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우성태섭명헌] 밴드X키스X매니저

* 모든 캐릭터들이 성인으로 등장

* 사알짝 빻은 소재

* 밴드물 잘 모름

* 밴드 아이돌 연하 우성 X 매니저 연상 태섭 X 밴드 아이돌 연하 명헌

** 야악간 산왕 X 태섭 분위기 있음

*** 글리프 연성 2주차 <밴드>

***

[오늘 공연 끝나고 꼭 포카랑 싸인 받아줘야 해!! - 송아라]

“으이구…….”

환호와 음악소리로 열광중인 무대 뒤편에서 태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인 송아라가 좋아하는 이 밴드 아이돌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는 걸 들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속 시끄럽진 않았을텐데. 알바를 투잡 쓰리잡 하고 있다고 얘기해왔는데 동에 번쩍 서에 반짝하는 게 아이돌 매니저로 여기저기 픽업다니고 관련 업무때문에 현장 많이 나가있었는데, 하필 이 밴드 아이돌의 팬 중 하나의 사진에 함께 찍혀 SNS 에 업로드된 탓에 딱 걸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는 동생을 애써 못 본 척 태섭이 선글라스를 고쳐썼다. 곧 무대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을 울려대는 스피커 너머로 앵콜곡이 일곱번 째 들려오고 있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무대의 끝이 다가올 수록 태섭이 긴장한 얼굴로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밴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모든 작곡, 작사 등을 알아서 하는 만능 아이돌 ‘산왕’의 매니저를 맡은지 약 7개월이 지났다. 아이돌인지라 전국 혹은 세계 각국으로 콘서트가 잡히면 태섭 역시 따라나서야 했다. 매니저니까. 여기저기 여행 아닌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고, 모두 회사에서 경비처리 해주는데다 지원까지 빵빵해줘서 좋았다. 페이도 좋았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을 달리는 청춘들이지만 매니지먼트를 잘 만난 덕인지 예의까지 발랐다.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들어 태섭 역시 이 일을 7개월이나 유지하고 있었다. 단 한가지, 부담스러운 항목만 제외하면.

팬들들의 열광어린 목소리가 무대를 달궜다. 무대의 끝을 알리는 음악 끝맺음에 태섭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번 무대는 밴드 아이돌 ‘산왕’이 해온 무대 중에 가장 규모가 컸다. 콘서트 티켓 오픈하자마자 4초만에 전석이 매진될 정도였고, 회사에서 비용을 더 지불하여 더 큰 장소로 무대를 옮겼으나 이 역시 9초만에 전석 매진일 정도로 어마무시한 인기였다. ‘산왕’은 미모, 인성, 실력 모두 다 최상위권인 밴드 아이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열애설이 터지는 것도 아니고, 인성 논란이 터지는 것도 아니고. 멤버마다 주력하는 프로그램도 하나 이상 꿰차고 있어 일상에서도, 음악에서도 ‘산왕’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초인기 그룹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열애설이 터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태섭은 그 부분에 제법 긴장했다. 그런 소문을 들은 적 있는가? 무대에서 잔뜩 흥분한 뮤지션들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무대에서 멤버들 간에 키스를 나눈다는 소문. 같은 성을 가지고 있어도 그 소문은 피해갈 수 없었다. ‘산왕’ 매니저로 일하면서 숱하게 봐온 광경이었다. 일부, 그러니까 일명 음지에서 활동하는 팬들이 분명 있을텐데. 태섭은 매니저 활동의 일환으로 ‘산왕’ 멤버들의 이름이나 초성, 팬들이 별명 등을 모두 검색해 관련 반응을 모조리 확인했기 때문에 이들을 붙여놓고 커플 놀이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으로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 그룹이라 그런 오해를 사기에도 충분했고, 무대 중에 흥분해 서로에게 키스를 갈기는 모습도 여러 차례였으니 이런 게 흥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긴 했다.

자, 다시 한 번 주목해보자. 무대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키스라는 사고를 치는데 ‘열애설이 터지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태섭의 페이가 다른 아이돌 매니저들에 비해 꽤나 쎈 이유가 되기 충분했다.

그랬다.

태섭은 밴드 아이돌 ‘산왕’의 매니저이자, 이들의 시선이 밖으로 튀지 않게 적정선에서 케어하는 ‘키스 매니저’ 였다.

