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창작

우명우? 야구AU 1

인데 이제 잘은 모르겠는

정우성이 어느덧 데뷔 3년차가 되었음. 지난 2년 간 자잘한 부상을 제외하고는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적이 거의 없음. 기복이 심하지 않고 구속도 좋아서 뺄 이유가 없음. 은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고... 그냥 팀에 쓸만한 불펜투수가 없음. 정우성 정도 기복이면 그냥 1군 붙여놓는 게 나음. 얘 내리고 딴 놈 데려왔다가 망해보고 10일만에 다시 올림. 그렇게 반강제로 경험을 쌓다보니 첫 세이브 이후로 점점 팀의 마무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음. 첫 시즌부터 중간계투~마무리투수를 맡아서 홀드 21개, 세이브 16개를 기록하는 신인답지 않은 기량을 선보임. 덕분에 타 팀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한 윤대협(11승)과 신인왕을 놓고 다투기도 했음. 이때 정우성이 신인왕을 탔음. 선발을 냅두고 마무리가 받은 놀라운 상황이었음. 그 탓에 인기투표 아니냐고 말도 많았지만 정우성의 기록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음.

윤대협은 인터뷰에서 "신인왕을 놓쳐 아쉽지만 정성우, 아차! 편집해주세요 ㅎㅎ 정우성은 정말 좋은 투수"라며, "보직은 다르지만 앞으로도 선의의 경쟁자로 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음. 정우성 또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팀의 우승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함. 이 인터뷰에서 '우승'이라는 단어가 등장해 야빠들 사이에서 약간 회자됨. 정우성을 데려간 구단은 지난 10년 간 준우승만 7번 한 눈물나는 팀인데 신인왕 입에서 우승하겠다는 포부? 선언?이 나온 셈이니까. 이제 3년차 정우성으로 돌아오자.

신인왕 출신의 괴물 같은 마무리로 자리잡은 정우성은 오늘도 마운드에 섰음. 정우성의 인터뷰대로 시즌 중반이 지날 무렵 팀은 2위를 달리고 있었음.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순위 경쟁에 불이 붙는 하반기가 시작됨. 우성의 팀이 하반기에 처음 만나는 상대는 현재 1위팀. 게임차도 얼마 나지 않아서 기필코 이겨야 함. 올스타 브레이크가 꿀맛 같은 휴식을 안겨준 덕분에 선수단은 기력충전을 해놓은 상태였음.

승부는 9회로 치달았음. 이 경기를 따내면 게임차가 0이 됨. 이번 경기는 두 팀 모두 상대의 선발투수를 4회에 강판시킬만큼 난타전이었움. 계투들도 불붙은 방망이에 밀려 적시타를 연달아 내주는 등 난리가 남. 9회초까지 8:8 동점이 이어졌음.

9회말, 정우성이 마운드에 올라옴. 동점. 여기서 단 1점이라도 내주면 끝내기로 패배하게 됨. 우성은 맘을 단단히 먹었음.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끝낸다. 프로생활을 한 2년 간 정우성은 구속을 유지하면서 제구를 잡는 방법을 익혀나갔음. 물론 완벽히 되지는 않아서 볼넷 비율이 약간 높았지만 구속만 앞세우던 전년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음. 정우성은 마운드에서 심호흡을 했음. 앞에 앉아있는 포수는 저번 이닝에 대타로 나와 동점 희생타를 친 이명헌이었음. 우성이 씩 웃었음. 명헌이 미트를 댐. 연습구를 두어 개 던져본 우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9회말 운명의 시간이 시작됨.

타순은 6번부터 시작하는 애매한 하위타선. 6번 타자는 클린업 라인에 들어갈 장타자인데 최근 타격감이 오르지 않아 6번까지 밀려난 상태였음. 오늘도 클러치 상황에선 땅볼, 삼진, 뜬공이라는 아름다운 기록을 선보이고 2아웃 이후에 단타 1개 침. 다소—팬 입장에선 아주 많이—아쉬운 모습을 보였음. 명헌은 그걸 알고 있었기에 타자를 속일만한 볼배합을 가져가기로 함.

명헌의 손가락이 하나 펴짐.

직구.

우성이 끄덕이고 와인드업을 했음.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아주 좋음. 첫 공인만큼 묵직하게, 스트라이크존에 꽂아넣음. 153km. 전광판에 찍힌 숫자를 보고 팬들이 함성을 지름. 타자는 아무 것도 못하고 스트라이크 존에 들이박히는 공을 쳐다볼 뿐이었음. 입모양이 ‘오…’인 것만 보임. 우성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명헌이 돌려주는 공을 받음.

