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 천사님 찾아요! (하)

* 인간 명헌 & 우성 x 천사 태섭

* 연령반전(명헌과 우성은 동갑이라는 설정)

* 아래 링크된 백호열 연성과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 천사님 찾아요! (상)


태섭이라는 이름을 받고 카오루의 가족이 되어 그를 따라 성당에 갔으나, 날개가 고쳐지는 일은 없었다. 이냐시오-, 태섭은 날갯죽지가 검게 물들어 녹아내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 감사히 여겨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해야했다. 날개가 검게 물든 탓인지 아무리 주님께 기도를 올려도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받아모시고 고해성사까지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초조했다. 답답하고 불안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힘을 모두 잃은 건 아니었기에 백호라는 이름을 받은 마카리오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돕는 것은 가능했다.

태섭은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천국에서 활동하는 천사 둘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모를 리 없다. 조만간 파견을 나올 것이다. 힘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기로 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은 무거웠으나 견딜만 했다. 마음이 약해지려 할 때마다 기도를 올렸다. 날갯죽지의 날개가 희게 돌아오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게 기도 뿐이었다.

인간 세상은 확실히 천국과는 달랐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를 시작으로 온갖 이유를 붙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못 해 안달이었다. 천국에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외형으로 시비가 걸려 난생 처음 악이 아닌 것과 주먹다짐도 해봤다. 천국은 모두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곳이라 본인 보기에 외모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인간세상의 야만적인 모습에 환멸까지 느껴졌으나 걱정하는 카오루와 아라의 얼굴을 마주한 뒤로 주먹다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대로 인간이 되는 걸까. 경건히 기도를 올리는 카오루와 아직 어린 탓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라의 모습을 보았다. 매일 성당에 방문하여 미사 전 고해성사를 하고 미사 중 성체를 받아모셔도 태섭의 날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힘을 쓰지 않으면 수호하는 인간의 집에서 나올 수 조차 없는 백호의 등 뒤로 매달린 조그마한 날개를 보았다. 백호의 날개는 언제 자라는 걸까. 자라기는 하는 걸까.

태섭은 날갯죽지로부터 시작되는 익숙한 통증에 들키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날개가 줄어들고 활동에 큰 제약을 받을지언정, 백호의 회복능력은 사라지지 않아서 싸움꾼인 인간의 부상을 자주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섭은 제 날개를 맡길까 하다 혼자 고개를 저었다. 후배 천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백호는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인간의 집을 벗어날 수 조차 없었다. 함께 마트를 다녀오는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수호하는 인간이 다니는 길이라며, 눈을 빛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은 힘을 쓰고 나면 통증을 느낀다는 것 외에 다른 디메리트가 없었으니 말하지 않는 게 맞았다.

태섭은 조금씩 인간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한번씩 격통을 일으키는 날개를 끌어안으면서.


“…….”

자신을 보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두 꼬맹이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인간의 이름을 받아 인간세상에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인간들의 기억 속에 자신은 천사가 아닌 카오루 집의 차남 송태섭이라고 완벽하게 조작되어있을텐데, 어째서인지 이 꼬맹이들의 시선은 인간인 송태섭이 아닌 천사인 이냐시오를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다.

“천사님 아니에요?”

“천사뿅 천사뿅.”

“…….”

처음 그렇게 얘기했을 때는 근처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던 이온음료를 뿜어낼 뻔했다. 태섭이 각도가 다른 눈썹을 휘어보이며 꼬맹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다 깨닫는다. 자신의 날개를 이 모양으로 만든 꼬맹이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굳이 따지면 정신 못 차리는 죽음의 검은 천 때문이지. 왜 나는 어린 인간들을 탓하는가. 인간 세상에서 생활하더니 인간에게 물들어가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남 탓부터 하는. 반성하자, 반성. 태섭이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꼬맹이들이 다시 보였다. 예정되지 않은 죽음으로부터 구해냈을 때에 비해 많이 자랐으나 태섭에게는 여전히 꼬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태섭은 이미 700년 넘은 천사고, 이들은 수명이 짧디 짧은 인간이니. 몇 살이 되어도 어리게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작게 숨을 내쉰 태섭이 말했다.

“천사는 무슨 천사. 요즘 세상에 천사가 어딨어?”

“아닌데, 진짜 천사님인데.”

“날개는 어디갔어용?”

“형아가 말을 하면 좀 들을래?”

