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단편)

[명헌태섭] 눈높이

* 리퀘받은 명태

* 리퀘스트 키워드 : 세미정장 감독 명헌x 선수 태섭 / 특정 포즈

* 리퀘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부 명태


미국에서 NBA 선수로 활동하던 태섭이 국내 이적을 택했다. 꿈의 코트를 더할 나위 없이 날아다니기도 했고, 한국에서 감독활동 중인 명헌과의 결혼으로 초장거리 연애를 끝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태섭의 국내 이적은 이슈가 되었고, 입국과 동시에 어느 팀에 들어갈지에 대해 농구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같은 북산 출신인 대만이 이끄는 팀으로 간다는 말도 있었지만, 태섭의 선택은 명헌이 운영하는 팀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싱거울 정도로.

명헌은 선수시절이나 지금의 감독시절이나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로 유명했다. 그런 명헌이, 태섭이 선택한 팀이 자신의 팀이라는 걸 알았을 때 지은 표정은 익일 스포츠 신문 1면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할 정도였다. 스포츠 신문과, 농구계에 길이길이 남을 정도로 활짝 웃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남편과 한솥밥 먹게 된다는 사실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진 이 감독’

태섭은 그 신문을 지금까지도 갖고 있고, 명헌은 어떻게든 불태우고 싶어했다. 부끄럽다 뿅.


태섭이 빠르게 드리블하며 몸을 낮췄다. 상대팀이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 자신을 압박해왔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비롯해 자신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수도 없이 겪어온 익숙한 압박감에 태섭의 속이 울렁거린다. 주위를 살핀다. 이 압박 속에서 패스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중간에 컷당할 확률이 너무 높았다. 태섭의 자세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

코트 밖에서 팔짱을 끼고 선 명헌 역시 태섭을 향한 압박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섭의 영입으로 팀이 한층 강화된 것은 좋지만, 그것은 다르게 말해 상대팀이 태섭을 중심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가지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태섭은 성인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 마주했던 때 보다야 키가 컸을지 몰라도 농구 선수의 평균 신장에는 미치지 못했다. 공이 공중에 떠야하는 스포츠기에 선수들의 수비라인이 태섭의 신장보다 상당히 높았다. 팔도 길어 뚫고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태섭이 점점 몸을 낮추고, 태섭의 자세가 낮아지는 만큼 명헌의 자세도 낮아졌다. 명헌이 손 끝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을 굽혀 앉는다. 짙은 청색의 넥타이가 명헌의 상체가 굽어짐에 따라 밑으로 흘러내렸다. 명헌의 하체에 맞춰 제작한 슬랙스가 팽팽하게 허벅지를 조여냈다. 양쪽 발꿈치를 세우고 있기에 완전 앉은 자세는 아니었다. 바닥을 짚지 않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다 굽혀진 무릎 위로 손을 얹는다. 순간 현철의 시선이 닿았다 떨어졌음을 느꼈으나 명헌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명헌의 시선은 오로지 태섭의 등을 향해있었다. 눈높이가, 맞추어진다.

명헌의 짙은 눈썹 밑에 자리한 깊은 눈이 태섭의 등을 보고있었다. 프레스의 현장을 보고있으나 명헌의 눈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보는 듯 했다. 조금 더. 명헌이 생각했다. 조금 더 낮출 수 있다면.

“아.”

눈이 마주쳤다. 태섭이 씩 웃는다. 먼 곳을 보던 명헌의 눈에 빛이 돌았다. 동시에 관중석으로부터 환호가 쏟아져나온다.

뚫었다!!!!

송태섭이 뚫었어!!!!

그때처럼. 명헌과 우성의 존프레스를 낮은 드리블로, 한순간을 노려 뚫고 나왔던 것처럼 태섭이 상대팀 둘의 프레스를 단숨에 뚫고 달렸다. 두 명의 집중마크에서 벗어난 태섭은 자유였다. 가볍게 몸이 날아오른다. 손에서부터 공이 날아오른다. 림에 정확히 슛이 내려꽂힌다. 출렁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버저가 울렸다.


