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진화랑] 썰 모음 15

진화랑뎁진 1개, 진화랑카즈 1개, 진화랑 1개. 2024년 1월 28일 연성.

1. 철7에서 데빌진과 싸운 후 오른쪽 눈에 진이 아닌 데빌진의 이름이 떠오른 화랑과 처음부터 화랑의 이름이 새겨져있던 진, 그리고 진과 분리 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화랑을 데리고 사라지려는 데빌진으로 네임버스 AU, 진화랑뎁진.

진짜... 최악이네. 화랑은 거울에 비춰진 제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은데... 설마 폭탄에 간접 피격 당했다고 이렇게 되나? 그 폭탄 새로운 과학 기술이라도 접목한 폭탄이야? 말도 안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화랑의 오른쪽 눈의 동공에 하얀 글씨로 적혀있는 건 달갑지 않은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난 노네임이었을텐데... 왜 갑자기 네임드가 된거야. 심지어 왜 눈? 보통 이름은 손목이나 목덜미... 에 떠오르는 거 아니었어? 그나마 다행인건 글씨로 시야가 방해 받거나 하지 않지만... 화랑이 손으로 제 오른쪽 눈을 가렸다. 보일 수 있을리가 없으니 당연히 숨겨야만 했다. 진... 차라리 네 이름이었다면... 조금 괜찮았을려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화랑은 저를 부르는 백두산의 목소리에 몸을 움직였다. 저에게 새겨진 이름을 보고 백두산이 어떤 반응을 할지 내심 걱정과 불안감을 가지고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전투기 안에서 진은 제 왼 손목 안쪽을 매만졌다. 불안감과 초조함 같이 제 스스로를 갉아먹는 부정적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 같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진이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버릇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런 진을 발견한 알리사가 조용히 다가와 진의 옆에 앉았다. 왼 손목을 만질 때 마다 심박수와 뇌파가 안정적으로 변해갑니다. 진씨는... 네임드신가요? 그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름이 새겨진 곳이... 왼 손목이군요 "

" 그래 "

" 네임드가 되신건 언제인가요? "

" ...15살... 오우거에게 습격당하고 어머니가 실종 됐을 때... 갑자기 이름이 떠올랐지. 분명... 오우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가 이런 피의 숙명 따위를 겪고 있지 않았다면 떠오르지 않았을거야 "

" 그건... 현재 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겁니까? "

" ...그래 "

" 그 분은 알고 계신가요? 진씨에게 이름이 떠올랐다는 걸... "

" 모를거야. 그 녀석은... 노네임이니까 "

진이 저녁 노을 같은 붉은 머리빛을 가진 남자를 떠올렸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으로 일본인이 아닌 타국의 사람으로 예상했지만 설마 남자, 그것도 자신과 악우 관계가 될 남자일 줄은 몰랐다. 첫 만남부터가 절대로 호의적이지 않은, 맹렬한 호승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이 남자가 나의 짝이라니. 어째서?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폭언을 내뱉고 무슨 짓을 하든 그는 자신을 믿어주고 그 뒤를 죽을 각오로 쫓아왔다. 네가 이유없이 이럴 리 없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든지 들어줄게, 그러니까 당장 나랑 싸우자고. 이 멍청한 자식아!

자신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세계의 적이 되고 그는 그런 자신에게 대항하는 조직의 리더가 되어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를 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왼 손목을 매만지고 있었지. 네가 내 짝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너에겐 내 이름이 없을까 생각하기도 해. 나는 네가 필요한데... 너는 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까. 나와의 싸움에 집착하면서도... 내가 필요하지 않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매번 씁쓸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너는 알까. 진이 나지막히 한숨과도 비슷한 숨을 내뱉었다. 분명... 이번 대회에 너도 나오겠지. 거기서 오랜만에 만나서 주먹을 부딪치면...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질까...?

