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우성태섭명헌]Your scent

* 오메가버스

* 이전 연성 페로몬 샤워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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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에 민감하여 향수나 화장품과는 벽을 쌓고사는 인간의 연성입니다. 묘사하는 향이 진짜로 존재하는 향수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

- …….

잠에서 깨어난 태섭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넓은 침대 가운데 제가 있고 주위에는 명헌과 우성의 옷가지들이 진을 치듯 널부러져 있었다. 벽에 걸어놓은 달력을 보았다. 히트는 각인을 바로 한 덕분인지 규칙적으로 찾아왔고, 아직 히트까지는 날이 꽤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태섭의 두 알파가 그 기간에 맞춰서 해외출장을 간 거겠지.

집은 조용했다. 명헌과 우성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쌍둥이들은 한참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태섭껌딱지 아빠를 그대로 보고 배운 탓에 남들 애들은 이 시기에 부모와도 데면데면하거나 싸우기 바쁘다는데 이 집 아이들은 두 아빠들과 엄마 쟁탈전 하기 바쁘다. 엇나가거나 사이가 소원해지는 게 아니어서 태섭의 입장에서 훨씬 나았지만… 판박이인 네 남자가 중앙에 서있는 자신을 끌어안고 내꺼 네꺼 하면서 투닥거리는 건 제법 시끄러운 일이었다.

걷힌 커튼 너머로 비치는 창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멍하게 빗소리를 듣다 태섭이 느즈막히 침대에서 벗어난다. 점심이 훌쩍 넘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배가 고파졌다. 거실로 나가 냉장고를 뒤져 간단하게 계란볶음밥을 했다. 빗소리와 숟가락이 식기와 부딪히며 나는 소리만 거실에 존재하고 있었다.

태섭은 휴가중이었다. 명헌과 우성의 ‘나 없이 회사에 있다가 누가 유혹이라도 하면 어떡해(뿅)! 출장 다녀오는 동안에 휴가 써(용)!’ 라는 되도 않는 헛소리를 회사에서 받아들어 휴가를 내줬기 때문이었다. 막무가내로 헛소리 억지를 쏟아내는 두 남편이나 좋다고 받아들이는 회사나…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두 남편의 회사, 산왕의 간부들이 찾아와 ‘저 놈팽이들이 해외 나가서 마누라 보고싶다고, 누가 홀라당 채가면 어떡하냐고 지랄… 아. 아닙니다. 걱정이 너무 많으시니 부디 휴가를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하는 탓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리며 수락할수 밖에 없었다. 태섭의 휴가 소식에 퇴근하자마자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하트나 흘리며 오는 두 남편들 등짝에 스파이크를 꽂아줬다. 배구가 아닌 농구를 했었지만, 그 이전에 꽤나 주먹 좀 날렸던 때가 있었어서 당연히 아플 것이다. 말도 하지 못하고 꿇어앉아 우는 남편들은 당연히 무시했다. 아프라고 때린 거니까.

해외출장으로 명헌과 우성이 집을 떠난 탓인지 날이 갈수록 집안에 둘의 향이 옅어지고 있었다. 부부가 쓰는 침실은 아이들도 들어오지 않았기에-아이들 역시 알파로 발현했다. 무서운 유전자.- 태섭은 마음 놓고 옷장에서 남편들의 옷을 침대 위로 늘어놓을 수 있었다.

옷에 묻어있던 향도 옅어지면서, 태섭의 수면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베타였을 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의 호르몬이 서로에게 안정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었다. 둘은 괜찮은 걸까. 명헌과 우성의 옷에 묻혀두었던 페로몬이 약해진다는 것은 바꿔말해 그들이 가져간 자신의 옷에 묻혀둔… 페로몬 역시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태섭의 휴가가 확정되면서 명헌과 우성은 충전 많이 하고 가야한다면서 출장가는 날 전까지 태섭을 안았다. 제 안에 저들의 흔적을 흩뿌리고 태섭의 체향과 체액을 가득 들이마시고 갔다. 그때는 미친놈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느즈막한 점심을 마무리한 태섭이 침대 위에 널브러진 두 알파의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빗줄기가 아까보다 옅어져있었다. 옷장에 옷을 넣던 태섭이 물끄러미 둘의 셔츠 소매를 쥐었다. 손등에 입 맞추든 얼굴 가까이 소매를 댄 태섭이 옅게 남은 향을 들이마신다. 젖은 이끼가 붙은 바위의 냄새, 물에 젖은 나무의 냄새가 빗소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

