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랑] 썰 모음 22
진화랑 1개, 진화랑뎁진 1개. 2024년 4월 27일 연성.
1. 18-3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같이 산책하는 준과 화랑. 그리고 카즈야와 진으로 진화랑/카즈준 (준이 카즈야와 함께 돌아옴)
어라, 준씨? 어머나, 화랑군. 아침 자훈련 후 땀도 식힐 겸 집 근처의 숲을 산책하며 돌아다니던 화랑의 눈에 낯설면서도 이젠 익숙해진 여성이 들어왔다. 여성도 초록빛 투성이인 숲에서 붉은 노을빛의 튀는 머리칼의 화랑을 발견한건지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좋은 아침이네, 준씨. 제가 건낸 인사를 반갑게 받아준 그녀의 이름은 카자마 준. 화랑과 동거 중인 그 카자마 진의...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었다. 오거에게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준이 나타난 상황도 극적이라면 극적이었다.
모든 게 끝나고 돌아온 진과 야쿠시마의 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수리하고 - 돌아온 날 제 옷을 입고 잠든 화랑을 깨운 진은 왜 이리 늦은거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를 들으며 초스카이 콤보를 얻어맞았다 - 동거하게 된 후 두 사람의 일상은 꽤나 평화로웠다. 화랑은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며 지냈고 - 이동 수단은 위그드라실의 소형 비행정과 진이었다 - 진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지만 평화를 위해 그 카즈야와 대적한 점을 인정 받아 세상이 원래대로 평화로운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 위그드라실의 소속이 되어 일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약한 처벌인 이유는 위그드라실의 사람들과 진을 믿고 있던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물론 그 처벌과 관계없이 진은 계속해서 속죄를 하고 다니긴 했지만. 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집에 남아있던 화랑은 순간 온 몸을 휘감는 기묘한 느낌에 재빠르게 집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에 화랑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 저 작자가 여긴 어떻게 알고 온거야...! "
진이 카즈야를 죽였을거라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이곳을 찾아올거라는 생각도 1도 하지 않았던 화랑이 천천히 내려오는 카즈야를 바라보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자젤을 흡수하기 전의 데빌의 모습은 눈에 익었지만 그의 품에 안겨 함께 내려오고 있는 낯선 여성은 아주 낯설다 못해 어색했기 때문이다. 뭐야, 인질?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너무 아무렇지 않은데? 카즈야의 목에 팔을 걸고 공주님 안기로 안겨있던 여성은 카즈야가 땅에 안착하자 그의 품에서 내려와 화랑에게 다가왔다. 그런 여성의 모습을 화랑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화랑이라면 무조건 적이라며 달려들어 한판 했겠지만 지금의 화랑은 일단 한번은 참고 질문을 던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 미안한데... 저 양반이랑 같이 온 그쪽은 정체가 뭐야? "
" 저는 카자마 준. 카즈야씨의 아내이자 진의 엄마입니다 "
" ...... "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화랑이 스윽 카즈야를 바라보았다. 카즈야는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모로 돌린 체였다. 다시 스윽 자신을 카즈야의 아내이자 진의 엄마라고 말한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화랑이 미간을 손으로 짚으며 작게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들고는 카즈야만 나오도록 사진을 찍고는 어디론가로 송신했다. 텍스트도 없이 사진만 띡 보낸지 5분 후, 굉음과 함께 나타난 건. 화랑이 굉음과 함께 밀려오는 바람에 몸을 낮추고는 혀를 찼다. 아무리 급하다지만 대형 비행정인 비도프니르를 그대로 끌고오면 어쩌자고...! 힐끔, 쳐다본 그곳엔 준을 제 뒤로 물리고 바람을 고스란히 막아주고 있는 카즈야가 보였다. 우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은 화랑은 비도프니르에서 고대로 수직 하락하고 있는 진과 제트팩을 매고 천천히 착지하고 있는 리, 그리고 알리사의 도움을 받아 내려오고 있는 라스를 바라보다 추락하기 전 날개를 펼쳐 카즈야에게 달려드려는 진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화랑! 답지 않게 저에게 큰소리를 내뱉는 진에 화랑이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 진정해, 이 얼간아! "
" 하지만! "
" 지금은 이야기를 듣는 게 먼저겠지 "
그리고 힐끔 뒤를 돌아보자 카즈야의 등 뒤에서 슬쩍 반쯤 모습을 내보인 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엄... 마...? 그리고 그런 준을 발견한 진의 얼빠진 얼굴도 힐끔 바라본 화랑이 하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죽은 게 아니었나...? 준을 알고있는 리의 놀란 목소리와 진의 어머니라고? 라며 되묻는 라스의 목소리를 들은 화랑이 이내 질린 듯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시끄럽고 이야기는 비도프니르에서 계속 하라고. 난 낮잠 한숨 땡길거니까. 명백하게 이번 일에 참견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화랑을 진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안따라올거야? 그 질문에 화랑은 대답없이 휙 몸을 돌려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이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화랑은 굉음 소리가 점차 멀어지자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 우와악! 아, 알리사? 넌 왜 여기있는거야! "
저를 가만히 내려보고 있는 알리사에 놀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상체를 벌떡 일으킨 화랑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화랑이 상체를 일으켜 생긴 자리에 앉았다. 진씨가 자신이 올때까지 이곳에 남아 화랑씨를 지켜봐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잠시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쉰 화랑이 소파에 바르게 앉고는 볼멘소리를 읊조렸다. 진짜 그 자식은 날 혼자두면 안되는 어린애로 생각하는거야, 뭐야? 그 볼멘소리에 알리사가 눈을 깜박였다.
