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태섭] 내 운명, 내 …….
* 어째서인지 세같살 아니면 최근 연성이 죄다 명태여서 우태만 따로 리퀘 받았었는데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두둥
그래서 내가 보고 싶은 거 씁니다. ; )
* 타임슬립? 느낌의 살짝 판타지풍 우태
* 보고 싶은 것만 쓰기도 했고, 내용이 길어지면 늘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짧게 쓰기로
** 교통사고 관련 언급 있습니다.
- 태섭아, 운명을 믿어?
녀석은 내게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바다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은 나에게 운명이라는 단어는 꽤나 지독하고 잔인한 것이어서,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이게 원래 내 인생이라고 말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것을 부정했다.
- 그래? 운명을 믿지 않는구나. 태섭아.
햇빛에 눈이 부셨다. 나보다 큰 녀석을 올려다보는데 눈이 부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햇빛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가. 웃었던 것 같기도 한데.
- 난 운명을 믿어, 태섭아. 너와 내가 만난 것은 분명 운명이라고 생각해. 산왕 대 북산으로 처음 마주했던 것도. 이 먼 미국땅에서 함께 농구를 하게 된 것도. 너와 이렇게…….
녀석의 크고 기다란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자연스럽게 깍지를 낀다. 깍지껴 잡은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햇빛이 눈부셔 눈을 찡그렸다. 손을 잡지 않은 손이 내 머리 위로 떠올라 그늘을 만든다. 햇빛이 가려졌는데도 녀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 태섭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부드럽다.
- 내 운명. 내…….
속삭이는 끝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되묻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입을 달싹이는 것 같았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녀석의 목소리도. 내 목소리도.
“태섭아?”
“어, 어어? 한나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러다 어디 부딪히겠어.”
“태섭아, 괜찮아?”
“내… 내가 그랬어? 미안. 한 눈을 팔았나보네.”
태섭의 양쪽에 선 한나와 달재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태섭이 눈을 꿈벅이다 머쓱하게 웃는다.
“아직 회복이 덜 된 거야? 역시 입원치료를 좀 더 받았어야 했을까?”
“병원에 다시 가볼까? 어지럽거나 속이 안좋고 그런 건 없어?”
“아… 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야. 사고 후유증이 오래가나봐.”
사고. 후유증. 고등학교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한 번 크게 다친 적 있어서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 러닝 중에 갑자기 달려드는 차에 치일 줄 누가 알았겠나. 오토바이 사고 당시에 태섭이 보았던 것은 고향의 바다였다. 이번 사고에서는 무엇이 보였나 하면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때와는 다르게. 태섭이 숨을 고르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그를 걱정스럽게 보는 두 친구에게 웃어보인다.
“괜찮아! 정말 안 좋으면 병원 가자고 했을텐데, 그 정도 아니야! 넘버 원 가드가 되려면 건강에 신경쓰고 또 써야하는데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특히 한나가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데?”
“아이 참. 뭐야, 송태섭!”
한나가 아프지 않게 태섭의 등을 퍽퍽 때렸다. 달재가 옅게 웃었다.
“이제야 좀 태섭이다워졌네.”
“내가 걱정끼쳤으니까 오늘 저녁은 내가 산다! 가자!”
“정말? 농구부 다 불러도 돼?”
“하, 한나야… 그건 좀…….”
“하하하.”
지갑을 열어 돈을 헤아려보며 울상짓는 태섭에게 한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딘가 멍하던 태섭은 정말로 괜찮은 모양이었다. 태섭이 걸음을 옮기자 달재도, 한나도 그를 따라 나란히 걸었다.
“한나야, 정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겠어?”
“얘들은 무슨.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혼자서도 갈 수 있거든? 너희도 얼른 집에 들어가! 내일 농구하려면 얼른 자야지!”
“응. 네 말대로 할게, 한나야.”
“한나야, 잘 가.”
“너희도 잘 가!”
한나를 먼저 보내고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달재와 태섭이 골목길을 걸었다. 오늘 먹은 저녁이 맛있었고, 다음에는 뭘 먹어보고… 그런 얘기를 하며 걸어가는데 태섭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태섭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달재 역시 걸음을 멈추었다.
“태섭아?”
태섭은 옆으로 빠지는 골목을 보고 있었다. 달재가 다가와 골목을 기웃거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재가 태섭을 보았다.
“괜찮아?”
“…어, 응. 뭔가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태섭의 말에 다시 골목을 확인한 달재가 고개를 저었다. 태섭이 달재의 옆으로 다가와 골목을 한참 쳐다보았다.
“혹시 귀신이라도 본 거야…?”
“아, 아니야!”
