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명헌태섭/우성태섭] Double heart

* 세계관 특성 상 심장(하트로 지칭)을 넣고 꺼내고 하는 게 자유롭습니다. 

우리 생각하는 펄떡이는 심장의 이미지가 아닌 하트 모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준섭이 살아있는 세계관

* 백호열 empty heart와 같은 세계관

있지,

보통 사람은 하나의 하트를 가지고 있고, 서로 운명의 상대가 정해져있어서 언제 만나든 알 수 있잖아? 서로에게 맞물리도록 하트를 교환하게 되어있고.

그런데 말이야,

그 하트가 두 개가 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이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 이야기야. 어때?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이명헌X송태섭X정우성

Double heart

wrriten By. 뮤가

진화라는 이름의 개조, 개발이 이루어진지 1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면서도 고장나거나, 녹이 슨 부분을 기계 부품으로 교체하며 평균 수명 100년 시대에서 1000년 시대를 만들어내었다. 신체의 대부분을 온갖 기계로 바꿔가며 오랜 수명을 살아가면서, 예전부터 있었던 로망을 버리지 못한 인간들은 저마다 ‘하트’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심장으로 또 다른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요컨대 ‘운명’을 느끼게 한 상대에게 자신의 ‘하트’를 주고, 상대의 ‘하트’를 받는 것이다.

‘운명’을 버리지 못해 기계화된 문명에 최적화된 마음 교환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하트’를 마음대로 꺼낼 수 있었다. ‘하트’를 꾸밀 수도 있었다. 일명 하꾸라고 불리는 이 문화는 청소년부터 중장년에 이르러 노년기까지 사람을 낭만과 꿈의 세상으로 이끌기 충분했다. 상대에게 주는 내 심장. 상대에게 받는 심장. 하트 교환식이라 불리는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를 마치고 나면, 서로의 ‘하트’를 자신의 빈자리에 채워넣고 충만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다시 꺼내서 꾸미고, 다시 넣을 수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분홍색의 하트 이모티콘처럼 생긴 그것은, 종이로 하트를 접은 것처럼 각진 외형이기도 했고, 톱니바퀴처럼 생긴 것이기도 했다. 사람마다 다 달랐다는 뜻이다.

‘하트’는 심장이었다. 운명의 상대와 교환식을 하기 전까지 자신을 이루고 있는 중심. 감정을 만드는 공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활력이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트’가 있었다. 간혹 ‘하트’의 빈자리와 ‘하트’가 완벽히 맞물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상대의 ‘하트’가 들어가면 꼭 맞물려 인간으로 하여금 더한 운명을 느끼게 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빈자리와 ‘하트’가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았다. 언젠가 만나게 될 자신의 운명이 제게 남긴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 같았다. ‘하트’를 빈자리에 맞물릴 때 불편한 쌉싸름함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달콤하게 맞물리게 될 것이다.

빈자리가 맞물리지 않는 것은 괜찮았다. 그래도 운명의 상대를 만나, 그의 ‘하트’를 받아 빈자리에 끼우면 해결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렇다면 그 운명의 상대는, 꼭 한 사람 당 한 명이어야 할까?

옛날 기록을 보면 일부일처, 일부다처, 혹은 다부일처도, 다부다처도 있다고 했는데.

지금 세상에서도 한 명 이상의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는 없는걸까?

그렇게 되면, 빈자리는 두 자리가 되는 걸까?

‘하트’만 두 개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바람둥이.”

“아니다, 이 녀석아!”

태섭이 발끈하며 외쳤다. 동생인 아라가 메롱 혀를 내밀며 꺄르르 웃었다. 태섭이 주먹을 부들거리자 둘을 지켜보던 준섭이 웃었다.

“아직 태섭이 운명의 상대도 안 만났는데 벌써 바람둥이가 됐어?”

“하지만 ‘하트’가 두 개 잖아! 양다리지!”

“아니라고 했다!”

결국 태섭이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서고, 아라가 꺄아 하고 준섭의 뒤로 잽싸게 숨는다. 얼굴만 쏙 내밀어서 다시 메롱하는 것을 잊지 않고. 씩씩대던 태섭이 의자에 풀썩 앉아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빈자리는 하나거든?”