" 하지만 지금까지 행동 패턴을 봤을 때 화랑씨가 진씨를 따라갔을 확률은 90% 였습니다. 왜 함께 가지 않으신겁니까? "
" 뭐... 그 녀석이 들으면 질색하겠지만... 가족의 일이니까. 난 타인에 불과하니 참견하거나 흥미 위주로 지켜보고 싶진 않거든 "
" 타인은 참견하면 안되는겁니까? 무엇보다 화랑씨는 진씨와 가까운 사이지 않나요? "
" ...그 자식의 가족사는 복잡하니까. 그냥... 진이 스스로 뭔가 결론을 내고 이야기 해줄때까지 기다릴거야. 음, 미안. 나도 뭔가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 "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기색을 그대로 내보이는 화랑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알리사가 나중에 라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화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그 양반도 좀 기구하게 됐네... 카즈야와 더불어 준을 발견했던 리의 떨리는 목소리를 떠올린 화랑이 이내 고개를 휙휙 저으며 머리 속에서 그 목소리를 지우고는 으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일도 없는데 산책이나 할래, 알리사? 정말 한숨 늘어지게 잘 생각이었지만 손님을 - 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 앞에 두고 그럴 생각이 싹 사라진 화랑의 권유에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도프니르에서 펼쳐진 논스톱 48시간 회의 - 위그드라실 사람 뿐만 아니라 연락을 받은 UN의 빅터 슈발리에까지 참여하게 되어 회의 시간이 무지하게 길어졌다 - 끝에 미시마 카즈야에게 내려진 처벌은 자택 연금과 죽을 때까지 감시를 당하는, 어찌보면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나중에 잔뜩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 진의 말에 따르면 그 어떠한 처벌을 내려도 카즈야를 완벽하게 구속하고 제어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나왔고 차라리 그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준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리의 설득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양반도 참. 화랑이 속으로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에 그 두 사람이 어디서 지내게 되었냐면.
" 그래서 이 곳에 돌아온 감상은 어때, 준씨? "
" 여전히 기분 좋고 깨끗한 바람이 부는구나, 싶네. 화랑군은 어때? "
" 아침부터 피톤치드 엄청 나네... 정도? "
그 말에 웃는 준에 화랑도 피식 웃고는 제 열을 식혀주는 시원한 숲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곳 답게 동식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야쿠시마는 화랑의 마음에도 든 곳이었다. 정들면 고향이라더니. 작게 중얼거린 화랑을 바라본 준이 제 손 위로 올라오는 새하얀 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카즈야와 준이 지내게 된 곳은 당연하게도 야쿠시마였다. 그것도 진과 화랑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닥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로 집을 지어 살게 된 둘 중 화랑과 자주 마주치는건 당연하게도 준이었다. 진에게 패배하면서 데빌의 힘이 약화된 탓인지 아니면 준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독기가 조금 빠져버린건지 카즈야는 집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고 준과 조용히 지냈고 진도 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있기에 집보다는 위그드라실의 대형 비행정인 비도프니르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모든 일이 끝나면 진도 집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지겠지만 현재로서는 머나먼 미래의 일이었다.