***

그래도 다른 멤버들은 이놈들에 비해 제법 이성적이지. 태섭은 제 입술을 거칠게 핥고 빨아올리는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입술을 빨리기 무섭게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간다. 아까보다 두툼한 입술과 혀가 제 입술을 덮쳐왔다. 태섭은 양쪽에서 정신없이 제 고개를 돌려가며 키스해오는 남자들의 어깨를 퍽퍽 쳤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눈이 돌아있다 싶더라니 누구 보는 게 무섭지도 않은지 입술 먼저 들이댄다.

일렉기타의 정우성, 베이스의 이명헌이 태섭에게 가장 많이 들러붙는 멤버였다. 나머지 드럼의 신현철이라던가, 건반의 김낙수, 서브 기타의 최동오와 서브 베이스의 정성구는 이미 무대에서 서로에게 한번씩 키스를 한 덕분인지 태섭에게까지 달려들지는 않았다. 정신없이 입술을 빨리는 태섭을 멀거니 보던 신현철이 고개를 저으며 선두에 나서 엉겨붙어있는 셋을 피해 땀을 닦아냈다. 태섭의 시선을 느낀 최동오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하고, 저걸 어쩌나 하고 쳐다보는 정성구를 김낙수가 뒤에서 밀어 그냥 지나가버린다. 나쁜 놈들.

“하아… 태섭아. 오늘 무대 어땠어?”

“오늘 완전 찢었는데용.”

입을 열 틈도 안 주면서 저런 얘기나 하고 있다.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온 태섭이 손바닥을 들어 둘의 옆구리를 한쪽씩 매섭게 내리쳤다. 사나운 소리가 울려퍼지고 나서야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서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태섭에게서 물러난다.

“너네 하는 무대마다 죄다 찢고있으니까 빨리 흥분 가라앉히고 가서 물이나 마셔.”

눈물 한 방울 달고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우성과 너무하다며 태섭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오는 명헌의 멱살을 쥐고 자신보다 큰 두 남자를 질질 끌고 가는 태섭의 이 역할이, 아무래도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포카랑 싸인 받아달라고? 송아라 이 지지배. 속도 편한 소릴. 이 오빠는 입술이 남아나질 않고 있다고!

***

“확실히 열애설을 잠재울 방법이 있는데 궁금하지 않아, 태섭아?”

“열애설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내부에서 열렬하게 사랑하면 되는데 뿅.”

“응. 꿈 깨. 너네끼리 사귀면 팬들은 좋아할듯.”

“정우성이나 이명헌이 매니저 형한테 하도 들러붙어대서 형도 그 사이에 껴있는 건 알고 얘기하는 거지?”

“현철아, 제발.”

“팬들에게 꿈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자, 태섭아!”

“무대에서 키스해도 되나용?”

“그래봐라. 너네 나 무대 올리는 순간 사직서임.”

너무해! 너무해용…. 너무는 지랄……. 시무룩한 두 빡빡이-밴드 아이돌 ‘산왕’의 컨셉. 모든 멤버가 빡빡머리를 하고 있는데도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머리를 기른 앨범 자켓은 나오자마자 품절을 찍어서 재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를 깔끔하게 무시한 태섭이 둘에게 이온음료와 물을 내밀었다. 땀에 푹 젖은 다른 멤버들도 이온음료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주었다. 일정을 관리하는 패드를 꺼내 스케쥴을 확인하는데 땀을 닦아낸 우성과 명헌이 태섭의 어깨 한쪽씩 턱을 올렸다. 태섭의 짝 다른 눈썹이 솟았다.

“무겁다, 비켜라.”

“이 열기가 너무 좋아서 오늘 다른 스케쥴은 없으면 좋겠는데에.”

“라디오 스케쥴 있는데, 다 갈 필요는 없어. 가고 싶은 사람?”

정성구와 최동오가 손을 들었다. 태섭이 검지를 들어올리자 신현철이 느릿하게 손을 들어올린다.

“토크쇼 예능 있어. 한 사람?”

김낙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신현철이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고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

“하, 씨…….”

밤까지 이어지는 스케쥴에 태섭이 속으로 혀를 찼다. 무대가 가장 즐거울 녀석들에게 다른 스케쥴을 안겨주는 게 그 역시 마땅치 않았지만, 인지도나 인기 관리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프로그램 참여에 강제성을 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서로 조율하는 부분이 있으니 다행이고. 태섭이 자연스럽게 우성과 명헌의 머리를 밀어내자, 순순히 밀려난다. 스케쥴에 지장가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눈물나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산왕’의 밴 운전석에 태섭이 올라타고, 멤버들이 순서대로 탑승한다.

