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명헌태섭] 욕심부리면 안될까용

업로드 2024.02.04


아사사님의 명태회지 <그건 제가 아니라니까요?> ( 첫화 https://posty.pe/4s93xg)의 축전 명헌태섭입니다. 회지 발간 축하드립니다!

*축전으로 드린 글이라 수정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

 

 

 

명헌이 눈을 깜빡였다. 저를 보는 시선을 마주본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양쪽에서 똑같이 한쪽 눈썹을 꿈틀대더니 삐딱하게 각을 세운다. 못마땅할 때 짓는 표정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명헌은 다시 눈을 느리게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잔뜩 불퉁한 얼굴을 해가지고 저를 보기에, 결국 명헌의 입에서 한 마디 튀어나온다.

 

- 이거 나를 위한 꿈 인가용?

 

 

 

욕심 부리면 안 될까용

 

히어로 이명헌 X 히어로 겸 빌런 송태섭

 

 

 

 

for 아사사님

written by. 뮤가

 

 

 

***

 

 

 

명헌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손을 들어 제 뺨을 꼬집었다. 아프지 않았다. 꿈이구나. 명헌은 어째서인지 조금 슬펐다. 뺨을 꼬집었던 손을 내리자 양쪽에서 팔짱을 껴온다.

 

- 형! 오늘은 나랑 데이트하기로 했잖아요!

- 아냐! 명헌 오빠 오늘 나랑 트레이닝복 사러가기로 했거든?

 

아.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뾰호옹…….

 

명헌이 지그시 눈을 감고 감격했다. 한쪽은 본래 모습인 남성 태섭이, 다른 한쪽은 스파이로 산왕에 숨어들었던 여성 태섭이 저를 꼭 껴안고 있었다. 이게 바로 천국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용… 아 행복해…….

 

양쪽에서 저를 사이에 두고 싸우든 말든 행복에 젖은 명헌이 번뜩 눈을 떴다. 뺨을 꼬집었는데도 아프지 않은 걸 보니 꿈이 맞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지면 명헌은 남성인 태섭보다 여성인 태섭이 더 좋았던 거 아니냐고 보는 시점도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송태섭 한정 송태섭처돌이 이명헌에게 태섭의 성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송태섭은 송태섭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명헌은 태섭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태섭이 여성의 모습으로 산왕에서 스파이 활동을 했을 때도 얘기한 부분이지만 명헌은 태섭이 정말로 여자든 남자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태섭이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연인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태섭의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명헌은 송태섭 그 자체를 사랑했으므로.

 

그래도 여성일 때의 모습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한 번씩 아쉬울 때가 있었다. 태섭의 남성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여성인 태섭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명헌의 욕심이었다.

 

태섭의 여성체 모습이 너무 보고 싶었던 그 언젠가 태섭에게 그의 외형을 바꿔주었던 피어스 얘기를 한 적 있었는데, 태섭은 곤란과 떨떠름이 합쳐진 표정으로 형, 제가 남자인 게 역시 싫은 거 아니에요…? 하고 서운해 한 적이 있어 그 뒤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가슴 속에 그저 묻어두었다. 태섭이 남자인 모습도 여자인 모습도 다 좋고 사랑하는데 제 욕심으로 태섭을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러던 중 꿈에서 두 태섭이 나타나 저를 가운데 끼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나. 꿈이라서 너무 아쉬울 따름이지만 이 꿈을 꾸고 있는 동안 현실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신경 쓰였다. 보통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이를 보게 하는 것은 빌런의 영역이니까. 평소의 명헌은 수면 시 꿈을 꾸지 않았기에 이 꿈이 빌런의 능력이라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명헌은 여전히 저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두 태섭을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팔짱 낀 팔을 풀어내더니 둘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던 두 태섭이 놀란 눈으로 명헌을 보았다. 명헌이 두 태섭의 뺨에 입술을 꾹꾹 눌러주며 말했다.

 

- 더블데이트 뿅. 싸우지 말고 같이 가용.

 

명헌의 말에 그를 멍하게 보던 두 태섭이 눈을 마주치곤 팩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다 오래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명헌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두 태섭의 뺨이 불긋하다.

 

저렇게 행복해하는데 어떻게 혼자 데이트하고 싶다고 말하겠어?

 

 

 

***

 

 

 

남성 태섭이든 여성 태섭이든 송태섭은 송태섭이었다. 자기 데이트 날이라고 으르렁거리던 것이 무안할 정도로 데이트 루트에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두 태섭이 머쓱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명헌은 양손에 다람쥐…아니 양손에 태섭을 꼭 잡고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운동복이 있는 쇼핑센터를 먼저 다녀오고, 차에 짐을 푼 뒤에는 체중 관리로 못 먹었던 기름진 음식과 고기를 잔뜩 먹었다. 영화도 보고, 소화시킬 겸 공원으로 산책도 갔다. 적당히 움직여서인지 다들 기본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입이 심심하다며 근방에 디저트가 맛있다던 카페에 들어가 신나게 먹어댔다. 누가 먼저 명헌에게 디저트를 먹이냐로 투닥거리는 모습에 명헌이 행복한 웃음을 참지 못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걷고 움직이고 먹고 반복하는데 시간이 순식간에 저녁이 되어있었다. 명헌이 두 태섭의 손을 꼭 잡고 느리게 걸었다. 명헌의 보폭보다 작은 보폭인 탓에 두 태섭이 상대적 잰걸음으로 명헌과 맞잡은 손을 엇박자로 살짝씩 흔들었다. 눈앞에서 노을이 지며 하늘이 까맣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던 두 태섭이 서로를 보다 걸음을 멈추었다. 행복에 겨운 채 걷던 명헌이 양쪽 팔이 뒤로 당겨지자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뿅?