" 몸은 좀 풀린 것 같네 "

" ...화랑. 너... "

" 내 눈에 대해 말하려는거면 그만둬. 나한테도 사연이라는게 있으니까 "

" ...... "

" 싸우는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싸우자, 카자마 진! "

그 불같은 성격은 어디로 가지 않아 시합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결승전에 난입한 화랑의 오른쪽 눈을 가리는 안대의 존재에 의아함을 가진 것도 잠시 마치 참견할 여지도, 걱정할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잘라내는 말에 진이 어쩔 수 없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몰아붙이는 화랑의 공격을 막고, 흘려내며 진은 제 왼 손목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가슴에... 무언가가 벅차 오르는 걸 애써 감추며 진은 무의식 중에 데빌의 힘을 제어하며 싸웠고 그 결과 시합에서 이긴 건 진이었다. 아이고, 귀찮아... 자신에게 졌음에도 조금의 분함도 보이지 않는 화랑이 이상하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 너, 그 힘... 데빌인가 뭔가 하는 괴물 힘이냐? "

" ...그래 "

" 어쩐지... 기묘하게 뜨겁다 했더니... "

" 화랑? "

안대를 만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화랑이 대충 손을 팔랑팔랑 흔들더니 가만히 진을 바라보았다. 그 괴물의 힘을 지닌 너도... 결국 너 자신이야. 잊지마라. 마치 지금 진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화랑은 진이 가장 원하는 말을 남긴 체 유유자적하게 경기장을 떠났다. 데빌의 힘을 가지고 있는 나도... 나 자신. 진의 데빌에게 몇 번이고 목숨을 위협당했으면서도 화랑은 그 데빌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마저 진 자신이라고 긍정해줬다. 진이 또 다시 제 왼 손목을 매만졌다. 화랑, 화랑... 화랑. 속으로 화랑의 이름을 몇번이나 읊조리며 진은 멀어지는 화랑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어째서...? 데빌, 너는... "

" 하하, 왜 그러지? 너의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원하는대로 또 다른 데빌의 소유자를 이기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왔지. 그러니... 이젠 내 목적을 이룰 차례다 "

스스로 데빌을 인정하고 부정하지 않게 된 진이 데빌의 힘을 받아들이고 카즈야를 쓰러트리며 세계의 평화를 가져왔을 때 데빌은 스스로 진에게서 빠져나와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이 화랑을 만나러 왔을 때 진보다 먼저 화랑을 찾아온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데빌이었다. 화랑! 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체 화랑의 목을 붙잡은 데빌이 남은 손으로 화랑의 안대를 강제로 벗겨냈다. 젠장, 이 자식...! 양 손으로 제 목을 붙잡은 데빌의 손을 붙잡은 화랑은 이상하게도 격렬한 반항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마치... 몸이 거부하는 것 처럼 화랑의 몸은 데빌에게 그 어떠한 반항도 허용하지 않았다.

" 눈을 뜨는 게 좋을텐데 "

" 하, 내가 미쳤냐? 내가 왜... "

" 그거야 당연하지. 너에게 새겨진 이름은... 내 이름일테니까 "

" 뭐...? "

데빌의 말에 진의 눈이 커진 순간 화랑이 입술을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오른쪽 눈을 떴다. 그러자 그 검은 동공에 새겨진 이름은 데빌의 이름이었다. 마치 보석인 오닉스에 누군가가 이름을 새겨넣은 것 같은, 가치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한 보석과도 같은 눈을 보며 데빌이 유쾌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하하... 역시 네가 나의 짝이었군 "

" 아, 짜증나. 왜 너 같은 괴물이... 아니, 왜 갑자기 내가 네임드가 된거야! 난 너한테 그 어떠한 감정도 없는데...! "

" 이름이 새겨진다는 건 감정과는 관계가 없어. 하지만 내 이름이 새겨진 이유는 있지. 원래대로라면 너에게 새겨질 이름은 내가 아니라 카자마 진의 이름이었을테니까 "