“그게 신기하단 말이지.”

준섭이 태섭에게 말을 걸었다. 아라를 흘겨보던 태섭이 자세를 바로하며 준섭을 보았다. 아라의 머리를 한 차례 헤집듯 쓰다듬은 준섭이 말을 이었다. 아라가 태섭 놀리기를 멈추고는 준섭의 옆자리에 앉는다.

“빈자리는 하나인데 ‘하트’가 두 개라니. 빈자리에 두 개의 ‘하트’가 다 들어가는거야?”

준섭의 말에 태섭이 제 가슴께를 문지르며 답했다.

“들어는 가. 꽉 차서 앞뒤로 조금 넘치기는 하지만. 건강상 문제도 없고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것도 없어서 그냥 두고 보고 있지만.”

“근데 작은 오빠 ‘하트’는 두 개인데 빈자리가 하나면 운명의 상대는 어떻게 두 명이 될 수 있는거야? ‘하트’가 두 개면 두 명의 ‘하트’를 받아야하잖아. 빈자리는 하나인데.”

아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태섭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거지. ‘하트’가 두 개인만큼 빈자리도 두 개였으면 이 고민 하지도 않았을텐데. 괜히 ‘하트’만 두 개여서 신경만 쓰이잖아.”

태섭이 투덜거린다. 동생의 투덜거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운지 준섭이 식탁 위로 팔을 들고는 턱을 괴고 말했다.

“그래도 태섭아, ‘하트’가 두 개라는 건 분명 두 명의 운명의 상대가 내 동생을 두 배로 사랑해준다는 뜻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진짜 오빠 빈자리는 하나 밖에 없는데 오빠의 ‘하트’에 맞는 운명의 상대가 두 명이나 나타날까?”

놀리긴 했지만 내심 걱정이 들었는지 아라가 심각하게 준섭을 보며 묻는다. 항상 든든한 아군이었던 형과 동생을 보는 태섭에게서 잔뜩 찌푸려졌던 미간이 슬슬 풀린다. 걱정과 사랑스러움을 한 몸에 받는 입술이 민망함에 쭉 튀어나온다.

“그랬으면 좋겠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걸까. 누가 두 개의 ‘하트’를 가진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빈자리도 두 개인게 아닌데. 하나 뿐인데. 태섭이 다시금 가슴께를 문지른다. 형 준섭과 동생 아라를 차례대로 본다. 자신의 든든한 아군. 소중한 가족들. 삐죽 튀어나온 입술 사이로 푸슬푸슬 미소가 스며나온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형이나 아라만큼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열광하는 체육관 안. 농구화가 코트를 미끄러지는 소리. 코트에서 튕겨져 손으로 감기는 감촉. 태섭이 숨을 몰아쉬며 빠르게 코트를 훑었다. 재빠르게 수비를 제치고, 슛을 던지는 척 3점 슛 지점에 대기하고 있던 팀원에게 노룩 패스를 선사한다. 상대 선수는 당혹스러워하고, 팀의 슈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매끄럽게 공을 던진다. 림을 출렁이며 빠져나오는 공이 득점을 알린다. 환호성이 울려퍼진다. 태섭의 가슴이 강하게 두근거렸다. 자신의 연계로, 패스가 득점으로 이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했다. 허나 방심할 수 없다. 시합은 끝난 게 아니었기에. 상대 팀에서는 농구 강호인 산왕고등학교 출신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태섭을 중심으로 압박해오는 존프레스를 행하는 두 선수는 특히 그 산왕 출신 중에서도 에이스급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대학 농구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작고 재빠른 태섭의 드리블과 패스에 그를 상대하기 위한 최적의 디펜스였다. 키도, 덩치도 한참 큰 둘에게서는 빈틈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둘의 존프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태섭이 페이크를 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기어이 공을 빼앗기고, 순식간에 득점으로 넘어가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유니폼을 쥐고 닦아내는 숨이 거칠다. 압박 수비를 뚫고 나가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이었다. 태섭이 득점 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둘을 보았다. 태섭팀의 팀워크보다, 혹은 그 이상의 팀워크 능력 갖고 있었다. 적어도 저를 압박하고 선 이 두 선수 사이에서의 유대감은 훨씬 강한 팀워크를 이끌어내고 있는 듯 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 그간 맞춰온 호흡이 길기 때문이리라. 쉽지 않은 상대들을 둘이나 상대하고 있는 제가 퍽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가슴이 쿵쾅거렸으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숨을 가다듬는다. 숨막히는 존프레스를 분명 뚫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태섭이 두 선수를 응시한다. 산왕고등학교에서 머리를 다 빡빡 민다더니 그 습관 못 버렸는지, 아니면 또 다른 패션으로 자리잡았는지 두 선수 모두 머리를 빡빡 밀어 인상적이었다. 키가 큰 선수와, 덩치가 더 큰 선수를 차례대로 눈 맞춘다. 가다듬던 숨이 느릿하게 새어나왔다. 태섭의 눈이 일렁인다.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미묘한 감각에 입술을 깨문다. 설마, 여기서? 심지어 저 선수들이? 말도 안 돼. 태섭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농구공이 멀리서 날아온다. 태섭이 본능적으로 농구공을 낚아챘다. 제 앞을 가로막아서는 두 선수를 본다. 이를 악문다.

