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태섭] 나의 인어
* 우태 트친 드린 글
* 우성태섭 바다와 인어 후속편
***
우성은 태섭을 1년에 두 번 이상 찾았다. 한참 바쁠 시기인데다, 태섭과 함께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학교 및 사회생활하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매일 보고 싶지만 자신의 등을 떠민 것은 태섭이었다. 인간은 인간의 삶을 살아야지. 예전같았으면 서운하다 못해 미웠을 말이지만 지금의 우성은 그 말을 하기 위해 태섭이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지를 알았다. 헤아릴 줄 알았다. 우성은 그렇게 성숙해졌다.
우성의 오른쪽 손목에 걸린 팔찌가 반짝반짝 하면서도 닳아있었다. 재회를 바닷속에서 하는 바람에 끊어질 뻔 했던 팔찌를 가져간다는 태섭과 한바탕한 결과였다.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이 있는 팔찌. 태섭이 바닷속에서 우성이 떠오를 법한 반짝반짝하고 동그란 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었다. 그것은 색바랜 작은 진주알이기도 했고, 동그랗게 잘 깎인 작고 작은 조개껍데기 안쪽이기도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과 색이 바랜 것들이 팔찌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반짝반짝하는 것은 이번에 새로 구한 것, 색이 바랜 것은 예전에 있던 것. 서로 추억의 팔찌를 가지려고 아웅다웅하다 나온 결론. 반반 나누기. 우성의 오른쪽 손목에 자리잡은 반짝반짝하고 바랜 이 팔찌는 태섭의 오른쪽 손목에도 자리하고 있다. 우성은 팔찌를 매만지며 실실 웃었다. 벌써 보고싶다.
오늘은 우성이 태섭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
우성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태섭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우성을 기다리며, 우성이 주로 앉아있는 넓은 바위 위에 쌓던 돌탑도. 우성의 자리에 종종 앉아있으면 생기던 물자국도. 태섭의 하반신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도. 태섭이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태섭아?"
우성이 태섭을 불렀다. 바람이 우성을 스쳐 지나간다. 태섭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없다. 주위를 훑어보는 시선이 다급하다. 우성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서둘러 태섭과 만나는 바위까지 다가갔다. 바다를 들여다본다. 맑은 바다는 야속하게도 일렁이는 연인의 얼굴을 비춰주지 않았다.
사라진 태섭을 찾아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에게 '인어를 찾고 있어요. 혹시 보셨나요?' 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미친놈 취급을 할 수도 있고, 그래, 그것까진 괜찮다. '인어'라는 말에 희귀종을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돈에 눈이 먼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다. 일단 사회에 얼굴을 비춘 적 없는 종족이니까. 어디 국가 기밀센터 같은 곳이라던가 실험실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미친놈 취급 당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우성은 발을 동동 굴렀다. 우성은 수영을 못했다. 헤엄도 제대로 칠 줄 모르고, 잠수는 당연히 못 했다. 애초에 태섭을 처음 만났던 것이 우성이 튜브를 끼고 바다에 나왔다가 그대로 가라앉는 걸 구해주는 인연에서부터였으니. 태섭이 있기에 헤엄칠 일도 없었다. 우성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수영 배울걸. 잠수도 배울걸. 바다와 관련된 건 닥치는 대로 배울걸. 왜 나는 여태 태섭이 나를 만나러 오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던 걸까.
막막했다. 어디에도 도움을 구할 수 없고, 바다 속에서 찾을 수도 없고. 막막한 상황에 우성이 초조한 낯빛으로 바다를 보았다. 바위 주변만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배회했다. 손 끝을 잘근잘근 물었다. 손목에 걸린 팔찌가 잘게 흔들렸다.
"어, 그거."
"……?"
우성이 고개를 돌렸다. 해변가에 서 있는 여성을 보았다. 여성은 우성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여성의 시선을 따라가던 우성이 손목을 들어올렸다. 여성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마를 짚는다. 우성은 여성이 태섭의 존재를 알 거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이마를 짚은 채로 서 있던 여성이 우성을 보았다.
"어?"
"따라와요."
익숙한 눈매가 휙 돌아선다. 어버버거리던 우성이 황급히 여성의 뒤를 따랐다.
