이미 한번 장군에게 반역의 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소. 이런 상황에서 경거망동했다가는.. 상서령이 우려한대로 될 것이오. 그러면... 준호가 목숨을 건 의미가 없어지는 거다. 그리 되면 나는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다. 명심해라 정대만."

치수의 말에 대만은 대꾸 한 번 못 하고 그저 입술만 깨물었다. 전혀 몰랐다. 자신을 두고 황궁에서 또 이런 음모가 벌어지고 있을 줄은. 국경지대에 나가 있는 기간동안 꾸준히 준호와 서신을 주고받았지만 이런 낌새에 대해서는 그는 한 마디도 자신에게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자신을 걱정해 한 일이었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자신이 그리도 못 미더웠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준..아니 상서령은 저택에 있습니까?"

"예, 폐하께서 친히 의원과 약재를 내주셨소. 태자 저하도 사건이 터진 이래로 매일 찾아가 상태를 보러 가시고 서장군이 현재 저택의 경비를 맡고 있소. 상서령의 뜻에 따라 한 일이지만 위험한 일임을 알면서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사죄를 하고 싶다면서 말이오."

"...."

"만나러 갈 거라면 정오가 지나서 가는 게 좋을 것이오. 지금은 태자 저하께서 계실 시간이니."

대만의 속내를 읽은 치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을 불러들이더니 다과상을 부탁했다.

"이리 온 김에 국경의 상황에 대해서 얘기해주시오. 자세한 건 보고서를 따로 받을테지만 미리 얘기를 들어두고 싶소."

"...이런 상황에서 잘도 그런 얘기를 하십니다."

"상서령이 쓰러졌다고 정무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그거야말로 상서령에게 폐가 되는 일이오."

"...하여간 한 말씀도 안 지십니다."

대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치수를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보고고 뭐고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침상에 누워있을 준호 생각 뿐이었지만 조바심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그 조바심을 잊을 수 있게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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