가만히 있던 태섭이 씻고 옷을 갈아입더니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태섭이 도착한 곳은 페로몬 향수 공방이었다. 알파와 오메가는 고유의 향을 갖고 있고, 보편적인 향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페로몬 향수 공방이 따로 존재했다. 예를 들어 페로몬이 오렌지 향이라고 해서 진짜 과일 오렌지 향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뜻이었다. 일반적인 향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페로몬 향수는 페로몬이 묻은 물건을 가져오면 특수한 장비로 향을 추출하여, 장비가 분석한 대로 향을 조합하는 시스템이었다. 페로몬의 향을 인공적으로 조향하는 것이기에 진짜 페로몬 만큼은 아니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연인들을 위한 제품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흉내를 내는 거기 때문에 러트나 히트가 왔을 때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마킹용으로 페로몬을 느낄 수 없는 베타와 연인관계인 형질인이 찾는 경우도 있었다.

조향사에게 명헌과 우성이 두고 간 시계를 넘겨준 태섭이 형형색색의 향수병과 병에 담긴 향수를 둘러보았다. 시계를 넘기기 전 외형적인 부분이나 성격적인 부분도 묻길래 의아해했는데, 향만 맡아도 상대방을 이미지 메이킹할 수 있을 정도로 임팩트 있어야 한다고 하여 느낀대로 이야기했다. 형질인이라면 원래 느끼는 향과 온전히 같을 수 없다는 당부도 들었다.

사람들이 공방을 오가는 것을 보았다. 모두 웃으면서 공방에 들어왔다 웃으면서 나갔다. 혼자 찾아와 깜짝 선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베타 짝에게 내 향을 알려주고 싶다며 수줍게 말해오는 형질인도 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형질인이라며 그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 다양한 사랑이 향수 공방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있으니 기분이 미묘했다. 페로몬을 느낄 수 없었던 베타 시절, 태섭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 명헌이나 우성이 자신을 변화시킬 정도로 페로몬을 쏟아내고 있던 것도 몰랐고- 이후에 알게 된 거라 호되게 혼내고 회사 사람들에게 사과하게 했다. 회사사람들은 여러가지 의미로 창백해졌지만 태섭은 보지 못했다.- 저에게 페로몬을 느낄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며 은근슬쩍 어필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이 페로몬 향수 공방도 자신이 형질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이다. 베타인 자신과는 거리가 머니까. 페로몬이라는 게. 헌데 보고있자니 베타와 짝을 이룬 커플이 많이 보였다. 다들 눈을 반짝이며 제 연인인 형질인의 향을 드디어 알 수 있겠다며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저게 보통의 모습일까? 내가 너무 무관심하게 지내왔나? 딱히 저런 게 있다는 얘기도 한 적 없었는데 괜찮았던 거 아닌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찌됐든 베타였던 태섭은 페로몬 샤워로 인해 오메가로 발현했다. 향을, 페로몬을 모르고 살다 이제는 안다. 오메가가 되어 페로몬을 흘려대는 자신을 끌어안고 연신 향을 들이마시던 두 알파가 떠올랐다. 평소에도 꽉 끌어안던 손길이었지만 그 날의 희미한 기억속에도 손길에 애틋함이 묻어있다는 걸 알았다.

- 송태섭 님~

- 아. 네.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길쭉한 네모 모양의 작은 병 안에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필기체로 명헌과 우성의 이름이 병에 라벨링되어 나왔다.

- 시향해보시겠어요?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샘플용기에 담긴 향수가 시향지에 묻어나왔다. 명헌의 향을 한 번, 우성의 향을 한 번. 태섭이 눈을 감고 향을 들이마신다.

- …확실히 페로몬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네요.

- 아무래도 페로몬은 형질인 고유의 향이니까요. 누구와도 겹칠 수 없는 유일한 향이죠. 인공적인 향을 아무리 잘 조합한다 해도 결국 오리지널만한 게 없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다. 태섭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향사가 향수를 케이스에 담고 종이가방에 넣어 건넨다.

집에 도착한 태섭이 향수가 담긴 케이스를 열었다. 설명서에 따르면 1주일에서 2주일은 서늘한 곳에 보관하여 숙성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고 되어있었지만… 태섭은 지금 필요한 거였고 그 전에 향의 주인들이 오기 때문에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꺼낸 것을, 꽉 막힌 입구 위로 스틱을 꽂아 침대 옆 탁상에 올려놓았다. 옷을 벗어내리고 샤워를 한다.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씻고 나온 태섭이 숨을 들이마셨다.

