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우성태섭명헌] 수인/오메가버스 au (프롤로그 )

* 수인au + 오메가버스au

* 뱀수인 명헌 X 코요테 수인 태섭 X 뱀수인 우성

** 아니 요즘에 왜이렇게 소재가 똑같아여

한번 꽂히니까 밑도끝도 없네여 감당하세여 이게 바로 나야…☆

*** 주의

- 구조를 빙자한 반강제 결혼 협박, 판타지성 au에 의한 캐릭터성 붕괴(느사 있었지만),

태섭이 아부지랑 형을 또 멀리 보냅니다…(사망소재)

* 뱀수인 명헌 X 코요테 수인 태섭 X 뱀수인 우성 이지만 이 편에서는 배암 두마리가 출현하지 않습니다.

**** 제목을 못 지어서 일단 비워놓음

멀리서 날아오는 맹금류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발톱 사이로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쥐어져있었다. 멀리서 그것을 보던 태섭은 콧바람을 한 번 내뱉을 뿐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잡히면 그대로 죽임을 당하는 시대다. 작은 도마뱀은 천적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것이고. 미약하게 몸에 열이 오르는 걸 보니 발정기가 다가오는 듯 했다. 태섭은 수컷이었지만 임신이 가능한 ‘오메가’ 개체였다. 모친과 어린 여동생을 제외한 부친과 형이 ‘알파’이기에 태섭의 호르몬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발정기가 다가올 때마다 그것을 억제하는 약을 타오곤 했다. 발정기가 찾아오는 주기가 규칙적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가족의 냄새를 까만 코가 맡아낸다. 멀지 않은 시간에 가족들이 안락한 굴에 도착할 것이다. 발정기가 오면 약을 먹고 며칠 푹 쉬어야 했다. 태섭은 눈을 감았다.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

작게 들리는 목소리는 허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각이 다른 눈썹을 한 차례 꿈틀거린 태섭이 눈을 떴다. 맹금류는 태섭의 머리 위 어딘가를 맴돌고 있었다. 적당히 내려앉을 곳을 찾는 모양이었다. 밑에 엎드리고 누운 자신을 발견한 작은 도마뱀의 구조요청이었다. 말을 하는 작은 도마뱀. 코요테 가족임에도 말을 할 수 있는 태섭의 가족. 태섭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몸을 일으킨다. 세상은 복잡했다. 두 발로 서서 집단을 이루는 ‘인간’이 있고, 말을 할 수 없는- 그러니까 작은 도마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저 맹금류와 같은 ‘동물’이 있었고, 작은 도마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는 ‘수인’이 존재했다. 크게 세 종족으로 나뉘고, 지성을 가지고 진화와 발전이 가능한 ‘인간’과 ‘수인’은 세분화하여 특정 호르몬에 반응하는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호르몬을 느낄 수 없고 낼 수도 없는 ‘베타’로 존재했다. 태섭이 ‘수인 오메가’ 이 듯이, 저 작은 도마뱀도 형질은 알 수 없지만 ‘수인’ 이라는 뜻이었다. ‘동물’인 맹금류의 손… 아니지. 발에 붙잡힌 것도 우습다면 우스웠다. 너무 작은 탓에 수화를 잘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뭐든 간에 ‘동물’이 아닌 ‘수인’이기에 태섭은 동류로써 그를 구해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세 종족 중 가장 개체가 적은 이가 ‘수인’ 이었으니.

태섭은 수풀 속에 엎드려 몸을 숨기고 맞바람이 부는 방향에 제 냄새를 지웠다. 맹금류가 주위를 배회하다 태섭의 굴 근처에 내려앉았다. 바람의 방향에 맞춰 느리게 움직이던 태섭이 컹! 소리를 내며 맹금류를 향해 뛰어올랐다. 소스라치게 놀란 맹금류가 발에 쥐고 있던 작은 도마뱀을 내던지고 날개를 퍼덕였다. 맹금류인데도 태섭에게 겁을 먹은 것은 ‘수인’의 전신수화가 ‘동물’보다 현저히 큰 탓이었다. 커다란 바위만한 들짐승이 덤벼드는데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작은 도마뱀을 놓친 것도 모른 채 맹금류가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던 태섭이 다시금 콧바람을 내뱉는다. 풀 속에 떨어진 작은 도마뱀은 찾기 힘들 정도로 작았다. 코를 킁킁거리며 풀 속을 들추는데 모기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태섭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 가,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이세요.

