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주 :: 밴드

경쾌한 기타 소리가 울렸다. 소리를 따라 시선 옮기니 길거리 밴드 공연이 한창이었다. 대여섯 남짓의 관객을 앞에 둔 채 자유롭게 줄을 튕기고, 스틱으로 드럼을 두드리는 모습에 팀은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빈말로라도 좋은 연주였다고는 못할 것이었으나,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팀이 모자를 조금 더 눌러 썼다. 활짝 열린 기타 케이스에 놓인 구겨진 지폐나 작은 동전 따위에도 언뜻 시선이 갔지만, 팀은 그가 ‘해야 할 일’을 해야했다. 이를테면 식료품 가게에 가서 식재료를 사오는 것. 그러고 보니 휴지도 슬슬 떨어져 가던가. 예산이 빠듯했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그랬다. 쌓아올린 부도, 찬란하던 명예도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마냥 떵떵거리며 살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으나―그랬던가? 그랬다고 치자―여유가 없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하다하다 휴지 걱정을 다 하게 생겼다니! 이런 생활은 조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팀의 입매가 일자로 굳게 다물어졌다. 그는 애써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겼다. 즐거운 듯 노래하는 낯선 이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모르는 곡이었다. 가사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수 소리가 작게 울린다. 어쩐지 기분이 껄끄러웠다. 팀은 무거운 발을 떼어 걸음을 재촉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루카는 TV를 보고 있었다. 요즘 제법 인기 있는 개그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렇게 재미있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원체 표정에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는 편이니까.) 팀이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말했다. “다음에는 TV가 없는 방을 구해야겠어.” 루카가 대번에 에에, 하고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 “왜?”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야지. 옵션이 줄어들면 값도 싸질 테니까.”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게 맞아. 어차피 별로 재밌게 보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자 소파의 등받이 쪽으로 고개를 젖힌 루카가 팀을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이따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소름 끼쳐 할 법도 한데, 팀은 그런 면에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퍽 단호하게 뱉었다. “심심하면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 저쪽에서 밴드 공연이라도 보고 오든가.”

“밴드?”

“그래, 근처에서 공연하던데.”

“흐음.” 안 내킨다는 투였다. 루카가 리모컨 버튼을 눌러 채널을 옮겼다. 홈쇼핑, 다큐멘터리, 음악. 채널에서는 마침 20년 전에나 유행하던 ‘고전적인’ 노래들을 모아 틀어주고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팀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 밴드가 공연하던 거, 아는 노래였네. 공교롭게도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팀은 리모컨을 빼앗아 TV의 전원을 꺼버렸다. 뚝, 하고 노래가 끊기며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루카가 “아아,” 하고 재차 불만스럽단 소리를 냈다. 팀은 아랑곳 않고 오히려 한숨이나 크게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녀석하고 이렇게 같이 지내게 된 거지? 골 아프다. 파트너로 제법 오래 일하긴 했지만 썩 편하거나 잘 맞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히려 조금 껄끄러운 면이 있다. 그래, 밴드 공연을 보고 돌아섰을 때처럼…….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만 같은데, 상대는 태연하게 물어오는 것만 같을 때 드는 그런 기분: “그렇게까지 조급하게 굴 건 없잖아?”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번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끌어내리는 듯한 불쾌한 감각. 팀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돌렸다. TV가 꺼진 방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럼 팀은 그제서야 루카가 굳이 흥미 없는 TV 프로그램이라도 일단 틀어두는 이유란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지만, ……. 그래도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 사이에 길거리 밴드에게 지폐 한 장을 놓아줄 여유나, 볼 필요도 없는 TV 프로그램을 틀어둘 이유는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팀이 짐을 풀었다. 식재료를 하나씩 꺼내놓던 팀이 낮게 침음했다.

휴지를 안 사왔네. 기분이 땅에 처박혔다.

되는 것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