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준호른] 붉고 푸른 하늘 3

댐준 전제 삼국지 AU

"갑자기 말씀을 놓으시면 어떡합니까.. 서장군이 놀랐겠습니다."

대만이 자리에 앉자 준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알바냐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 대신 전보다 말라 얇아진 준호의 손을 바라봤다. 독을 먹었다지만 이리 마른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어럅지 않게 짐작이 됐다.

"어째서 나한테 숨겼어"

"무엇을 말입니까?"

"시치미 떼지마. ...치수한테 얘기 듣고 온 길이니까."

대만의 말에 준호는 입을 다물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준호의 모습에 이번엔 대만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그의 다리 위에 있던 쟁반과 준호가 쥐고 있던 숟가락을 제 쪽으로 가져왔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죽을 숟가락으로 식혔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장군으로 복직한 게 어지간히도 싫었나보네. 다른 것도 아니고 반역죄를 씌우려고 한 걸 보니."

"장군.."

"날 걱정한 건 고맙지만 그래도 나한테 말했어야지. 만약 너 잘못됐으면 나는..."

방황한 그 세월보다 더 깊고 오랜 시간을 고통받았겠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대만은 삼켰다. 그런 말을 건네기엔 아직 용기가 없었다. 방황에서 벗어난 지 이제 3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는 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장군...?"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수저로 죽을 한술 떴다.

"..치수도 걱정하고 있으니까 잘 먹고 얼른 몸 회복해야지."

"예.. 알고 있습니다. 채 승상에게도 폐를 끼쳤지요."

"알면 얼른 죽 먹어. 나 팔 떨어지겠다."

준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손을 들어 숟가락을 받아들려고 했다. 하지만 대만은 수저를 넘겨주지 않고 그대로 준호의 입가로 가져갔다. 먹여주겠다는 그의 의도를 느낀 준호는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씁, 다 죽어가는 얼굴로 퍽이나 잘도 먹겠다. 군말말고 아 해."

"장군..."

"장군이 아니라, 대만이랬잖아. 둘이서 있을 때 편히 말해도 된다고."

난처한 얼굴로 대만을 쳐다보던 준호는 못 당하겠다는 듯 그가 내민 죽을 받아먹었다. 느릿하지만 꼭꼭 씹어먹는 준호의 모습에 대만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야윈 얼굴을 다시 살을 찌우려면 많이 먹여야겠네. 

"앞으로 여기 매일 와야겠다. 너 좋아질 때까지."

"매일이요? 장군도 바쁘실텐데.."

"씁, 편히 말하라 했지. 그리고 병문안 오는 데 뭐 그리 오래 걸린다고.."

대만은 다시 수저를 들어 준호의 입가로 가져갔다. 준호는 대만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또 저 얼굴이네. 저 고집부리는 얼굴. 대만이가 저 얼굴을 하고 말하면 내가 이길 수가 없지. 내가 당신을 어찌... 

"알았어. 그럼.. 올 때 미리 연락이라도 줘."

"우리가 연락이 필요한 사이인가."

"그래도 손님 맞이할 시간은 있어야지."

그런 건 필요없어.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만은 다시 수저로 죽을 한 숟갈 떠서 그에게 가져갔다. 그렇게 준호가 죽 한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대만은 곁을 떠나지 않았다.



***



준호의 침실을 빠져나온 태웅은 정원으로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상서령과 대장군, 승상의 사이는 이미 유명한 것이었다. 반역죄로 궁을 떠난 그의 복직을 위해 두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나라의 녹을 받는 이라면 누구나 다 알았고 정치나 파벌에 관심없는 태웅이라도 알 정도였다. 처음에 든 생각은 정대만이란 자가 그리 대단한 자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자이길래 젊은 나이에 고위관직에 오른 두 사람이 저리도 애를 쓰는 지 궁금했다. 대만이 세운 공적은 뛰어나긴 했지만 대체 못할 정도는 안아니었기에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복직한 대만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그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준호로부터 암살 계획 저지를 위한 협조 요청을 받았을 때 태웅은 알 수 있었다.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약처방이 아니면 그들을 모두 잡아들일 방법이 없습니다. 앞으로 보위에 오르실 태자 저하를 위해서라도 부디 장군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태자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암살 계획을 상세히 공유하고 몇번이고 그 날에 있을 일을 검토하면서 보인 준호의 시선에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애틋함이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 그 당시엔 짐작이 되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암살을 계획한 일당들의 자백서를 보고 나서야 그 시선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았다.

'..대만이가 연루될까 염려되어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벌인거냐? 무모해도 너무 무모하지 않느냐'

'무모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 다시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았어. ...각오라면 이미 되어 있었어.'

우연히 듣게 된 짧은 대화로 태웅은 모든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목숨까지 걸면서 지키고자 한다는 건 상대가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뜻이었다. 이걸 친우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물은 것이었다. 이 모든 계획이 대장군을 위한 것이었냐고.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특별한 것입니까?'

본심은 그리 묻고 싶었다. 내심 아니라고 말해주기도 바랬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자신도 몰랐다. 그냥 아니길 바랬다. 그 마음이 이미 누군가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분한 바램이었나."

"장군!"

감상에 젖어있는 그를 깨운 건 어느 병사의 부름이었다. 

"무슨 일이냐"

"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폐하께서 급하게 서장군을 찾으신답니다."

"폐하가?" 

황제가 자신을 찾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태웅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황궁으로 가보겠다. 저택에 수상한 자가 없는지 계속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라."

"예, 장군."

태웅은 마굿간 쪽으로 향하면서 준호의 침실 쪽을 힐끗 쳐다봤다. 아직도 그 안에 있을 이들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 답답함을 뭐라 설명하긴 어려웠다. 가까이 다가온 주인을 알아본 말이 가볍게 울음소리를 냈다. 태웅은 그런 말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안장에 올라탔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계속 생각하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잠시 잊어두고 지금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자"

저택을 빠져나온 말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울렁이는 가슴의 두근거림은 말발굽 소리와 함께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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