***
어느 집 앞에 도착한 여성이 멈춰섰다. 한숨을 내쉬는 것 같더니 몸을 돌려 우성을 보았다. 우성이 움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익숙한 눈매가 우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어디까지 봐줄 수 있어요?"
"예?"
"바보 천지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얼마나 보살펴 주고 챙겨줄 수 있냐고요."
"어……."
뜬금없는 말에 우성이 어물거리자 여성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신 때문이겠지……."
"네?"
"일단 따라와요."
" …? …???? ???"
우성이 혼란한 얼굴로 앞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따라갔다. 문을 열고 엄마, 나 왔어요. 범인도 찾은 거 같고. 하고 말하는 목소리에 우성이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다급히 여성을 앞질렀다.
"잠깐, 잠깐만요. 대뜸 범인이라니…!"
순식간에 우성이 시선을 잡아챈 존재가 있었다. 우성의 눈이 커졌다. 넓은 거실 한복판에 넓은 욕조가 들어서있는 것도 놀랐지만, 그 안에 있는 존재를 알아본 것이 더 컸다. 빠르게 다가간 우성이 급하게 무릎을 꿇더니 욕조를 붙들었다.
"태섭아!"
우성이 물이 가득 찬 욕조 안에 잠들어있는 태섭을 보았다. 우성이 떨리는 눈으로 태섭을 차근히 살폈다. 분명, 분명 태섭의 얼굴이 맞는데. 뭔가 달랐다. 귀 대신 붙어있던 지느러미가 사라져있었다. 자신과 같은 둥근 귀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성의 시선이 밑으로 향한다. 매끄럽던 물고기 형상의 하반신이 인간의 두 다리로 갈라져있었다. 우성이 놀란 얼굴로 여성을 돌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우성을 보던 여성이 입술을 달싹일 때, 욕조에서 참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성이 고개를 돌렸다. 물 속에서 잠들어있던 태섭이 눈을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태섭의 둥근 어깨 위로 물방울이 고이다 흘러내린다. 젖은 머리카락 끝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졌다. 멍한 표정을 하던 태섭이 우성을 보았다. 멍하게. 그것이 미묘했다. 우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태섭을 불렀다.
"태섭아."
"……."
"…태섭아?"
태섭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시선만 던질 뿐이다. 우성의 눈이 크게 뜨이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우성이 조심스럽게 욕조를 붙잡은 태섭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손가락 사이에 있던 물갈퀴가 없어진 탓에 우성의 손가락이 자연스레, 혹은 어색하게 태섭의 손가락 사이에 겹쳐들었다. 태섭이 그 손을 보다 우성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게 우성만 보고 있었다. 우성이 혀를 내어 입술을 축였다. 입술이 바싹 말라서였다. 애닳은 목소리가 다시금 그를 부른다.
"태섭아……."
"…인간을 사랑한 인어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죠."
어린 여성이 아닌 중년의 여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우성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나저나, 그나저나…….
"태섭이가, 태섭이가 저를 못 알아봐요……."
"당신이죠?"
"네?"
"저 인어가 사랑한 인간이."
"……."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태섭의 손등 위로 얹어진 우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중년의 여성은 자신을 미야기 카오루라고 소개했다. 그 옆에 불퉁한 얼굴의 여성은 미야기 안나. 둘은 인어 연구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무래도 인어라는 종족이 희귀성이 짙다보니 여러가지 이유로 위험요소가 많은 탓에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팀은 아니라고 했다. 어렸을 적 우연히 만났던 인어와의 연을 시작으로 인어를 찾아다니며 그들에 대한 연구와 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단체라고 했다.
"일본의 인어 무리에서 얘기해주더라고요. 한국에 사는 인어가 있는데, 인간이 되는 법에 대해 물은 적 있다고."
"인간이… 되는 법……?"
카오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인어가 인간이 되는 법을 찾는 이유는 정해져있어요. 인간 세상을 동경해, 인간이 되어 인간 세상을 겪고 싶어하는 부류와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부류. 대게 이 두 종류로 나뉘죠. 저기 저 인어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고요."