" 화랑군은... 진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거야? "
" 3년 전 길거리에서 양아치 짓 하다가? 불법 도박 파이트 같은거 하다가 한국에 온 진을 만나게 됐는데... 처음으로 무승부를 하게 됐지. 그게 분해서 승부 내자고 죽자살자 쫓아온게 여기까지 이어졌네 "
" 후후, 그렇구나... 그래서 승부는 냈어? "
" 승부 내자니까 집안 문제 때문에 맨날 피하고... 지금도 죄값 치룬다고 돌아다니기 바쁘니까... "
" 그럼 화랑군은 진과 승부를 내기 위해 이 곳에 있는걸까? "
" 글쎄... 어떨까나 "
제 말에 얼버부리며 시선을 피하는 화랑에 준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내 안의 데빌에 죽기 직전까지 몰리고 아자젤을 죽이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나한테 폭언을 듣고서도 화랑은... 나에게 적의 따위 품지 않았어. 심지어... 내 안의 데빌까지 나라고 인정까지 해줬고. 그래서 나도 데빌을 인정할 수 있었어, 엄마. 48 시간의 논스톱 회의 끝에 결론이 나고 드디어 온전히 혼자서 마주한 진은 준에게 화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준도 편안한 표정으로 화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진을 보며 숙명에 묶여있던 제 아들이 드디어 그 굴레를 벗어던지고 평온한 일상을 지낼 수 있겠구나 싶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욱씬,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응어리를 미소 뒤에 숨겼다.
" 준씨는 그 동안 어디에 있던거야? 진의 말로는 오거에게 습격 당했을 때 죽었다고 했었는데 "
" 의식을 잃은 체 오래동안 야쿠시마의 사당에서 잠들어 있었어. 그리고 오거에게 입은 상처가 겨우 치유되자 의식을 찾게 됐고. 설마...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을 줄은 몰랐네 "
" 의식을 찾았더니 무려 7년 이상 시간이 흘렀다면... 무서울 것 같은데 "
" 화랑군은 그렇게 생각해? "
" 일어났는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있으면 꽤나... 공포지 않을까 "
" 그것도 그렇지만... 난 다른 의미로 조금 죄책감이 생겼네 "
" 죄책감? "
의아하다는 표정의 화랑이 걸음을 멈추자 같이 따라서 멈춘 준이 손 위의 새를 떠나보내고는 혼잣말처럼 제 안의 죄책감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강해서오거를 쓰러트렸다면... 그래서 진의 곁에 계속 있었다면... 진은 이 숙명의 굴레에 휘말리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카즈야씨의 악행도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 내가 있었다면 그 두 사람이. 그리고 전쟁이 없는 모두가 평화로운...
" 멍청한 소리하지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준씨 "
준의 고해성사 같은 고백을 차가운 말과 냉소적인 어투가 끊었다. 그 말에 준이 뭐라 이야기할 틈도 없이 화랑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뭐? 내가 있었다면 이 모든 일이 발생 안했을 수도 있다고? 준씨, 자기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래, 뭐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다가 깨어난 세상이, 상황이 자기 생각과 달라서 혼란스러운건 인정할게. 그것도 자기 주변 사람들이 모두 휘말린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그렇겠지. 근데... 그런 식으로 다 자기가 없어서라는 등, 내가 있었다면 하고 과거를 곱씹어보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죄책감 같은거 갖지마. 그런 식으로 죄책감, 책임감 같은 거 가져봤자 고통 받는 건 자기 자신 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자신한테,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일절 도움이 안된다고. 그러니까 지나버린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게 좋지 않겠어? 자기 자신에게나 진, 그리고 카즈야 그 양반을 위해서 말이야. 다다다다 정신없이 내뱉어진 말을 들은 준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에 살며시 미소를 지은 준을 본 화랑이 움찔했다.
" 마치 겪어 본 것 처럼 말하네, 화랑군 "
"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때 진이랑 대화 해볼걸. 죽을 각오로 막아볼걸. 조금 더 일찍 움직여볼걸.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었으니까. 근데...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 후회... 같은 거 해도 이미 늦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어. 모든 일이 다 끝난 후에 그 녀석 옆을 지키고 지탱하자고. 하아, 왠지 모르게 내버려 둘 수 없단 말이지... 그 얼간이 "
" 그렇구나... 후훗, 진이 화랑군을 만난건 행운이었네 "
" ...아, 그... "
" 응? "
" 그... 음... 멍청한 소리라고 한건 미안해. 나도 겪어본 일이다보니... 말이 좀 세게 나갔네 "
멋쩍은 표정을 짓는 화랑에 결국 준이 마치 진에게 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랑군은 착하네. 그거 내 평생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리고 머리 쓰다듬는 건 그만둬! 이런 건 진에게나 해!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차마 자신에게 거칠게 행동하지 못하는 화랑에 준이 다시끔 밝은 미소를 짓는 순간. 공중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하늘로 향했다.