그 말에 놀란 건 진 뿐만이 아니라 화랑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새겨질 이름이 데빌이 아니라... 진이었다고? 그런데 어째서? 데빌은 태연하게 화랑의 오른쪽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별거 없어. 욕망의 힘. 나는 중동에서 너와 싸운 그 순간부터 널 원했다. 그리고 나의 이 욕망이... 카자마 진보다 더 강했을 뿐이야. 그래서 나는 카자마 진과 융화되어 그의 안에 녹아드는 걸 거부하고 따로 육체를 만들어 헌신했다. 모든 건... 너를 가지기 위해서. 내 녀석을... 카자마 진에게 넘겨줄 수 있겠냐...! 데빌이 화랑의 눈 앞에 자신의 왼 손목을 들이밀었다. 그곳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름은 화랑의 이름이었다.

" 결국... 네가 나에게서 화랑을 빼앗았다는거냐, 데빌! "

" 그래,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되겠군. 원한다면 너에게서 그 이름을 빼앗아 지워 줄 수 있는데 "

" 웃기는 소리하지마! "

분노한 진이 데빌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진의 공격이 닿기 전 여전히 한 손으로 제 목을 틀어 쥔 체 날아오른 데빌이 방심한 틈을 타 화랑이 억지로 다리를 들어올려 데빌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찼다. 그 충격으로 제 목을 움켜쥔 손에서 풀려 추락하는 화랑을 받아낸 건 진이었다. 화랑! 아으, 목 아파. 저 빌어먹을 괴물이... 제 목을 매만지며 마른 기침을 하는 화랑을 보던 진의 시야에 오른쪽 눈에 선명하게 새겨진 데빌의 이름이 보였다. 데빌이 말한대로였다. 화랑에게 새겨진 이름이 내가 아니라 데빌... 현실을 파악한 진의 손이 천천히 화랑의 눈으로 향했다. 제 오른쪽 눈을 향해 다가오는, 제 손만큼이나 커다란 손이 눈에 닿고 손가락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걸 가만히 느끼고 있던 화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 ...진 "

" 읏! 화랑... "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제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한건지 깨달은 진이 황급히 손을 내렸다. 내가... 무슨 짓을... 그런 진을 보던 화랑이 이내 작게 웃었다. 뭘 그렇게 풀이 죽어 있어, 멍청아. 어차피 내가 하려고 한 짓인데. 뭐...? 진이 말리기도 전에 화랑의 손이 순식간에 제 오른쪽 눈을 파내려는 걸 막은 건 우습게도 데빌이었다. 손가락 한마디가 파고든 탓에 오른쪽 눈에서 피가 흐르는 화랑을 보던 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데빌 특유의 염동력으로 진에게서 화랑을 다시 강탈한 데빌의 얼굴은 여유만만하던 아까와 달리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설마 주저없이, 스스로 눈을 파낸다는 선택을 할 줄은 데빌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 역시... 방심할 수 없군, 너는 "

" 하하... 너야말로 나를 너무 우습게 본 거 아냐? 애시당초... 언제든지 버릴 생각으로 평상시에도 안대를 끼고 생활했다고 "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그 말에 데빌은 분노했다. 영혼에 새겨진, 짝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다고 말한 화랑에게 살의마저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러나 이내 데빌이 다시 웃었다. 그렇다면 깨닫게 해주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힐끔, 진을 한번 쳐다본 데빌이 염동력으로 화랑을 구속한 체 날개를 움직여 빠르게 날아 사라졌다. 읏, 화랑!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제 시야에서 사라지는 둘의 모습에 진이 아드득, 이를 악물더니 이내 진의 어깨에서 새하얀 날개가 나타났다. 진의 안에 숨어있던 또 다른 힘, 카자마의 정화의 힘이 담긴 날개였다. 제 안에서 사라진 건 데빌의 힘 뿐. 카자마의... 정화의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날개를 몇번 움직여보던 진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둘의 뒤를 쫓았다. 기다려, 화랑...! 그렇게 사라진 세 사람이 있던 자리에 남은 건 화랑이 착용했었던 안대와 그 안대 위에 내려앉은 검은색과 흰색의 깃털 뿐이었다.