조심스러운 달재의 목소리에 태섭이 외쳤다. 달재의 등을 떠민다. 가자! 얼른!
“…….”
이러다 넘어지겠다며 외치는 달재의 목소리를 듣던 태섭이 고개를 돌려 골목을 보았다. 저기에 누가 있을 것 같은데, 왠지 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왜?
“…….”
농구부 활동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어제 마주한 골목에 태섭이 섰다. 평소에도 다니는 길목에 보이는 샛길과 다름 없는데 이상했다. 자꾸 시선이 갔다.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마주하고 나면 안으로 들어서기를 망설였다. 본능이 거부하는 것 같았다. 더 들어가면 안 돼. 더 생각하면 안 돼. 머리가 지끈거려와 왁스를 발라 세운 머리를 움켜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아픈 건…….
“괜찮아?”
“아…….”
어깨를 잡아오는 감촉에 태섭이 인상을 찡그린 상태로 눈을 떴다. 고개를 들었다. 절로 딸꾹질이 나왔다. 키가 몇이야? 2미터는 넘는 것 같은데? 몸 좀 봐. 미친 거 아냐? 농구하면 대박이겠다. 빠른 생각이 태섭의 머리속을 달려나갔다. 길목에 어둠이 드리우고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태섭을 붙잡은 남자의 위로 가로등 불빛이 쏟아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이거 어디선가…….
“병원에 데려다 줄까? 괜찮아?”
태섭이 눈을 깜빡였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어느 새 멎어있었다. 손을 들어 이마를 매만졌다. 어깨를 잡았던 남자의 손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멍하게 있던 태섭이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병원에 안 가봐도 되겠어?”
“네. 괜찮아요.”
“그래. 그래도 조심해. 많이 힘들면 바로 병원 가고.”
“감사합니다.”
남자가 한 걸음 물러섰다. 태섭이 꾸벅 인사하곤 골목 샛길을 지나쳤다. 그런 태섭의 뒷모습을, 남자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
골목 샛길 앞에 태섭이 멈춰섰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 하면서 주위만 알짱거린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태섭이 헛기침하며 가로등 옆에 섰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큰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나 이상하게 태섭은 남자가 신경쓰였다. 일단 피지컬적인 부분부터 그랬다. 그 정도 키면 성인일텐데.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국내 선수를 찾아보아도 어제 마주친 남자의 실루엣을 가진 선수가 없었다. 어깨를 잡아왔던 크고 긴 손가락이 농구공을 잡기 적절했는데. 농구선수가 아닌 걸까? 그를 보면 어제 잡아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핑계로 얼굴을 보고 싶었다. 이상하지. 태섭은 남자가 이상하게 신경쓰였다. 얼굴을 못 본 게 이상하게 신경쓰였다. 목소리가 무언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 게 이상하게 신경쓰였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어디서였을까. 어디서였을까……. 태섭이 눈을 감았다.
- 태섭아, 운명을 믿어?
뭐지?
- 그래? 운명을 믿지 않는구나, 태섭아.
누구?
- 난 운명을 믿어, 태섭아. 너와 내가 만난 것은 분명 운명이라고 생각해. 산왕 대 북산으로 처음 마주했던 것도. 이 먼 미국땅에서 함께 농구를 하게 된 것도. 너와 이렇게…….
이건 무슨 상황이지?
- 태섭아.
…누구?
- 내 운명. 내…….
뭐라고? 잘 안들려!
태섭이 눈을 떴다. 사색이 된 달재와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 여기 환자가 깨어났어요! 달재가 황급히 의료진을 부르러 뛰어나갔다.
“어?”
“송태섭! 이 바보야! 너 상태 안 좋으면 바로 병원가자고 했지! 이게 뭐야! 진짜 놀랐잖아!! 괜찮아?”
“어…어?”
“너 쓰러져있어서 지나가던 사람이 119 신고해서 응급실 왔어!! 연락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 미안해… 한나야, 울지마….”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펑펑 우는 한나를 다독여주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상황이었는지 생각하려 했는데 머리만 지끈거리는 두통만 일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달재의 부름에 달려온 의료진이 태섭의 상태를 확인했다. 검사한 상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일종의 트라우마인 것 같다는 두루뭉실한 답변만 들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달재와 눈이 퉁퉁 부은 한나와 함께 태섭이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응급실 돈 많이 나왔겠는데… 하고 중얼거리는데 달재가 말했다.
“너 병원에 올 수 있게 신고해준 분이 비용을 대신 내주셨어.”
“뭐?”