우성이 복잡한 표정으로 눈만 멀끔하게 뜨고 있는 태섭을 보았다. 태섭과 비슷한 눈매의 어린 여성, 안나가 장난감으로 태섭의 시선을 이끌어냈다. 태섭이 말 없이 손을 뻗었다. 안나가 건넨 장난감을 만지작 거린다. 흔들어도 보고, 입을 벌려 깨물어보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던 우성이 카오루를 돌아보았다.
"보다시피, 인어가 인간이 되는 법은 부작용을 동반해요. 대부분 종족이 사는 곳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인어로써의 기억을 잃게 되죠. 저 인어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인간이 되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을 갖고 있어요."
잃어버린 목소리, 잃어버린 기억.
우성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태섭은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부작용으로 인어였던 시절의 기억을 잃었다. 목소리를 잃었다. 다시는 태섭과 이야기할 수 없고, 태섭과 과거를 그리며 사랑을 속삭일 수도 없었다.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알리고 싶지 않았을 거에요. 놀래켜주고 싶었겠죠. 두 다리로 서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태섭을 돌아본 우성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나가 건넨 장난감에 그새 흥미를 잃었는지 허공을 멍하게 보던 태섭의 눈이 우성을 향했다. 우성이 무릎걸음으로 태섭에게 다가갔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
"난 네가 인간이길 바란 적 없어. 난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했는데."
"……."
"내가 자주 못 와서 그랬어? 네가, 인간이 되면, 함께 움직일 수 있으니까?"
"……."
"태섭아."
"……."
태섭이 고개를 기울였다. 손을 들어 눈물로 흠뻑 젖은 우성의 뺨을 매만진다. 손길에 묻어나오는 애정은 없었다. 그저 호기심.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그것만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선택지가 있어요. 책임을 지거나, 버리거나."
"버린다고요?"
우성이 카오루를 보았다. 카오루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벼운 한숨과 달리 무거운 내용이 카오루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인간을 사랑한 인어의 케이스는 종종 있어요. 인어는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고, 그만큼 순수하니까요. 같은 인간이 되면 인간이 자신을 여전히 사랑해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인어가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경우처럼 부작용을 안는 경우는 대다수고, 그걸 원하지 않은 인간은 인어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된 이들을 버렸어요. 목소리를 잃은 인간을 버리고, 기억을 잃은 인간을 버리고. 우리는 인어들이 전해주는 소식을 따라 인간이 되고, 버려진 인어들을 찾아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이 인어… 태섭의 경우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고요."
"……."
인어가 인어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었을 때. 카오루와 안나는 일본의 인어들에게 얘기를 전해듣고 태섭의 서식지를 찾았다. 그리고 해변가에 쓰러져있는 태섭을 발견했다. 인어인지 알아보는 것은 쉬웠다. 뭍으로 올라오며 하나씩 떨어져나온 비늘이라던가, 근처에서 발견된 지느러미가 있었으니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놀래키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겠지만, 인어들은 인간이 되면 겪을 부작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이 되겠노라 연인에게 고하고, 연인이 기다리는 해변가에서 인간으로 변해 뭍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연인의 앞에서 안고있는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연인과 함께 연인의 집으로 향하던가, 쓸모없다며 버려지거나. 그랬다.
카오루와 안나가 도착했을 당시에도,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고도 태섭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나는 환멸난다는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은 연인에게 욕을 내뱉었다. 순진한 인어 하나 이렇게 또 갔네. 인어가 인간이 된다고 해서 당장 걷고 인간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어에서 인간으로 종족이 변하는 만큼 외적으로는 당장 변한 것 같아도 하반신에서 돋아나는 비늘이라던가 귀를 덮는 지느러미 따위의 일부 온전히 변하지 않은 부분이 완전한 인간형이 될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다. 맨 공기에 노출되면 비늘이 돋았다 떨어지며 상처가 생길 수 있어 마련한 것이 욕조였다. 그렇게 비늘이 돋아나지 않을 때까지, 지느러미가 덮이지 않을 때까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수중에서 아가미 호흡하던 것이 공기중의 폐호흡으로 변형되며 물 속에서 더이상 살지 못하고 공기 중에서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관리가 필요한 시기라는 거다. 카오루와 안나가 태섭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태섭은 상처투성이로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인어를 보살펴줄 연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카오루의 설명에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듣던 우성이 말했다.