경기는 명헌이 운영하는 팀의 승리였다. 페어플레이를 외치며 상대팀과 악수를 나누고 필요하면 유니폼도 교환했다. 명헌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팀원들의 어깨며 등을 두드려주고는 경기 후 스트레칭을 시키고 이번 경기를 지켜보며 분석한 피드백을 시작했다. 감독이 되면서 코트를 보는 눈이 더 넓어진 명헌의 조언에 선수들은 생각도 못 한 부분에 대해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감탄하기도 했다. 명헌의 팀에서 자체 시행하는 팀 내 주장결정전에서 당당히 우승해 주장자리를 따낸 태섭 역시 명헌의 의견에 동의하며 경기 중에 느꼈던 좋은 부분과 아쉬운 부분에 대해 피력했다. 감독과 주장이 포인트가드라 그런지 시야 외적인 부분에서 들어오는 피드백이 많았다. 피드백을 마치고 저마다 전용버스 이용시간까지 주어진 자유시간으로 흩어지던 중, 현철이 땀을 닦아내며 명헌에게 다가왔다.

“야. 이명헌.”

“뿅.”

명헌이 주위를 슥 보다 대답했다.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같은 팀 출신이라 서로 편하게 얘기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둘은 팀 자체의 분위기를 생각해 팀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존칭과 존댓말을 썼다. 아무도 없고, 태섭이 남아있었지만 현철이 다가오자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너 아까 도감독님 생각나게 앉아있더라.”

“뿅?”

“넌 모르지? 태섭이가 이중마크 당하고 있을 때였는데. 태섭이 자세가 낮춰질수록 네 자세도 낮춰지더라고. 뭐 감독이 선수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하는 행동이니 처음에는 나도 별 생각 없었는데…….”

말을 잠시 쉬는 현철의 눈빛이 어딘가 익숙했다. 태섭의 낮은 드리블과 프레스를 뚫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코트가 아닌 좀 더 먼 곳을 보던 명헌처럼.

“옛날생각 났지? 너도.”

“삐뇽.”

“나중에 시간날 때 산왕 대 북산 비공식 이벤트전 어떠냐. 재밌을 것 같은데.”

“이미 선수 둘이 감독으로 빠졌잖아용.”

“뭐 어때. 산왕이나 북산 출신이 우리만 있냐? 그때 벤치에 있던 놈들 중에 지금도 뛰는 놈이 얼마나 많은데. 출전 멤버만큼이나 그때의 경기에 간절한 놈들 많을 걸.”

“흠…….”

“너도 그 생각한 거 아니냐? 감독이어도 어쨌든 선수 출신이고 공은 언제든 만질 수 있다는 거.”

그 말에는 어쩔 수 없이 웃었던 것 같다. 명헌을 보던 현철이 말했다.

“명헌아.”

“뿅?”

“감독 준비하면서 도감독님께 조언과 도움을 제법 받은 것 같던데?”

“도감독님은 존경받을만 하시고 배울점이 많으니까 뿅.”

“산왕 시절에서부터 시작이었지, 어찌보면.”

“많이 닮았나용.”

“앉아있는 모습은 판박이더라.”

“감독님 잡아먹었다고 소문나겠어용.”

현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감독끼리 이벤트전 잘 얘기해보라고.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될 것 같은데. 명헌의 어깨를 팡팡 치던 현철이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아픈 어깨를 문지르던 명헌이 픽 웃는다.


“북산 대 산왕 비공식 이벤트전이요?”

“응. 산왕 대 북산의 비공식 이벤트.”

“…재미있겠네요. 북산 대 산왕 리매치.”

“이번에는 우리가 이길 거에용. 산왕 대 북산 리매치.”

아무리 부부라지만 스포츠맨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명헌도, 태섭도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태섭이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솔직히 얘기해봐요. 아까 내가 프레스 뚫고 나갈 때 북산왕전 생각했죠?”

“그때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더라고용. 슛도 성공시키고. 그땐 형편없었는데 뿅.”

“…….”

“…….”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던 부부가 동시에 등을 돌리더니 함께 고등학교 농구부 소속이었던 선수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삐딱하게 눈썹을 세우고 웃으면서도, 도발 아닌 도발에 이를 가는 태섭의 통화를 곁눈질로 보던 명헌이 생각했다.

사실 그 때.

