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 천사님 찾아요! (상)

* 인간 명헌, 우성 x 천사 태섭

* 천주교의 일부 설정을 따온 연성. 대부분 날조라 종교부분으로 건드리는 걸 싫어한다면 열람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 언급되는 천사의 이름은 생일이 같은 세례명 중 하나를 따옴

* 이냐시오 : 태섭(07/31)

* 마카리오 : 백호(04/01)

** 월루라 모바일작성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니 인간의 모든 죄를 안고 가셨도다.

죄를 고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천국으로 구원받아야 할 판에, 인간들의 세상은 가면 갈수록 신앙심이 땅에 떨어져 악의 유혹에 빠져 살고 있다. 악마가 인간세상을 지배하니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지 못 하고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위한 구원사업은 무수히 많은 종교들 속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물질적인 속세의 것으로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개한 수준까지 떨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악한 기운이 넘쳐흐르는 세상속에서, 극히 드물게 신앙을 가지고 천국의 인자하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냐시오는 그런 신앙으로 충만한 인간들에게 하느님은 실제로 존재하며 신앙을 지키고 살면 끝내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안내하는 역할을 가진 천사였다.

마지막에 인간 세상에 내려온지 얼마나 되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있던 탓에, 오랜만에 내려온 인간세상은 잿빛으로 높게 솟은 건물들과 자신만 돌보는 빡빡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에 혀를 찬다.

신앙의 부재로 세상이 혼탁해 인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구경도 하기 싫을 악의 기운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인간세상에 처음 내려오는 후배 천사만 아니었어도 빨리 임무를 수행하고 천국으로 돌아갔을텐데. 후배 천사인 마카리오를 보던 이냐시오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인간세상이 처음인 그는 호기심이 참 많았다. 이냐시오는 빨리 임무를 수행하고 이 탁한 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 뿐인데 호기심으로 무장한 이 어린 천사-그러나 키와 덩치는 이냐시오를 훌쩍 뛰어넘는- 탓에 신앙이 충만한 인간을 찾으러 가는데 엄청난 임무지연을 시키고 있었다.

답답했지만 저렇게 눈을 반짝이고 신기해하는데 그깟 구경 못 시켜줄까 싶으면서도 이냐시오가 이전에 인간세상에 내려왔을 때의 시절이 더욱 아름다웠기에 그 시절을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움이 함께 올라왔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천사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에 하늘 위로 날개를 펼쳐 날아가며 감상에 젖어있는데 마카리오가 어! 한다. 고개를 돌리니 학교로 보이는 건물 옥상 위로 죽음의 검은 천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죽음을 타고난 운명은 때가 되면 그 위로 검은 천이 드리워지는데, 천이 인간을 온전히 덮으면 안식을 맞게 된다. 인간일 적 저지른 죄의 정도와 신앙에 따라 천국으로 갈지 연옥과 지옥에서 죗값을 치룰지 심판을 받는 것이다.

천국으로 향한 인간은 수백, 수천년동안 손에 꼽을 정도라 아버지께서 많이 슬퍼하셨지. 저 인간은 과연 어떤 심판을…….

- 살려달라고 하는데?

- 뭐? 이봐! 마카리오!

죽음의 검은 천은 죽음이 예견된 이에게만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저 인간은 지금이 죽을 운명이라는 거고. 분명 후배 천사도 받은 교육일텐데! 마카리오가 빠르게 날아가고 당황하던 이냐시오가 그를 좇았다.

말리기도 채 전에 마카리오가 인간의 위에 내려앉던 검은 천을 걷어냈다. 정해진 운명의 죽음을 거두었다. 운명을 거스른다. 그의 덩치만큼 크게 자라있던 흰 날개가 빛으로 물들었다.

이냐시오가 손을 들어 제 이마를 소리나게 쳤다. 마카리오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있는데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자신들을 보았다. 신앙 없는 인간이 천사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한데.

전무후무한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카리오는 죽음의 운명을 거스른 댓가로 날개가 아기천사만큼 줄어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천사의 힘은 날개의 크기와 갯수에 영향을 받는다. 지금 그의 곁에 이냐시오가 같이 있으니 괜찮았으나 그가 자리를 비우면 운명을 거스른 인간의 주변을 벗어나지 못 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천사를 볼 수 있으면서 이름조차 부르지 못 했다. 이게 보통의 반응이었다. 인간은 천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존재니까.