그 요즘 세상 천사 여기있는 건 맞지만. 태섭은 아이들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더라. 아이가 때묻기 전까진 순수한 존재라곤 하지만,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단순한 호기심 정도가 아닐까. 기억을 지울까 하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멈춘다. 딱히 기억에 손 대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을 것이다. 지금 시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천사는 아니지만 길 잃은 너희를 집에 데려다 줄 수는 있지.”

그렇게 어린 거 아닌데,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손을 쭉 뻗어온다. 태섭이 양 손에 하나씩 아이들의 손을 쥐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다. 천사님, 안녕!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척 손만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천사님! 안녕!”

“뿅.”

“…….”

태섭이 이마를 짚었다. 천사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그럼 천사인 증거를 대보라고 하니 우물쭈물한다.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는 걸 보면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캐물어도 도통 입을 열질 않았다. 계속 추궁하니 하는 말이 그거다.

“농구하는 거 봤는데, 뛰어오르는 게 천사 같았어!”

“슛은 못 하지만 뿅.”

꼬맹이들의 말에 태섭은 진지하게 자신이 농구를 하면서 날개를 꺼냈는지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그 와중에 뭐? 슛을 못 해? 이 자식이 쪼그만 게 벌써부터 농구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꼬맹이들이 하는 말들이 되지도 않은 말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자꾸 천사를 들먹이면서 무언가 아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게 신경쓰였다.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확신에 찬 눈빛과, 목소리였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기억을 지워야 하나 싶었으나 금새 다른 화제로 종알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깨에 힘이 탁 풀렸다. 아직까지는 어린애들이라는 건가 싶었다. 굳이 힘 쓰고 통증을 느끼느니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린애들한테까지 손 대고 싶지 않기도 했고.


꼬맹이들은, 그러니까 뿅뿅거리는 명헌과 당돌한 우성은 태섭의 집에 잘도 찾아왔다. 아라와 비슷한 나이 또래이기도 하고, 이웃사촌이라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기에 출입이 자연스러웠다. 인간 세상에서 농구에 취미를 붙인 태섭의 농구공을 가지고 같이 놀기도 했다.

“천사님은 고등학교 어디로 갈 거야?”

“천사 아니라니까 계속 그러네. 나는 북산으로 갈 거야.”

“산왕이 아니고용? 농구 최강은 산왕이잖아용.”

“최강이니까 쓰러뜨리는 게 의미가 있지.”

“엑. 악당같은 말투.”

천사에게 악당이라니. 태섭이 우성의 입술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그으래! 악당 등장이시다!”

아이들에게서 꺄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라가 어려 자주 놀아준 덕분인지 꼬맹이들도 태섭이 놀아주면 아주 좋아했다. 천사님이 술래다뿅! 하는 목소리에 설렘이 가득했다. 우다다 태섭의 집 어딘가로 사라지는 꼬맹이들을 천천히 찾는다. 꼬맹이들은 태섭의 방에 숨어있었다. 주먹을 꼭 쥔 채 숨어있는 걸 놀래켰더니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태섭은 아이들의 주먹쥔 손에 무엇이 쥐어져있는지를 보지 못했다.


“천사님은 왜 키가 안 커?”

“역시 천사라서 나이를 안 먹는 거다 뿅.”

“너희가 미친듯이 큰 거거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태섭의 무릎만하던 꼬맹이들이 정말 말 그대로 미친듯이 자라기 시작했다. 전처럼 매일같이 마주치지 않은 탓인지 성장을 더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인간의 성장속도가 맞나 싶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성장이었다. 그 까닭인지 꼬맹이들은 무릎과 발목 위주로 성장통을 자주 호소했다. 태섭은 자신을 놀리기 바쁜 망할 꼬맹이들을 위해 얼음팩을 가져와 끙끙 거리는 그들에게 찜질을 해주었다. 인간 세상은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며 가면 갈수록 성장 역시 빨라진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명헌도, 우성도 자신을 빤히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단정하고 까만 교복을 입은 꼬맹이들이 낯설었다.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은 아라를 봤을 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카오루는 아이들의 중학교 입학식 사진을 찍으며 태섭을 불렀다. 태섭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오빠! 빨리와! 하는 아라의 재촉에 못 이겨 그들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명헌과 우성이 태섭의 팔짱을 끼고, 아라가 태섭의 앞에 섰다. 태섭이 저도 모르게 아라를 가볍게 안았다. 얼핏 웃었던 것도 같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들었다. 멍하게 앞을 보던 카오루가 정말로 기쁜 듯 웃었을 때는, 태섭도 정말 웃고 말았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으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날갯죽지에서 시작되는 통증이 잦아들었다. 잠을 자다가도 식은땀에 푹 젖어 깨어날 정도로 심해졌다. 인간 세상의 진통제를 집어삼키고 부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기도를 올린다. 흰 날개 밑으로 검은 진물이 뚝 떨어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기도에 응하지 않았다.

