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우성태섭명헌] 수인 & 오메가버스 au (完)

* 수인 & 오메가버스 au

* 뱀알파 명헌 X 코요테오메가 태섭 X 뱀알파 우성

* 진짜 시리즈 끝낼 때까지 제목을 못 지었다…….

결혼식 준비도, 그들의 관계도 차근히 진전되고 있었다. 들어보니 명헌과 우성은 태섭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그에게 흥미를 가졌을 때부터 페로몬을 느꼈다고 했다. 낯선 지역의 낯선 종이 가진 낯선 페로몬이 의무였던 교배를 의무가 아닌 진심으로 바뀌게 했다고 했다. 무안해하는 태섭에게 고개를 저어보인다. 처음부터 페로몬을 느끼지 못했던 태섭을 이해했다. 그에게 놓은 상황을 이해했다. 페로몬을 느껴볼 여력이 어디있나. 몇 달간의 시간은 태섭에게 있어 숨 넘어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거기에 한몫한 게 자신들이 내건 조건이라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

감정을 인정하면서 태섭의 일과는 독 내성훈련과 더불어 페로몬에 적응하는 훈련이 추가되었다. 가족 외에는 알파를 만나본 적도, 페로몬을 느껴본 적도 없던 태섭에게 한 주는 독 내성훈련을 하고, 한 주는 페로몬을 조금씩 풀어내 태섭이 곧 반려가 될 알파들의 향에 적응하도록 했다. 태섭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날 명헌의 입맞춤과 입술로 귀를 물었던 우성에 의해 태섭은 급성 중독으로 정신을 잃었고 -숨통을 조여서 기절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행…인가?- 둘은 의사인 낙수에게 엄청나게 혼이 났다. 베일을 써야하는 이유도 망각하고 입술부터 부비다니 반려 죽이려고 작정했냐는 말에 산왕의 두 우두머리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성깔 드러운 블랙 맘바 아니랄까봐 우두머리 앞에서 그 작은 눈을 부릅 뜨고 잔소리를 퍼부어대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현철이 그런 낙수를 진정시키며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면 밤새도록 혼이 났을 것이다. 산왕의 우두머리를 보좌하는 보좌관이자 친우들은 반려가 될 예정인 태섭의 몸 곳곳에 문신처럼 새겨진 멍이 퍼지는 것을 보았기에 낙수를 말리긴 했지만 다들 넌지시 한마디씩 했다. 큰 잔소리 하나 간 대신 작은 잔소리 여럿 들은 것이다.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은 강도였지만.

독 내성훈련과 페로몬 적응훈련으로 태섭은 여러가지 의미로 기진맥진해 한동안 바깥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결혼식이 다가올 수록 마음이 급해져 본인이 먼저 강도높은 훈련을 원했기에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명헌도, 우성도. 자신이 원하면 훈련을 멈추고 어디든 데리고 나갈 것을 알면서도.

결혼식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각인이 이루어질 때, 태섭의 내성도 중요하지만 명헌과 우성도 반려의 뒷목을 물었을 때 독을 흘려보내지 않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뱀의 모습으로 돌아와 크기를 줄이고 독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살면서 독을 많이 내보냈으면 내보냈지 줄이는 노력을 태섭을 만나면서 처음 해본 둘이라 식은땀이 흘렀다. 자칫하면 반려를 죽일 수도 있다는 웃을 수 없는 생각에 안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허옇게 질릴 때까지 독을 약하게 뽑아댔다.

페로몬 적응훈련도 명헌과 우성에게 있어 쉽지 않았다. 말이 적응훈련이지 알파의 페로몬을 방출해 오메가를 자극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태섭이 금새 달아올라 열에 취한 얼굴이 되면 절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것이다. 비형질인보다 스펙이 좋긴 하지만 어쨌든 알파도 페로몬의 지배를 받는 건 마찬가지여서, 태섭이 저도 모르게 다 풀린 페로몬을 질질 흘려내면 산왕의 국가부터 시작해서 국경에 둘러진 방벽에 쌓인 벽돌의 갯수를 세야할 지경이었다. 독도 두 배 페로몬도 두 배. 태섭이 죽어나는 만큼 명헌과 우성도 다른 의미로 죽어났다.