이 상황에서 운명의 상대를 마주하면 어쩌자는 거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경기다. 안그래도 존프레스 자체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운명이 태섭을 거하게 뒤흔들었다. 덕분에 몇 점이나 내주었는지 모른다. 감독은 태섭을 교체해야하나 고민했으나 다른 수가 없었다. 태섭은 팀에서 가장 효율적인 득점을 많이 만들어내는 포인트가드였다. 팀에서 몇 명 있는 포인트가드들 역시 훌륭한 선수들이었으나, 배짱이 부족했다. 태섭을 막아서는 강호 출신, 그에서 더 일취월장하며 괴물같이 성장하는 두 선수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선수가, 태섭의 팀에서는 없었다. 어느 팀에서도 이만큼 이겨내려고 애쓰는 선수도 드물 것이다. 감독은 그것을 알았기에 태섭이 흔들려도 함부로 교체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존프레스를 뚫고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태섭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도 없지 않았다. 감독은 태섭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태섭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욕지거리도 함께 흘려냈다. 운명이고 나발이고 적팀으로 마주했는데 눈치껏 빠지면 안 되냐고! 정말이지, 정말이지! 아무튼 이놈의 운명은 도움이 되는 날이 없다. 적당히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의 ‘하트’였어도 모자랄 판에 두 개나 줘놓고 이런 상황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한다고? 장난쳐? 이딴 요인으로 흔들리고 싶지 않다고! 태섭이 속으로 악 소리쳤다. 그렇게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조한 인상의 감독을 힐끗 보았다. 감독의 생각이 얼추 느껴졌다. 존프레스의 압박이 심해 잠시 흔들렸던 자신을 보면서 교체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패가 없다는 것을 감독이 아는 것처럼, 태섭도 알았다. 물론 교체를 선언한다고 해서 순순히 받아줄 생각도 없었지만.

찌푸린 인상으로 여전히 제 앞을 막아선 두 운명, 아니, 두 상대 선수를 노려보았다.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 정말 짜증날 정도다. 눈썹을 씰룩인 태섭이 제게 날아온 공을 바닥에 튀기며 주위를 살폈다. 틈. 틈을 찾아야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숨을 고른다. 아늑하게만 느껴졌던 관중석의 응원소리가 내리꽂힌다. 뚫어-, 송태섭! 매니저인 한나와 가족들의 응원소리가 태섭을 다시 달리게 했다. 파고든다. 틈을. 파고든다. 둘의 사이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공간에서, 빠져나간다. 파고들어, 빠져나간다. 키가 클수록 유리한 종목에서 키가 작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돌파구. 한없이 낮아진 자세로 존프레스를 뚫은 태섭이 놀란 표정의 두 선수를 뒤로한 채 순식간에 내달렸다. 같은 팀도, 상대 팀도 놀란 와중에 태섭이 외친다. 달려! 관중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팀원들이 달아올랐다. 슈터가 슛을 날린다. 림에서 철썩 하는 익숙하고도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통쾌한 득점이었다.


