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대만준호] 사위를 대하는 장모님의 자세

민영의 집은 대대로 의사 집안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친가 쪽 사촌들이 다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특히나 그녀의 큰아버지는 독립군에 군의관을 지냈던 분이었다. 한 마디로 그녀의 집안은 대한민국에 있는 가문들 중에서도 엘리트 가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형병원의 병원장이었다. 아버지는 가풍에 따라 딸이 의료계에 종사하기 바랬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적성은 의료계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민영의 아버지는 딸을 의료계에 들이는 대신에 사윗감을 의료계에서 찾았다. 자신의 병원에 레지던트로 있던 젊은 청년을 민영에게 소개시켜주었고 두 사람은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이야기다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민영의 남편, 권재혁은 과묵한 남자였다. 제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말수가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오해를 사는 그런 남자였다. 처음엔 민영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재혁과 세번째로 만났을 때, 민영은 그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민영씨가 지난 번에 가지고 싶다 하셔서 준비했습니다.'

재혁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인형이었다. 그것도 인형뽑기에나 들어있을 법한 귀엽지만 어딘가 촌스러워보이는 인형. 지나가듯이 갖고 싶다고 중얼거린 걸 재혁은 잊지 않고 기억해뒀다가 직접 뽑아서 가져온 것이었다.

'이거 직접 뽑으신 거에요?'

'같은 걸 파는 곳이 없더군요. 지난 번 인형뽑기 기계말고는.'

인형뽑기 앞에서 이 작은 인형을 뽑겠다고 기를 쓸 그를 생각하자 민영은 웃음이 났다. 만남을 이어갈수록 민영은 재혁이 세심하게 자신을 배려해주고 챙겨준다는 걸 느꼈고 이 남자라면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혼 역시 그녀가 먼저했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민영은 행동력이 끝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재혁과 결혼하고 민영은 아들을 낳았다. 태어난 아들을 보고 재혁은 아내를 닮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성격도 당신을 닮으면 좋겠는데. 난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당신만큼 좋은 사람이 어딨다고. 난 성격도 당신 닮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바람대로 아들은 아빠를 닮아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로 자랐다.

"엄마, 이거 드세요."

"응? 이게 뭔데?"

"새로 생긴 베이커리에서 파는 롤케이크에요. 지난 번에 엄마가 전단지 보고 맛있겠다고 하셨잖아요."

아들이 내민 쇼핑백을 받아들고 민영은 기쁜 듯 웃었다. 정말 누굴 닮아 이렇게 착하게 자랐는지. 

"고마워, 준호야. 역시 아들 뿐이네."

웃으며 칭찬을 해주자 준호는 머쓱한 듯 웃었다. 고맙다는 말에 저렇게 웃는 것도 제 아빠를 똑 닮았다니까. 

"근데 그 쪽은 학교랑도 방향이 다른데 언제 갔어?"
"아, 그게..대만이가 근처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요. 같이 갔었어요."

준호는 대만의 이름을 대며 뺨을 긁적였다. 민영 역시 대만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준호가 북산에 들어간 이래로 매일 같이 얘기하던 친구의 이름. 그리고 한동안 말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최근에 농구부에 복귀했다는 소식과 함께 준호는 이전처럼 대만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만이랑만 갔니? 치수랑은 안 갔고?"

"치수는..... 약속이 있대서 같이 못 갔어요."

"그랬구나.."

"저, 씻고 올게요."

민영이 뭔가 더 묻기도 전에 준호는 부엌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민영은 아들이 들어간 욕실을 한 번, 그리고 그가 사온 베이커리의 쇼핑백을 한 번 쳐다봤다.

"역시.. 둘이 심상치가 않은 것 같단 말이지."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듯이 재혁과 준호는 거짓말을 잘 못했다. 거짓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몸이 긴장하는지 행동이며 말투가 많이 어색해졌다. 그나마 준호가 좀 더 자연스러운 편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눈을 속일 정도는 아니었다. 대만이 돌아온 이후로 준호는 유독 외출이 잦아졌다. 물론 외출의 절반 이상이 농구부 연습이긴 했지만 농구부를 은퇴한 이후로도 준호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온다며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분명 공부를 하고 오는 건 맞는데 공부만 하고 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왜냐면 항상 공부하러 갈 때 대만이랑 같이 간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6년간 알아온 치수를 두고 대만이랑만 어울리는 건 준호의 성격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외출은 물론이고 전화통화 역시 잦아졌다. 누구와 통화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대만이에요.'

처음엔 복귀한 친구와 할 얘기가 많겠거니 싶었지만 날이 갈수록 잦아들긴 커녕 오히려 심해지는 행동에 민영은 어떤 예감이 들었다. 혹시 준호랑 대만이가 사귀는 사이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재혁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지만 민영은 준호가 연애를 한다고 하면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중요한 시기이긴 했지만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 둘 곳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안식을 주는 이가 있다는 건 살아가면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준호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면 민영은 기쁠 뿐이었다. 자신에게 있어 남편이 그러했듯이. 다만 한가지 좀 걸리는 것이 있다면 민영은 한 번도 대만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대만에 대한 건 어디까지나 준호로부터 들은 게 전부였다. 사람의 됨됨이는 직접 만나봐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민영은 준호가 사온 롤케이크를 꺼내 접시에 옮겼다. 하나는 아들의 몫, 하나는 자신의 몫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곧 돌아올 남편의 몫이었다.

"역시 한 번 집에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게 좋겠어."

케이크와 함께 마실 차를 우리며 민영은 혼잣말을 했다. 준호는 모르는 민영의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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