2. 진을 잡기 위한 미끼로 쓰이기 위해 화랑을 납치하는 카즈야와 그런 화랑을 구하려는 진, 그리고 배짱이 좋아서 너무나도 태연한 화랑으로 진화랑카즈. 철권 8 마지막에서 결국 서로 승부 못보고 무승부 났고 데빌의 힘도 안사라져서 서로 간만 보고 있다는 시점.

달그락, 달그락. 화랑은 제 양 손목을 구속하고 있는 수갑과 사슬을 보며 가볍게 하품을 했다. 처음에는 마치 경찰 수갑처럼 조금의 여유도 없이 제 손목을 구속하고 있던 수갑은 생각보다 그가 얌전하게 있고 도망갈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인지 손목 사이의 사슬의 길이가 어깨 넓이 정도로 길어졌다. 덕분에 생활하는데는 불편함이 없어져서 도망칠 여유도 생겼으나 화랑은 여전히 도망칠 생각도 없이 제가 지내는 방의 침대에 누워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아, 귀찮아... 입 버릇처럼 중얼거린 그 말에 기가 막힌 건 다름 아닌 그를 납치해 온 미시마 카즈야였다.

" 네놈... 여기에 왜 잡혀 왔는지 잊어버렸나? "

" 음? 아아, 진을 잡겠다고 날 납치해왔잖아. 근데... 나보고 뭐 어쩌라고. 댁 심심하지 않게 하루에 한번씩 도망치는 시늉이라도 해야되나? 애시당초 여기 사방이 바다인 섬이잖아. 댁이나 진 같이 괴물의 힘이 있어서 내가 날아서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탈출하겠다고 힘 뺄 필요 없잖아? "

" ...... "

" 그냥 얌전히 체력이나 보존하고 있다가 진이 날 구하러 오면 그때부터 도망치는 게 훨씬 더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

너무나도 일리있는 말이었지만 카즈야가 알고 있던 화랑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말이기도 했다. 잡혀온 첫날부터 풀어달라고 난리칠 줄 알았지만 화랑은 납치된 첫날부터 너무나도 얌전했다. 단 하나의 불만은 몸도 움직이지 못하게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결국 둘째날 제가 갇혀 있던 곳에서 탈출해 화랑이 간 곳은 헬기 착륙장이었고 드디어 탈출 시도를 하나 싶었던 카즈야는 헬기 착륙장에서 두 손이 막힌 와중에도 능숙하게 몸을 움직이며 가상의 존재를 두고 대련 중인 화랑을 발견하고는 그 답지 않게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후우, 뭐야. 당신네들 대처가 너무 늦은 거 아냐? 방에서 탈출한지 1시간이나 지났는데 이제서야 나타나고 말이야. 그러니까 일단 총 좀 치워주지? 거슬려. 저를 둘러싸고 총부리를 들이미는 G사의 군인들에게도 조금의 두려움 없이 말을 내뱉는 화랑이 이내 눈을 반짝이며 아니면 이 녀석들을 상대로 싸워봐도 되나? 군인이면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있을거 아냐. 라고 말을 내뱉은 시점부터 카즈야는 화랑의 탈출 시도 가능성을 0%로 확정지었다.

" 정말 카자마 진 때문에 납치당한 장본인이 맞는지 궁금하네 "

" 너무하네, 니나씨. 나한테도 그 정도의 자각은 있다고? "

" 그럼 납치 당한 포로면 포로답게 행동해주지 않겠어? "

" 미안하지만 그런 정도로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는 않아서 말이지. 그런 건... 이미 충분히 맛봤으니까 "

" 충분히? "

" 저 양반이나 진의 안에 있는 괴물. 몇번이나 그런 놈이랑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배짱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

마치 만담과도 같은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카즈야는 화랑의 말 속에서 카자마 진의 안에 있는 데빌과 마주했다는 걸 깨달았다. 데빌을 완벽하게 다루는 자신과 달리 카자마 진은 무의식 중에 데빌의 힘을 거부해 종종 자아를 빼앗기곤 했다. 그래... 뉴욕에서 싸웠던 그때처럼. 자아를 빼앗은 데빌에게 이성 따위는 없다. 남은 건 파괴본능 뿐. 그런데 저 놈은... 그런 데빌을 몇번이나 마주쳤다고 말하고 있는건가? 그러면서도... 카자마 진 쪽에 남아있는건가. 조금... 흥미가 생기는군.