“가는 동안 눈 좀 붙여. 다들 최고의 무대 만든다고 고생했어.”

“우리 무대 어땠어?”

우성이 다시 물었다. 태섭이 그를 보다 픽 웃었다.

“물을 거 있어? 너희는 언제나 최고의 밴드인 걸.”

***

스케쥴이 있는 멤버들을 모두 내려주고 난 후, 태섭이 우성과 명헌을 숙소에 데려다주었다.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태섭이 둘의 키스 공격으로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안 가?”

“키스 또 하고 싶은데…….”

“큰 일 날 소리 한다, 또.”

“태섭 입술 말랑해서 기분 좋은데 뿅.”

“내가 형인거 잊지 마라, 너네.”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말똥한 눈으로 쳐다본다. 태섭이 그런 둘을 질린다는 듯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뒤에 탑승했다.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려는 둘을 멈춰세운 태섭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 하고 해.”

“동생분 꺼?”

“그래.”

“싸인이랑 포토카드로 태섭과 키스를 양껏 할 수 있다니 너무 싼 거 아닌가용.”

“싫음 말던가. 이따가 다른 애들 오면 입술 주고 싸인이랑 포카 받을 거야.”

“앗! 그건 싫어!”

우성이 먼저 태섭의 손에 쥐어진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싸인지를 낚아챘다. 정신없이 사진찍고-송아라는 폴라로이드를 더 좋아할 거라는 건 태섭의 판단이다-있는 우성을 보던 명헌이 태섭에게 물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안 받아주는 이유가 뭐지용?”

“말이라고 해, 그걸?”

“열애설도 안나고 우리도 엉뚱한 곳으로 시선 안 돌리고 좋잖아용. …다른 녀석들이랑 입술 부비고 있는 거 보기 싫다 뿅.”

“내 월급의 대부분이 너네랑 하는 키스값이고 비밀 유지값이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우성이 폴라로이드 필름이 선명하게 나타날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 서둘러 싸인을 하고는 태섭의 옆에 앉았다. 명헌이 뚱한 얼굴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비밀로 하고 사귀면 안 돼? 나 진짜 태섭이랑 키스도 많이 하고 싶고 그 이상도 많이 하고 싶-.”

“거기까지 해라, 좋은 말로 할 때.”

우성의 큰 손이 태섭의 허벅지를 은근하게 쥐었다. 오랜 시간 기타를 만져온 손 끝이 단단했다. 태섭이 손을 내려 그의 손목을 꽉 움켜쥐며 낮게 중얼거렸다. 우성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순순히 물러난다.

“이 정도 사이가 적당해.”

태섭의 말에 둘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태섭이 사진과 싸인을 확인하더니 아라에게 줄 봉투에 담으며 말했다.

“사귄다는 건 언젠가 헤어진다는 뜻 아냐? 괜히 사사로운 일로 싸우고 감정의 골 깊어져서 서로의 앞날에 방해되는 건 질색이야. 너흰 언제까지나 최강의 밴드 아이돌 ‘산왕’ 이어야 하니까. 너희의 앞날에 내가 발목 잡는 것도 싫고.”

“은퇴할까…….”

“죽는다, 진짜.”

“그럼 그룹 ‘산왕’이 아니라 솔로면 되는 건가용?”

“얘들아 제발 그만…….”

태섭이 사진들을 다 정리하고는 둘을 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얘기할 거면 키스 하지 말고 숙소 가서 잠이나 자.”

우성이고 명헌이고 붕붕 소리날 정도로 고개를 저어댔다. 한숨을 내쉰 태섭이 한 칸 남겨놓고 채운 셔츠의 단추를 풀며 말했다.

“상체까지는 만져도 뭐라고 안 할테니까… 오늘은 그만. 알았지?”

잘 태닝한 갈색 피부가 셔츠 속으로 탄탄한 근육 라인을 뽐내고 있었다. 우성의 눈이 돌아가고, 명헌이 냉큼 손을 들어 태섭의 가슴을 짚는다. 얼굴을 감싸오는 커다란 손과, 맞물려오는 부드러운 입술. 상체를 더듬어오는 농밀한 손길에 태섭이 눈을 감았다.

아라한테 들키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라고.

- 밴드X키스X매니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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