“연락 받고 나랑 한나가 오니까 같은 교복 입고 있는 거 보더니 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고 부모님도 놀라실테니까 말하지 말라면서… 정산 해주고 가셨어. 연락처랑 성함이라도 받아놓으려고 했는데 극구 사양하셔서…….”
“…….”
어째서 가로등 불빛 밑에서 만난 남자가 생각난 걸까.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째서?
그 뒤로 달재와 한나가 태섭의 등하교를 함께했다. 태섭이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달재의 단호한 표정과 울기 직전의 한나에게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존재들에 감사하며 태섭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셋이 나란히 하교하는 길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골목 샛길로 시선이 향했다. 시선이 향하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려와 태섭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골목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자마자 두통이 사라졌다. 이상하고 신기했다. 신경이 계속 쓰이는데 몸이 나서서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몸이 거부하는 것 같았다. 저기로는 가면 안 돼. 생각하면 안 돼. 앞으로도.
“괜찮아? 머리 아파?”
“병원 갈까?”
“…아냐. 아까 잠깐 아팠는데, 바로 괜찮아졌어.”
“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
“…….”
태섭이 골목을 돌아보았다. 달재와 한나가 태섭을 보았다. 골목을 보던 태섭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 아픈 건 질색이니까.”
“응?”
영문 모를 소리에 달재와 한나가 서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태섭이 먼저 걸어가자 황급히 따라간다. 태섭아! 같이 가!
“…….”
세 고등학생의 뒷모습을 보던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말했다.
“기억은 못 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나본데용. 우성이 여기 있는 게 좋은 일은 아닌 거 알죵.”
“…네. 그치만, 그 때는 갑자기 쓰러졌으니까…….”
“너에 대한 기억을 하려 했으니까, 아무래도 뿅.”
“…….”
우성은 멀어지는 태섭의 뒷모습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고는 갑작스러웠다. 태섭은 운명을 믿지 않았지만, 우성은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었기에 더더욱 사고를 믿을 수 없었다. 사고는 태섭의 운명에 없었으니까. 과거 태섭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던 때처럼. 운명을 관장하는 신에게 운명에 없는 사고는 속수무책이었다. 사고의 규모도 커 태섭을 포함하여 사고에 휩쓸린 사람들 모두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죽음은 괜찮았다. 그들에게 이 사고는 운명에 의해 정해져있던 것이기 때문에. 어째서 태섭만 운명에 없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나.
그 답은 같은 신인 명헌이 내주었다.
- 인간에게 빠져서 너무 많은 관여를 하고 있잖아용.
- …….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태섭을 끌어안고 눈물만 쏟아내는 우성에게, 명헌이 그렇게 말했다.
- 네가 관여한 ‘운명’만큼, 지워내면 그만큼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명헌은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 …끄윽…….
쏟아낸 눈물이 태섭의 뺨 위로 툭툭 떨어졌다. 태섭이 가늘게 숨을 내쉬며 파르르 눈을 떴다. 우성을 본다. 픽 웃는다. 우성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태섭이 명헌을 힐끗 보다 우성을 보며 말했다.
- 내가… 말했지. 운명은, 믿지 않는…다고.
- 태섭아…….
- 너는, 믿지만… 하아… 운명은 믿, 지, 않아. 아버지도… 형도… 그렇게… 죽을 운명이라고… 믿고 싶지 않으니까…….
태섭이 운명을 믿지 않는다 했다. 우성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태섭의 숨이 약해져갔다. 명헌의 시선이 우성의 머리 위로 날카롭게 닿았다. 결정을 해야했다. 축 늘어지는 몸을 바로 안은 우성이 그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췄다. 피부가 차가웠다. 푸른기가 도는 입술에도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었다. 태섭이 눈을 감았다. 우성이 명헌을 보았다. 명헌이 양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이 희게 빛나기 시작했다.
- 우성과 함께한 시간만큼, 운명의 신이 관여한 ‘운명’만큼 시간을 지워낸다 뿅. 무슨 뜻인지 알지 뿅?
- …….
- 송태섭이 눈을 뜨면 우성을 만나기 전인 북산 고등학교 2학년 초반으로 시간이 돌아갈 거야. 그리고 송태섭의 시간에, 정우성의 존재는 끼어들 수 없다 뿅. 송태섭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의하나용?
- …네. 동의… 합니다.
태섭의 흰 빛으로 물들었다. 우성이 눈물을 흘렸다. 차가워진 태섭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끼워 깍지를 꼈다.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 안녕, 내 운명. 내 사랑…….
“…….”
우성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줄기를 닦아냈다. 명헌을 돌아본다.
“이제 가요.”
명헌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성이 명헌에게 다가가고, 둘의 모습이 흰 빛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녕, 내 운명. 안녕, 내 사랑.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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