흥, 애송이 주제에. 두 사람이 까마득한 점으로 보일 정도의 상공에 떠 있는 건 카즈야였다. 데빌의 힘으로 청각을 한껏 증폭시킨 카즈야는 화랑의 멍청한 소리라는 말에 울컥했다가 이내 쏟아진 말, 그리고 준의 반응에 팔짱을 끼며 자신을 바라보던 준을 떠올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반가움과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과 미안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앞의 2개의 감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뒤의 2개의 감정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었는데 이 대화를 통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 카즈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이지... 귀찮은 여자군. 너무 착해 빠져서 뭐라 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숨을 내쉰 카즈야는 순간 뒤에서 느껴진 기척에 칫, 혀를 차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 무슨 볼일이지 "
" 그건 내가 말하고 싶은거야. 무슨 꿍꿍이지? "
" 그런 건 없다. 내가 밖에 나온 거 자체가 불만이라고 시비 따위 걸지 마라 "
" ...엄마가 당신의 존재를 인정해도 난 당신 따위 인정하지 않으니까 "
" 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너도 그리고 저 애송이도 "
침묵이 흐른 것도 잠시 둘 중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레이저를 발사했다. 곧 폭발과 함께 큰 소리가 숲을 가득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시합의 종소리라도 되는양 둘이 격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화랑이 아이고 두야,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왜 저러고 있는거야, 이 좋은 날에. 졸지에 좋았던 기분 와장창 났네. 어쩔거야, 준씨?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준이 이내 눈을 반짝 빛냈다. 저기 화랑군, 귀 좀... 준을 향해 살짝 허리를 숙여 이야기를 듣던 화랑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어갔다.
" 그거 재미있겠는데? 해볼까? "
" 그럼 부탁해, 화랑군 "
서로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 받던 카즈야와 진이 근접전으로 전환해 싸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울분이 가득한 표정의 진과 지금의 싸움이 그저 제 지루함을 풀기 위한 수단 밖에 되지 않는 카즈야의 비릿한 미소가 겹치는 순간 둘은 순식간에 제 머리 위로 높게 솟아오른 무언가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 준? "
" 엄마? "
" 두 사람 모두 그만! "
순식간에 양 손에 빛의 힘을 담은 준이 그대로 둘을 향해 내리꽃았고 방어할 틈도 없이 그대로 공격을 받은 둘은 빠른 속도로... 추락해 바닥에 쳐박혔다. 콰아앙! 마치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듯 엄청난 굉음과 모래 먼지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화랑이 휘익, 휘파람을 불더니 이내 땅으로 떨어지는 준을 가볍게 받아냈다. 나이스 준씨. 화랑군도 좋은 어시스트였어. 달려오던 스피드 + 화랑의 발차기의 각력을 통해 높게 날아올라 두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트린다는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준을 내려놓은 화랑이 성큼성큼 걸어가 충격에 데빌화가 풀려 몸을 일으키려는 진의 뒷덜미를 붙잡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 너 진짜 뭐하는거야? 이 좋은 날에 쌈박질이나 하고. 그렇게 힘이 남아돌면 나랑 대련이나 하자! "
" 자, 잠깐만! 손 좀 놔줘, 화랑! "
" 닥치고 얌전히 따라와, 이 얼간아! "
소란스럽게 가버리는 둘을 바라보던 준이 카즈야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진처럼 데빌화가 풀린 카즈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앉아있는 것을 본 준이 살며시 웃고는 천천히 다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즈야씨. 저를 부르며 내민 손을 바라보던 카즈야가 눈을 감고 숨을 내뱉더니 이내 눈을 뜨고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못 본 사이에 꽤나 과격해졌군. 그 말에 준이 웃고는 손을 풀지 않은 체 먼저 앞장 서서 집으로 향했다. 저를 바라보는 눈에서 더 이상 죄책감과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카즈야가 귀찮은 여자 같으니 라며 작게 중얼거린 것도 잠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2. 화랑이 죽은 후 다른 세계의 평범한 의대생인 화랑이 철권 세계관으로 떨어진 후의 이야기로 진화랑뎁진... 인데 프롤로그 적인 연성이라 거의 화랑 밖에 안나옴 (왜 의대생이냐고 묻는다면 양아치 짓 하면서 다치면 스스로 치료 잘하겠지, 라는 생각에 의대생으로 설정함. 외형은 7의 검은 머리칼의 모습으로)