젖은 이끼가 붙은 바위의 냄새. 젖은 나무의 냄새가 미묘하게 태섭의 코를 자극했다. 페로몬에 온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두 알파의 페로몬은 젖은 냄새가 주를 이루었지만 어딘가 포근했는데, 이 향수의 향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봄과 겨울 정도의 차이가 났다. 아쉬웠으나 그래도 없는 것 보단 나았다. 태섭은 명헌과 우성의 셔츠를 꺼냈다. 샘플향수를 셔츠 위에 뿌린다. 침대로 몸을 던진 태섭이 둘의 셔츠를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둥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태섭은 그저,

둘이 보고싶은 것 뿐이니까.

- 우리 왔어! 태섭아!

- 보고싶었…….

쉬이이잇——

빼다박은 아들들이 몸을 휙 돌리더니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덩달아 두 아빠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태섭이 있을 침실 문에 귀를 대어본 아들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검지를 입술에 대어 조용히 시키고, 다른 손 엄지로 침실을 가리킨다. 두 아빠를 보는 두 아들의 표정이 못마땅했다. 두 아빠는 입꼬리가 솟았고.

엄마 쟁탈전을 몇 년째 하다보니 저 표정은 뒤집어서 봐도 잘 알았다. 엄마가 자신들이 아닌 아빠들을 더 필요로할 때 보이는 표정이니까.

명헌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미묘한 인공의 향이 느껴져 문 밖에 있던 네 명의 알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성이 아이들을 돌아보자, 턱만 까딱거리며 들어가서 보라고 한다. 누굴 닮아 이렇게 싸가지가 바가지지, 했지만 잠시 뿐이다. 태섭에게는 세상무해한 바른 학생의 모습을 보이는 여우새끼인 걸 알기에.

둥지…는 아닐 것이다. 태섭의 히트 주기는 두 알파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침대 중간에 잠든 태섭의 주변으로 자신들의 옷가지가 널려있는 게 애틋했다. 외롭진 않았을까? 남편이 고파 혼자 하진 않았을까? 보고싶어서 울진 않았을까? 태섭이 들으면 등짝에 불 날 생각을 하며 두 알파가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옆 탁상 위로 낯선 향수 두 개가 보였다. 명헌과 우성이 서로를 본다. 조용히 다가가자 두 남편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보았다. 페로몬 향수 공방은 어떻게 알았담. 귀여워라…….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인공적인 향이 싫은 건 싫은 거였다. 디퓨저 아닌 향수에 스틱을 꽂아넣을 발상은 어떻게 했는지. 어차피 발향만 제대로 되면 되니까 상관 없나. 아무튼 가짜는 싫어. 냅다 버리려다 홀로 공방에 찾아가 페로몬 향을 더듬어가며 주문했을 태섭이 귀여워 스틱만 내다 버리고 향수 뚜껑을 찾아 꾸우욱 막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다. 며칠간 더 내렸던 비가 그쳐있었다. 비에 젖은 바깥의 공기가 침실에 들어선다. 천천히 두 알파가 페로몬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은근하게 침실을 메운다. 태섭이 뒤척이자 품에 안고있던 두 알파의 옷가지가 보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두 알파가 침대로 올라가더니 잠든 태섭을 끌어안고 뺨이며 감긴 눈꺼풀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으. 아들들은 못 볼 꼴 봤다는 듯 문을 닫아버리고.

- 으. 으… 으으?

뽀뽀 공격에 어물어물 눈 뜬 태섭이 어리둥절하게 둘을 보았다.

- 잘 잤나용.

- 우리 왔어, 태섭아.

멀뚱하게 졸린 눈을 깜빡이던 태섭이 두 남편을 끌어안았다. 숨을 느리게, 깊게 들이마시더니 중얼거렸다.

- 진짜의 냄새…….

- ~~~~~~~!

- 뾰오오옹…….

눈썹까지 늘어뜨리고 태섭이 흐물흐물 다시 잠들었다. 차마 깨우지는 못 하겠고 제 오메가는 앙킁귀엽 다 하고… 우성이 주접의 눈물을 흘리고 명헌이 주먹을 물었다. 오자마자 엉망진창 몸의 대화를 나누면서 살살 녹여먹고 싶었는데 다른 의미로 자신들이 녹아내려 버렸다. 아쉽지만 불만은 없었다. 깊게 잠든 태섭에게서 조심히 빠져나온다. 혹여 물소리에 깰까봐 침실 밖으로 나가 다른 방 욕실에서 씻고 나온 두 알파이자 남편들이 잠든 태섭의 양쪽에 자리잡고 누웠다. 가짜 향을 가진 향수도 치웠고, 태섭이 안고 있던 옷도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두 알파가 중앙에서 잠든 오메가를 끌어안았다. 바닷바람의 향을 잔뜩 들이마신다. 페로몬이 부족해 잠을 설쳤을 그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옅게 페로몬을 내보낸다.

잘 자, 사랑스러운 우리의 오메가.

- Your scent,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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