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명헌태섭우성] HOME

* 성인

* 국내 리그 활동 중

명헌은 감독, 우성과 태섭은 미국활동 하다 국내 전향

** 이들의 일정에 대해서는 날조 479%

*** 실시간 저장과 시간여행 기능을 믿었는데 반 날아간 내용을 못 살려서 망했어……ㅠ

**** 노출이 부담스럽지만 글리프 연성 챌린지 1주차

***

원정 훈련은, 나가있는 동안 훈련과 시합과 이동으로 정신이 없어 훈련 당시보다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점이 더 피곤했다. 태섭은 원정에 해당되지 않았던 타팀 감독 명헌과 마찬가지로 타팀 선수 우성을 소리없이 부러워하며 해가 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등진 채 집으로 향했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니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었다. 내 집이니까. 지금쯤 둘은 자고 있을까, 농구하고 있을까. 아니면 경기 분석을 핑계로 옛추억에 젖어있을까. 반가운 도어락의 울림을 들으며 문을 열던 태섭이 순간 멈칫한다.

문이 느리게 닫힌다. 도어락이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태섭이 멍하게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농구화. 익숙한 구두. 각자 우성과 명헌이 신는 것이었다. 같이 살면서 맞춘 러닝화도 보였다. 고개를 들자 눈높이에 맞춘 액자 하나가 시야에 잡힌다. 어색해 하는 태섭을 가운데 두고 외계인 선글라스를 끼고 양손에 브이자를 해보인 명헌이 왼쪽에, 세상 즐거운 얼굴로 웃고있는 우성이 오른쪽에 선 채로 비좁게 찍은 사진을 끼워놓은 것이었다.

- …….

태섭의 입술이 달싹였다. 금방이라도 태섭아! 왔어? 고생했다 뿅. 하고 들려올 것만 같았다. 태섭의 갈색눈에 빛이 일렁인다.

- 태섭아! 왔으면 왔다고 해야지 왜…….

- …무슨 일 있나용?

- …….

바로 지금처럼.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는데 인기척조차 없는 태섭에 어리둥절 현관으로 나온 명헌이 입을 살짝 벌리고, 우성이 입을 다물었다.

태섭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둘을 봤다가, 고개를 내려 신발들을 보다가. 다시 둘을 보다가.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 다…….

태섭의 입술이 벌어지며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에 입을 다물고, 점차 쏟아지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다 눈을 비벼댔다. 손등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이 미처 닦아내지 못한 사이로 눈물이 뺨을 적시고, 턱 끝에 매달리다 그대로 떨어져내린다.

- 다녀왔, 윽…….

태섭이 그 자리에 쪼그려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무의식적으로 같이 쪼그려앉은 우성이 그를 와락 껴안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서럽게 했는지 우성도, 명헌도 알 수 없었으나 이렇게 엉엉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지라 그저 안아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 바람에 눈물콧물 엉망인 뺨을, 같이 쭈구려앉은 명헌이 맨손으로 닦아내었다. 뺨에 닿은 손 끝으로 태섭의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잔뜩 젖은 뺨 위로 입을 맞추었다.

우성의 온기와 명헌의 손길을 느끼면서 태섭이 울고, 또 울었다. 울음에 못 다한 목소리를 겨우 쥐어짜내면서.

- 다녀왔습니다…….

***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고난 태섭이 둘을 데리고 바다가 보이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집 밖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으나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고향을 향해 달리는 차 안으로 태섭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농구를 좋아하고 출중한 재능을 가진 형의 존재. 형과 함께 농구를 하던 시절. 행복한 가정.

아버지의 실종. 어머니의 슬픔. 주장이 된 형과 부주장이 된 자신. 어린 여동생.

농구를 할 때 가장 빛났던 형. 자신을 두고 놀러가버린 형이 미워 해선 안되는 말을 했던 날. 돌아오지 않은 형. 어머니의 두번째 슬픔. 이사. 폭력. 고등학교. 쓰레기 같았던 눈. 고향의 바다가 보였던 순간까지.

운전하는 명헌과 뒷좌석에 탄 우성이 조용히 태섭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태 만나오며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태섭은 제 얘기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었고, 명헌이나 우성도 그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먼저 얘기하지 않으니 일부러 묻지 않았다. 그랬던 태섭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작게. 천천히.

***

도로를 달리는 동안 쏟아지던 빗줄기는 태섭의 고향 바닷가에 도착하니 그쳐있었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힘들다 얘기하지 않았다. 바닷바람과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잠 없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셋을 맞이했다.

태섭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두 사내 역시 태섭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동굴…….

- …이렇게 보니 정말 작아보이네. 고등학생 때의 나도 좁아서 조심스러웠는데 당연한가.

태섭이 운동화를 벗었다. 명헌이 말리기도 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젖은 모래 위로 푹 꺼지는 발을 느끼며 태섭이 동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명헌과 우성이 서로를 보다 그들 역시 태섭이 그랬던 것처럼 운동화를 벗는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가 푹신했다. 맨발로 해변을 거닐던 게 언젯적인지 까마득했다. 둘은 말없이 태섭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바닷바람이 나부끼며 태섭의 머리와 옷을 흔들어댔다. 태섭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보았다. 비 온 뒤의 먹구름이 흩어지며 수평선 너머로 어렴풋하게 빛이 오르고 있었다. 해가 떠오를 시간이 될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소중한 가족의 반을 앗아간 바다임에도 바닷바람을 느끼며 미소를 띄고 있는 그는… 자유로워 보였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두 사내는 그에게서 자유를 보았다. 해방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태섭이 바닷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고 양 팔을 살짝 벌려보인 자세가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새벽녘의 바닷바람을 양껏 들이마신 태섭이 눈을 뜨곤 동굴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 올라가는 건 위험하겠네.

