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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섭호장] 이상한 가역반응

공간 by 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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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입니다. 센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호장은 1학년 중 가장 키가 큰 신준섭을 처음 마주치고는 생각했다. 키 커서 농구하는 애구나. 그의 몸은 선수라기에는 너무 말랐고, 아니나 다를까 입부 후 치루어진 연습경기에서 신준섭은 선배들에게 계속 나가떨어졌다. 그걸 바라보면서, 느꼈다. 곧 나갈 애. 첫인상은 그곳에서 멈추었다.

일주일.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전호장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하루아침에 생각이 바뀌기란 쉽지 않고, 수많은 의심을 거쳐서야 진실인지모를 진실에 다가가니까. 결과만 말해보자면 신준섭은 곧 나갈 애가 아니었다.

어느 날 호장은 정환과 함께 코트 밖에서 팔짱을 낀 채로 1학년들의 서툰 드리블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환이 형, 저랑 내기 하나 할래요? 집중해라 전호장. 에이. 그러지 말고요. 이번에 1학년 중에 누가 제일 먼저 나갈지 돈 걸고 내기해요! 하아… 너란 자식은 어떻게 1학년 때랑 달라지지가 않았냐…

저는 저 189cm한테 걸게요. 전호장은 손가락으로 코트의 신준섭을 가리켰다.

"신준섭 말이냐?"

"뭐 이름이 그랬던가? 네."

"사실은 아까전에 감독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감독님이 걔한테 센터는 무리라고 하시더라고요. 뭐, 그런 말 듣고 누가 계속 버티겠어요? 존심때문이라도 나갈걸요?"

전호장은 킬킬대며 웃는다. 이정환은 전호장과 한 살 차이였는데, 1학년 때의 전호장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슈퍼 루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 그것만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자신을 과대포장해서 소개하는 습관이 달라진 건 아니다. 슈퍼루키에서 슈퍼에이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내가 해남의 에이스야. 

전호장은 1학년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존재였다. 야! 너네 그 눈빛 뭐야? 자칭 에이스가 아니라, 진짜 에이스라고! 왁왁대지만 고함은 아닌 목소리를 들으며 1학년들은 그의 행동에 굳어있던 긴장감이 풀렸다. 해남이 마냥 딱딱한 곳은 아니구나. 전호장은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힘든 훈련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호장은 2학년인데도 살짝 더 어리게 행동하는 부분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모두와 벽 쌓지 않고 지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철이 없었다.

돌아가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장면처럼. 전호장은 신준섭이 금방 농구부를 그만둘 거란 생각, 어떻게 보면 조금 무례한 확신을 걸었다. 이정환은 신준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일지는 아직 모르지. 전호장은 이정환의 그 말에 지금까지 농구부를 나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린다.

기억 저 너머에 묻어두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자기가 센터가아니라면 싫다면서 농구부를 제대로 통보도 안 하고 나간 동급생. 연습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선배에게 대들기나 했었다. 한심한 녀석. 전호장은 신준섭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곧 그렇게 될 것이란 생각에 잠겼다.

다른 1학년들에겐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전호장이 신준섭에게는 유독 차갑게 군 것은 그 동급생 생각이 나서그랬을까? 신준섭은 전호장의 태도를 금방 알아차렸다. 자기에게만 조금 차가운. 전호장은 싫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준섭은 생각했다. 자신이 실수한 게 있는지. 하지만 그게 준섭의 행동에는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에게만 차가운 어떤 에이스를 잠깐동안 생각할 뿐.

입부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보충수업을 이렇게 늦게 마쳐주면 어떡하란 거야… 전호장은 투덜대면서 괜히 바닥에 떨어진 깡통을 발로 찼다. 틀린 문제를 왜 틀렸는지 자세히 적지 않으면 내보내 주지 않는 고릴라 선생님에게 잘못걸렸던 것이다.

시간은 방과후 동아리 시간을 훌쩍 넘겼다. 농구부도 훈련을 끝냈을 거야. 내일 정환이 형한테는 어떻게 둘러대지? 에이씨, 그래도 혼자 자율 연습 하고 갔다고 하면 조금은 봐주겠지. 전호장은 변명거리를 하나씩 생각하면서 천천히 부실로 들어간다. 가방이 하나 남아있다. 누가 남아있나? 전호장은 체육관 불이 켜진 걸 본다. 선배 중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그럼 좀만 어울려달라고 해야지. 호장은 하루 종일 앉아 도움도 안되는 수학 문제나 푸느라 몸이 근질근질했다. 정환이 형이면 좋겠다. 전호장은 기대감을 가지고 체육관 문을 열었다.