그래도 셋은 한 침대에서 같이 잤다. 서로 껴안고 엉켜서 잤다. 부대끼며 자는 것이 더이상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명헌과 우성은 잠결에라도 태섭을 물까봐 마스크형 베일이 아닌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쓰고 잤다. 간혹 자다 깬 태섭이 시커먼 얼굴을 마주하고 소리지를 뻔 한 건 비밀이다.

결혼식 날이 밝았다. 산왕의 곳곳이 보존마법을 건 꽃들로 화려하게 꾸며졌다. 우두머리가 지내는 건물 가장 위층 발코니에 산왕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우두머리와 그들의 반려가 될 이가 나타날 것이다. 산왕의 모든 이가 중심지에 몰려들었다. 결혼식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거리에 테이블이 길게 늘어서며 음식이 들어섰다. 차가운 기온에도 지지 않는다는 듯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저기 나오신다!”

누군가 발코니를 향해 손짓했다. 모두의 시선이 발코니로 향했다. 산왕에서 가장 강한 두 우두머리가 검은 가죽과 흰색 짐승의 털로 이루어진 예복을 입고 발코니 끝에 섰다. 환호가 울려퍼진다. 우두머리의 목에 걸린 흑요석 목걸이가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두 우두머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검은 장갑 낀 손을 내민다. 태섭이 떨리는 숨을 고르며 주먹을 힘껏 쥐었다 펴고는 내밀어진 둘의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섰다.

산왕에서 보기 힘든 화려한 붉은색의 장미 화관이 부드러운 곱슬머리 위에 내려앉아있었다.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카오루와 아라가 현필의 보호 아래 산왕 외곽까지 나가 따와 직접 엮은 화관이었다. 태섭은 장미화관을 보고 난색을 표했으나, 웃는 얼굴로 제게 화관을 내미는 모친과 동생의 모습에 결국 고개를 숙여 화관을 얹게 되었다. 은색의 피어싱을 한 쪽 귀에 착용하고, 산왕의 검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예복 위로 북산을 상징하는 붉은색 천을 덧대고 백금색 술로 장식한 태섭이 명헌과 우성의 사이에 섰다. 산왕의 기후에 맞춰 예복 뒤로 털가죽으로 만든 망토가 차가운 공기를 가려주었다. 산왕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북산을 상징하는 붉은색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고, 태섭을 힐끗 본 우성이 생각했다.

산왕의 모든 이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명헌이 태섭이 정식으로 산왕의 두 우두머리의 반려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산왕의 일원이 되었으며, 우두머리의 반려 가족 역시 우두머리와도 같이 대우하라고 우성이 다시금 말했다. 우성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난처해하는 카오루와 아라를 발코니 끝으로 데려왔다. 외출을 잘 하지 않아 산왕 사람들에게도 낯선 두 모녀에 시선이 모였다. 이들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산왕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반려가 된 이의 가족이니 목숨 걸고 지키라는 근엄한 말이 산왕의 하늘을 울렸다.

이로써 더이상 태섭과 그의 가족들은 타지역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 아니게 되었다. 우두머리의 반려도, 반려의 가족들도 산왕의 우두머리를 대하듯 대우할 것이다. 산왕의 모두가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가장 선봉에 두 우두머리가 서있을 것이다. 강한 결집력에 카오루는 팔위로 솟아오르는 소름을 쓸어내렸다. 절로 시선이 태섭을 향했다. 카오루가 눈을 깜빡였다. 태섭과 눈이 마주친다. 카오루가 살짝 입을 벌렸다.

평소에 봐왔던 모습과는 뭔가 달랐다. 카오루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위치와 자리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태섭은 편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자신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언제까지나 카오루의 눈에 비치는 태섭은 어리광쟁이에 도시로 나갈 때마다 같이 데려가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였는데. 오메가로 발현한 탓에 세상을 제대로 경험시켜주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가족의 절반을 잃은 순간과 산왕에 도달하고 얼마간 태섭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카오루의 눈에는 보였다. 그래서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조용히 지내려고 했다. 태섭에게 주어진 조건이 오메가로서 알파의 아이를 낳아야한다는 것임을 알았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강하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낯선 환경, 낯선 기후 속 낯선 이들이 가득한 이 곳에 태섭이 짊어질 무게를 알고 있으나 할 수 있는 게 없어 분했다. 무력했다. 우두머리라는 두 알파 뱀수인이 태섭에게 흥미를 가지고 내걸었던 조건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럼 무엇을 요구할지 걱정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산왕의 두 우두머리는 태섭에게도, 자신들에게도 상냥하게 다가왔다. 어린 아라를 길러내야했기에 그 상냥한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게 태섭에게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비겁하게. 그들의 지원에 손을 내밀었다. 이 곳에 적응하게 되면 무슨 일이라도 해볼까. 괜히 그 아이에게 되려 민폐가 아닐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맞는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없이 작아지는 카오루를 붙든 건 아라였다. 그 어린 것의 눈에도 보일 만큼 불안해하는 카오루에게 아라가 말했다.

