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미스죠르] 어떤 생애

공간 by 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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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부 결말 이후 시점입니다. 죠르노 설정 날조 o

죠르노가 살아 돌아왔다. 머리는 누가 쥐어 뜯어놓은 듯 헝클어졌고, 옷은 아무도 입지 않으려 할 정도로 누더기 상태에, 온 몸이 피를 뒤집어 쓴. 근데 이런게 중요한가? 어쨌든 너가 살아 돌아왔다. 

 난 너의 숨이 끊어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야 내가 너의 곁에 있었으니까. 차가워지는 네 몸을 뜨겁게 하려 여러 번 숨을 불어넣었고 실패했으니까. 네 동공의 빛이 사라지는 걸 가장 가까이서 본 나니까. 너가 죽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너가 살아 돌아왔다.

"미스타."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제서야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황금의 정신이 깃든 눈동자······

한 번 죽었다고 해도, 죠르노는 여전히 죠르노였다.

*

 그 애가 살아있으며, 지금 우리 조직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폴나레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나에게 사실을 물었다. 난 내가 본 걸 전하기만 할 뿐 과장도 뭣도 하지 않았다. 지금 보스가 전화를 받기 힘든 상황이니까 내가 대신 말하는 거야. 깨어나면 전화 하라고 할 게. 폴나레프는 안 믿기지만 알겠다고 곧 그리로 가겠다고 했다. 폴나레프에게 알리고 난 뒤 푸고에게도 알렸는데 걘 전화를 끊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왔다. 아니, 정확하겐 병원에 부딪쳤다고 표현해야할까. 죠르노가 1층에 입원된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유리벽을 깨고 들어와 처참하게 부서진 차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죠르노가 그리웠던거냐 물었는데 푸고는 그냥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 생각해 그렇게 과격한 운전을 했다 하기는 하는데, 푸고도 나름대로 보스가 보고싶었던 거겠지.

죠르노는 입원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여러 간부들이 와서 죠르노와 이야기를 하느라 난 뒷전이 되어서 밖에서 대기만 했다. 푸고도 내 옆에서 같이 기다렸는데 푸고가 골똘히 무언갈 생각하고 노트에 적어내고 있었다. 뭐 적냐? 죠르노, 아니 보스에게 물어볼 걸 적고 있어요. 나도 한 장 뜯어줘. 여기요. 근데 뭐 물어보려고요? 밥 메뉴 뭐 시킬지 고르라하게.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몇 번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자 폴나레프와 여러 간부들이 병실에서 나왔고 난 겨우 죠르노의 병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

푸고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자 죠르노는 의미심장한 말만 할 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기억이 잘 안난다, 운이 좋았다. 대답은 둘 중 하나였다. 아무튼 죠르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푸고는 기뻐 보였지만, 살아있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자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죠르노와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걸 느낀 건지 푸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무튼 다행이에요, 살아있었다니." 푸고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문밖으로 나섰다.

푸고가 했던 말이 계속 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럼 우리가 불태운건 당신이 아니라·····"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죠르노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런데 푸고의 얼굴은 무슨 불쾌한 걸 보기라도 한 듯, 눈썹을 잔뜩 찌그렸었다. 그때 죠르노는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죠르노는 집으로 갈 만큼 몸이 회복되었다면서 나랑 병원을 나섰다. 의사가 아직 정확하게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지만 죠르노는 자신의 상태에 이상할정도로 확신이 있었다. 의사가 한숨을 쉰 뒤 죠르노를 보냈고, 이제야 우리 둘만의 시간이 생겼다. 바쁜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건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그나마 그 연인이 권력있는 상사라서 다행일까.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 평범한 일상 살 때가 좋지, 이번엔 죽었다가 돌아와서 사람 속을 타게 만들어? 정말 여러모로 짜증 나는 연인이다.

*

그가 돌아올 일이 없다는 걸 알고있지만 죠르노의 방을 치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냅뒀다. 죠르노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방을 무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방을 따로 치우지 않았네요?"