퉁, 하고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울림이 큰 체육관에 신준섭이 홀로 서 있었다. 순간 호장은 체육관이 작다는 생각을 해본다. 체육관이 꽉 침식당한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옅었던 신준섭의 존재감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자신의 존재감이 다른 사람에게 뭉개진다는 건 전호장의 사전엔 없는 개념이었다. 신준섭은 천천히, 몸을 돌려 호장의 존재를 인식한다.

안녕하세요. 

신준섭은 그 말을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서 아웃사이드 슛을 연습했다. 전호장은 의외의 인물이랑 마주쳐서 잠시 사고가 멈췄다. 일주일 버틴 게 용하네. 전호장은 미지의 생물에게 다가가듯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신준섭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도와줄까?

신준섭은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돌아서 호장을 쳐다보았다. 눈 마주친 건 처음이네. 전호장은 신준섭의 손에 들려있는 공을 가리켰다. 몇 개 연습하는데? 

500개요. 전호장은 그 순간 잠시 헉, 하고 입을 가렸다가 거짓말하지 마! 하곤 준섭의 등을 팍 때렸다. 그리곤 자기 혼자 깔깔 웃었다. 

나, 사실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서 농구 연습 못 했거든. 근데 하루라도 농구공을 만지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다… 그런 속담도 있잖아? 신준섭은 태클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의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다. 경청하는 건 특기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앞에 있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곳에 있으려면…

 선배.

 어? 

말 끊어서 죄송한데 제가 연습을 아직 덜 해서요. 신준섭은 전호장의 얼굴을 지나쳐서 다시 코트 위 라인에 섰다.

전호장은 자기에게 이렇게 말을 확 끊어버린 사람이 별로 없었고, 다들 잘 받아주었기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솟아오르는 쑥스러움에 뒷머리를 잠시 매만진다. 저 재수 없는 자식… 전호장은 작게 중얼거렸다. 신준섭과 전호장은 서로가 없는 듯 각자의 연습을 했다. 그러고 한 시간이 지났을까. 전호장은 원래 하려던 연습량을 훨씬 초과해서 연습했다. 옆에 신준섭이 500개나 던져대니까 괜히 의욕이 불탔던것이다. 

전호장은 이제 걸을 힘도 없다. 에이씨… 전호장은 물을 들이킨다. 신준섭은 작게 사백팔십구, 라고 중얼거린다. 둘만 있는 체육관엔 공이 떨어지는 소리와 손으로 줍는 소리 그리고 숨소리만이 반복되었다. 전호장은 그가 정말 500개를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서, 앉아서 그를 지켜보았다. 사백구십팔, 두개남았다. 신준섭은 한 번 더 공을 던지고, 몸을 숙여 공을 잡아서 다시 자리를 잡아 마지막 하나를 던졌다. 깨끗한 자세와 비단에 스친 듯 매끄럽게 들어가는 공이 잠시 호장을 소름 돋게 했다.

감독한테 한 소리 듣고 각성했나?

신준섭은 아웃사이드 슛 오백개를 다 던진 뒤 물병을 들어 물을 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전호장은 이때다 싶어서 그를 뒤따라 라커룸에 들어간다. 

야. 189cm. 

신준섭이 뒤를 돌아 호장을 쳐다본다. 제 이름은 신준섭이에요. 준섭은 자기보다 11cm 작은 선배를 아래에서 내려다보면서 말을 했다.

전호장은 순간 움찔했지만 내가 이름을 좀 잘 못 외워서, 라고 태연스럽게 둘러댔다. 물론 거짓말이다. 전호장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신준섭도 옷을 갈아입는다. 둘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옷을 갈아입기만 한다. 전호장은 익숙치않은 적막에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묘하게 자기한테 싸가지가 없는 것 같아 입을 다물려고 노력했다. 전호장은 문을 열면서 생각한다. 재수 없다고.

호장 선배.

신준섭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전호장을 멈추게 했다. 설마 저쪽에서 말을 걸어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거다. 호장은 뒤를 휙 돌아 신준섭을 쳐다본다.

만약 선배만 괜찮다면요,

같이 돌아가요.

전호장은 이게 무슨 말인지 잠시 생각했다. 같이 돌아가자는 건가… 그런데 내 집이 어딘 줄 알고? 신준섭은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집이 같은 방향인 거 같길래요. 등굣길에서 몇 번 마주쳤어요.

