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대만준호] (남자)며느리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자세

정 씨 집안의 남자들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시아버지가 그랬고, 남편이 그랬으며, 하나뿐인 아들 역시 그랬다. 특히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좋아하는 음식, 운동, 물건을 보고 있으면 눈이 반짝반짝해져서는 아이같은 표정을 지었다. 

'네 시아버지도 남편도 아직 철 들려면 멀었구나.'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곧잘 했던 얘기였다. 그 말에 그녀는 속으로 몰래 동의하곤 했는데 그것이 제 아들에게까지 갈 줄은 몰랐다.

"정말 피는 못 속인다니까..."

"?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혜진의 중얼거림에 옆에 앉은 그녀의 아들이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아들 앞으로 곱게 자른 사과 접시를 밀어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엄마의 말에 아들은 눈치를 봤지만 그것도 잠시, 사과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 제 입으로 넣었다. 시선은 tv에 꽂혀 있었지만 사실 그의 온 신경은 tv가 아니라 그 옆에 놓인 무선 전화기에 가 있었다.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듯 전화기를 힐끗거리는 그를 혜진이 모를 일 없었다. 아들의 이상행동에 그녀는 짚이는 게 있었다. 왜냐면 요즘 아들의 행동이 자신과 연애하던 남편의 모습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 정해수. 제법 잘 나가는 중견 기업의 사장인 그는 혜진과 고교 동창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사귄 것이 결혼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대만이 들으면 흰 눈 뜰 이야기지만 대만은 고교 시절의 해수와 아주 많이 닮았다. 대만이 고1때까지 엄마인 혜진을 닮았었지만 잠시 농구를 쉬는 동안 찾아온 성장통을 겪고 난 후엔 대만은 제 아빠를 똑 닮게 변했다. 특히나 대만이 짧은 머리를 하고 돌아왔을 때, 혜진은 남편이 어려진 줄 알고 기겁했었다. 물론 그 다음에 이어진 농구부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에 더 기겁했지만. 그리고 닮은 건 얼굴만이 아니었다.

tv 소리를 뚫고 거실에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대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가 받겠다고 나섰다. 혜진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전화를 받은 대만은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상대가 누군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준호야"

준호. 전화를 건 건 대만과 동갑내기 친구인 권준호였다. 준호에 대해선 혜진도 잘 알고 있었다. 대만이 병원에 입원했을 시기 누구보다 살뜰하게 대만을 챙겼던 동급생. 일 때문에 바빠 자주 오지 못하는 자신이나 남편보다 더 성실하게 대만의 병문안을 오던 밤톨같은 아이가 혜진의 기억 속에도 꽤 강렬하게 남았다. 언젠가 집에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이어진 대만의 방황으로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그 밤톨같은 아이는 여전히 농구부라고 했다. 자신이 농구부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줬다며 대만이 얘길 꺼냈을 때 혜진은 속으로 준호에게 감사했다. 대만이가 돌아갈 자리를 남겨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아들의 이상행동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엄마, 저 준호랑 통화 좀 할게요."

"응, 그래. 통화하고 전화기 제 자리에 두는 거 잊지 말고."

대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기를 들고 2층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전화기를 들고 가는 대만의 표정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얼굴 말고도 대만이 아빠를 닮은 건 바로 생각한 게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좋아하는 것을 생각할 때는 속이 훤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들이 준호를 좋아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야 저렇게 좋다고 웃는데 모를 수가 있나. 그거 말고도 대만은 준호와 약속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두배로 멋부리는 데 시간을 쏟았고 남편을 통해 집에 좋은 간식거리가 들어오면 몰래 빼서 제 가방에 넣어가기도 했다. 누굴 줄진 안 봐도 뻔했다.

'애비가 뭐 좋은 것만 들어오면 다 혜진이 줄거라면서 가져가더라. 그래서 네 시아버지가 부모한테나 그리 잘해라 이 문디자식아! 하면서 썽을 내시곤 했지.'

"그러게요. 어머니, 누가 아들 아니랄까봐 하는 게 똑같네요."

거실 벽에 걸린 시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혜진은 말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이라면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겠다고 찾아오는 건 아닐까. 제 남편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처가에 와서 했던 일을 떠올렸다.

'혜진이 말고 다른 사람이랑 연애도 결혼도 할 생각없습니다. 그러니 결혼 허락해주세요!'

'해수야, 너희 아직 20살 밖에 안됐다.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 않겠니?'

'아뇨,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옛말도 있고.. 무엇보다 제가 혜진이랑 떨어져서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동거를 하는 것도 보기 안 좋으니 그럴 바엔 그냥 결혼해서 함께 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했다. 자신의 부모님을 설득하겠다고 한달동안 현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남편을 생각하면.. 대만 역시 그에 준하는 일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둘이 결혼하는 거야 좋으면 하는 거지만 그래도 그런 경조사에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된 자신과 달리 준호네서 대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음.. 일단 준호 보고 집에 한 번 오라고 하는 게 좋을까."

혜진은 소파 옆 선반에 놓인 탁상 달력을 들어 스케쥴을 확인했다. 이번 주 주말에 대만이도 연습없다고 했고 해수도 별 일 없다고 했으니까.. 토요일에 오라고 하면 딱일까. 음식은 뭘로 준비하는 게 좋으려나. 준호는 뭘 좋아하는지 물어볼까. 그렇게 대만도 모르는 혜진만의 계획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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