깊게 한숨을 내쉬고 우리를 볼 수 있다며 신기해하는 철없는 후배 천사에게 꼼짝말라 엄포를 놓은 이냐시오가 날갯짓을 했다. 이름을 받아야 했다. 평소였다면 성당을 찾아가 신부에게 이름을 받아야했으나 시간이 촉박했다. 신앙이 충만한 인간이 성당보다 가까이 있었다. 성당에 간다한들 모든 신자가 천사를 보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신앙이 충만한 인간을 찾는 게 더 나았다.

마카리오가 힘을 봉인당해 인간의 수호천사가 되는 동안 그의 선배인 이냐시오가 그의 주위에 머물면서 힘이 회복될 때까지 같이 있어야 했다. 그게 언제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운명을, 그것도 죽음을 걷어낸 큰 일을 하는 천사가 얼마나 있겠나. 그것도 미카엘이나 가브리엘 정도 되는 대천사도 아닌 태어난지 401년밖에 되지 않는 햇병아리 같은 천사가 저지른 일인데.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쉬며 이냐시오가 강하게 날갯짓했다. 빠르게 시야가 바뀌고, 조금만 더 가면 신앙 신자의 집에 도착할 것이다. 이냐시오의 밑으로 큰 도로가 펼쳐졌다. 가로와 세로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모양이 꼭 십자가 같았다. 고개를 든다. 눈에 보이는 십자가가 많았다. 인간이 종교를 잘게 나눈 것을 알고있다. 서로의 해석에 따라 믿는 존재의 의의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들의 신앙은 깨끗한 신앙이기 어려웠다.

무수히 많은 십자가가 있어도 예수를 이어 십자가를 짊어지는 인간이 이다지도 없다니. 작게 탄식하며 날개를 펄럭인다.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천이 허공을 너울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현대의 인간 세상에 죽음이 넘치기에 이상할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 검은 천이 죽음이 예견된 자에게 드리워지는 걸 생각하면 지금 보이는 건… 무언가 이상했다. 헤엄치는 검은 천은 꼭… 헤매는 듯 해보였다. 일렁이던 것이 점점 도로가를 향한다. 이냐시오가 자신도 모르게 검은 천을 좇았다.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두 여성과 두 아이가 보였다. 신호가 바뀌고 발을 구르던 두 어린 아이가 손을 잡고 두 여성을 앞질러 걸었다. 여성들이 웃으며 넘어지니 천천히 가라고 이른다. 검은 천이 갈팡질팡하다 아이들 위로 드리워졌다. …어째서?


화물차가 어린 아이들을 덮친 것은 순식간이었다.

굉음과 함께 화물차가 옆으로 넘어졌다. 클락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사람들의 혼비백산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서로를 돌아보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 위로 하얀 깃털이 흩날렸다. 까맣고 동그란 눈망울 속에 하얀 깃털이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비쳐졌다. 자신들을 꽉 끌어안은 품이 단단했다. 하얀 천을 온몸에 두른, 양털같이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코끝을 스쳤다. 천 뒤로 솟구쳐 펼쳐졌던 두 쌍의 날개가 스르륵 접혔다.

- 하아… 내가 남말할 처지가 아니었군.

아이들은 어렸으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눈 앞에 존재하는 이의 목소리는 들렸으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바닥으로 떨어진 하얀 깃털을 본다. 눈 앞의 존재가 고개를 든다. 테레비에서조차 본 적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금빛 눈을 마주한다.

- 천사님… 뿅?

- 우와아…….

- 이 꼬마들도 내가 보인다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 그 전에…….

천사가 아이들을 조심히 내려주었다. 그의 한쪽 손에는 바스러져가는 검은 천이 쥐어져있었다.

- 정해진 죽음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엉뚱한 생명을 빼앗을 뻔 했잖아. 인간세상이 미쳐돌아간다더니 여기도 어지간히 정신을 못 차리네.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면 따져야겠어.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들은 천사가 몸을 일으켰다. 두 아이가 고개를 들어 천사를 보았다. 따라붙는 시선에 천사가 아이들을 내려다본다. 아이들의 검은 눈이 말갛게 빛났다.

갈색의 곱슬머리, 그보다 연한 갈색의 피부. 커다랗고 새하얀 두 쌍의 깃털날개. 달콤한 천사는 눈썹을 올리며 아이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 내가 떠나면 내 존재를 기억하지 못할텐데. 이런 세상에도 아이는 순수하다는 건가… 뭐, 상관 없나. 어른이 되면 순수와 신앙을 잃게 되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테니까.