그리고 선배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신준섭은 전호장의 생각을 꿰뚫어본 것 마냥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얘가 이렇게 적극적인 성격이었나? 전호장은 아까 자신의 말을 끊고 연습에 몰두하던 신준섭을 생각했다. 재수 없다. 그래도 거절할 이윤 없고, 전호장은 알겠다고 대답했고, 같이 체육관을 나섰다.

말이라도 좀 섞자면서 걸어가는 20분 동안 두 사람은 말을 한마디도 안 꺼냈다.

호쾌한 전호장이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전호장을 아는 사람들은 신기해할 거다. 분명히, 전호장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다. 분위기에 압도당한다는 말이 이런 건가? 호장은 말없이 걷는 신준섭의 뒤를 따라가며 말한다.

나란히 걷고 있지도 않다. 이럴 거면 왜 같이 가자고 했냐고… 전호장은 익숙지 않은 어색함에 미칠 노릇이었다. 아 진짜 답답하네! 집까지 이제 5분도 남지 않았다. 신준섭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호장이 피어오르는 짜증을 막 말로 내뱉기 직전 신준섭이 입을 열었다.

"선배가 저를 불편해하는 거 알아요.

···그게 신경이 쓰여서요.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있으면 사과드리려고요."

신준섭은 똘망똘망 한 눈으로 호장을 바라본다. 슬픈 표정도, 기쁜 표정도 아닌. 아무 감정도 녹아있지 않은 평온한 얼굴. 전호장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 톤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중얼거렸다.

신준섭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발을 옮겼다.

전호장은 그의 덤덤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시끄러워야 할 타이밍을 재지 못했다.

그때부터 전호장은 신준섭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꿰뚫어 보는 그 눈빛은 호장의 속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었으니까. 호장의 얼굴로 시작해서 눈과 코. 그 안의 식도, 위, 창자. 과학적으로 말하면 몸을 반으로 갈라 들여다보는 느낌. 낱낱이 해부되는 기분이었고, 감성적으로 접근하자면 호장은 그 후배의 손바닥 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11cm차이밖에 안 날 텐데, 호장은 꽤 자주 그런 감정을 느꼈다. 신준섭의 눈동자는 까맣다. 그런데 그냥 까만 게 아니고 안에 거대하지만 작은 소용돌이 수억 개가 돌고 있어서 까만것 처럼 느껴졌다. 눈에 소용돌이라니. 자기가 생각해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잠시 웃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털리고 있는 느낌. 스토킹 당하는 느낌이 아니고, 그냥 본질적인 자신을 다 알고 있는 느낌. 자신의 존재를 자기도 다 알지 못하는데 다른사람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지 호장은 몰랐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저 호장은 철학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걸 잠시 후회했을 뿐.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전호장은 준섭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이 더 많아졌고, 호장은 일부러 끝까지 남아 후배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백사십일··· 호장은 신준섭의 연습을 자연스럽게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 한마디로 말해 호장은 준섭에게 다가갔다. 어떤 후배에게. 호기심이 그의 모든 행동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신준섭은 농구 이외엔 뭐를 좋아하지? 해남을 얼마나 좋아할까? 농구에 진심인 이유는 뭐지. 전호장은 홀로 답을 찾아낼 만큼 참을성 있는 사내가 아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호장의 권유로 둘은 또 같이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전호장은 매일매일 아웃사이드 슛을 500개씩 던지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호장은 신준섭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뭘 보고 있는 건지 짐작도 안가는 군... 전호장은 그의 머릿결을 본다. 나랑 다르게 진짜 깔끔한 옆 모습. 호장은 괜히 자기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 둘은 조용한 골목을 터벅터벅 걸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마치 한 사람의 발걸음 소리처럼 겹쳐 들렸다.

준섭은 호장을 바라본다.

“사실 네가 금방 그만둘 줄 알았어.” 

전호장은 그 무례한 확신을 걸었던 자신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음, 네.”

“그,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친해지자고. 그래서 오늘 같이 가자고 한거야. 이 슈퍼 에이스의 제안을 받는 후배는 네가 처음이야. 자랑해도 돼.”

그 대화를 나눈 다음부터, 호장은 신준섭을 다른 후배 그 이상으로 대했다. 자기가 처음에 쌀쌀맞게 군 행동에 죄책감을 느꼈으니까. 준섭은 그의 바뀐 태도에 놀란 것 같진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등굣길부터 점심시간 농구부 활동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어떨 때는 신준섭은 자전거를 타고다녔고, 전호장은 그 뒤에 올라탄 채로 이동하는 일이 잦았다. 모든 게 꿰뚫리는 기분이 들었던 건 마치 전생의 일 같았다.

