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정환준호명헌] DRAMA

배우 AU

"정환이형, 이번에 들어가는 드라마 1화 대본 나왔어요."

정환은 매니저가 건네는 대본을 받아들었다. 이정환,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 배우 중 하나였다. 데뷔작이었던 월화드라마가 히트하면서 그가 맡은 드라마는 항상 중박 이상의 성적을 냈다. 이는 그의 연기가 훌륭한 것도 있었지만 그가 맡은 역할이 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벌 2세, 대기업의 본부장 같은 것들. 소위 말하는 드라마 남주상의 역할들 말이다. 이번에 들어온 드라마에서도 정환은 그런 역할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기업의 후계자 그리고 동시에 전략기획실의 실장.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해온 드라마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보통의 드라마와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라니 그것도 공영방송국에서 일일드라마로 말이에요."

그랬다. 이 드라마는 공영방송국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동성애를 메인으로 하는 드라마였다. 변해가는 시대상에 맞춰서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보여줘야 한다는 제작의도는 그럴 듯 해보였다. 실상은 젊은 층에서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윗선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공영방송국에서 동성애를 다룬다며 기독교 단체나 시민단체에서 난리를 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방송국에선 제작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형도 대단하시네요."

"뭐가?"
"이번 드라마 하시기로 한 거요. 전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동성이랑 로맨스씬 찍으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데."

매니저는 시동을 걸며 말했고 정환은 손에 쥔 대본을 내려다봤다. 정환에게 있어 이 드라마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정환은 나름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을 찍어왔다. 평범한 로맨스물부터 시작해서 스릴러물에 추리물까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섭렵해왔지만 동성과의 로맨스물은 처음이었다. 로맨스 상대가 자신과 같은 남성이어도 자신은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있긴 했지만 배우인 이상 이런 것도 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정환은 자신에게 온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였다. 세간에선 정환을 보고 탑급 배우라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부족했다. 정상에 서 있는 배우라고 하기엔 자신의 연기는 어딘가 빠진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번 드라마를 하다보면 뭔가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보니 나 말고 캐스팅된 배우들 누구 있는지 들었어?"

"형 말고요? 어.. 그니까.. 아, 형이랑 같이 남주 역을 맡은 게 권준호 씨고 서브남주 역이 이명헌 씨라고는 들었어요. 아직 다른 주조연급들은 캐스팅 진행 중이라던데요."
"권준호씨?"

"네, 그 외 형이랑 5년 전에 드라마 같이 찍었던 배우 있잖아요."

"알아. 그 사람 요즘 웹드라마에 많이 나오니까."

정환은 몇 년 전 그와 함께 했던 드라마를 떠올렸다. 퓨전 사극 드라마였었다. 정환은 남주였고 준호는 서브 남주였다. 평범한 로맨스물이었고 준호는 여주를 사랑해 그녀에게 헌신하는 역할이었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임을 알고도 여주의 행복만을 바라며 제 자신을 던지는 순애보 연기에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같이 찍는 배우들도 연기 잘한다며 칭찬을 했었다. 그 해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우수상을 받을 정도였다. 

'언젠가 또 같이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뒷풀이 회식에서 준호는 웃으며 말했지만 두 사람의 연기를 한 화면에서 보는 건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없었다. 준호는 소속사의 방침인 건지 TV 드라마보다는 웹 드라마에서 얼굴을 자주 비쳤다. 그에 반해 정환은 줄기차게 TV 드라마에만 나왔으니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권준호씨는 이런 쪽 드라마를 몇 편 찍어본 적이 있다던데요? 그래서 가장 먼저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넌 그런 얘기 어디서 듣는 거냐?"

"제가 좀 마당발이잖아요~ 형도 아시면서."

백미러로 정환을 쳐다보며 매니저는 윙크를 날렸다. 하여간 녀석.. 말은 저렇게 했지만 실제론 촬영장이나 다른 관계자들한테 물어보고 다닌다는 걸 정환은 잘 알았다. 정환보다 세살 어린 매니저는 항상 저렇게 정환에게 여러 소식을 알려주곤 했다. 정환이 연예계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런 쪽 이야기나 소문에 둔했기 때문이었다. 

"권준호씨도 그렇고 이명헌씨도 그렇대요. 형도 이 사람이랑 같이 촬영해보신 적 없으시죠?"

매니저의 말에 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야 몇번 들어본 적 있었다. 명헌은 경력이 짧은 데도 연기의 깊이가 깊다는 평을 받는 배우였다. 우스개소리라 인생 2회차가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그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선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연기할때와 다르게 사생활 부분에선 엉뚱한 구석도 있어 팬들이 많다던가 하는 얘길 정환도 들었었다. 

'주연 셋 중에서 이런 연기가 처음인 건 나뿐인가..'

정환은 턱을 괸 채 대본의 첫 장을 넘겼다. DRAMA 라고 적힌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제목이 지어지지 않아 임시로 지어둔 이름이었지만 정환은 왠지 그 이름이 맘에 들었다. 짧게 숨을 뱉어낸 정환은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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