- 명헌아! 우성아! 살았어…!

- 얘들아! 오 세상에… 정말 다행이다…!

가까워지는 목소리를 돌아보던 천사가 가볍게 날갯짓 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지를 들어 입술에 댄다. 아이들이 천사를 따라 행동한다. 천사가 빠르게 멀어지고, 눈물에 흠뻑 젖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놀라서 엉엉 우는 엄마들의 등을, 아이들의 작은 손이 토닥인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깃털을 본다. 다른 손을 펼쳐 뻗자 손 위로 깃털 하나가 가득 쥐어졌다. 아이들이 서로를 본다.

쉬이이잇.


- 크으윽…….

이냐시오가 신앙신자의 집 근처까지 도달했을 때, 날갯죽지로부터 시작된 격통을 느끼고는 근처 골목으로 내려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매캐한 탄 냄새와 함께 불쾌한 냄새가 등에서 솟고 있었다.

- 예견된 죽음이 아니었는데도 이런 경우가…….

숨을 헐떡이며 이를 악물었다. 하얀 깃털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깃털의 끝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 젠장, 돌아가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통증이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신앙이 있는 곳으로 가야했다. 가서 힘을 회복해야했다. 아직 인간이 부를 수 있는 이름도 받지 못했다. 마카리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져갔다.

- 엄마! 여기 천사님 있어!

- ……?!

이렇게 신앙이 탁해진 세상에 오늘 하루 자신을 볼 수 있는 인간을 대체 몇이나 마주치는 건지. 이냐시오는 순간 죽음을 걷어낸 댓가로 자신이 천사 박탈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카리오가 구원한 인간도, 자신이 구한 아이들에게도 신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인간들에게 최후까지 기회를 주고자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앙도 없는 인간이 자신을 볼 수 있을 리가…….

- 천사님…?

신실하고도 성스러운 신앙심이었다. 이냐시오가 몸을 일으키려하자 여성과 여자아이가 그를 부축했다. 인간이 만질 수 있는 몸이 아닌데도. 부축한 손 끝으로부터 인간은 볼 수 없는 신앙의 빛이 드러났다. 신앙의 신비여……. 이냐시오가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드디어 찾았다. 겨우 고개를 들어 여성을 보았다. 어깨근처까지 기른 갈색 머리카락, 얼굴에 옅게 뿌려진 주근깨. 평범하지만 단정한 외형을 가진 여성이 바로 자신들이 찾던 신앙신자였다.

- …이름을.

- 네? 아. 카오루 라고 합니다. 세례명은…….

- 응? 엄마! 천사님의 말이 들려? 아라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 카오루. 신앙이 신실하여 아버지께서 당신의 존재를 그대에게 알리고자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 네?

- 신앙을 잃지 말라. 때가 되면 그대는… 크윽.

신음을 삼킨 이냐시오가 카오루에게 하늘의 말씀을 모두 전한 뒤, 간략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 그러니, 그대가 인간의 이름을 지어다오.

망설이던 카오루가 고통에 신음하는 이냐시오를 보며 황급히 말했다.

- 천사님은 태섭…, 송태섭이고, 기다리고 계신 천사님은 강백호라 부르겠습니다.

- 그 이름, 기꺼이 받겠다.

- 어? 들린다.

인간이 부를 수 있는 태섭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냐시오가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날갯죽지쪽이 살짝 검게 물들어있었다. 카오루가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이냐시오, 태섭이 카오루를 보며 말했다.

- 상태가 이러하니 당분간 신세를 져야겠다.

- 네?

- 인간의 이름을 받았으니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인간으로 살아야할 것 같아. 그동안 미안하지만 그대의 가족 행세를 하고 지내면서 그대를 따라 기도를 드리면서 힘을 회복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되겠는가?

- 엥? 천사님이 우리 가족이 된다고?

카오루가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지를 확인한 태섭이 옅게 웃었다.

- 고맙다.

이냐시오가, 태섭이 날아올랐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마카리오에게 이름을 전하기 위해.


- 사라지지 않았어.

- 꿈이 아니다 뿅.

두 아이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까만눈이 반짝였다. 작은 손에 사라지지 않은 커다란 깃털이 쥐어져있었다. 깨끗하고 하얀 깃털이.

- 천사님… 만날 수 있을까?

- 만나고 싶다 뿅.

마주보고 누운 아이들의 양손에 깃털을 꼭 쥔다. 솔솔 쏟아지는 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햇빛을 등진 천사님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천사님을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뿅).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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