" 뭐야, 할 일 없어? 아니면 이제 좀 질렸나? 질렸으면 풀어주지? "

" 흥, 네놈은 카자마 진을 끌어들일 미끼다. 그런 미끼를 순순히 풀어줄 이유가 없지 "

" 네네, 그러시겠지. 그럼 왜 온건데? "

서서히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화랑을 찾아온 카즈야가 그를 끌고 간 곳은 평상시 화랑이 몸을 움직이는 장소로 많이 쓰는 헬기 착륙장이었다. 카즈야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수갑의 잠금이 풀려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 한껏 가벼워진 손목을 매만지던 화랑을 향해 카즈야가 손짓을 했다. 이기면 풀어주지. 화랑의 호승심을 한껏 올리는 발언까지 던지면서.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화랑이 헤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 그 말 후회할텐데? "

" 흥, 애송이가... "

그 다음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 화랑은 카즈야에게 덤벼들었다. 데빌과 싸웠다는 게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군.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데빌의 움직임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화랑은 데빌로 변신한 카즈야의 움직임을 예측하듯 움직였다. 그래, 그 괴물도 이렇게 움직였었지. 가까이 붙어 공방전을 펼칠때 마다 작게 중얼거리는 화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렇게 싸우던 둘 중에 먼저 쓰러진 건 역시나 화랑이었다. 진과 달리 완벽하게 데빌을 컨트롤 하는 카즈야의 힘과 스피드는 아무리 폭주 중인 진의 데빌을 쓰러트린 화랑이라도 버거운 것이었다. 으앗...! 아야야... 진짜 엄청 강하네. 에휴, 작게 한숨을 쉬며 바닥에 쓰러진 체 가볍게 두 손을 들어 올리는 화랑을 바라보던 카즈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뭐 또, 왜. 아무리 나라도 이제 지쳤다고. 지금 몇시간 째인지 알아? "

" ...... "

" 역시... 당신을 쓰러트리는 건 진, 그 자식 뿐인가 "

" 너는 그 녀석의 데빌을 몇번이고 마주치고도 여전히 그 녀석의 편에 서는거냐 "

" 음... 뭐, 그렇지. 처음 괴물과 마주쳤을 때는... 3일간 혼수 상태였지. 그 다음은 어찌어찌 무승부였고... 마지막에 만났을 땐... 내가 이겼지 "

" 그래서 한번 이겼으니 다음 번에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그 녀석의 편을 드는건가? 나를 막아도 데빌은 여전히 남아있다. 데빌이 남아있는 한 세계의 평화 따위는 오지 않는다 "

카즈야의 말에 화랑이 가만히 무언가 생각하듯 눈을 굴리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아, 그렇구나. 당신이 왜 그렇게 권력에, 힘을 추구하는지 알겠네. 당신... 믿을 사람이 없는거 아냐?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 제 자신의 힘만 추구하고... 당신한테는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없나보지? 그 말을 하는 제 앞의 애송이의 눈이 너무나도 맑아서 그는 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믿을 사람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미시마 가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 먹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조차 그 일을 위해 데리고 온 재료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난 더 이상 동료들과의 유대를 부정하지 않아. 그래, 카즈야는 떠올렸다. 끝내 승패를 보지 못한 카자마 진과의 싸움에서 진의 말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분노와 증오로 주변에 적을 쌓던 카자마 진은 결국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키던, 자신이 믿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구원 받았다. 하지만... 카즈야에게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하지 않았을까? 카즈야씨. 뇌리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를 떠올린 순간.