그리고는 휙 돌아 서랍을 열었다. 멋지게 디자인 된 최고급 가구. 장담하건대 그 속에 화려한 옷이나 중요한 서류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시중에 파는 핫초코 파우더 봉지가 가득 있다는걸 보게되면 사람들은 놀랄것이다. 뭐, 죠르노는 원래 그랬으니 나는 놀라지 않겠지만. 나라의 경제를 꽉 쥐고 몇 천억을 어루만지는 주제에 실제로 좋아하는 건 길거리 음식, 그리고 그런걸 아는 사람은 나 말곤 없겠지. 쟤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려나? 이런 걸 생각하는 나나 멍하게 믹스를 고르고 있는 죠르노나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고 쇼파에 앉았다. 죠르노는 아무렇지 않게 핫초코 믹스를 우유에 넣고는 휙휙저어 나에게 건네었다. 핫초코를 받아들곤 나는 죠르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묘한 긴장감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정확히 사흘전인가. 너가 죽었던 날이." 

"그렇게나 흘렀나요." 죠르노가 핫초코를 한 입 들이마시고 말했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죠르노가 간부들과 이야기를 할 때 밖에서 마음 정리를 다 했고 이제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단 둘이 있으니 긴장이 풀려 그런진 몰라도 조금 울었다. 나는 마시던 핫초코를 내려놓고 조금 강하게 죠르노를 끌어안았고 죠르노는 들고 있는 핫초코가 쏟아질까 팔을 우스꽝스럽게 들어 균형을 유지했다.

"잠깐, 쏟기겠어요."

"그 말 말고 해야 될 말이 뭐더라?"

"······조금 늦었어요. 혼자 둬서 미안합니다. 미스타." 죠르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몇 번이고 놔달라고 했지만 나는 죠르노를 계속 붙들고 있었다. 의미 없는 실랑이가 오가는 데 나는 그게 좋았다. 그리웠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게. 그래서 계속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죠르노의 골드 익스피리언스가 내 옆구리를 푹하고 찌르고 나서야 죠르노를 놓아주었다. 내가 찔린 옆구리를 감싸고 너무 아파서 원망의 눈빛으로 죠르노를 째려보자 그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이제 죽지 않아요

당신을 혼자 두지도 않아요


중요한 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에요.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

죠르노가 죽었다. 어제 새벽에, 미스타와 부하 몇 명을 데리고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피투성이 미스타가 울면서 죠르노의 시체를 내 눈앞으로 들이밀던 장면을 기억한다. 미스타가 의사의 멱살을 잡고 '아직 죽지 않았어. 당장 살릴 수 있다고 말해!'라고 소리 지르던 장면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살렸다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다. 한 번 멈춘 맥박은 뛰지 않으니까. 떠나버린 이는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의 죽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기에 적막이 우릴 옥죄었다. 

나랑 폴나레프는 일을 도맡아 뒤처리를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고 커피를 오랜만에 들이마셔서 그런가 머리는 지나치게 잘 돌아갔고, 이 상황에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폴나레프, 죠르노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게 있어요." 

"말해봐." 

"······사실 그 애 안 죽은게 아닐까요?" 평소에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피우며 조용히 문서를 넘기면서 일하던 푸고가 폴나레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아...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정신차려. 그 애의 시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불 태웠잖아. 가끔 보면 너도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한다니까?" 

폴나레프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너도 환각 보냐?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같은 소리를 하고 폴나레프는 말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조용히 일이나 마저 하자고 등을 돌렸다.

"아니요, 일단 전 안 미쳤고요. 제가 말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어요. 우리가 죠르노의 시체를 태웠고 유골함을 지니고 있는 것도 맞아요. 제 말은 죠르노가 죽었는데 어떻게 미스타가 살아있을 수 있냐는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푸고가 말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그는 죠르노에게 '치료'를 많이 받아왔어요. 다 알고 있잖아요. 죠르노가 죽었다면 미스타의 몸에 끼워져 있었던 몸의 부품들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죠. 미스타는 죠르노가 죽으면, 다시말해 골드 익스피리언스가 사라지면 그냥 잡동사니 시체가 되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미스타는 살아있잖아요. 게다가 미스타 말고도 그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많아요. 그런데 왜..."