"…그럼, 제가 데려가도 되는 건가요?"
"데려갈건가요?"
"태섭이가 인간이 된 건 저 때문이니까요. 제가 책임져야해요."
"쉬운 일은 아닐 거에요. 인어로서의 기억을 잃은 상태로, 인간으로 살면서 필요한 지식 역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요. 백지 그 자체죠.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된 인어를 보살피고, 가르치고, 사랑할 수 있나요?"
카오루의 갈색 눈이 우성을 들여다보았다.
"그때까지 당신을 사랑해서 선택을 한 인어를, 인내심을 가지고 케어할 수 있나요? 거부하려면 지금 뿐이에요. 우리는 주기적으로 인간이 된 인어를 찾고, 관리합니다. 잘 하겠다 해놓고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기에 확인을 하는 겁니다. 확실히 당신이 이 인어를 책임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지금도, 이후로도 감당할 자신 없다면 지금 포기하세요. 그럼 이 인어는 저희가 인간이 되어 버려진 인어들을 보살피는 센터로 데려가 케어할 겁니다."
"태섭이, 쟤가 저를 버릴 수 있어도 제가 태섭이를 버릴 일은 결코 없어요."
"……."
우성이 단단한 시선으로 말했다.
"알려주세요. 집에서 인간이 된 인어를 제대로 케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요."
***
카오루의 말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온전한 인간이 될 때까지 태섭은 욕조에서 생활해야했는데, 욕조에 잠겨 잠들다 보면 저도 모르게 폐호흡을 해 숨을 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우성은 제 방 침대를 거실로 치워내고 태섭을 위한 커다란 욕조를 들였다. 벽이 투명해 욕조라기 보단 수조에 가까웠다. 태섭의 호흡을 지켜보기 위한 우성의 선택이었다. 수조 바닥에 쌓인 비늘을 걷어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태섭의 다리 곳곳에 비늘이 떨어져나가며 난 상처를 보며 태섭의 다리만 수조 위로 올려 약을 발라주었다. 따가운 감각에 태섭이 버둥거렸다. 버둥거리면서도 새어나오는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가슴이 미어졌다. 자신과 함께 할 삶을 위해 인어이길 버리고 인간이 되는 것을 선택한 태섭이 고마우면서도, 제때 찾아가지 않아 위험할 뻔했다는 말이 떠오를 때면 여지없이 눈가가 시큰거렸다.
식사도 곤혹이었다. 인어의 습성이 남아있는 탓에 태섭은 자꾸 날 것을 먹으려 했다. 모든 반찬이 익어서 나오면 개중에 조금이라도 덜 익은 것을 찾았다. 수저와 젓가락을 쓰는 법도 몰라 손으로 집어든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우성은 그 때마다 태섭의 손에 수저며 젓가락을 쥐어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에 태섭이 그것을 바닥에 집어던지면 우성은 제가 손수 밥이며 반찬을 집어 태섭의 입 안에 넣어주었다. 제대로 씹고, 삼키는지 확인하고 나면 물도 챙겨주었다. 배불러 늘어진 태섭을 붙들고 수저와 젓가락을 쥐는 연습을 했다. 사용이 어려워 인상을 찡그린 태섭의 미간에 입술을 눌러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태섭은 멍하게 우성을 보았다.
우성은 태섭과 자주 눈을 맞췄다.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릴 가능성도 미지수였지만, 과거를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우성이 태섭과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았다. 이유를 말해준 적은 없었지만, 태섭이 인간이길 택한 이유도 우성에게 있을 터였다. 우성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우성은 태섭이 계속 인어였어도 사랑했을 것이다. 태섭이 인간이길 바란 적 없다고는 했지만, 그랬지만. …같은 인간이었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은연 중에 태섭이 인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만큼, 태섭의 연인인 만큼. 책임을 지고 싶었다. 사랑해주고 싶었다. 태섭은 우성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태섭이 인간이든 인어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우성은 태섭을 그 자체만으로 사랑했다.