- ‘수인’이니까 도와야지. 가족은?

- 형들이 있어요. 아마 저를 찾고 있을 거에요.

- 멀어?

노란빛의 작은 도마뱀은 맹금류가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태섭 역시 그 방향을 본다. 까마득한 하늘 너머를 본 태섭이 작은 도마뱀을 보았다.

- 그 덩치로는 사흘밤낮을 걸어야겠지?

- …그럴 것 같아요…….

구해준 건 좋은데 조금 귀찮게 됐다. 태섭이 반대로 고개를 돌려 굴을 쳐다보았다. 휴식을 취해도 모자랄 판에 겁을 준답시고 몸을 크게 움직였더니 스물스물 올라오던 열기가 은근하게 퍼지고 있었다. 가족의 냄새가 가까워지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태섭이 까만 눈을 올망하게 뜬 작은 도마뱀을 보았다.

- 같이 가주고 싶어도, 내가 약을 먹어야해서 지금 당장 움직일 수가 없거든. 너만 괜찮으면 기다릴래?

- 약이요? 어디 아프신 건가요?

- 아… 뭐, 별건 아니고. 열감을 좀, 가라앉혀주는 거라.

‘수인’이라 작은 도마뱀도 높은 확률로 형질을 갖고 있겠지만, 눈 앞의 작은 도마뱀은 말 그대로 너무 작았기 때문에 태섭의 눈에는 한참 어린 개체로 보였다. 그래서 굳이 발정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이후에 교육을 받겠지만, 아직 교육을 안 받았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 혹시 ‘오메가’이신가요?

작은 도마뱀의 말에 태섭이 고개를 내렸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그에 작은 도마뱀이 안그래도 작은 몸을 더욱 움츠렸다.

- 냄새 나?

- 아, 아뇨! 열감을 가라앉혀준다고 하니까, 혹시나 해서요… 억제제가 필요하신 거잖아요? 그럼 짝이 없으신 건가요?

몸만 작다 뿐이지 알 거 다 아는 놈인가? 태섭이 의심어린 눈으로 작은 도마뱀을 보았다. 태섭이 열감, 그러니까 발정기를 겪고 그 때마다 억제제를 먹는다는 것은 곧 ‘각인’을 맺은 짝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오메가’는 ‘알파’와 짝을 이루어 ‘각인’을 한다. 일종의 혼약에 대한 증거였다. ‘각인’을 맺은 ‘오메가’와 ‘알파’는 서로의 호르몬으로만 반응하고 서로의 발정기 주기가 맞춰지기 때문에 억제제를 쓰지 않아도 됐다. ‘알파’의 경우에는 발정기를 겪어도 극심한 성욕 및 ‘오메가’를 임신시키고 싶어하는 감정이 극대화되는 게 다지만, ‘오메가’는 수컷도 임신을 할 수 있는 만큼 발정기를 겪으면 이성과는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알파’의 씨를 원하게 된다. 즉, 임신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간’도, ‘수인’도 대부분 형질인이라고 하지만 태섭은 이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성이 종족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짐승들과 다를 바 없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발정기가 온 ‘오메가’가 ‘알파’의 씨를 받아들이면 무조건 임신을 하는 것도 별로라고 생각했다.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게 영 떨떠름했다. 본능에 지배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형질로, 휘두르는 것도 싫은데 휘둘리는 형질로 태어난 것도 싫었다. 태섭의 부친은 형질인인 ‘알파’ 였고, 모친은 비형질인인 ‘베타’ 였는데 형만 ‘알파’로 발현하고 여동생도 ‘베타’인데 태섭 자신만 ‘오메가’로 태어난 것도 싫었다.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지만 형질에 한해서는 싫었다. 이미 이렇게 태어난 것 어쩌겠나 싶기도 하면서도 ‘오메가’가 ‘알파’에 비해 개체가 아주 적어 이른바 ‘오메가 사냥꾼’에 의해 납치 위험이 높아 생활반경이 집 근처에 제한되는 것도 싫었고, 가족들이 억제제를 구해올 때까지 발정기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엎드려 있는 것도 싫었다.