 설명하다가 흥분했는지 얼굴이 빨개져버린 푸고는 납득이 안된다는 제스처와 표정을 지었다. 폴나레프도 처음 그의 말을 들을 땐 그저 많이 아프나보다 하고 흘려들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던 거다. 노토리어스 때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죽어도 움직이는 스탠드가 있긴 했다, 그런데 그 스탠드는 사람이 죽어야 발동이 되는 특이 스탠드였고. 죠르노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폴나레프의 마음에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유골이 죠르노의 것이 맞는지 다시 조사 해보도록 하자. 미스타에게는 말했어?"

"하... 지금 어느 누가 그에게 말을 걸 수가 있겠어요."

유감스럽게도 미스타는 복도를 지나가면서 이 대화를 들었고, 이 대화를 한마디도 잊지않고 똑똑히 기억했다. 몰래 들으려고 의도한게 아니다. 푸고는 장례식에 얼굴을 잠시 비추고 바로 일을 하러 떠났다. '그립죠, 그립고 슬픈데요. 처리해야 할 게 산더미가 되어서요. 전 불참하겠습니다.'나에게 가볍게 답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진짜 정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걔가 뭘 두고 갔길래, 그거 가져다주려고 잠시 들른 건데. 그의 죽음을 가장 곁에서 알아버린 미스타였지만 여전히 죠르노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시체를 어루만져도 보고 말도 걸어봤던 그에게 푸고의 말은 희망의 빛과도 같았다. 

유골은 죠르노의 것이 맞았다. 몇 번을 재검사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왜?

나는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내 몸을 구성하는 이 부품은 누가 유지하고 있는 거야? 

*

"골드 익스피리언스로 제 자신을 만들어서 다시 태어나게 했어요."

"뭐?" 

죠르노가 살아 돌아온지 두 달이 지났다. 두 달이 지났고... 그래 두 달이 지났는데······ 죠르노는 완벽하게 보스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어떠한 차질도 없었다. 생각보다 더 멀쩡해서, 푸고의 의심도 슬슬 잊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저는 거의 즉사했지만, 찰나의 순간 기적적으로 골드 익스피리언스를 쓸 수 있었어요. 돌바닥에 머리를 처박기 전 주변에 있던 쓰레기로 몸을 만들었고 혼을 이동시키는 건 예전에 여러 번 해봤으니 뭐······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신생아가 되어 울고 있던 절 술집 주인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사람 발에 치여서 죽었을지도 모르죠. 제대로 자라는 데 3일이나 걸리더라고요. 처음 시도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넌 그런 중요한 말을 왜 스파게티 먹을 때 하냐." 미스타가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정보가 이리저리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 와해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저만 알고 있으려고 했는데 당신이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요." 

"그러면 네가 이제 더는 죽지 않는다고 했던 건 허풍이 아니라 정말이네?"

"뭐 그것도 그거지만... 중요한게 하나 더 있잖아요?"

"더는 날 혼자 두지 않는다는... 그거?"

그게 제일 중요하죠! 

황당해서 180도로 뒤틀린 내 속도 모르고 활짝 웃는 죠르노를 보니 짜증이 팍 치밀어 올랐다. "나는 네가 무슨 예수님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진짜." 죠르노의 볼을 꼬집고 한참을 놓지 않고 있자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중요한 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라고요. 하하······" 

앞에 놓인 스파게티는 식어가고 날은 저물어 간다. 그리고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나는 죠르노가 죽을 때까지 혼자가 되긴 글렀다는 것. 사실 이건 좋아. 그런데······

"너 이제 죽을 일 없다고 한 거 말이야. 그거, 영원히 살 거라는 이야기였어?"

"글쎄요?" 죠르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 이 바보 멍청이가! 난 적당히 살고 죽을거라고. 대답해, 진짜야?"

"당신이 하는 행동에 따라 본 보스는 영생을 살 수도 당신과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활자만 보면 장난스럽겠지만 죠르노는 항상 이런 말을 결의에 찬 눈빛으로 해버려서 상대방은 진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그렇고. 

앞으로 잘 할게 죠르노.

사실 잘 해주고 있지만요. 더 잘해보세요, 앞으로 내가 다시 태어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하면서, 미스타와 죠르노는 자기들 입으로 멋대로 노후를 약속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잊지 못할 하루를 보내었다. 

소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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