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명헌태섭/우성태섭] 우리에게도 관심을!

업로드 2024.01.22

* 농구선수 명헌, 우성, 태섭 (다 다른 팀)

* 존프 세같살/동성결혼/다부일처or일부다처 합법 설정

** 어떻게 쓰고 바꾸고 해도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것 같아서 추후 수정 가능성 있음

주의!!!! 

송태섭이 이명헌과 정우성을 덕질하고

이명헌과 정우성이 송태섭에게 매달리는

캐붕 대잔치

애들 망가지는 걸 못 보겠다,

개그캐가 되는 걸 못 보겠다,

이런 캐붕 못 보겠다 하시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사무실 전화기를 내려다보는 시선들이 사뭇 진지하다. 데스크 위로 팔꿈치를 대고 깍지를 껴 진중한 표정을 한 협회장이 굿즈제작팀장을 보며 말했다.

"곧 오픈 시간이지?"

"네."

제작팀장 역시 진지한 얼굴로 협회장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중앙에 모두 모여 앉은 자리 중 최고석에 앉았다. 앉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제작팀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농구를 홍보하고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제작해오던 굿즈 시리즈가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사이트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 한창 인기있는 농구선수들과 농구협회의 공식 마스코트 등으로 이루어진 굿즈 리스트를 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농구협회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의 컴플레인이었다. 그것도 유우명한. 단 한사람 때문에.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협회 사무실을 울린다.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사이트 오픈 시간만을 기다렸다. 9시 58분. 59분. 1분이 1시간인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초침이 한 바퀴 더 돌고, 10시. 정각.

굿즈 사이트가 열렸다. 농구협회에서 공식으로 내놓는 굿즈를 사기 위해 사이트로 접속자가 몰렸다. 협회장이 빠르게 사이트 관리자에게 눈짓했다.

"서버 안정적입니다. 로딩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협회장이 얕게 숨을 내뱉었다. 일단 서버 문제로 컴플레인 들어올 일은 없겠군. 사이트에 내걸린 굿즈들에 빠르게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문이 몰리는 선수와, 굿즈 종류를 체크하는 굿즈팀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 망할, 유우명한 단 한 사람의 블랙컨슈머에게서는 아직 전화가 오지 않았다. 확실히 서버 관련으로 문제는 없는 것 같고. 굿즈를 주문하는지 조용했다. 블랙컨슈머의 패턴은 일정했다. 첫번째로 접속을 했을 때 로딩 지연 문제로 굿즈를 사지 못하게 되면 전화를 했고, 두번째로 원하는 굿즈가 주문하기 전에 품절이 뜨면 전화를 했다. 세번째는…….

긴장과 안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분위기 속에 협회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분위기가 얼어붙고, 모두의 시선이 미친듯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향했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다. 협회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수화기를 들고, 귀에 댄다.

"한국 농구 협회입니다."

- 아 협회장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 명태우 팀 소속 송태섭입니다."

"……."

협회장이 다른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이 떨어지자마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협회장의 표정을 본 이들의 낯이 어두워졌다.

"응, 송태섭 선수. 무슨 일 인가?"

- 오늘 굿즈 사이트 오픈되었던데, 혹시 굿즈팀장님도 같이 계세요?

협회장의 시선이 굿즈팀으로 향했다. 굿즈관리 팀장의 얼굴이 어두워지다 허옇게 뜨기 시작했다. 협회장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잠시 자리 비웠네. 나에게 얘기하게. 내가 전해주지."

- 어… 그럴까요? 그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용건이 이어진다.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협회장의 안색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굿즈팀은 협회장의 반응을 보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다른 부서도 표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유우명하고도 지독한 단 한사람의 블랙컨슈머.

한국을 대표하는 농구선수 중 한 명인 송태섭이었다.

***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명헌과 우성은 썰렁한 현관과 거실을 보다 서로를 보았다. 휴대폰으로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확인하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쉰다. 터덜터덜 거실을 지나 태섭의 방으로 향한다. 굳게 닫힌 문에서는 '접근금지'라고 붉은 글씨로 적힌 팻말이 선명하게 걸려있었다. 언제는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냐하면 그건 아니지만.