태섭이 ‘오메가’로 발현하면서 도심에 살던 가족은 이 외곽지역까지 거주지를 옮겼다. 억제제를 산다는 것 자체가 ‘오메가’가 있다는 뜻이니까. 혹여 ‘오메가 사냥꾼’의 눈에 띌까 이사를 밥먹듯이 해야하는 게 싫었다. 까짓거 날아차기로 강냉이 다 털어버리면 될텐데. 형질인으로 태어난 이상 ‘오메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지만 또 모르잖아. 태섭은 ‘알파’인 부친과 형을 상대로 스파링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발톱과 날카로운 코요테의 이빨을 사용하는 방법을 어렸을 적부터 배워왔다. 인간형으로 모습을 변화해서 빠르게 달리는 연습을, 빠르게 치고 빠지는 연습을 했다. 코요테지만 다람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날랬다. 그래서 자신 있었다. 그래봐야 ‘오메가’니 위험해서 안된다는 ‘알파’들의 단호한 반응에 뺨을 부풀릴 수 밖에 없었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태섭이 제 대답을 기다리는 작은 도마뱀을 내려다보았다.

- ‘오메가 사냥꾼’에게 이를 거냐?

- 예? 제가요? 아니에요! 제 생명의 은인인데 어떻게… 저는 그저…….

- 그럼 됐어.

우물거리는 작은 도마뱀의 말을 자른 태섭이 언덕 너머에서부터 달려오는 형제를 보았다. 형제를 보느라 조그맣게 말을 잇는 작은 도마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 제가 온 곳의 대장 형들도 ‘오메가’가 필요해서요…….

형을 필두로 가족들이 굴로 하나둘 도착했다. 여동생은 태섭보다 한참 어리기에 부모님이 밖에 나갈 때마다 항상 데리고 나갔다. 비형질인이기에 가능한 활동이었다. 가족들이 가득 묻혀온 바깥 세상의 냄새를 한참 맡으며 세상의 정보를 습득한 태섭이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연한 갈색으로 빛나는 피부와 갈색 눈은 생기가 넘쳐보였다. 곱슬머리가 풀어져 손으로 쓸어넘긴 태섭이 형에게 받은 억제제를 삼켰다. 작은 도마뱀이 기다리고 있을 굴 밖에서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부모는 걱정했으나 도심과 반대방향이기에 태섭이 다녀오는 것을 허락했다. 태섭이 내심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것을 알기에 한 허락이기도 했다. 억제제도 먹었겠다, 다시 코요테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꾼 태섭이 작은 도마뱀을 향해 말했다.

- 가자. 데려다줄게.

- 감사합니다…! 형들도 저를 찾고 있을 거에요. 중간 합류 지점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부탁드려요! 아 저, 그리고 사례를 하고 싶은데…….

- 사례는 무슨. 다 힘들면 돕고 사는 거지.