아쉬움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이내 자신을 뒤따라오면서도 제 눈치보느라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 하는 두 사내를 돌아보았다.

바닷바람이 불며 흐트러진 곱슬 머리 사이로 손빗질을 한다. 조금 가라앉았으나 여전히 눈이 부어있는 게 느껴졌다. 태섭이 동굴을 뒤로 하고는 둘의 앞에 섰다. 맨발 위로 모래가 잔뜩 묻어있었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태섭이 입을 열었다.

- 나는 오랜 시간을 겉돌았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명헌이 태섭을 보고, 우성이 태섭의 검지 위로 제 손가락을 걸어 잡았다. 그런 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손가락에 걸린 연인의 손가락을 본다.

- 형이 그렇게 된 건 내 탓이고, 어머니를 슬프게 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어. 어머니가 나를 보며 형을 생각하고, 농구를 못 하게 하는 게 싫었어. 이사를 가면서 농구를 할 수 없는 환경에 화가 났고. 처음 겪는 일방적인 폭력에 절망했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태섭이 다시 동굴을 보았다. 바다를 보는 방향으로 동굴 입구가 나있는 탓에 해변가에서는 동굴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 저 동굴은… 두려울 때마다 숨은 곳이었어. 형과 나의 아지트이기도 했어서 뭔가 모르게 마음이 편했는데, 그 곳에서 바다를 보는 게 좋았던 것 같기도 해. 그 순간 만큼은 바다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거든.

잠시 말을 멈추고 오르면 위험할, 어느새 작아진 동굴을 본다. 손가락이 걸린 손에 힘을 주고 다시 연인들을 본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유와 해방이 느껴지는 표정이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 마음 둘 곳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어. 어머니는 일로 바쁘시고, 아라는 이사 후 새로운 환경과 학교, 친구에게 적응하기 위해 바빴지. 집에 가면 아무도 없는 시간이 많아서 더 가기 싫었던 것 같아. 다같이 있으면서도 잘 지내지도 못 했으면서.

- 당신들을 만나고, 함께하고, 함께 살게 되면서도 몰랐어. 그러다 오늘… 밤이 지났으니 어제인가. 다녀오니까 그제서야 보이더라고.

원정훈련으로 며칠 간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고 나니 깨달았다. 빈 집을 채우는 신발. 사진으로 보여주는 가족, 의 흔적. 언제든 잘 다녀왔냐고, 고생했다고 맞아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제게 있음을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의, 연인들의 존재로 하여금 정말로 혼자가 아니고, 항상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았다.

북산과 산왕의 시합 이후로 어머니와의 어색한 간극이 좁혀지고 조금씩 관계가 회복되어가는 걸 느끼는 게 어색했지만 행복했다. 적응을 더 하기도 전에 미국 유학이 결정되고 몇 년간 미국에서 지내며 가족간의 사이가 더욱 애틋해지는 만큼 혼자 지내는 순간이 고독했다.

그 고독과 외로움을 채워준 이가 명헌과 우성이었다. 왜 그때도 깨닫지 못 했나하면 낯선 환경과 실력자들만 모인 농구의 성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득바득 버티느라 치열하게 살아와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우성과 함께 귀국하여 감독이 된 명헌과 팀을 이루어 지내면서 가족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인이 되어있었다. 스며드는 관계였다고 생각했다. 연인이 되는 과정이 자연스러웠으니까. 셋이서 연애를 한다는 게 남들 보기에 당혹스러울 수 있겠지만 본인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우성과 태섭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다양성을 보고 배웠으며 명헌은… 뿅이니까. 뿅.

국내리그에 자리를 잡고, 집을 구해 셋이 살다가, 저마다 가족들에게 서로를 소개하고. 인정받기까지 숨막히는시간이 지나 결국 이 관계-다자연애, 동성연애-를 허락받고……. 치열하고 숨 가쁘게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았기에 태섭은 이 감각을 여태 느끼지 못 했던 걸지도 모른다.

숨을 고르며 태섭이 말을 이었다.

- 나의 집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곤 웃었다. 태섭의 고백과 미소를 멍하니 보다 그제서야 둘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성의 눈가가 붉었다. 명헌이 태섭의 뒤를 비추는 일출로 시선을 옮기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 무지개 뿅.

- 응?

- 아. 비가 왔어서 그런가?

떠오르는 태양과 잔잔히 일렁이는 수면 위로 무지개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우성이 탄성을 내뱉고 명헌이 휴대폰을 들어 무지개를 찍는다.

- …….

태섭이 그런 둘을 보다 저 역시 휴대폰을 꺼내든다. 명헌과 우성을 휴대폰 카메라 안에 담는다. 찰칵 소리와 함께 웃고있는 두 연인이 찍힌다.

휴대폰 화면 위로 가득잡힌 둘의 얼굴을 손끝으로 쓸어내린 태섭이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든 나를 기다려주고 반갑게 맞이해줄 나의 집.

나에게도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알려준 나의 무지개.

나의 집이자 무지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나의 연인.

- 태섭아! 같이 사진찍자! 사라지기 전에 얼른!

- 어! 갈게!

어느 새 무지개가 잘 보이는 곳까지 멀어진 둘을 쫓아 달리며 태섭이 달린다. 바닷바람이 그의 곁에서 흩어진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그려졌다.

행복이 흘러 넘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명헌과 우성 사이로 파고들어 팔짱을 끼고 손깍지를 낀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시선이 양쪽에서 느껴졌지만 태섭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자, 웃어!

하나, 둘, 셋!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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