눈 앞에 굳게 닫힌 이 방은 태섭의 보물창고같은 곳이었다. 그러니까,

명헌과 우성의 굿즈로 가득한 태섭의 보물창고.

정작 당사자들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는.

명헌이 휴대폰을 들어 태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 안에서 벨소리가 들리는데도 받지 않던 태섭이 휴대폰을 그대로 둔 채 문을 살짝 열어 고개만 빼꼼 내민다.

"어, 왔어요? 너도 왔냐?"

"오늘 우리 경기 있었는데 경기 보긴 했어?"

우성의 뺨이 불룩하게 부풀어오르자 눈을 도로록 굴리던 태섭이 말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봤어."

"오늘 굿즈 나오는 날이었나용."

명헌의 질문에 태섭이 파앗 하고 활짝 웃는다. 눈부신 그 모습에 명헌과 우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굿즈를 못 사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태섭이 깔롱하게 씨익 웃는 얼굴이라던가, 상대를 도발하는 웃음은 잘 지어도 해사하게,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앞에 두고 활짝 웃는 얼굴은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 파앗 웃는 얼굴이 오래가는 건 또 아니었지만.

이 눈부셔서 절로 눈이 감기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태섭이 굿즈를 사모으는 것을 말리지 못한 명헌과 우성이다.

"그래도 남편들 실물이 눈 앞에 있는데 자꾸 굿즈만 쳐다보면 서운해용."

"어… 미안해요. 씻고왔어? 안 씻었으면 둘 다 씻어요. 정리하고 나갈게. 밥 같이 먹자."

그러고는 내밀었던 얼굴이 쏙 들어가고 문이 닫힌다. 명헌이 작게 한숨쉬고 우성이 입술을 비죽이다 각자의 방에 씻으러 들어간다.

***

식사를 하며 오늘 치뤘던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경기는 명헌의 팀과 태섭의 팀 경기였고, 그 다음날은 우성의 팀과 태섭의 팀 경기가 있었다. 식사 분위기는 좋았고, 은근하게 주고받는 시선에 작은 열기가 있었다. 시즌 중에는 무리한 행위 금지라는 서로만의 약속이 있어 직접적인 건 하지 않았지만 경기를 치루면서 치솟는 흥분을 해소하기 위한 가벼운 손장난은 허용되었다. 테이블 밑으로 명헌이나 우성의 다리가 태섭의 다리를 슥 쓸고 발등을 누르는 식의 터치가 이어졌다. 태섭의 다리가 반항하듯 붕 떴지만 정작 본인 역시 웃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 경기가 없던 태섭이 설거지를 하자 저마다 뒷정리를 하며 설거지하는 태섭에게 다가와 뺨에 입을 맞추거나 뒤에서 껴안아 다 풀어진 태섭의 머리 위로 뺨을 부볐다. 의도 분명한 스킨십에 태섭이 웃다 아, 하며 말했다.

"맞다. 나 굿즈 정리할 거 있었는데. 아얏."

태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리 위와 등이 묵직해졌다. 명헌이 꽉 끌어안은 것이다. 냉장고에 반찬을 넣던 우성이 빽 소리쳤다.

"너무해! 오늘은 우리랑 있어야지!"

"피효옹…. 남편들 잘 했다고 고생했다고 예뻐해주지도 않을거냐 뿅…."

서운함 가득한 목소리에 설거지를 마친 태섭이 고무장갑을 벗고 명헌의 팔뚝을 두드렸다.

"나중에 도착해서 정리하면 복잡하니까 그렇지. 오래 안 걸릴건데 그럼 기다릴래요?"

명헌과 우성 둘 중 누구도 태섭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굿즈 정리 하나만 하겠다고 방에 들어가면 최소 한시간이었다. 한시간은 뭐야 평균 두세시간은 굿즈의 주인공인 남편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 방에 틀어박혀있곤 했다.