태섭의 앞발이 무심하게 작은 도마뱀을 쳐올렸다. 으악! 새된 비명을 지른 작은 도마뱀이 붕 뜨고, 머리를 낮춰 작은 도마뱀을 태운 태섭이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다. ‘오메가’인 태섭을 지키기 위해 이사를 반복하고 억제제를 꾸준히 사던 태섭의 가족은 의뢰를 받은 늑대 무리, ‘오메가 사냥꾼’에게 습격을 받게 되었다. 태섭이 타겟이 되는 건 쉬웠다. 도심을 다닌 코요테들은 태섭을 뺀 모두였으니. 몽타주에 그려진 얼굴이 아닌 자를 찾으면 그 자가 ‘오메가’였다. 가족을 도망치게 하고 그 앞을 막아선 부친에게 달려드는 늑대 무리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울면서 아빠를 찾는 태섭을 끌어안은 형이 눈물을 흘리는 모친과 어린 여동생을 재촉하며 더 외곽으로, 외곽으로 달렸다. 만일을 위해 지어놓은 작은 굴까지 달린 형이 어린 여동생과 모친, 그리고 태섭을 안에 밀어넣었다.

- 형! 형! 나도 같이 가! 나도 싸울 수 있어!

- 안 돼! 저 녀석들이 누굴 노리는데! 넌 절대 나오면 안 돼!

- 싫어! 형까지 못 돌아오면 어떡해!

- 준섭아, 준섭아…!

- 엄마.

형, 준섭이 모친을 끌어안았다. 인간형으로 변한 준섭이 인간형으로 변한 모친을 끌어안았다. 아직 인간화를 하지 못하는 어린 여동생도 끌어안았다. 한참을 끌어안았던 준섭이 둘을 놓아주었다. 태섭을 본다. 태섭 역시 인간형으로 변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준섭이 손을 뻗어 눈물 젖은 뺨을 닦아주었다. 제 눈에 아직 한참은 어린 남동생의 손목을 잡아 제 쪽으로 당긴다. 힘없이 품에 안겨오는 동생을 끌어안고 뺨을 부볐다. 울음을 놓는 동생을 보다 그의 웃옷을 벗겨내고는 제 허리에 감는다.

- 절대 나오면 안 돼. 알겠지.

- 형! 나도 같이……!

- 안 된다고 했지! 아버지의 희생을 헛되이 할 거야?!

- 흐윽…!

굴 한쪽 구석에 놓인 바구니에서 다른 옷을 꺼내 태섭에게 입힌 준섭이 말했다.

- 늑대들은 냄새를 좇을거야. 내가 미끼가 될게.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너를, 가족들을 지키러 가는 거야. 태섭아. 이제 네가 우리 집 대장이 되는 거야. 붙잡히면 안 돼. 절대 안 돼. 알겠지? 네가 최후의 보루야. 여태 잡히지 않기 위해 힘을 기른 네가 나설 차례라고. ‘오메가’ 여도 잘 싸울 수 있다는 거, 보여줘. 근데 지금은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태섭아. 사랑하는 내 동생.

늑대의 하울링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준섭이 모친과 여동생과 눈을 마주쳤다. 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준섭이 태섭을 다시 보았다. 먼저 주먹 쥔 손을 내민다. 태섭이 눈물을 삼키며 형보다 한참 작은 제 주먹을 부딪혔다. 준섭이 마지막으로 웃어보인 뒤 굴을 빠져나갔다. 컹! 하고 부러 큰 소리를 낸다. 땅을 박차는 한 마리의 코요테의 발소리 끝에 수 마리의 늑대가 좇는 발소리가 들렸다. 굴 속에 남은 가족들은 숨조차 쉬지 않고 사냥꾼들이 멀리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내려앉는 풀벌레 소리만 주위에 가득했다. 떨리는 숨을 내뱉은 모친이 태섭을 두고 조심스레 굴 밖으로 나섰다. 칭얼거리는 여동생을 꽉 끌어안은 태섭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모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깜빡이지 않다가, 한 번 깜빡한 순간

캥!

- 엄마!

