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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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포렴을 들고 나왔을 땐 환한 낮이었다. 여름이다. 해가 꼭대기에 뜬 무렵이므로, 마침 앞을 지나던 행상의 목소리도 애처롭게만 들렸다. 시원한 감주를 파는 수레를 끌고 있는데 이 무렵이면 웬만한 봇짐 장수도 한 수 접고 그늘 밑으로 꽁무니를 뺄 만 하다. 그러나 이 시각에 돌아다니지 않으면 몇 푼을 놓치게 되는 장사 또한 있는 법이다. 상념에 빠지려니
린아이런은 꽤 넓은 집에서 자랐고, 그녀의 부모가 호상을 맞이한 관계로, 젊은 임 부부는 꽤 넓은-낡아빠진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침구를 갈고 커튼을 새로 달고 중고로 구한 간접등을 채우는 등의 노력이 있었으나, 맞벌이 생활에서 고가구를 팔아치운 후 이케아에 갈 심력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부부는 이민자들 사이에서나 감탄 살 법한 자개농, 태
일단은 코코아 마시멜로 토치 눈이 옴팡지게 내렸다. 엘리멜렉 베레신스키가 찜해둔 침실에 누운 그자가 썩지 않을 거라는 게 달카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엘리멜렉은, 도착하자마자 나름으로 기대를 품고 침대에 짐가방을 부렸는데, 반대편 바닥에 시신이 누워 있는 걸 발견한 첫 목격자였다. 덕분에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여름날이 화창했다. 저택에 당도한 뒤로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에, 조이스로서는 오랜만의 휴가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을 뜨지는 않는다. 그가 상속받은 유산은 출판사 하나, 그리고 몇몇 개의 보석상과 부티크. 전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들이다. 게다가 사교계와 가까운 만
송덕문 데이지 버킨은 나쁜 엄마였다. 말하자면 그랬단 소리다. 조이스는 언제나 어머니를 사랑했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더라도, 온갖 성가신 일을 어린 양자에게 넘기는 부류더라도. 때리거나 내다 팔지는 않았으니까. 오늘 데이지가 죽었다. 학기 말 파티 날이었다. 이어서 방학이 예정되어 있는, 평온한 나날이었다. 딜런은 무
기회 쓸쓸한 계절이다. 끄무레한 구름으로 들어찬 하늘은 한 점 여명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먼 황야라면 조용히 삭아 마른 풀이 굴러다니는 몰골이겠지. 조이스는 저택 바깥세상을 알고 있으므로, 들판의 정경을 이렇게나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딜런 버킨에게 바깥이란 데이지의 말에 따라, 끝도 없이 위험하고 야생성 험한 곳으로 여겨졌다. 마치
괴담과 우화羽化 그가 두려움을 알게 된 것은 강호에 나선 다음이었다. 따라서 아해 시절 뒷간 가는 길 공포라거나, 퀴퀴한 어둑서니 냄새에 관해서 그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떠올려 보자면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치마 밑단을 툭툭 턴 가솔이 문을 밀었다. 기름칠을 아무리 해도 이 고택에서는 드르륵거리는 문소리가 났지만, 평소의 도
진현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첫 문장 무적 눈이 나리면 개가 뛰는 법이다. 나드그로비에는 그 이치를 자연히 깨닫고 있었으나, 크게 의식하진 못했다. 인간 것이든 짐승이든 간에 그는 친교를 나누는 것에 큰 흥미가 없었고, 대개 개라면 열없이 치대는 게 일이라 성미와 안 맞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