태섭이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

“…응.”

아버지로부터 응답이 없었지만, 천국으로부터 다른 천사가 파견을 나왔다. 태섭과 백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름을 받아 함께 지내는 달재는 걱정어린 표정으로 태섭을 보고 있었다. 달재의 검은 눈이 순간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금빛 눈이 태섭의 검게 물들어가는 날개를 응시했다. 등쪽으로 손을 얹자 약하게 금빛이 흘러나온다. 와락 구겨져있던 태섭의 인상이 살짝 풀리는 것이 보였다.

“성당에서 매일같이 미사를 드리고 성체를 받아모시는데도 회복이 더뎌. 예정되지 않은 죽음을 걷어낸 것 뿐인데 이게 그렇게 큰 죄야?”

“태섭아…….”

이를 가는 태섭을 달재가 안타깝게 보았다. 달재가 태섭을 만나자마자 치유의 힘을 사용했으나 큰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응답도 들리지 않는걸 보면 태섭이 정말로 아버지가 등 돌릴만한 죄를 지었다는 건데,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천국에 다시 가봐야할 것 같았으나 태섭의 상태가 날로 좋지 않아지고 있었기에 그를 두고 갈 수도 없었다. 백호의 활동에 태섭의 힘이 필요했기에 그를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천사로서의 힘을 잃고 있는 그를 천국에 데려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태섭의 말에 의하면 죽음의 검은 천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고 했다. 죽음이 예정된 자에게 검은 천이 헤맬 리 없었다. 순간 예정되지 않은 죽음을 걷어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으나 얘기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랬다면, 태섭은 백호와 마찬가지로 예정된 죽음을 걷어낸 게 되니까.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끼면 천사라고 할지라도 공격할 수 있었다. 고통받고 있는 태섭과 활동제약에 걸린 백호처럼. 태섭은 아이들에게 드리워진 검은 천이 예정된 죽음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확실하지 않은 의견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고통에 신음하는 그에게 치유의 빛을 보내 고통의 정도를 덜어낼 뿐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날이었다. 태섭은 선생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창가를 보았다. 날이 좋았다. 이 도시의 끝에는 바다가 있었다. 태섭은 그 바다가 좋았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아있는 것을 보는 게 좋았다. 모든 것이 조용했다. 고요했다. 이상할 정도로.

미묘한 기시감을 느낌과 동시에 익숙한 기운이 바다쪽에서 느껴졌다. 턱을 괸 손이 툭 떨어졌다. 달재가 태섭을 보고, 태섭의 휴대폰이 울렸다. 태섭이 달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냐는 선생의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교실을 뛰쳐나갔다. 선생의 고함소리와 달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받는다.

- 강백호 어디있어!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바다쪽에서 느껴진 익숙한 기운을 상기한다. 입을 여는 태섭의 목소리가 문득 떨린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집에만 있을 애를 왜 찾아?”

- 뭐? 백호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네가 얘기한 것도 없는데 왜… 뭐야. 무슨 일인데? 백호한테 무슨 일 생겼어?!”

가슴이 뛰었다. 인간의, 호열이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 백호랑 바다 위에 벚나무가 필 수 있냐 없냐 하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무어라 얘기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앓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행동제약이 걸린 상태에서 억지로 벗어난 데다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힘을 쓰게 되면…! 태섭이 이를 악 물었다 놓으며 외쳤다.

“거기 어디야!”

이 바보가 진짜!


“응?”

“뿅?”

학교 급실소에서 마주보고 밥을 먹던 우성이 멈칫했다. 명헌이 우성을 보고, 우성이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명헌이 두꺼운 눈썹을 살풋 찡그렸다.

“잃어버리면 어떡하려고 가져왔어 뿅.”

“그치만 너도 갖고 다니잖아.”

“난 안 잃어버리니까용.”