우성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명헌과 시선을 교환했다. 명헌이 팔에 힘을 주더니 태섭을 안아올리고, 발이 붕 뜬 타이밍에 맞춰 우성이 태섭의 다리사이에 자리잡아 그의 다리를 들어올렸다. 우앗! 태섭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놀란 얼굴로 잔뜩 삐진 티가 나는 남편들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은 굿즈한테 태섭 양보 못한다 뿅."

"굿즈 남편 말고 진짜 남편 좀 사랑해줘!"

명헌과 우성이 영차영차 태섭을 들고 셋이 함께 밤을 보내는 방으로 향했다. 태섭이 미련 가득한 얼굴로 굿즈방을 돌아보다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

명헌의 팀과 태섭의 팀 경기가 있는 날이다. 집에서는 전날 저녁까지 가볍지만 야한 분위기 속 부부였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서로 상대해야하는 적이 되는 관계. 일부는 경기 결과에 따라 기분 상할 수 있지 않냐 했지만, 셋은 오히려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이기면 즐겁고, 지면 분하지만. 같은 팀에서 경기를 뛰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만 마주 보고 서로의 공을 빼앗고 골을 넣으면 더 재미있지 않냐고.

다들 농구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선수들이기에 도리어 주변 선수들이나 팬들은 그들의 대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을 풀면서도 서로를 응시하는 표정에는 자신이 이끄는 팀이 이길거라는 생각으로 미소가 만연하다.

- 아, 오늘은 협회에서도 경기 관람을 하러 오신 모양인데요.

중계석의 말에 카메라가 관중석을 느리게 훑었다. 태섭의 팀 쪽 관중석에 협회장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태섭이 몸을 돌려 관중석을 올려다보았다. 그 먼 곳에서도 협회장과 눈을 마주친다. 무언의 시선을 교환한 태섭이 다시 앞을 보며 몸을 풀었다. 명헌은 푸슬푸슬 웃는 태섭을 보았다. 관중석의 협회 관계자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곤 다시 태섭을 본다.

태섭의 컨디션이 좋아보였다.

***

경기가 끝나고 정리하기 무섭게 태섭이 팀원들과 명헌에게 양해를 구한 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태섭에게만 익숙한 차 한 대가 그의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태섭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는다. 협회로 향하는 차량의 뒷모습이 어째서인지 무거워보인다.

***

긴장한 얼굴의 굿즈팀이 태섭을 맞이했다. 협회장이 먼저 자리에 앉자 저마다 자리에 앉고, 태섭이 기다렸다는 듯 백팩에서 제법 두께있어 보이는 종이뭉치를 꺼냈다. 협회장이 숨을 들이키고 굿즈팀이 사색이 됐다.

태섭의 개같은 진상짓…이 아니라 꼼꼼한 검수를 시작한 이후로 다른 스포츠협회들 중 농구협회 공식 굿즈의 퀄리티가 가장 좋다는 평이 나오고 있었다. 태섭의 진상…아니 컴플레인의 주 대상은 제 남편들인 명헌과 우성-애초에 본인 굿즈에는 관심도 없었다-관련 굿즈였으나 그 피드백이 정말 야생의 날 것이라 그렇지 굿즈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의견이었기에 굿즈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상승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공식 굿즈 치고는 가격대가 있는 편이었지만 피규어같이 진심으로 들이는 굿즈가 아니라면 가격대가 그리 높지 않아 자신의 굿즈를 보는 선수들도 굿즈를 사는 팬들도 모두 만족했다.

정말 살이 발리는 날 것의 리뷰와 컴플레인으로 그렇게나 굿즈 퀄리티를-특히 피규어- 높이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직도 피드백종이의 두께가 저만큼이라니. 협회장이 허옇게 기가 질려가는 굿즈팀을 애잔하게 보며 이를 갈았다.

…저 미친 쪼푸새끼…….

성질머리 더러워빠진 건 초코푸들이 아니라 치와와급이다.

선수들의 굿즈 중에는 팬들이 선수들을 특정 동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반영한 동물화 캐릭터 굿즈도 있었는데, 태섭은 거기서 초코푸들과 다람쥐였다. 곱슬머리와 갈색피부를 뜻하는 초코푸들, 작고 재빠르니까 다람쥐.