 

명헌이 잠시 손을 놓고 두 태섭 앞으로 돌아섰다. 상체를 살짝 숙여 둘을 내려다본다.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이 고개를 숙인 상태의 두 태섭이 입술을 삐죽인다. 아. 귀여워. 사랑스러워. 이대로 둘 다 주머니에 넣고 싶네용. 명헌은 지금이 꿈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태섭들의 말을 기다렸다.

 

- 오늘… 즐거웠어요?

 

여성 태섭이 곱슬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한쪽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얽었다 풀며 물었다. 명헌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 최고의 데이트였다 뿅.

- …내일도 이렇게 만나면 안돼요?

 

남성 태섭이 명헌을 올려다보며 묻자, 명헌이 이번에는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안 된다는 걸 알잖아용?

 

내가 꿈이라고 자각한 순간 능력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테니.

 

명헌이 두 태섭의 손을 꼭 잡았다.

 

- …….

- …….

 

두 태섭이 입을 다물었다. 명헌의 말 대로였다. 꿈 능력으로 상대를 꿈속에 잡아 가둬두면 육신이 취약해져 노리기 좋았으니까. 명헌의 꿈에 들어간 빌런이 혀를 찼다.

 

다중능력을 가진 히어로라 정신방벽도 어느 정도 높을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머릿속이 연인으로 꽉 차있는데다 이 연인이 아이템으로 성별을 바꾼 적 있는 탓에-꿈에 들어갔을 때 봤다- 남성 연인도 원하고 여성 연인도 원하는 아주 이상한 또라이 같은 상황이 꽉 차있어 여느 히어로들이나 일반인들에게 했듯 악몽이나 트라우마를 자극해 무너뜨리려 했던 계획이 완전 파토 났다. 이명헌이라고 하면 대형 히어로 회사인 산왕에서도 대장급인데 머리속을 들여다보니 꽃밭…도 아니고 연인으로 가득 차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명헌이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빌런은 꿈이라는 걸 알면서 대놓고 아쉬워하고 행복해하는 명헌을 향해 부르르 떨고는 그대로 꿈에서 빠져나갔다. 빌런이 사라지자 명헌이 잡고있던 두 태섭의 손가락 끝부터 조금씩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능력이 거둬진 것이다. 꿈 능력은 상대의 꿈속에 들어가 헤집는 만큼 현실의 자신 역시도 취약해지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빠져나가는 게 빌런에게 이득이었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두 태섭을 말없이 보는 명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는 걸 보면 빌런이 일으킨 능력이라 할지라도 어찌됐든 꿈에서라도 소원 성취를 했으니 신변의 안전은 확보되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다.

 

- 이렇게 셋이 계속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 한 명만 만나면 아쉽거나 지겨워지지 않겠어요?

 

빌런이 꿈에서 빠져나가긴 했으나 아직 모든 게 사라지지 않았기에 능력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자신을 보는 두 태섭의 말에 명헌이 푸스스 웃었다.

 

- 꿈은 꿈일 뿐 이에용. 내 태섭은 여기 없으니 계속 있을 필요가 없지 뿅.

 

두 태섭이 머리끝까지 가루가 되어 바람과 섞여 흩날렸다. 명헌이 눈을 감았다. 곧 꿈에서 깨어날 것을 대비해야 했다. 빌런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꿈에서 많은 일-행복한 데이트였지만-을 했기 때문에 깨어난 직후에는 기력이 많이 부족할 터였다. 깨어나 정신을 차리는대로 주위도 파악해야했고 자신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한 빌런도 찾아야 했다. 자신에겐 실패였지만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위험한 능력이었으니까.

 

두 태섭이 사라지고, 꿈 세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현실의 연인이 있는 곳으로.

 

명헌이 양 손에 잡았던 두 손의 온기를 헤아리며 중얼거렸다.

 

 

 

 

***

 

 

 

- 욕심 부리면 안 될까용…….

- 형!!

 

명헌이 느리게 잠에서 깨어났다. 걱정이 잔뜩 묻은 얼굴이 연인을 찾는다. 명헌이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두 손을 얌전히 배 위로 올리고.

 

- 잠자는 공주는 왕자님의 키스를 받아야 깨어난다는 데용.

-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요? 아, 정말.

 

태섭이 아프지 않게 명헌의 가슴을 찰싹-아프지 않게라면서 뿅!-때리더니 몸을 숙여 입을 맞춘다. 가벼운 입맞춤은 명헌에게서 밀려들어온 혀로 인해 끈적한 키스로 순식간에 변했다. 눈을 번쩍 뜬 태섭이 명헌의 어깨를 아프게 때리고 나서야-진짜 아파용! ㅜㅜ - 진득한 키스가 끝난다. 명헌이 아쉬워하며 물었다.

 

- 빌런은?

- 우성이 쫓아갔어요. 몸은 괜찮아요?

 

태섭의 걱정에 명헌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꿈에서 못 나올 뻔 했어용. 태섭이 남자인 모습과 여자인 모습 둘로 나와서.

- 네!?

 

놀라는 태섭을 품에 안은 명헌이 그의 어깨에 뺨을 부비며 말했다.

 

- 태섭이 남자인 것도 좋고 여자인 것도 좋아서 태섭이 둘로 나타났을 때 너무 욕심이 났지만…….

 

끌어안자마자 자연스레 등에 팔을 감고 토닥이는 손길을 느끼며 명헌이 그에게 조금 더 파고들어 끌어안는다.

 

- 역시 꿈에서의 태섭보다 현실의 태섭이 더 좋아용.

 

욕심 부리고 싶지만, 역시 안 되겠죵?

눈앞에 있는 이 태섭만이 진짜 나의 태섭이니까용.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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