뺨을 부풀렸던 우성이 조심스레 손을 폈다. 항상 흰 빛을 내던 깃털이 잿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두 소년의 시선이 흔들렸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동시에 일어섰다. 식판을 정리하지도 못 하고 급식소를 뛰쳐나온다. 명헌이 카오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하느라 길게 늘어지던 신호음이 끊기고, 전화가 연결된다.

- 어머, 명헌아. 무슨 일이니?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셔?

“천사님이, 천사님이 위험해용…!”

- 응? 그게 무슨…….

학교 앞까지 순식간에 빠져나온 우성이 옆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태섭 형아 깃털이 까매지고 있어요!! 빨리 가야해요!!”

- 뭐? 그걸 너희가 어떻게, 아니, 너희 어디니! 아줌마가 지금 바로 갈게!


해변을 걷고 있던 사람들도, 물놀이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도,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던 사람들도 모두 홀린 듯 바다를 보았다. 바다 위로 거대한 벚나무가 솟아있었다. 푸른 수면이 분홍빛을 비추고, 보랏빛과 주홍빛 사이의 어딘가로 물들어가는 하늘 사이로 분홍빛의 벚꽃잎이 흩날렸다. 태섭이 검은 진물이 흐르는 날개를 힘껏 움직였다. 해변의 모래 위로 무릎 꿇고 앉은 호열의 모습이 보였다. 바다 위에 자라난 벚나무를 다시 보았다. 태섭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날개를 접어 빠르게 하강한 그가 호열의 어깨를 강하게 짚었다. 시간이 없었다. 그의 진심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의 진심을 확인한 태섭이 잠시 숨을 골랐다. 모두가 있는 앞에서 날개를 펼쳤다. 눈부신 금빛이 태섭의 몸을 휘감았다. 날개의 반 이상이 검게 물들어있었다. 타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태섭이 바다 위에 거대하게 자리한 벚나무보다 더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어째서인지 이 상황에서 농구하는 모습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는 우성의 목소리와 슛을 못하더라는 명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피식 웃음이 샜다. 결국엔 그 꼬맹이들이 말 한 게 맞았다는 걸 얘기하지 못 했네, 하고 생각했다. 바다 위의 벚나무를 보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태섭을 향했다. 태섭이 땅 위로 선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날개를 활짝 폈다.

[지금 이 것을 본 모든 인간의 기억과 저장장치의 기록은 모두 사라지고, 그대들이 본 것을 영원히 잊으라.]

갖고 있는 모든 힘을 방출했다. 금빛이 순식간에 하늘을 물들였다. 그대로 퍼져나간다. 벚나무 위로, 인간들의 위로, 인간들이 찍고 있는 휴대폰과 카메라로 금빛이 퍼져나간다. 함부로 죽음이 드리운 천을 걷어낸 후배 천사를 도울 때에도, 예정되지 않은 죽음으로 헤매던 검은 천을 걷어내고 꼬맹이 둘을 살렸을 때에도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이 태섭의 전신을 가득 채웠다. 태섭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머리 위로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다. 기도를 해도 응답하지 않던 아버지가 지금, 그에게 답을 주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태섭이 예정되지 않은 죽음을 걷어낸 것은 그의 잘못된 판단이었기에.

인간의 삶에 관여했기에.

날개가 타락해 검게 짓무르는 죗값을 치루면서도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기에.

태섭의 위로 벼락이 내려친다. 등을 긁어낸 벼락으로 날개가 순식간에 검게 타올랐다. 전신에 내려꽂히는 벼락에 눈 앞이 검게 물들었다. 태섭의 주위로 퍼져나가던 금빛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태섭아!!!!”

“태섭!!”

“송태섭!”

아.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태섭이 느리게 눈을 떴다. 그 먼 곳에서도 뚜렷하게 자신을 부른 이들이 보였다. 두 손을 모아 입가를 가리고 있는 카오루와, 자신을 보며 바다로 달려드는 명헌, 그리고 따라 달려오는 우성의 손에 쥐어진 검게 물든 깃털 하나가 보였다.

아.

그랬구나.

꼬맹이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기억하고 있었구나. 내가 그 때 만났던 천사라는 걸.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벚나무가 사라지고 파도에 떠밀려온, 사라져가는 백호의 몸을 끌어안은 채 호열이 멍하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백호는 천사의 힘을 박탈당한 게 아니니 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저 녀석을 심판하시는 게 아니라면. 태섭이 추락하면서 생각했다.