태섭의 오른쪽 손목에 우성과 같은 팔찌가 끼워져있었다. 옷 입는 연습을 할 때마다 태섭은 싫은 기색 역력히 옷을 찢어버릴 듯 잡아당기고 했지만 손목에 감긴 팔찌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반짝반짝하면서도 빛 바랜 것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태섭이 팔찌에 관심을 가질 때마다 우성은 기뻐했다. 태섭에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한참을 속삭이며 이마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태섭과의 시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은 태섭의 걸음마 시간이었다. 태섭은 다리를 전혀 쓰지 못했다. 그러니까, 전혀 걸을 줄을 몰랐다. 물고기의 하반신과 인간의 하반신은 전혀 구조로 이루어진 탓이었다. 물고기여본 적이 없는 우성의 입장에서는 그저 답답하기 그지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막막해 우성은 자신이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여주며 태섭을 뒤에서 끌어안고 제 발등 위로 태섭의 발을 얹어 함께 천천히 움직이며 걷는 법을 알려줬다. 다리가 서로 벌어지는 순간에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악을 쓰는 태섭을 처음 봤다. 태섭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절로 붙었다. 우성이 태섭을 달래며 다리를 벌려내려 하자 강하게 고개를 저어 거부한다. 태섭이 강하게 거부하며 팔을 휘둘렀다. 짝 소리와 함께 태섭의 손등이 우성의 뺨을 후려쳤다. 빠르게 부어오르는 뺨에 우성이 순간 울컥한다. 송태섭! 하고 큰 소리를 냈다. 태섭이 눈을 꿈벅거리며 우성을 올려다보았다. 놀란 얼굴에 더 놀란 우성이 빠르게 태섭에게 사과했다. 태섭은 제게 큰 소리를 낸 우성을 밀어냈다. 태섭아. 잠깐만. 미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태섭아. 우성은 자신을 강하게 밀어내는 태섭의 손을 잡아채 목 뒤로 끌어안게 했다. 태섭의 손이 우성의 등과 어깨를 꼬집고 할퀴었다. 우성이 태섭을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 내가 잘못했어. 태섭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태섭에게 사과를 건네는 목소리가 엉망진창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한번씩 이렇게 버거운 순간이 있다. 답답함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그대로 소리를 지르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태섭은 놀란 얼굴을 하고, 우성의 접근을 거부했다. 몇날 며칠 식음을 전폐했다. 그럴 때마다 우성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래서 우성은 최대한 태섭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내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그게 너무 힘든 날이었나보다. 연신 할퀴고 꼬집는 태섭을 달래며 우성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참기 위한 숨이었다. 태섭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것이 비록 우성의 의견이 없는 태섭의 결정이었지만, 태섭이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고, 그로 인해 기억도, 목소리도 잃었지만. 우성은 태섭을 책임져야 했다. 책임지길 원했다. 우성의 인생의 동반자인 태섭과 함께 걷기를 원했다.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슬펐지만. 태섭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사랑을 속삭일 수만 있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도 우성은, 어느새 우는 태섭의 뺨을 어루만지고, 미안하다고 속삭이고, 사랑한다고 어른다.
***
"생각보다 오래가네."
"하하."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야."
"칭찬 고마워."
전자는 우성을 가리킨 말이었고, 후자는 태섭을 가리킨 말이었다. 안나가 우성이 건넨 커피를 빨대로 쪽 빨며 태섭을 보았다. 어설프지만 태섭은 우성의 도움 없이도 걷고 있었다. 앞뒤로 흔들리기도 하고, 휘청이기도 하면서 걷고 있었다. 발 끝을 내려다보며 걷는 태섭을 보는 우성도 감개무량한 얼굴이었다.
"이제 비늘도 떨어지지 않아. 지느러미도 돋지 않고."
"호흡은 어때?"
"비오는 날 빼면 폐호흡하는 것 같아."
습한 날은 아무래도 자꾸 아가미 호흡하려 해서… 우성의 말에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이 안나가 사온 빵을 쥐고 물어 뜯는다. 먹을 때마다 눈을 감는 타이밍에 안나가 푸핫 웃었다.
"왜 저렇게 먹어? 귀엽게."
"나도 모르겠어. 근데 귀엽지."
"오빠가 일부러 가르친 거 아니야?"
"난 눈 감고 먹지 않지."