진짜 대단했다면서 팀원들이, 벤치의 멤버들과 감독, 코치진들까지 모두 달려와 태섭을 끌어안았다. 머리를 거칠게 헤집고, 높이 안아들기까지 했다. 존프레스를 돌파한 태섭으로 인해 사기가 완전히 올라간 태섭의 팀은 말 그대로 파죽지세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상대 팀도 지지 않고 경기력을 끌어올린 탓에 온 경기장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이 열기가 좋았다. 이 분위기가 좋았다. 팀원들끼리 잘 맞는 팀워크가 좋았고, 이기기 위해 죽자살자 덤벼드는 상대를 마주하는 게 좋았다. 아슬아슬한 1점 차이로 얻은 승리는 정말로 달콤한 것이어서, 태섭은 순간이나마 운명의 상대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번호, 뿅.”

“진짜 잘 하더라. 다음에는 안 뚫릴 거지만!”

…….”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다리고 있었는지 승리를 만끽하고 뒤늦게 나온 태섭을 보자마자 다가온 두 선수에 태섭이 눈을 깜빡였다. 태섭의 시선에 두 선수가 서로를 보더니 입을 연다.

“이명헌 뿅.”

“정우성이야.”

“…송태섭.”

간단한 통성명을 마친 후 경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다. 명헌 형이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이었는데, 완전 한 방 먹었대. 우성 너도 경험을 얻게 해달라고 했다가 된통 당했잖아용. 금새 둘이 투닥투닥한다. 태섭이 멍하게 둘을 올려다보았다. 뭐하냐는 시선을 느꼈는지 흠흠, 하며 헛기침을 하던 우성이 말했다.

“혹시 경기중에 너도 느꼈어?”

“아.”

“맞나보네 뿅.”

…뿅? 그러고보니 독특한 어미다. 태섭이 뿅체에 어리둥절해 할 때 우성이 말을 잇는다.

“사실 우리도 너랑 매치하면서 느꼈거든. 네가 운명의 상대라는 거.”

“…어…….”

태섭이 곤란한 낯을 했다. 둘 중 누가 자신을 운명의 상대로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곤란했다. 태섭의 ‘하트’는 두 개였으니까. 태섭이 빠르게, 하지만 조용히 둘을 살폈다. 둘 중 누가 운명의 상대일까. 잘못 고르면 서로 민망한 상황이 될 텐데. 태섭이 경기 중에 운명을 느낀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명헌과의 매치? 아니면 우성과의 매치? 경기로 인한 흥분과 존프레스의 압박에 의한 극한의 긴장 때문인지 태섭은 둘 모두에게서 운명을 느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 운명이라는 거 상황에 따라서 잘못 느낄 수도 있나? 내 ‘하트’가 두 개 라지만 어떻게 경기 중에 둘 다에게서 운명을 느꼈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아라가 장난치듯 바람둥이!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머리를 왕왕 울렸다. 진짜 곤란했다. 한 명에게 ‘하트’ 두 개를 다 줄 수도 있나? 진짜 두 명한테 줘야하나? 내 운명의 상대가 요절이라도 해서 새로운 운명의 상대를 또 만날 거라서 ‘하트’가 두 개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는데도 명헌과 우성 중에 정확히 운명을 느낀 상대가 누구인지 여전히 아리송했다. 곤란하다, 곤란해. 그래서 제대로 듣지 못 했다. ‘우리도 너랑 매치하면서 느꼈거든. 네가 운명의 상대라는 거.’ 우성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태섭이 혼란하고 곤란해한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한 단어.

태섭의 머리속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걸 알 리 없는 우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 들었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태섭을 보던 명헌이 무릎을 살짝 굽혀 혼란한 태섭과 눈을 맞췄다. 태섭이 움찔 멈추고 명헌의 눈을 본다. 명헌이 태섭을 보다 말했다.

“놀라겠지만, 들어봐용.”

“…네.”

태섭이 진정한 것을 확인한 명헌이 무릎을 세웠다. 태섭의 고개가 살짝 올라갔다. 명헌이 우성에게 눈짓하자, 우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명헌이 다시 태섭을 보았다.

“설명할게용.”