너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우리가 어땠을지 궁금했어용. 168cm라는 농구하기 작은 키를 가진 네가, 당시 180cm와 그보다 한참 큰 선수를 어떻게 뚫어낼 수 있었는지. 너의 자세가 낮아질수록 내 자세도 낮아져서, 쉽사리 뚫어낼 곳이 보이지 않았을텐데.

그런데도 너는 기죽지 않았고 겁먹지 않았지.

아니, 너는 경기 내도록 기가 죽었고 겁을 먹은 게 보였었어.

막힐 때마다 그 모습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했어.

무엇으로 이겨냈는지 궁금했어.

같은 상황에서, 성장한 너는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틈을 찾아 파고들었고, 뚫어냈으며, 나아가 실패확룰이 높았던 슛 마저 성공시켰지. 슛을 성공시키기까지 너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을 했을까. 농구에 불리한 신체적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을 했을까.

“형?”

통화를 마친 태섭이 명헌을 돌아보았다. 명헌의 손이 태섭의 뺨을 어루만졌다. 자연스레 태섭이 눈을 감고, 명헌이 그를 품에 안았다.

“명헌 형?”

태섭이 명헌을 불렀다. 명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섭이 고개를 갸웃대다 말없이 명헌을 마주안았다.

“…태섭.”

“응?”

태섭의 어깨에 기댄 명헌이 말했다.

“태섭은 역시 너무 작아용.”

“…허?”

“압박 뚫을 때 드리블이 낮아지는 만큼 눈높이를 맞취보려고 나도 자세를 낮췄는데 그냥 앉아버렸잖아용.”

“지금 이거 시비거는 거 맞죠?”

떨어지라며 왁왁대는 태섭을, 명헌이 꽉 끌어안았다. 태섭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다.

…기특해용.


북산 대 산왕, 산왕 대 북산. 이벤트 아닌 이벤트전에 현재 선수로든, 감독 및 코치진으로든 활동하고 있는 모든 선수가 모였다. 아직 미국에서 활동중인 우성과 백호, 그리고 태웅은 어쩔 수 없이 불참이었지만. 시차가 그렇게나 차이가 나는대도 응원이라도 하고 싶다며 화상으로 코트를 관람하기로 했다.

무릎 부상으로 은퇴 후 감독으로 전향한 대만이 불꽃을 이글거리며 이 경기에 나는 무조건 코트에 선다고 나서는 바람에 같은 감독인 명헌까지 코트 위에 서게 됐다. 준비된 유니폼이 없던데다 감독 출전은 생각도 못했던 터라 대만은 정장 자켓을 벗고 팔뚝을 걷어올리고, 명헌은 반팔 셔츠에 넥타이, 슬랙스 차림으로 넥타이를 목 뒤로 한바퀴 두르고 슬랙스를 종아리 위까지 걷어올렸다. -여기서 모두에게 패션을 모른다며 야유를 받았다-

“…야. 이명헌. 송태섭 저렇게 불타오르는 이유가 뭐냐? 뭐라고 했길래 저래?”

“뾰옹…….”

전의 가득한 태섭의 모습에 대만의 팀 소속인 낙수가 명헌에게 속닥거렸으나 그는 삐질거릴 뿐이었다.

심판 역으로 국내 여성농구팀 코치를 맡고 있는 한나가 나섰다. 치수와 현철이 앞으로 나서고, 한나가 둘을 한번씩 보더니 공을 위로 던져올렸다. 두 선수가 동시에 뛰어오른다. 모두의 시선이 농구공을 향했다. 공을 보던 명헌이 태섭을 보았다. 코트 밖에서 보는 것과 코트 안에서 보는 건 역시 달랐다. 태섭 역시 명헌을 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세를 낮춘다. 눈높이가 맞춰진다. 태섭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눈썹을 위로 올렸다. 명헌이 생각했다.

자신 역시 웃고 있겠지, 하고.

태섭이 소리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태섭의 입술로 명헌이 시선을 집중했다.

‘당신.’

‘세미 정장으로 코트에 서니까.’

‘꼴려.’

아. 역시 이번 경기는 산왕이 이겨야겠어용.

- fin.

* 뿅감독이 코트 밖에서 태섭을 보며 앉아있던 포즈는 리퀘스트 받은 포즈로

아래 이미지의 도감독님과 같은 자세였습니다… 만 표현이 잘 되었을지 모르겠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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