...이거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화랑은 제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탄환에 빌어먹을, 이라 중얼거리며 잽싸게 골목 안으로 숨어들었다. 이내 총기를 들고 무장한 군인들이 숨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체 지나가자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쉰 화랑이 벽에 등을 댄체 미끄러지 듯 주저 앉았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의대 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갑자기 바닥이 꺼지는 느낌과 함께 곤두박질 쳐져 정신을 잃은 화랑은 눈을 뜨자마자 제 앞에 보이는 참상에 말을 잃어버렸다. 무너진 건물, 파괴된 자동차, 형체를 잃어버린 도로. 그리고 마치 오브젝트 마냥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 행위 예술? 아니면 평화 시위? 아니, 코 끝으로 밀려오는 이 견딜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피와 탄내음은. 그래, 선생님을 따라 분쟁 지역으로 의료 봉사를 갔을 때나 맡았던... 시체의 냄새. 현실이다. 지금 화랑은 전쟁터 한복판에 떨궈진 것이었다. 젠장.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은 화랑이 일단은 제가 매고 있는 꽤 큰 사이즈의 크로스백을 살폈다. 다행스럽게 안의 물건들은 부셔지거나 망가지지 않은 상태였다. 꼼꼼하게 물건을 확인한 후 크로스백을 고쳐맨 화랑이 주변을 살피다 천천히 자리에 일어서 제일 가까운 곳에 널부러져 있는 군복을 입은 시체에 다가갔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야한다. 조심스럽게 시체를 살펴 팔뚝 부분에 찍힌 마크를 찾은 화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처음보는 마크였다. 후, 숨을 내뱉은 화랑의 눈에 또 다른 군복을 입은 시체가 들아왔다. 그 시체에게 다가가 들춰 확인하니 UN이라 찍힌 마크가 보였다. UN, 익숙한 이름이 반가웠지만 이내 화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내가 아는 UN의 마크는 이게 아닐텐데... 이 마크는 뭐지? 혹시 알려지지 않은 특수부대 마크라던가...? "
모르겠네. 작게 중얼거린 화랑이 주변을 살피다 제가 들춘 시체를 똑바로 눕히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UN과 제 3국의 전쟁터 한가운데라는 걸 알아낸 것 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어떻게든 UN군을 찾아내서 도움을 요청하면... 열심히 뛰어가던 화랑이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아까 보았던 2개의 군복과는 다른 군복을 입은 시체를 발견한 탓이었다. 시체의 어깨를 붙잡아 휙, 들추자 보이는 마크는.
" 사자 문양에... 이건 어떻게 읽는거지? 이... 아니, 위... 그... 드라... 실...? 이건 또 어디 나라의 부대야? "
대체 난 어떤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화랑은 흠칫,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참상을 봐서는 분명... 곧 고함 소리와 함께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총 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젠장, 역시 민간인이라고 봐주는거 없구만! 어느 쪽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체 화랑은 계속해서 발을 움직여 달렸다. 이 복잡한 길을 알지 못하는건 그들도 마찬가지인지 골목 안으로 숨어든 화랑을 그들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고 지금 상황에 도달한 것이었다. 잠시 벽에 기대 앉아 숨을 고르던 화랑이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수술도 체력을 소비하는 일이라며 체력 훈련도 빡세게 해주시던 선생님에게 속으로 전하지 못할 감사의 인사를 전한 화랑이 다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가며, 마치 고양이마냥 이동하던 화랑은 해가 점점 떨어지자 초조함을 느꼈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몸을 숨기며 쉴 곳을 찾지 못한탓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상태라면 치안도 분명 망가진 상태일테니 밤을 틈타 불한당들이 설치고 다닐지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몸을 숨길 곳을 찾는게... 순간 희미한 울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이정표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이동한 화랑이 조심스럽게 골목에서 얼굴을 내밀어 울음 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보며 울고 있는 아이와... 벽에 기대 주저앉아 피를 흘리며 배를 움켜잡고 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화랑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갑자기 들려오는 발소리에 아이가 뒤를 휙 돌아보곤 남자의 품을 파고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화랑이 남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상처를 살폈다. 수류탄이라도 맞은 건지 남자의 복부엔 파편 같은 것이 박혀 피를 흐르고 있었다. 상처는 심하진 않지만 그대로 내버려두면 죽겠지. 칫, 혀를 찬 화랑이 황급히 남자를 부축하며 일어서며 아이에게 소리쳤다. 너 어디서 온거야, 쉴 곳은 있어? 화랑의 말에 아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안내했고 아이를 따라 도착하자 작은 집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적이라 생각한건지 손에 총을 들고 있던 남자는 아이와 화랑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케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황급히 집으로 안내했다.