그럼 태섭오빠 습성이네. 안나가 웃었다. 처음과 달리 우성에게 누그러진 안나는 털털한 동생이었다. 태섭은 안나를 잘 따랐다. 우성을 마주하기 전까지 안나가 주로 태섭을 보살폈기 때문이었다. 손을 흔들어보이는 태섭에게 마주 손을 들어 인사한 안나가 빨대로 커피를 휘저었다.
"오빠가 애진작에 포기했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그런 생각 안 했다고는 말 못 하겠어. 그런 의미에서 엄마들은 정말 대단해."
"답답하지 않아?"
"그냥…….."
우성이 태섭을 보았다. 태섭은 멍하게 창 밖을 보고 있었다. 그런 태섭을 보던 우성이 말했다.
"그냥, 같이 있는 걸로도 좋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건 아쉽고, 슬프고, 서운하지만. 한번씩 하기 싫은 훈련이 있으면 고집도 부리고, 때리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아."
"흐응, 그렇구나."
안나가 우성을 보았다. 태섭을 보는 우성의 눈에 태섭을 향한 애정이 가득 들어차있었다. 그 때 이후로 몇 년이 지났더라. 5년… 7년인가. 한국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병역의 의무를 최대한 미루고 태섭을 보살피는 우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대를 가긴 가야했던 거 같은데. 흠. 어떻게 할까. 안나가 우성을 불렀다.
"응?"
"태섭오빠, 계속 사랑할 수 있어? 평생 오빠가 이렇게 산다고 해도?"
"당연하지?"
"어떻게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어? 햇수로 7년이 지났는데."
"그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태섭이가 이렇게 걷고, 손으로 음식을 먹고, 지금은 빵이라 안 보여주지만 젓가락질도 해. 입기 싫어하던 옷도 곧장 입고. 태섭이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인간이 되고 있어. 나는 태섭이의 연인으로서, 나를 위해 인간이길 선택하고 모든 것을 잃은 태섭이를 위해 이정도는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해.
우성의 대답에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보던 안나가 피식 웃었다.
"참사랑이구나."
멍하게 창 밖을 보던 태섭이 움찔했다. 우성은 태섭을 보지 못한 듯 했다. 빙글 웃은 안나가 말했다. 선물 하나 줄게.
"선물? 오면서 빵 많이 사왔잖아."
"그거 말고. 그것보다 훨씬 좋은 거."
"좋은 거?"
안나의 손이 태섭을 가리켰다. 우성이 안나의 손을 따라 태섭을 돌아보았다. 태섭은 여전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우성이 안나를 보았다. 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오빠 잘 부탁해. 오빠랑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아."
"…어?"
우성이 눈을 깜빡였다. 방금까지 제 앞에 있던 안나가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꿈을 꿨나? 우성이 테이블을 내려다 보았다. 아라가 반쯤 먹은 커피 컵의 표면으로 물방울이 주륵 흘렀다. 뭐지? 우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피는 있는데, 아라가 없다. 커피 컵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려는데,
"정우성?"
"――."
우성의 손 끝이 커피 컵을 건드렸다. 커피 컵이 테이블 위를 나뒹굴었다. 우성의 시선이 테이블을 적신 커피가 아닌 창가로 향했다. 태섭이 놀란 얼굴로 제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항상 어딘가 멍해보이던 시선에 빛이 돌고 있었다. 우성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뭐라고?"
억눌린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태섭이 우성을 똑바로 보았다. 태섭의 입술이 벌어진다.
"우성아."
태섭이 양 팔을 벌렸다. 우성을 보면서, 웃었다.
"이리와."
태섭의 얼굴 양 쪽으로 우성의 두 팔이 쭉 뻗어졌다. 태섭을 꽉 끌어안는다. 태섭과 우성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우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울음에 덮인 목소리가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졌다. 품에서 왈칵 눈물을 쏟는 우성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태섭이 말했다.
"고생했어."
정말로, 정말로 고생했어.
고마워. 나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줘서.
미안해. 미리 얘기하지 않아서.
고마워. 나를 끝까지 사랑해줘서.
우성아.
우성아.
"정우성."
"사랑해."
우성이 울음을 터뜨렸다. 태섭이 우성의 귀 끝에 입맞추며 눈을 감았다. 태섭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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