남아있던 늑대 한 마리에게 물린 모친을 본 태섭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내팽겨쳐진 모친을 뒤로 한 채 태섭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큰 덩치 곳곳에 물린 상처가 남은 늑대들이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발견한 목표에 입꼬리를 세워올렸다. 네 발로 자세를 낮춘 태섭이 주위를 살폈다. 처음 굴을 습격했던 무리의 절반 이상이 사라져있었다. 여기 남은 절반 정도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채였다. 태섭이 털을 곤두세웠다. 발끝이 벌벌 떨려왔지만 발톱을 세워 맨땅을 긁어내리는 것으로 숨겨냈다. 늑대의 하울링과 동시에 여러 마리의 늑대가 태섭을 향해 달려들었다.

- 여기에요! 여기 있어요!

퍽 소리와 함께 태섭의 머리 위로 뛰어들던 늑대 무리가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한번에 나가떨어졌다. 태섭이 놀란 눈을 깜빡였다. 눈 앞의 존재가 몸을 일으켰다. 태섭의 머리가 천천히 들렸다. 높이가 끝이 없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빛에 노란 가죽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장 섞지 않고 도망치기 전 살았던 굴보다 큰 파충류가 태섭을 내려다보았다.

- 괜찮으세요? 큰일날 뻔 했어요!

- 어……?

어딘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러나 태섭의 기억에 이렇게 커다란 파충류는 살아생전 만난 적이 없었다. 단 한번도.

- 이 놈들 질 나쁘기로 소문난 놈들인데. 어지간히도 ‘오메가’가 탐났나보군.

육중한 소리와 함께 태섭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하지 않은 덩치의 파충류와 비슷한 크기의 파충류가 태섭의 가족을 지나쳤다. 이내 온갖 파충류 수인들이 달려와 남아있는 늑대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키려 하는 늑대의 몸을 짓밟은 이가 태섭을 돌아보았다.

- 네가 얘기했던 자가 이 자, 맞아?

- 응! 그때 잡혀갔던 나를 구해주시고 데려다주셨던! 생명의 은인인 ‘오메가’님!

- 생명의… 어?

믿을 수 없었다. 태섭이 입을 벌렸다. 그러다 눈을 크게 뜬다. 다른 파충류의 품에 안긴 피투성이 코요테가 보였기 때문이다.

- 형!

태섭이 빠르게 달려왔다. 혀를 길게 빼물고 가쁜 숨을 내쉬던 코요테가 힘겹게 눈을 떴다. 파르르 떨리는 눈이 샐쭉해졌다.

- 헉, 헉… 어때… 내가 말, 했지… 죽으러, 가는 게… 크윽, 아니라고…….

- 형…!

준섭의 밑으로 피가 투둑 투둑 떨어져내렸다. 태섭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준섭의 눈에 어린 총기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느릿하게 눈을 굴려 멀리 주저앉아 어깨를 감싸쥔 모친과, 굴 입구에서 울고 있는 어린 여동생을 본다. 마지막으로, 저를 보며 눈물을 쏟고 있는 사랑스러운 동생을 본다.

- 돌아왔…는데…… 왜…… 우는… 거야……. 태섭……아…… 형이…많이……졸리네…… 간만에……… 힘을… 좀…… 썼더니………….

- 형을, 형을 살려줘요…!

난생 처음 보는 파충류에게 태섭이 매달렸다. 준섭에게서 쏟아지는 피웅덩이가 태섭의 발치까지 번지고 있었다.

- 이미 우리와 마주했을 때부터, 출혈이 상당했어. 지혈이라도 하려 했는데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도움을 요청해서 바로 온 거고.

- 이제 괜찮잖아! 형을 치료해줘, 해주세요! 제발… 뭐든지 할 테니까……!

- 뭐든지?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한 노란 눈이 태섭을 응시했다. 태섭이 순간 몸을 움츠렸다.

-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특히 ‘오메가’ 라면.

- 그, 그래도… 형을… 살려야만…….

압박감이 상당했다. 준섭을 보며 눈물을 쏟던 태섭이 이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파충류의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후들거리는 다리에 꼬리가 저절로 말려들어도 태섭이 어떻게든 눈을 치켜떴다. 그 시선을 마주했다. 온 몸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는데도.