" 케이, 정신차려. 케이! "
" 눕힐 곳 없어? 이왕이면 딱딱하면 좋겠는데 "
그 말에 남자는 커다란 식탁을 가리켰다. 좋네, 아주. 케이라 불린 남자를 눕힌 화랑이 매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수술용 도구들이었다. 정말이지, 평범하게는 쓸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항상 가방 안에 의사로서 필요한 도구를 가지고 다니라고 충고한 선생님을 떠올리며 수술용 장갑을 꺼내 손에 끼운 화랑이 다시 한번 더 크로스백에서 꺼낸 것은 안경집이었다.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내 쓴 화랑이 후, 숨을 작게 내쉬고는 케이의 상의를 벗기고를 상처를 살폈다. 수류탄의 파편이 여러개 박히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깊은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파편을 제거 후 치료, 과하게 찢어진 곳은 꼬매야겠네. 상처를 살핀 화랑이 고개를 들었다. 깨끗한 물 좀 가져다줘, 지금부터 치료할거니까. 화랑의 말에 남자가 황급히 사라진 사이 핀셋으로 파편을 하나하나 빼내기 시작한 화랑이 기절해서 마취약이 필요없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라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파편을 모두 빼낼 쯤 남자가 깨끗한 물을 한가득 담아 왔다. 더불어 같이 가져온 수건을 본 화랑은 센스가 좋네 중얼거리고는 수건에 물을 묻혀 상처를 닦아내고는 과하게 찢어진 곳을 꼬매기 시작했다. 바늘이 들어갈 때 마다 의식을 잃은 케이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은 체 상처를 꼬맨지 10분 후, 치료를 마친 화랑이 후, 숨을 내쉬고는 안경을 벗어 안경집에 넣고는 대충 손짓을 했다.
" 처치 끝났으니까 옮겨. 아, 더럽게 피곤하다... "
" 케, 케이는... "
" 애시당초 심한 상처는 아니었으니까. 목숨엔 지장없어 "
" 고, 고맙네... "
남자가 케이를 옮기는 걸 바라본 화랑이 수술용 장갑을 벗어 대충 식탁 위에 던져놓고 수술 도구를 정리하여 크로스백에 넣은 후 털썩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하아... 정말이지, 선생님 덕분에 미리 경험한 수술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면허도 없는데 이러면 불법 아니냐고 태클 걸어서 죄송해요, 선생님. 뭐 그냥 꼬매기만 한걸 수술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아, 피곤해... 크로스백을 끌어 품에 안은 화랑이 가방 속을 다시 한번 더 살폈다. 수술 도구들, 수술용 장갑, 마취제와 소독제, 항생제. 간단한 약과 도구가 있는 구급 상자. 그리고 개인적인 용품들. 꼼꼼하게 확인한 화랑이 가방에서 시선을 떼는 타이밍에 케이를 데려간 남자가 화랑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 고맙네, 덕분에 신세를 졌어. 의사였나? "
" 정확하게는 의사 지망생. 의대생이야. 실습 경험도 있고... 실제 수술 경험도 있고. 물론 면허증이 없으니 불법이지만 "
"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
" 뭐, 그렇지...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
화랑의 당분간 이곳에 머무르게 해달라는 부탁을 남자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화랑은 케이라는 남자를 구해준 은인이기도 했지만 의사 지망생이니 분명 앞으로도 쓸모가 있을거라는 타산적인 생각도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화랑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보 수집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던 화랑은 남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모아진 정보는 오히려 화랑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들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G사, 그 G사에 대항하는 반란군 위그드라실. 그리고 중립의 UN. G사라니. 세계를 상대로 전쟁이 가능한 기업이란 게 있을리가 없다. 적어도 화랑이 알고있던 지식과 상식에서는 절대로 없었다. 내가 살던 곳과 세계관은 동일한 것 같은데... 설마 차원이동 이라도 했어? 아니아니아니...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나한테 일어난거라고...? 돌... 아갈 수는 있는건가...? 일단... 오늘은 피곤하니까 자고... 내일부터 생각하자.