 전호장은 신준섭의 곁이 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던 경청하고, 어떨 때는 웃어주고. 후배 중엔 대개 겁을 먹거나 어색하게 자신을 꺼리는 후배가 많았다. 그래서 과장되게 행동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호장은 조금은 자존심이 긁혀져나갔다. 하지만 준섭에게는 그럴필요가 없었으니까······

신준섭이라는 사람에게 끌렸던 건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가끔 단둘이 있을 때면 전호장은 신준섭의 세계에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계.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조용한 그의 세계. 한없이 밝지만 사람이 쓰는 물건은 없는 세계. 온실과 아쿠아리움의 냄새가 섞여 있는 세계. 

호장은 자신과 정반대인 세계로 떨어진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호장은 그 안을 돌아다닌다. 끝이 어디일까? 너무나 광활했기에 호장은 끝을 보고 싶었다. 모두 알아버리고 싶어. 끝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하얀 공간. 호장은 홀로 발소리를 울리며 세계의 끝으로 다가간다. 언젠간, 언젠간 닿지 않을까? 호장은 거대한 공간을 쏘다니며 정복감을 느꼈다. 닿을 거 같아. 언젠가···

우리는 당장 눈앞에 있는 사과의 내부도 알지 못한다. 그 안에 썩어 문드러져 있는 액체가 들어있을지 맛있는 과육이 들어있을지는 칼로 사과를 갈라봐야 안다. 아니면 예전에 먹었던 사과의 맛을 떠올리는 것. 사람은 기억만으로 사과의 안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내린다. 사람은 그것 이상의 것을 하지 못한다. 신이 아니니까. 단순한 과일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사람이라는 복합적인 존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준섭은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 공을 500번을 던져도 그게 무의미한 행동인지 아니면 현내 베스트 선수로 만들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이 아니니까… 신준섭은 그 사실을 알고도 공을 던진다. 해남에 있고 싶은 이유는 뭐였더라.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지? 신준섭은 중학 시절 키가 커서 농구부 제의를 받았던 그날을 떠올렸다. 농구, 그래요. 집에 곧 돌아갈 귀가부보다 단순한 운동이라도 하나 하면 성장통으로 지끈지끈한 몸이 개운해질 것만 같았다. 역효과였지만. 시작은 단순한 계기다. 해남대 부속 고등학교에는 왜 왔더라.

신준섭은 공을 던지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언제나 뱅글뱅글 돌았다. 의식이 아니니까. 어떨 때는, 그냥 그만두고 싶었다.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공부를 못 하는 건 물론이고 한 가지를 갈고 닦는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무작정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니까. 집중력을 유지하며 공을 던져야 하니까. 그렇게 집중력이 깨지는 순간이 오면 문득, 전호장이 생각났다. 자기보다 11cm나 작으면서 덩크를 해대는 에이스. 

전호장이라는 사람에게 끌렸던 건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신준섭은 가끔은 자기 손바닥안에 있는 작은 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세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작은 하나의 방. 그 안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물건의 형태로 가득 차 있다. 신준섭은 손바닥을 하루종일 쳐다본다. 작은 세계… 준섭은 문득 궁금해졌다. 자기도 여기 들어갈 수 있을까? 전호장의 세계에.

 아, 튕겨 나갔다. 신준섭은 방금 튕겨 나간 물건을 바라본다. 물건이라고 부르기에도 뭣 한 쭈글쭈글한 무언가. 다른 물건들의 압력에 모양이 이상해져 버린 무언가가 방금 방 밖으로 튕겨나갔다. 호장의 세계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내가 손가락을 넣기만 해도 이 세계는 찢어지겠지… 

신준섭은 자기 눈동자만 한 작은방을 바라본다. 그 안엔 책도 있고 컵도 있고 농구공도 있다. 안경이 있네. 익현이 형의 것일까? 호장과는 별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책이 쌓여있는 부분도 있었다. 책 안에는 무슨 내용이 써져있을까? 아마 나는 평생 모를 것이다. 신준섭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이렇게 방이 요동치는 걸 밖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저 작은방에 저렇게 많은 게 들어가는 게 신기해. 전부 집어넣는 걸까? 전부 소중한 거겠지. 이 사람은 하나도 안 빠트리고 챙겨 넣는구나.  