명헌이 이번엔 손가락을 네 개 폈음. 우성이 이견 없이 끄덕임. 명헌은 여전히 한가운데에 앉아있음. 와인드업. 우성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가는 순간 타자의 배트가 거세게 돌았음.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남.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뚝 떨어지는 포크볼은 유연한 명헌의 미트질 덕에 튀는 일 없이 잘 잡혔음. 속았음. 타자는 배트로 자기 머리를 꿍 치고 다시 자세를 잡았음. 알고도 못 치는 공이라는 생각과 함께 헛웃음도 약간 흘림. 강속구와 포크볼의 조합이라니, 이것 참 마무리투수 하기 딱 좋은 구종이었음.

0B2S. 선두타자인만큼 출루에 중점을 둘 타자의 심리를 읽어낸 명헌이 싸인을 보냄. 우성이 고개를 끄덕임. 2년차에는 나름대로 자기 고집이 있었던지라 명헌이 요구하는 볼을 거절하는 일도 몇 번 있었지만 요즘은 어지간하면 그렇게 하지 않음. 잘 긁히는 볼도 명헌이 알고 있고, 안 긁히는 볼도 명헌이 알고 있음. 특별한 컨디션 난조가 아니면 우성이 의견을 제시할 필요도 없었음. 연습구 몇 번으로 우성을 파악하는 명헌은 명실상부 정우성 맞춤 포수였음. 정우성이 던지고 싶은 구종과 이명헌이 요구하는 구종이 백화점 마네킹의 패션마냥 딱 맞아떨어지는 걸 감코진도 알고 있었음.

세 번째 공이 우성의 손을 떠남. 보더라인 바깥으로 휘어지는 변화구. 타자는 공이 밖으로 빠지는 듯 해서 스윙을 하지 않았음. 하지만 뒤에선 시원하게 스트라이크 콜이 들림. 타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심판을 쳐다봄. 포수에게 들어왔냐고 물어보기까지 함. 포수는 꾸닥꾸닥. 6번타자는 갸우뚱거리며 덕아웃으로 퇴장함.

명헌이 신호한 결정구는 슬라이더였음. 사실 정우성의 주무기는 묵직한 직구지만 슬라이더도 잘 던짐. 포크볼은 고등학교 3학년부터 익힌 거라 고등학생 때는 직구 60, 슬라이더 30, 그 외 10이라는 기가 막히는 비율로 경기를 치러왔음. 그런 우성을 아는 명헌은 슬라이더로 보더라인을 꽉 채우는 삼진을 잡게 해주고 싶었던 거임. ‘네가 가장 잘하는 건 이거야’ 라고 말해주듯이.

명헌의 마음을 읽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성은 삼진을 잡아 기분이 좋았음. 중고등학교 때, 주전 포수는 대부분 3학년인 터라 위계와 군기 속에서 쭈구렁...했으면 우성의 학창시절은 그나마 평탄했을지도 모름. 하지만 우성은 던지고 싶은 공이 명확했고, 그게 잘못된 판단인 경우도 많았음. 그걸 잘 도닥이고 당근과 채찍을 활용하는 포수와 합을 맞추면 좋았겠지만 알다시피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게 맘대로 될 리가 없었음. 우성은 선배에게 개긴다고 얼차려를 받기도 했고, 군기 잡는다고 시답잖은 일로 혼나기도 했음. 같은 학년의 친구들은? 원래 세상은 천재를 마냥 예뻐하지 않는 법임. 친구들은 타고난 어깨와 말도 안 되는 훈련량을 자진해서 소화하는 정우성을 동경하면서도 시기했음.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나가는 걸 아니꼽게 보는 사람 하나쯤은 꼭 있기 마련이니까. 후배들은 1학년 때부터 주전 붙박이라는 00중 출신 정우성을 어려워했으므로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음. 우성의 판단이 틀렸을 때 조곤조곤 설명해주거나 그래도 잘했다고 해주는 선배가 있었더라면 아마 우성의 투구는 덜 공격적이었을 거임. 구속에 연연하지 않고 제구를 잡으려고 훈련했을 수도 있음.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우성은 구속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야구살육머신이 되어야 했던 거임. 그래야 인정받을 테니까. 그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우성’이니까.

뾰족하게 모난 성격은 프로에 올라와서야 마모되기 시작했음. 명헌을 만난 게 결정적이라고, 우성은 항상 생각했음. 실패를 용납하는 포수. 제구가 안 된다고 화내지도, 공 끝에 힘이 없다고 빈정거리지도, 얼굴만 믿지 말고 노력을 더 하라는 헛소리를 하지도 않는 선배.