그리고 일주일 후에도 화랑은 계속해서 그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것도 있지만 현재 이 곳... 그러니까 뉴욕이 위그드라실이나 UN보다는 G사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도 있었다. 그리하여 화랑은 낮에는 아이, 케인의 아들인 에릭과 함께 폐허가 된 주변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다 겸사겸사 부상 당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의사 역활을 하며 지내게 된 것이었다. 너무 팔랑거리면서 돌아다니지마, 에릭. 알아, 화랑! 낯선 동양인인 화랑이지만 제 아빠를 구해준 일 때문인지 에릭은 화랑을 잘도 따랐다. 으챠... 여기도 별거 없네. 슬슬 행동 반경을 좀 넓힐까... 에릭... 에릭? 제 말에 대답이 없자 화랑이 혀를 찼다. 또 신나서 돌아다니고 있나? 아직 어려서 그런가 움직이는거 참 좋아하네. 케이가 다쳤을 때도 이렇게 돌아다니던 에릭이 G사의 병사들에게 들켜서 구하다 다친 거라는 걸 알게된 화랑으로서는 어린아이의 기억력과 생각은 확실히 짧구나 라는 걸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하긴 그런 괴로운 경험은 기억하지 않는게 나을수도 있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화랑이 다시 작게 에릭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순간. 희미한 비명 소리같은 것이 들려왔다. 어린 아이의 비명 소리, 에릭이다! 화랑이 땅을 박차며 달렸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달려온 에릭의 손을 잡은 화랑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 왜 그래, 뭔가 있었어? "
" 나, 날개 달린 괴물이 군인들을 죽이고 있었어! 나, 나 그 괴물이랑 눈을 마주쳐서... "
" 날개 달린 괴물? 진짜 여기 뭐냐고. 현대와 판타지가 섞인 세계야? 일단 도망가야... 아, 혹시 모르니까 골목길로 돌아서 가자. 길은 기억하고 있지? "
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에릭의 손을 더 힘줘서 붙잡은 화랑이 에릭의 속도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이 골목길은 말 그대로 미로와도 같은 장소로 그 복잡함으로 숨기에도 도망치기에도 안성맞춤이며 이 세계에 떨어진 직후 G사의 병사들에게 쫓기던 화랑이 목숨을 구한 곳도 바로 이 장소였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날개가 달렸다는 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뜻. 즉... 이 복잡한 골목길을 위에서 한번에 내려다 보며 자신들의 위치 파악이 가능하단 소리다...! 화랑은 뒤에서 들린 날개짓 소리에 황급히 에릭을 끌어안으며 옆으로 뒹굴렀다. 이내 날카로운, 무언가 긁는 소리와 함께 화랑은 제 어깨가 뜨거워짐과 동시에 밀려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황급히 자세를 바로 잡고 에릭의 앞을 지키듯 가로막았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에릭이 말한 괴물에 쓰게 웃었다. 와, 진짜 괴물이네... 날개가 달린 인간형 괴물이라니. 진짜... 이 세계는 미쳤구나. 머리에 뿔을 달고 눈동자는 핏빛같은 붉은색에 검은 날개와 날카로워 보이는 손톱까지. 그 손톱엔 이미 검붉은 피와 더불어 화랑의 피까지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라... 진짜 미치겠네. 저벅저벅, 걸어오던 괴물의 시선이 화랑을 향한 순간 괴물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온 목소리. 화랑...? 괴물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분명 화랑, 자신의 이름이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제 이름에 화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난 괴물하고 친분 따위 없는데... 뭐지...? 금방이라도 자신들을 죽일 것처럼 굴던 괴물이 한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 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가만히 바라보던 화랑이 뒤에서 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퍼득 정신을 차리고는 뒤로 돌아 에릭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 에릭, 잘 들어. 지금이 기회니까 넌 이대로 집으로 도망가. 알았어? "
" 하지만 화랑은... "
" 난 괜찮아. 대충 길도 알고 있고 저 괴물을 따돌리고 집으로 갈테니까 "
" 하지만... "
" 아빠, 케이를 생각해서라도 넌 집에 가야돼. 그리고 반드시 집으로 갈테니까, 약속할게 "
" ...약속 꼭 지켜야해! "
울음이 섞인 그 말에 화랑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에릭이 천천히 일어나 조용히 발을 움직여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우, 겨우 보냈네. 그래도 에릭이 죽는 것보다... 내가 죽는게 낫겠지. 에릭이 도망칠 때도 그리고 자신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지금도 여전히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 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괴물을 본 화랑이 소리도 내지 않고 에릭이 달려간 반대편으로 한발짝 한발짝 움직였다. 크로스백의 끈을 꽉 움켜쥔 체 조금씩 괴물에게서 멀어지던 화랑이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화랑은 순식간에 다가와 제 목을 낚아채는 힘에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벽에 등을 부딪쳤다. 윽. 목을 붙잡힌 체 그대로 벽에 쳐박힌 화랑에게 괴물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화랑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그가 인간인지 괴물인지 알아보는 것 처럼. 부들부들 화랑이 고통과 두려움에 떨리는 손을 들어 제 목을 붙잡은 괴물의 손에 얹었다.