계속 지켜보고 싶어. 신준섭은 굳이 손가락을 밀어 넣지않는다. 세계의 틀을 본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책들과 어지러운 벽의 무늬가 선명히 보일 순간이 오지는 않겠지만 준섭은 지켜본다.

준섭은 선배의 라커룸을 쳐다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떨 때 보면 너네는 형제 같아.

 전호장은 어느 3학년 선배가 던진 말에 뒤를 확 돌아본다. 뭐 저랑 준섭이는 특별한 사이니까요! 벌써 5개월이 흘렀다. 곧 있을 대회 준비에 농구부는 좀 더 힘을 기울였다. 단체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함께 있어야 빨리 집합이 가능했기에 농구부원은 농구부원과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았다. 학년이 다른 두 사람이 다니는 건 이 두 사람이 유일했지만. 전호장은 신준섭의 몸에 몸을 기대곤 킥킥대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건 점심시간이었다. 

특별한 사이… 신준섭은 그 말에 꽂혔다. 수업 중에도 특별한 사이라는 말이 자신을 쿡쿡 찔러댔다. 

전호장 선배. 

신준섭은 딱히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냥 자연스러웠으니까. 함께해도 불편하지 않고, 먼저 말을 해주니까 내가 이야기를 굳이 주도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재미있는 사람이다. 가끔은 서로의 집에서 함께 공부하고. 내 슛연습을 도와주고, 그건 감사한 일이다. 함께 등교하고, 또 뭐가 있더라? 자전거? 어라, 이게 특별한가? 

신준섭은 생각의 연쇄에서 종착지를 찾지 못했다. 종착지는 본인과 대화해야 찾을 것 같았다. 왜냐면 자기는 어디까지가 허용인지 잘 가늠이 안 되니까. 혼자서 생각해도 말야 답이 안나오잖아.

 신준섭은 복잡한 머리를 외면한 채로 부실로 향했다. 부실에는 전호장이 의자에 앉아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묶고 있었다. 아씨, 오늘따라 잘 안되네… 호장은 준섭이 부실에 들어온 걸 눈치 못 챈 모양이었다. 도와드릴게요. 전호장은 깜짝놀라 그만 머리 끈을 떨어트렸다. 언제부터 있었냐? 방금 들어왔어요. 

신준섭은 의자에 전호장을 앉히고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 끈을 주워 거울 앞에 섰다. 이러고 있으니까 미용사같다, 너. 미용실 차리면 인기많겠는데? 전호장은 쉴 틈도 없이 장난을 걸어본다. 신준섭은 거울에비친 자신과 전호장을 번갈아 본다. 손은 머리를 능숙하게 묶고 있지만 시선은 거울을 향했다. 특별한 사이.

그리고 신준섭은 은은하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아.

왜? 못 묶겠어?

아뇨, 그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준섭은 호장의 머리칼을 꽉 잡고 머리 끈으로 묶곤 책상에 올려져 있던 헤어밴드를 가져다준다. 여기요. 

부실을 나오고 신준섭은 기억을 되새김한다.

방금 뭐였지? 

내가 저 사람이랑 있을 때 저런 표정이라고? 전호장은 고맙다며 준섭을 따라 나와 부실의 문을 닫았다. 

“야 준섭아. 내가 있지, 평소엔 머리가 잘 묶이는데 머리 끈 바꿨더니 잘 안 늘어나네. 그냥 쓰던 거 써야겠다.”

“선배.”

“어?”

신준섭은 자신의 표정을 알지 못한다. 거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물어보지 못할 것 같다. 자신의 표정이 저렇게 변한 이유를 물어야한다. 앞에 답지가 있으니까. 

“우리 특별한 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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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다. 전호장은 그 세계에서 길을 잃었다. 쳇... 쓸데없이 넓은 곳이라니까? 출구를 찾는 게 아니다. 출구라면 진작에 찾아놓았다. 호장은 무언가를 찾는다. 계속해서. 

이번엔 닿을 거 같은데, 음. 안 닿으려나? 호장은 허공에 힘껏 손을 뻗는다. 

아, 드디어 닿았구나. 그래, 그렇구나··· 너구나! 이게 너구나. 호장은 웃는다. 그게 찾던 건지 아닌지 호장은 모른다. 그런데 단정 짓는다.

어리석은 사람이지? 전호장은 앞에 있는 무언가에게 물어본다. 나는 바보니까, 사실 잘 몰라. 근데 있지 이게 내가 아는 너가 아니어도 알아갈 거야. 모르면 알아가면 된다. 단순하지만 오답이 아니다. 호장은 찾은 것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그에 보답하듯 그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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