정우성이 네 번이나 고개를 젓는 고집을 부려 던진 공이 타자에게 딱 걸려 마수걸이 홈런이 되었을 때 이명헌은 마운드에 올라와 정우성에게 말했음.

“방금 공은 타자에게 읽혔어용. 누구라도 그 코스에 그 구종으로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겠지용. 우성은 볼 끝이 지저분해서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 더 어렵게 가는 게 좋아용.”

그렇게 뻔한 공을 던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즉, 허의 허를 찌르자!라는 생각이었던 거임. 경험이 적다는 게 이렇게 티가 남. 명헌도 그랬던 때가 있었기에 우성을 이해했고, 설명해줄 수 있었음. 이렇게 쉬워보이는 말을 정우성은 야구를 하는 내내 감독이 아닌 사람에게 들어본 일이 없었음. 합을 맞추는 배터리 중 누구도 정우성이 이해하도록 설명해주지 않았음. 어련히 알 거라고 생각했거나 당해봐라는 심보였겠지. 하지만 프로는 달랐음. 아니, 이명헌은 달랐음. 그는 정우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했고 잘 써먹을 방법을 생각했기에 이런 조언이 가능했던 거임. 기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는 파트너. 정우성에게 가장 필요했던 처방이었음.

이러한 이유로 정우성은 이명헌과 합이 좋았고, 그를 유난히 따랐음. 다른 투수 선배들과 물론 친했지만 우성의 마음엔 언제나 이명헌 뿐이었음. 가장 존경하는 선수를 꼽을 때 소속팀의 레전드 투수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이명헌을 떠올릴 만큼. 우성은 명헌에게 들러붙었고, 볼배합에 대해 많이 물었고, 다른 투수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 명헌의 옆에 붙어있었음. 명헌과 입단 동기인 신현철이 혀를 내둘렀음.

“너네 곧 사귀겠다?”

“금방 청첩장 돌릴게요.”

“난 우성이랑 결혼 안 해용.”

“뭣이~~~! 명헌이형! 저 말고 딴 사람 있어요?”

“난 현철처럼 듬직하고 수비 잘 하는 사람이 좋아용.”

명헌이 현철을 과장되게 끌어안으면 현철도 장단을 맞춰줬기에 덕아웃에는 항상 수요 없는 공급이 넘쳐흘렀음.

“봤냐?”

하고 비웃는 현철의 표정과 현철의 어깨에 뺨을 부비작대는 명헌과 토라진 우성의 삼박자는 구단 유튜브는 물론 중계 카메라에도 간간히 잡혀서 팬들은 탄식 했음. 구단 채널에선 그냥 삼각관계 설정으로 밀고 나가는지 ‘신현철과 정우성 중 한 명과 여행을 간다면?’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함. 명헌은 ‘뾰홍…’ 하고 고민하는 척 하다가 “혼자 갈래용.” 했지만 ㅋㅋㅋ

원래도 신현철과 이명헌은 10년차 부부 바이브로 유명했음.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 원래도 친했고, 공교롭게도 같은 구단과 계약해서 더 돈독해짐. 우성은 가끔 그런 현철에게 질투 비슷한 마음이 들기도 했음. 명헌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나보다 싶어 “형 왜 저랑은 안 놀아줘요!!” 처럼 찡찡대는 걸로 풂. 그렇다고 현철이 싫으냐면 그건 아님. 타격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하고—정우성은 재능 썩히기 싫어서&메이저리그 가면 타석에 서야 하니까 타격 훈련도 함—같이 놀아주기도 하는 편하고 좋은 선배임. 그러니까 찡찡거림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지.

우성은 이 팀이 정말 좋았음. 방식은 거칠지만 항상 챙겨주는 1루의 현철, 아닌 척 하지만 우성을 믿어주는 유격수 낙수, 다정하게 도닥여주는 3루의 동오, 약간 웃기면서 얼빵한 2루의 성구. 그리고 뭘 던지든 다 받아주는 명헌까지. 정우성이 서는 내야는 언제나 든든했음. 이 다이아몬드 안에 선 모든 사람이 자기 편이라는 생각을 정우성은 매 등판마다 했음.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음. 이 사람들과 함께 우승하고 싶으니까. 팀의 발목을 잡는 투수가 되기 싫으니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을 구단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걸어놓고 싶으니까. 그렇게 추억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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