" 넌... 화랑인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인가? "
" 무... 슨 헛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내 이름이 화랑인건 맞지만 너 같은 괴물은 모른다고...! 죽일거면 빨리 죽이던가! "
허세와 고통과 두려움이 섞인 외침을 들은 괴물의 눈이 커졌다 이내 원상태로 돌아온 순간. 컥...! 화랑은 제 복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짧은 신음을 내뱉고는 이내 정신을 잃어버렸다. 스르륵, 힘이 빠지면서 매고 있던 크로스백이 툭 바닥에 떨어지고 이내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한 시간 후. 케이와 에릭이 화랑을 찾으러 왔을 때 그곳에 남아있던 건 그의 크로스백 뿐이었다.
" ...진은 아직인가? "
" 곧 돌아올거라 생각됩니다 "
" ...그래 "
알리사의 대답을 들은 라스가 가만히 주변을 살폈다.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였던 뉴욕도 전쟁으로 파괴되고나니 쓸쓸한 적막함만이 흐르고 있었다. 카자마 진은 변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죽은 후 자신이 총수가 되어 전쟁을 일으켰던 그 카자마 진으로 다시끔 변해버렸고 전쟁터에 직접 뛰어들어 데빌이 마음껏 날뛸수 있도록 신체의 제어권을 아예 넘겨줘버렸다. 데빌도 그런 진의 마음을 아는건지 아니면 자신도 진과 같은 마음인건지 진의 육체를 강탈하거나 하지 않고 전쟁터에서 날뛰는 것이 끝나면 다시 주도권을 넘기곤 했다. 그래, 진작에 끝났어야할 전쟁은 진의 복수극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G사의 잔당들은 그 분풀이로 일반 시민들을 학살하고 UN은 그런 일반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G사와 위그드라실을 모두 적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진을 몇번이나 설득하려던 라스나 리는 결국 설득에 실패하고 그가 이 이상 선을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진은 아직인가? 라스는 저에게 다가오며 묻는 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 오늘은 좀 늦군... 그 정도로 깔린 G사의 잔당들이 많은가? "
" 글쎄... 하지만 리. 이대로 진을 내버려둬도 되는건가? "
" ...할 수 있는건 다 해봤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모두 실패했지... 설득도, 힘으로도 실패했으니 이대로 진의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진정되기를 바랄 수 밖에... "
" 진은 그렇다치지만... 설마 데빌마저 그와 같은 마음일 줄은... "
" 데빌을 진과 같은 존재라고 인정해 준 건 그 하나 뿐이니까. 어찌보면 진을 진 그 자체로 바라본 것도 그 하나뿐일지도 모르겠군 "
" G사가 괴멸할 때 진의 분노가 모두 사그라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
" ...다음 세계의 적은 진이 되겠지 "
" 옵니다 "
알리사의 말에 둘의 대화가 끊기고 이내 하늘에서 땅으로 착지한 건 데빌의 모습을 한 진이었다. 아직 주도권이 데빌에게 있다는 걸 아는 셋은 말을 걸지 않았으나 이내 그의 품 안에 무언가 안겨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화랑...? 화랑씨? 어째서 그가...? 천천히 데빌의 모습이 사라지고 온전히 주도권을 넘겨 받은 진을 향해 세 사람이 달려왔다. 분명 진의 품에 안겨있는 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분명 화랑이었다.
" 진, 이게 어떻게 된... "
" 일단 출발한다 "
정신을 잃은 걸로 보이는 화랑에 세 사람이 뭐라 이야기할 틈도 없이 진의 출발한다는 단호한 말이 나오자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세 사람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서둘러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저벅저벅 비도프니르에 오르던 진이 제 품안의 화랑을 바라보다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그리움과 회한이 가득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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