갑자기 하늘을 수놓는 밝은 빛과 전투기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새벽을 틈타 화랑을 구출하러 온 위그드라실이었다. 화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이 돈 화랑이 벌떡 일어나 전투기에서 뛰어내려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진을 향해 달려갔다. 늦었어, 빌어먹을 자식아! 가공할 점프력으로 높게 뛰어오른 화랑이 제게 뻗어온 손을 잡았고 그 손을 끌어 당기며 진이 제 품으로 화랑을 끌어안았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 말에 괜찮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화랑은 갑자기 제 뒷덜미를 잡는 힘에 그대로 끌려갔다. 화랑! 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교차되는 목소리.

" 그래, 네놈 말대로 내가 믿는 건 오직 나의 힘 뿐이다. 인정하지. 그렇기에... 네놈을 카자마 진에게 보낼 수 없다 "

읏, 빌어먹을! 카즈야를 쫓아가려던 진은 제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전투기와 제트팩을 등 뒤에 맨 군인들에 결국 앞이 가로 막혀버렸다. 화랑! 저를 부르는 진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화랑이 저를 강제로 끌고가는 카즈야를 보며 으득, 이를 갈았다. 네놈이 카자마 진과의 유대를, 믿음을 상징한다면 나는 그 유대와 믿음을 힘으로 부셔주겠다. 너는... 부셔지는 유대와 믿음을 목격할 증인이 되는거다. 그래, 나는 부정해주겠다. 힘이 전부라는걸 카자마 진을 죽여 증명해주겠다! 카즈야는 계속해서 머리 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날아갈 뿐이었다. 한 손에 카자마 진의 유대와 믿음을 손에 쥐고서.


3. 일본, 한국으로 원거리 연애 중으로 전화 통화하는 짧은 평범한 세계선의 진화랑.

여보세요, 화랑?

어, 진? 뭐야 무슨 일이야.

또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받았지?

나한테 전화 걸 사람이 몇명이나 된다고.

꽤 있잖아? 스티브나 리리, 라스도 있고...

이 시간 대에 전화할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지금이 몇시라고 생각하는거야. 사범님도 이 시간되면 안찾으신다고.

하하, 그런가.

으응, 그나저나... 여전히 바쁜가 보지?

뭐, 그렇지. 이것저것 머리에 넣느라고 정신없어.

그 잘난 미시마 재단의 후계자님이니까. 제왕학이니 경제학이니 뭐니 머리 속에 열심히 때려넣어야지.

하하, 그렇지. 하지만 그 많은 걸 다 넣으려니 머리가 다 아픈단 말이야.

죽는 소리하지마. 그렇다고 안할거 아니잖아? 미시마의 후계자님.

화랑.

알아알아. 네가 너무 죽는 소리를 하니까 나도 농담 한번 한거야, 진.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니까 좀 더 힘내라고.

...응. 근데 너는 어때?

난 항상 똑같지. 도장은 여전히 바쁘다고. 나도 언제까지고 아마추어 티를 낼 수 없으니까. 뭐... 그래도 너처럼 머리 터지지는 않으니 괜찮으려나.

음... 그런 이야기도 좋은데 내가 듣고 싶은건 다른 쪽 인데.

다른 쪽?

보고 싶네, 화랑.

...어?

보고 싶다고.

...어, 뭐야. 갑자기...! 이, 일단 늦었으니까 나 잔다! 끊어!

어, 화랑...? ...잘자.

......

......

......

......

끊... 어졌지? 안 듣고 있지...? 음... 나... 도 보고 싶어, 진. 내 말 한마디에 당장 달려올 너긴 한데... 근데... 넌 바쁘고 피곤할테니까... 괜히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하아, 진짜 이런 이야기 절대로 너한테 못하는 내 성격이 나도 싫긴 한데... 어쩌겠어. 이게 나인걸. 그럼... 힘내, 진. 나도... 힘낼테니까.

......

......

......

......

지금 갈게,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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