…용? 아까는 뿅이었던 것 같은데. 태섭이 다시금 혼란해하자 명헌이 두 손을 마주쳐 박수소리를 내어 주의를 집중시킨다. 태섭의 시선이 다시 저를 향하는 것을 본 명헌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하트’가 있다는 거, 알고 있죵?”

명헌의 말에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을 ‘하트’는 ‘하트’가 자리하는 빈자리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용.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상대의 ‘하트’와 맞물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태섭, 태섭은 알고 있나용.”

“뭐를…요?”

“사람의 수만큼 ‘하트’의 모양도 다양한 걸.”

태섭은 자신이 품고 있는 두 개의 ‘하트’를 떠올렸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언가 이들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라도 있는걸까?

궁금해하는 것도 잠시, 명헌과 우성이 각자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하트’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태섭이 긴장으로 침을 삼켰다. 아니, 둘 중에 운명의 상대가 누구인지부터 말을 해줘야 내가 어떻게 대응을 하던가 하……!

“…어?”

태섭의 눈이 둥글어졌다. 삐뚤하게 올라갔던 눈썹이 쳐진다. 명헌과 우성의 큰 손에 쥐어진 둘의 ‘하트’를 보며 눈을 깜빡인다. 농구공을 오래동안 잡고 살았던 탓인지 크고 굳은살 박힌 손 위에 자리한 ‘하트’는 둘의 손 크기에 비해 작았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트’보다 작았다. 태섭이 웅얼거렸다.

“반쪽짜리… ‘하트’ …라고?”

명헌의 ‘하트’도, 우성의 ‘하트’도 반쪽이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반쪽이 나있었다. 명헌의 손과 우성의 손이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반쪽이었던 불완전한 ‘하트’가 하나의 온전한 ‘하트’ 모양이 되었다. 태섭이 멍하게 ‘하트’를 보다 둘을 올려다보았다.

“혹시나 하고 말하지만 우리는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거나 친척 관계도 아니야.”

우성의 말이 정말 놀랄 노자였다.

“신기하지? 나랑 명헌 형이 만난 건 고등학교 농구부에서였는데. ‘하트’ 얘기가 나오게 되서 부원들끼리 얘기를 나누다보니 나랑 형의 ‘하트’가 반쪽짜리 모양의 ‘하트’라는 걸 알았어. 심지어 방향이 다른 ‘하트’. 그래서 느꼈지. 형도, 나도. 우리의 운명의 상대는. 같은 사람이겠구나, 하고.”

명헌의 시선도, 우성의 시선도 태섭을 향한다. 운명을 느끼면 보이는 눈빛이 태섭을 향한다. 태섭 역시 같은 눈빛으로 우성과 명헌을 보고 있을 것이다. 운명의 상대가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명헌을, 우성을. 둘을 보는 태섭의 눈빛에 운명이 느껴진다. 명헌도, 우성도 느낀다. 태섭에게서 비쳐지는 운명의 눈빛을. 두 사람의 반쪽짜리 ‘하트’가 모여서 한 명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게, 상대 입장에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태섭이 압박에서 벗어날 때 처음으로 평정을 잃은 명헌도, 새로운 경험을 달라고 했다가 처음으로 패배의 눈물을 삼킨 우성도. 운명 앞에서 긴장했다. 보통 사람들의 ‘하트’는 하나라는 걸 아니까. 반쪽짜리여도 ‘하트’ 자체는 하나의 ‘하트’다. 태섭 역시 그럴거라고 생각했으니 긴장한 것도 당연했다. 둘이서 같은 사람에게 운명을 느낀다는 것은, 누군가는 선택받고 누군가는 선택받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니까. 느껴진 운명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새로운 운명을 다시 만날 때까지 하염없는 기다림과 이미 정해진 운명의 상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직 젊고 혈기 넘치는 두 선수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먼 이야기였다. 그래서 둘은 경기가 끝나고 서로 약속을 했다. 누가 선택을 받든 진심으로 축하해주자고. 반쪽짜리 ‘하트’를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받아주면 정말 기쁘게 받아들이고 축하해주자고. 그렇게 약속했다.

“…하하…….”

태섭이 작게 웃었다. 긴장한 두 시선이 태섭을 향했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한 태섭은 계속 실없이 웃기만 했다.