태섭의 몸이 힘없이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벼락에 지져져 타버린 날개 깃들이, 볼품없이 바닷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모습을 멍하게 보았다. 달재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몸을 감싸던 금빛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천사 자격을 완전히 박탈당했음을 느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무겁게 가라앉아가던 몸이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다.

“하하…….”

그를 건져내느라 온 몸이 푹 젖은 명헌과 우성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태섭이 약하게 웃었다.

“이젠 진짜 천사가 아니게 되었네. 어쩌지.”

언제까지고 태섭에게 꼬맹이일 두 소년이 그를 끌어안았다. 태섭이 눈을 감았다. 소년들이 끌어안은 사이로, 파도에 몸이 밀려나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거짓말 하려고 했던 건 아니야. 나를 기억하는… 어릴 적 기억은 순수를 잃게 되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신앙이 없거나 순수하지 않은 인간은 천사를 볼 수 없으니까. 기억을 지울까 하다가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거니까 지우지 않았어.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건 카오루… 어머니 뿐이었지만,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 했어도 너희가 나를 볼 수 있었던 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여태 기억을 지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너희가 나를 계속 기억했으면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을지도.”

태섭이 눈을 떴다. 꼬맹이들에게서 떨어지는 눈물이 태섭의 뺨으로 떨어져 그대로 흘러내렸다.

“너희가 알던 천사는 이제 없어. 그래도 괜찮아? 실망하지 않아?”

그 말에 눈물만 뚝뚝 흘리던 꼬맹이들이 결국 울음을 놓고 말았다. 실망하지 않아! 괜찮아! 하고 외친다. 태섭을 안고 엉엉 운다. 그 소리가 제법 시끄러워 인상을 찌푸렸다가, 피식 웃었다. 눈이 감겨들었다. 몸이 파도에 일렁이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북산에 1년만 더 다니면 안 돼? 유급하면 되잖아! 농구 계속 같이 해야하니까 2년! 응?”

“매치업 꼭 하고 싶었는데용. 최강 산왕에 가게 되었는데 왜 태섭은 졸업하는 거죵.”

“제법 재수없는 소리를 잘도 하게 됐구나, 꼬맹이들아. 안그래도 콩나물처럼 자라는 게 꼴뵈기 싫더니.”

“태섭이가 키 안 크는 걸 왜 우릴 탓해?”

“태섭은 작고 재빠른 타입이라 귀찮을 것 같지만 뿅. 보기 드문 타입이라 꼭 맞붙고 싶었는데.”

“죽고잡냐, 정우성? 매치업할 일도 없는데 귀찮다 소리하지마라, 이명헌! 그리고! 좀! 떨어져!”

양쪽에서 짜부러뜨리기라도 할 것 마냥 붙어오는 걸 격한 움직임으로 벗어난 태섭이 외쳤다.

태섭은 인간이 되었고, 날갯죽지와 옆구리에 녹아 찢긴 날개와 벼락으로 흉터가 남았으며, 평생 꼬맹이였을 명헌과 우성은 태섭으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 정도로 무섭게 성장했다. 질색팔색을 하는 태섭에게 양쪽에서 다시 붙어오며 태섭보다, 명헌보다 키가 커진 우성이 말했다.

“싫-어! 천사님 어떻게 찾았는데, 또 정체 숨기고 사라지면 어떡해?”

“내가 숨었었냐? 그저 말을 안했을 뿐이잖아! 그리고! 이제 진짜 인간이라고 몇 번을 말해?”

우성의 말에 그를 흘기며 태섭이 답하자 반대쪽에서 태섭보다, 우성보다 덩치가 커진 명헌이 말했다.

“꼬맹이였을 때 태섭이 지켜줬으니까 앞으로는 우리가 지켜줄 거에용.”

으악! 태섭이 비명을 질렀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명헌! 밀지 마! 네 덩치로 밀면 나 진짜 터진다니까! 정우성! 너까지 반대쪽에서 밀지 말라고!”

“사라지지마~ 송태섭!”

“사라지지 마용~”

“하… 정말이지, 그렇다면……!”

“뿅!”

“앗!”

명헌과 우성 사이에서 존프레스 당하던 태섭이 그들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오며 그대로 달려나갔다. 당황스러워 하던 둘이 황급히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술래잡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천사님 찾아요!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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