“오빠가 원할 때 옆에 있어줘. 오빠의 말을 들어줘. 오빠는 그것만으로도 힘을 낼 거야. 아라는 알아.”

그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에 무한한 위로를 얻었다. 맞아. 그래. 태섭에게는 엄마가 필요했다. 가족이 필요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아니었다. 무력한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 굳게 다짐했다. 태섭에게 짊어져야할 짐이 아닌 함께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되자. 카오루가 그렇게 결심했다.

태섭은 종종 카오루와 아라가 지내는 방을 찾아왔다. 대부분은 안부를 묻는 말이었고 그늘진 표정은 고민이 많아보였으나 당장 말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카오루는 기다렸다. 안부를 물으며 다가오는 그의 손을 잡아주었고, 품에 안아 등을 두드려주었다. 태섭은 주저하는 듯 했지만 이내 카오루를 마주 안았다. 항상.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오는 아라도 소중하게 품는다. 그러고나면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늘이 잠시 가시곤 했다.

그리고 태섭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카오루는 항상 그랬든 태섭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도록 해. 엄마랑 아라는 항상 네 편이니까. 그들에게 향하는 마음을 억지로 막을 필요 없어. 그 사람들은 우리를 받아주었고, 살 집을 내어주었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어. 너를 위해서. 처음의 불순한 의도를 완전 배제할 순 없겠지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거든.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 그 사람들은 너를 아주 아끼고 사랑해줄 거야. 그렇게 믿어.”

태섭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다른 말은 불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네 편이라고. 그 사람들 역시 너의 편이 되어줄 거라고. 우리가 그러하듯 그들 역시 너를 사랑할 거라고. 그러니 믿어보자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나 때문에 미안해요. 우리가 짐이 되서 미안해. 그렇게 울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서로 사랑하고 웃는 날만 가득할 거라고 좋은 말만 하기로 했다.

“…….”

상념에서 깨어난 카오루가 편하게 웃고있는 태섭을 보며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안심이었다. 태섭은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두 알파가 한 명의 오메가에게 각인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뒷목에 차례대로 잇자국을 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들이 우려하는 중독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앞으로 그에게는, 그들에게는 서로 사랑하고 웃는 날만 가득할 것이기에. 태섭이 미묘한 표정으로 잇자국을 더듬었다. 카오루와 다시 눈이 마주친다. 카오루가 먼저 웃어보이자 태섭이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게 뭐야?”

성공적인 각인을 이루고 난 며칠 뒤. 우성의 비명섞인 목소리에 태섭이 그를 돌아보았다. 우성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태섭의 뒷목을 매만졌다.

“이거 뭐야??”

“아.”

태섭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뭔데 그래 뿅.”

“형! 태섭이가 글쎄!”

우성의 호들갑에 천천히 방으로 들어오던 명헌이 태섭에게 다가왔다. 뒷목을 매만지는 손이 떨어지자, 명헌이 태섭보다 도톰한 입술을 벌려낸다.

“문신?”

“잇자국만 있으면 멋 없잖아.”

각인한 잇자국이 남은 자리 위로 두 마리의 검은 뱀이 새겨져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둥글게 자리잡은 뱀 두 마리. 누가 봐도 산왕의 두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둥글게 자리잡은 두 마리의 뱀 사이에 작은 코요테 세 마리. 두 시선에 태섭이 딴청부리며 말했다.

“집에서도 괜찮다고 했거든? 그리고…….”

헛기침을 하던 태섭이 말했다.

“가족이잖아.”

가족. 그 단어가 가진 위력은 대단했다. 놀라던 두 반려의 입을 순식간에 막아버렸으니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태섭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독을 가진 뱀종 중 하나라는 내륙 타이판은. 어쩌면 정말로 순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했다.

이런 둘을 닮은 아이들이라면, 여러명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 fin.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썰의 근본인 외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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