- 하!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그것과 이미 죽음의 경계를 지난 자를 낫게 해달라고 하는 건 영역 밖이야. 그건 어쩔 수 없어.

태섭의 갈색 피부가 희게 질렸다. 사정없이 떨리는 갈색눈이 준섭을 향했다. 준섭은 언제부터인가 말이 없었다. 핏물은 여전히 바닥으로 떨어져내리고 있는데.

- 정말로 뭐든지 할 텐가?

중압감이 사라졌다. 태섭이 휘청거리면서도 파충류의 팔뚝을 잡고 버텨섰다. 파충류가 혀를 낼름거리더니 말했다.

- 살아남은 가족들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지. 대신 조건이 있다.

우리 ‘우두머리들’ 을 위한 ‘오메가’가 되어줘야겠어.

파충류의 혀가 태섭의 목덜미를 훑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뒤에서 ‘형…!’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눈 앞의 파충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정말 ‘각인’하지 않은 ‘오메가’로군. 발정기를 순전히 약만으로 가라앉혔다고 하니 경험도 없을테고…….

눈 앞에서 평가당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섭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오메가 사냥꾼’의 습격과 여태 소식 없는 부친의 상태,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준섭의 상태를 본 것만으로도 태섭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3M는 족히 넘을 거구의 파충류의 중압감 어린 시선을 받아내기까지 하니 다리에 힘을 주고 서있는 것조차 기적에 가까웠다. 단지 질 수 없어서, 지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눈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강한척 하는 것이다. 그것이 눈 앞의 파충류에게는 하찮은 발버둥처럼 보일지라도.

- 우리… 가족을 인질로, 삼는 건가…?

- 인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릴 하는군 그래. 우리는 그래도 구조하러 온 거라고? 우리의 우두머리들의 소중한 ‘오메가’가 될 분과 그 가족을 지키러 온 건데 말이야. 듣기론 가족이 총 다섯이라고 들었는데 한 명은 여기 있고, 다른 한 명은… 먼저 수색에 나선 이들에게서 긍정적인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늦은 것 같지만.

태섭이 입술을 깨물었다.

- 난 그래도 네게 선택권을 주는 거야. 한 번만 긍정하면, 이 위험한 허허벌판이 아닌 최강의 요새 ‘산왕’에서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지. 너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네 가족들에게도 ‘산왕’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울 거야. 환경이 완전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코요테는 사계절 다 활동 가능하잖아? ‘산왕 우두머리의 오메가’ 가 되면 산왕의 모두가 너와 네 가족들을 목숨 걸고 지킬 거다. 거절하면 뭐, 이 위험을 ‘알파’들도 없이 가족들을 지켜가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던가… 아니면 ‘오메가 사냥꾼’에게 붙잡혀서 좋은 취급도 못 받고 팔려가던가.

창백한 얼굴을 한 채로 태섭이 뒤를 돌아보았다. 텅 빈 눈으로 준섭을 보는 모친과 다른 파충류들의 접근에 으르렁 거리는 여동생이 보였다. 여동생에게 가까워지는 파충류를 본 태섭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알겠어! 알겠다고! 당신들 우두머리의 오메가든 뭐든 다 할 테니까! 내 동생에게서 당장 떨어져!!

태섭의 외침에 눈 앞의 파충류가 기다렸다는 듯 준섭을 내려놓았다. 태섭의 허리를 낚아챈다. 강한 힘에 태섭이 흔들렸다. 노란 눈이 샐쭉 웃어보였다.

- 그럼 잘 부탁해, ‘두 뱀의 오메가’님.

- 태섭아!

비명지르듯 태섭을 부르는 모친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태섭이 흐릿해지는 시야에 억지로 힘을 주려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멀어지는 시야 속으로 모친과 여동생에게 다가가는 파충류들이 보였다. 입술을 달싹인다. 우리, 가족들… 건드리지… 마…….

-fin.

  •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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