그러나 협회에서는 송태섭을 개라고 부르고 있었다.

초코푸들 아니고

그냥 개.

개색…기.

보통 선수들은 협회라고 하면 어지간한 일 아니면 설설 기는 편인데 태섭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제 남편들의 굿즈에 한해서 그랬다. 제 남편들 기 살리기면 좋게라도 봐줄 수나 있지. 그저 태섭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퀄리티라서 들이대는 거였다. 태섭은 제가 모으는 남편들의 굿즈 퀄리티가 떨어지는 꼴을 못 봤다. 마음에 드는 퀄리티로 굿즈가 나올 때까지 계속 컴플레인을 했다. 개선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징그럽게 물고 늘어졌다. 굿즈팀이 울면서 자진퇴사를 앞다투게 되자 협회장이 직접 나섰지만 의미 없었다. 남편들로 이루어진 굿즈는 그게 무엇이든 완벽해야 한다며 일갈하는 태섭은 정말 개같았다. 진짜. 너무.

그래서 협회는 태섭을 개라고 칭했다.

당사자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 하고 속으로만.

어쨌든 피와 살이 되는 피드백이지만 그와 도시에 뼈와 멘탈이 꺾이는 이 순간이 또 찾아오고야 말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데 매번 눈 앞에 앉아 브리핑을 하는 이 남자 앞에서는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멘탈도.

굿즈팀이 눈물을 머금고 태섭의 피드백을 받아적었다. 종이뭉치를 훑으며 태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태섭의 개진상짓…아니 피드백을 받는 굿즈팀에게는 영혼이라는 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태섭은 피드백이라는 이름의 블랙컨슈머로 협회에서 낙인찍히고 미친개로 불리고 있다는 걸 당연히 모른채 이번 굿즈에 대한 피드백 연장연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뿐이었다.

***

먼저 가라고 보냈더니 집에서 마주한 명헌은 우성마냥 입이 댓발 나와있었다. 집에 들어와 손 먼저씻고 거실로 향한 태섭이 그 모습을 보더니 눈썹을 늘어뜨리며 웃었다. 깨끗하게 씻은 손이 명헌의 얼굴을 감싸온다.

"삐졌어?"

"삐뇽."

고개마저 팩 돌려버리는 게 예사 삐친 게 아닌 모양이다. 태섭이 난처하게 미소하며 명헌을 달랬다. 양 뺨을 감싸오는 손길에 명헌이 눈을 감고 손바닥에 뺨을 부볐다. 저녁 러닝 후 돌아와 씻고나온 우성이 그 모습을 보곤 나도나도!! 하며 태섭의 등에 매달리듯 와락 끌어안았다. 명헌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무게감에 눈을 뜨더니 팔을 뻗어 태섭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때아닌 존프레스에 태섭이 난처하게 웃으며 그 틈으로 팔을 내밀어 앞뒤로 얽힌 두 남편을 보듬어 토닥인다.

***

모두가 잠든 밤.

태섭이 눈을 떴다. 조용히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시즌 중이면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가급적 규칙적 생활을 하려했다. 그래서 시즌 중 잠은 각자의 방에서 따로 잤다. 같이 쓰는 침실은 여러모로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태섭이 소리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발소리도 내지 않고 침실을 빠져나왔다. 각각 명헌과 우성이 잠들었을 방문을 보다 본인만의 보물창고 문을 연다.

눈 돌릴 틈이 없이 명헌과 우성의 굿즈로 가득한 방이 태섭에게 시각적 만족감을 주었다. 벽에는 고리형 굿즈-키링 같은 것-가 가득 걸려있었고 중앙에 바로 보이는 투명 피규어장 속에 남편들 피규어와 유니폼, 농구화 미니어처 등이 층마다 가득 차있었다. 주먹 쥔 손을 들어 자신의 경기운영력을 내보이는 명헌의 피규어와, 검지만 들어 한 골 더를 외치는 우성의 피규어는 태섭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공식 굿즈에서 한계가 보이는 부분은 피규어 수제커스텀 사이트에서 비싼 돈을 주고 표정이라던가 근육의 표현, 옷주름의 표현을 보다 리얼하게 리페인팅을 시켰다. -리페인팅을 맡았던 업체에서도 태섭을 미친 블랙 컨슈머 취급했으나 주어지는 돈이 있었기에 눈물을 머금었다는 소문이 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굿즈 리스트에도 피규어가 나왔었는데 이전보다는 퀄리티가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태섭의 성에 차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부족한 부분, 아쉬운 부분,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 굿즈팀에게 피드백을 전한 것이다. 물론 자신이 농구협회 굿즈팀과 피드백을 주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하는 건 오직 태섭 뿐이다.