“진짜, 말도 안돼…….”

그렇게 중얼거린다. 긴장한 두 선수들을 다시 올려다본 태섭이 픽 웃었다. 양 손을 들어 가슴께에 댄다. ‘하트’를 꺼낸다.

명헌과 우성의 눈이 커진다. 둘의 ‘하트’를 처음 봤을 때 태섭이 그랬던 것처럼.

“진짜, 이런 상황이면 바람둥이 소리는 안 들어도 되겠네.”

“뿅?”

“응?”

태섭이 각 손에 하나씩 제 ‘하트’를 쥐고 두 선수들에게 내밀었다. 두 선수 뒤로 멀리서 걸어오는 준섭과 아라가 보였다. 명헌과 우성의 뒤를 흘끔 보던 태섭이 말했다.

“여기서 하트교환하자는 얘기는 아니지?”

“어! 큰오빠! 이것 좀 봐!”

태섭을 발견한 아라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세 명의 ‘하트’를 보고 외친다. 아라의 외침에 발걸음을 재촉한 준섭도 셋을 보더니 호오, 하고 입을 동그랗게 모은다. 갑작스러운 제 3자들의 등장에 어리둥절한 명헌과 우성을 보던 태섭이 씩 웃었다.

“야, 송아라. 이렇게 되면 나 바람둥이는 아닌거지?”

“와, 진짜 말도 안된다. 큰오빠, 이거 진짜야?”

“하하. 우리 동생 진짜 ‘운명’을 만났네.”

남매의 대화에서 서로의 관계를 알아챈 명헌과 우성이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라가 태섭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콕콕 쑤시며 말했다.

“왜 갖고 있는 ‘하트’는 두 개고 빈자리는 하나인가 싶었는데, 이런 의미였구나? 정말 운명의 상대가 두 명이었네! 제법이잖아, 송태섭!”

“까분다, 송아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하트’. 하나의 빈자리. 아라의 말에 명헌과 우성이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서로 운명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하트’는 넣고 집으로 가자는 준섭의 말에 세 선수가 주섬주섬 ‘하트’를 빈자리에 채워넣는다. 넉살 좋게 웃는 얼굴로 준섭이 명헌과 우성을 양쪽에 끼웠다. 순식간이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도 분명 좋아하실 거야. 어차피 서로 운명인 것도 확인했고, ‘하트’도 확인했으니. 같이 집에 가도 되죠?”

어리벙벙하게 준섭이 양 옆구리에 끼우는대로 까슬한 머리통이 끼워진 두 선수가 어버버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이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 태섭이 준섭의 정강이를 아프지 않게 발로 차며 외쳤다.

“아, 형! 그 손 놔 빨리!”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고, 많은 유형의 ‘하트’가 있다는 것을 서로를 통해 알았다. ‘하트’가 두 개일수도, 반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만큼, 다양한 유형의 운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명은 이렇게 서로를 서로에게 맞춰가도록 만든다. 어느 누구도 이상한 사람은 없다. 이상한 사랑을 하는 사람도 없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저마다 자신만의 짝이 있다는 것이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어때? 신기하지 않아? 보통 사람들은 외곽만 다를 뿐이지 같은 모양의 ‘하트’를 가지고 있잖아? 그런데 이 이야기속 친구와 그 운명의 상대는 모두 보통 사람들과 다른 ‘하트’를 가지고 있고, 운명이 이끄는대로 서로의 빈자리에 맞는 ‘하트’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완성했다는 게. 그 뒤로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아무튼 그 친구랑, 두 명의 운명의 상대는 서로에게 꼭 맞는 하트교환식을 하고 셋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 두 명의 운명의 상대는 그 친구만을 좋아했는데, 그 친구는 두 명을 모두 다 좋아했다고 하더라고. 한번씩 한 명에게만 애정행각을 하면 다른 한 명이 질투에 휩싸이기도 해서 그 친구는 공평하게 사랑을 주고 두 배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더라? 조금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행복하다고 하니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역시 해피엔딩이 제일 좋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너도 곧 네 운명을 만날 거야. 좋은 사랑을 하렴. 운명이 이끄는대로, 혹은 운명을 이끌어가면서.

그런 사랑을 하렴.

-fin.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