방 안에 가득찬 굿즈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가슴 속에서부터 묘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태섭도 사실 실물 남편들을 두고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남편들 관련 굿즈가 처음 나왔을 때 기념으로 하나씩 샀던 게 시작이었다.

하나둘 모이는 굿즈를 보던 것은 어느새 수집의 즐거움이 되었고, 덕질의 영역으로 커졌다. 태섭은 두 남편들로 인해, 그들의 굿즈로 인해 덕질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선수들을 어떤 동물로 모에화하는지도 알게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비슷하면 사람 취향 다 비슷하구나 하면서도 다른 이미지가 나오면 새로운 캐릭터 해석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냐며 즐거워했다.

그러다보니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게 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남편들이 서운해하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들로는 얻을 수 없는 만족과 충족감을 굿즈들이 줬다. 하다못해 굿즈를 질투하는 남편들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더 그런 것도 없지않아 있을 것이다. 두 남편들로 안그래도 행복하고 즐거운 농구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굿즈까지 사랑스러우니 태섭의 행복이 그만큼 배가 된 것이다.

***

그러나 품절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태섭이 어떻게 해도 품절된 굿즈를 다시 구할 수는 없었다. 협회를 쪼고 굿즈팀을 졸라도 이미 품절된 제품을 태섭 한명만을 위해 제작할 수는 없었다. 재판을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게 언제일지 몰라 초조했다. 재판 예정이라고 해놓고 엎어진 것도 많았다. 예전에 나온 굿즈들 중에 아무리 인기가 많았던 종류여도, 시간이 흐르면서 세대 교체가 된다거나 굿즈의 트렌드가 바뀌어버리면 재판은 물건너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태섭이 눈돌린 곳이 팬덤이었다. 팬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SNS 였다. 태섭은 팬들의 SNS 타임라인을 뒤져 굿즈 거래 혹은 교환하는 일정을 찾아 원하는 굿즈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도 했다.

그래서 태섭은 팬덤에서도 다른 의미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자신이 못 구한 굿즈를 팬덤에서 구하는 모습은 팬들 사이에 유명했다. 팬들이 눈물을 머금고 모르는 척, 못 알아보는 척 했기 때문에 태섭은 자신이 들켰을거라 생각하지 못 했을 뿐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쓰고, 후드로 얼굴과 몸을 가린다고 해서 그 특유의 분위기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 또한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팬들은 관중석에서 자주 보던 체형과, 자주 듣던 목소리여서 빨리 눈치챈 거고. 서로 구하지 못한 굿즈들을 교환하는 자리가 비공식적으로 열리던 어느 날 등장한 태섭의 존재에 다들 얼마나 혼이 나갔는지.

'송태섭 선수 아니세요?'

'아닌데요.'

아무리 봐도 송태섭이 분명한데 본인이 아니라고 딱 잡아떼니 팬들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얼굴로 모른척 해주는 것이다. 선수들이 인기있는 만큼, 팬덤에서 나오는 2차 창작물이 있는 곳까지 태섭이 기웃거릴 때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야만 했지만.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었다고, 팬들은 SNS 비공계 계정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이쪽으로는 오지 말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걸 또 설명하는 것도 문제였다. 선수님들끼리 엮어먹는데 기분 나쁘지 않으시겠어요? 라고 물어볼 수 있겠는가? 심지어 셋이 부부인데도 본인들의 이야기를 어찌보면 날조해서 엮어먹는건데 좀 그럴 수 있잖아. 2차 창작판이 그레이존이다 보니 혹여 신고라도 하겠다고 나서면 정말 골때리는 문제였기에 팬들은 태섭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태섭의 SNS를 통해 태섭이 구하지 못한 굿즈를 어떻게든 구해 그가 행사장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 굿즈들을 미끼 삼아 태섭을 행사장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했다. 정말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본인만 모르는 눈물겨운 고군분투로 태섭은 구하지 못한 굿즈를 구해서 좋다고 팬덤 시장을 자주 이용해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팬덤의 시선도 농구협회에서 내놓는 굿즈를 향하지 않겠는가. 태섭이 굿즈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물량을 넉넉하게 제작하도록 의견을 내고, 태섭이 굿즈를 구매하기도 전에 사이트가 터지지 않게 서버 관리를 요청하는 등 팬들도 물밑에서 정말 눈물겨운 피드백을 많이 했다. 농구협회에서 굿즈 관리와 제작에 그만큼 신경 쓰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태섭이 SNS를 많이 하는 것도 팬덤에게 위험했다. 서치 능력은 또 어찌나 좋은지. 굿즈 구한다고 검색하고, 경기 반응 본다고 검색하는 게 익숙해진 건지 태섭은 팬들의 SNS에서 낯선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검색을 하고 봤다. 검색을 하는데도 잘 나오지 않으면 고개를 갸웃하면서 SNS에 이게 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그럼 그 날은 누가 제대로 써방을 하지 않아 송쪼푸-팬들의 애칭-가 서치를 하게 만들었냐며 판을 뒤집고 또 뒤집었다. 써방을 제대로 쓰기 운동 해시태그가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올 정도로 불타올랐다. 태섭의 물밑 진입(!)을 막기위해 나선 팬들이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그럴싸한 뜻을 만들어 태섭에게 설명해주면 다행히 태섭이 그 설명을 듣고 납득하면 일단락 되는 것이다.

그래도 태섭이 굿즈에 적극적인 편이라 팬들이 점차 퀄리티 올라가는 공식 굿즈를 사게 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 팬들은 어떻게든 태섭이 굿즈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물밑 시장의 진입을 막기 위해 애썼다. 굿즈팀과 다른 결이지만 아무튼 태섭이 모르는 고충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겠다.

굿즈팀과 팬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당연히 모르는 태섭은 제 방을 가득 채운 보물창고를 보면서 그저 흐뭇하게 웃을 뿐이다. 실물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도 굿즈를 모으는 이유에 대해 인터뷰 질문에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송태섭 선수의 남편들 굿즈 사랑은 정말 자타공인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바로 돌아서기만 해도 든든하고 잘 생긴 남편들이 있는데, 그렇게 굿즈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있나요?'

'항상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의 최고의 순간을 기록한 게 굿즈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굿즈를 보면 그 때 당시 유행했던 거라던가, 트렌드를 볼 수 있어요. 한 시대만을 풍미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제 남편들의 최고의 순간들을 굿즈로 기억하고 싶어요. 아, 이런 말 너무 닭살돋나?'

라고 대답하는 영상이 실시간 인기 동영상으로 순위권에 오르면서 남편들을 향한 태섭의 사랑이 굿즈팀과 팬덤, 그리고 남편들 마저 태섭이 굿즈에 환장하는 것을 묵인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뷰에 대한 대답을 하며 쑥쓰럽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그 표정과 목소리에 명헌과 우성을 향한 애정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굿즈팀도, 팬덤도, 명헌과 우성도 태섭을 말릴 수 없었다.

그게 피드백이라는 이름의 개진상 블랙컨슈머의 컴플레인으로 돌아와도.

물밑 시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도.

실물 남편들이 눈 앞에 있는데도 굿즈만 들여다봐도.

태섭이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 역시 태섭을 사랑했기에.

…그래도 역시, 굿즈들 좋아하는 건 좋지만… 

눈 앞의 남편들을 조금만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태섭이 제 보물창고에 들어간 것을 알고 문 앞에서 태섭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명헌과 우성이 오늘도 눈물을 삼키며 애처롭게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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