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우성태섭] 바다와 인어

* 인간 정우성 X 인어 송태섭 & 현대AU

* 인외 뫄이쪙

** 캐붕!

***

- 왜 항상 여기서만 만날 수 있어?

순진함 가득한 물음과 함께 파도가 밀려들어온다. 발목을 적신다. 샌들과 발등 위로 파도가 감겼다 사라진다. 소년은 커다란 바위에 앉은 저와 눈을 마주하는 바다속 친구를 본다. 바다에 동동 떠있던 바다속 친구가 입을 달싹였다.

- 나는 여기에서만 살 수 있으니까.

동그란 귀와 같은 위치에, 동그란 귀와는 다른 지느러미가 팔락인다. 소년은 그것을 물끄러미 본다.

- 나 이제 못 와.

- 왜?

- 이사 가. 멀리 간대. 바다가 없는 곳으로.

- …그렇구나. 우리는 이제 못 만나겠네.

길쭉하게 솟아 팔락거리던 지느러미가 밑으로 처진다. 소년은 시무룩한 얼굴을 보며 웃어보인다.

- 네가 같이 갈 수 없다면, 내가 만나러 올게!

- 응?

- 바다가 있으면, 너는 언제든 여기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만나러 올게! 그러니까 너도 나 잊으면 안 돼! 알겠지?

- 그게 언제가 될 지 어떻게 알고? 이사간 곳에서 바쁘게 살면 나 같은거 분명 잊어버릴 거야. 그냥 이사 가는대로 그냥 잊어버려. 네 삶을 살아.

- 왜? 내가 너를 다시 만나러 오는 게 달갑지 않아?

- …….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가 삐죽빼죽하다. 코 끝을 훌쩍이다 이내 동그랗고 까만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일렁인다. 당황한 손이 소년을 향한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리한 물갈퀴가 쫙 펴진다. 차닥, 하고 소년의 하얀 뺨에 찬 기운이 닿는다.

- 울지 마.

- 너는 나를 못 믿는 거야?

- 아냐. 믿어. 믿는데,

- 거짓말.

- 우성아.

- 미워. 나 갈래.

- 우성아!

소년이 벌떡 일어섰다. 눈물이 동글한 뺨 위로 후두둑 떨어진다. 당황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뒤돌아서 뛰어간다.

- 다시는 너 보러 안 와!

그렇게 외쳤던 것 같다.

***

"아. 꿈."

우성은 눈을 떴다.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켜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눈을 꾹 감았다 느리게 뜬다. 무슨 꿈을 꾼 것 같았는데. 꿈을 꾸긴 꿨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성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되새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느라 부은 눈가를 문지르며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한다. 공업 고등학교에서 들인 습관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빡빡 민 머리가 시원해보인다. 옷을 고르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들린다. 옷을 고르며 뺨과 어깨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우성이 준비 다 했냐.

"이제 옷만 입으면 끝나요."

- 그래, 우리도 한 10분 뒤면 너네 집 앞에 도착할 거 같다. 준비 끝나는 대로 내려와있어. 바로 출발하게.

"네, 형."

전화를 끊고 침대 위로 휴대폰을 툭 던진 우성의 시선에 책상에 놓인 오래된 팔찌가 걸렸다. 여름 픽이라며 동아리 선배인 명헌이 골라준 주황색 하와이안 셔츠에 팔을 꿰며 우성이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오래 쓴 만큼, 오래된 만큼 해질대로 해진 팔찌는 곧 끊어질 것 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여름하면 형광이 제일이라며 같은 동아리 선배인 현철이 골라준 형광 연두색 반바지에 다리도 꿰어 넣는다. 한쪽 발로 균형을 잘 못 잡아 엇차차 넘어질 듯 휘청이면서도 팔찌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한다. 전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우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과 선글라스, 그리고 지갑을 챙겨든다. 문을 열고 나서기 전까지 시선을 끄는 팔찌에 고민하다 손에 쥐고 나온다.

"…너 진짜 이러고 나왔어?"

"왜요? 형들이 추천해줬잖아요."

"…아니, 그……."

"이명헌, 신현철. 너네가 책임져라."

"진짜 그렇게 입고 나오면 어떡하냐뿅."

"네? 이거 진짜로 추천해준 거 아니었어요?"

"오늘도 순진한 우성이가 제대로 당했네… 빨리 출발해야하는데 가서 옷을 사든 이대로 가든 일단 가자."

"아니 잠깐만요! 저 진짜 놀림 당한거라고요????"

"장난친 거 알면 내도록 징징댈거라고 분명히 얘기했다, 나는."

"삐뇽. 미안."

"너무해!"

중형 차량인데도 가득 들어찬 빡빡머리들이 소란스럽다. 오늘도 선배들에게 장난질 당한 우성이 삐약삐약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동아리 엠티로 바다에 가자고 해서 추천해준 대로 입었는데 이게 유행이긴 한데 다른 의미의 유행이란다. 시끄럽게 우는 소리를 내는 우성에게 마찬가지로 동아리 선배인 성구가 수습을 시도한다.

"그래도 눈에 띄니까 조난당해도 금방 구조될 거야."

"야,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거야?"

되도 않은 수습에 같은 동아리 선배 낙수가 이마를 짚는다. 마지막 동아리 선배인 동오가 난처하게 웃으며 우성을 달랬다.

"자자. 우성아. 일단 울음 그치자. 명헌이랑 현철이가 잘못한 거니까, 가서 괜찮은 여름옷 알아서 사줄거야. 그렇지?"

동오가 운전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현철과 조수석에서 지도를 펼치고 있던 명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우성이 외친다.

"너무하다고요!"

***

새파란 하늘. 새파란 바다. 하얀 구름. 하얀 파도. 절경이 따로 없다. 

"진짜로 옷 안 사줬어…훌쩍."

"내가 나중에 쟤네 기숙사에서 옷 제일 비싼거 갖다줄게. 그거 팔아서 용돈해."

"낙수야. 그건 갖다주는게 아니라 훔치는 거잖아……."

새파란 하늘과 바다, 하얀 구름과 파도 사이에 눈에 확 띄는 주황 하와이안 셔츠와 형광 연두색 반바지가 우뚝 서서 칭얼거리고 있다. 게다가 머리까지 빡빡 민 상태라 더 눈에 띈다. 주위에 같이 있는 남자들이 다들 키도 크고 -한명은 평균값인 듯 하다- 빡빡머리여서 그런지 더더욱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받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현철과 명헌이 예약 잡아둔 숙소에 다녀오더니 지금 가면 된다며 빡빡이들을 인솔한다. 칭얼거리는 우성에게 심심한 위로로 등을 두드려주면서.

"오늘 저녁에 비가 온다고 하네. 해 떨어지기 전에는 바닷가에서 다 나와야한대."

"엑. 어제까지는 비 소식 없었는데."

"내일까지 비 오는 건 아니겠지?"

"일단 일기 예보는 오늘 밤동안 온다고 했다뿅."

빡빡이들이 웅성웅성 한다. 우성은 그런 선배들을 보다 툭 던진다.

"원래 바닷가는 날씨 변덕이 죽 끓듯 하잖아요."

빡빡이들의 시선이 우성에게 몰렸다. 우성이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성구가 묻는다.

"너는 한번씩 보면 바다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더라. 옛날에 바다에 산 적 있어?"

"막 오래는 아니고요. 한 1년? 정도 잠깐 살았어요."

"1년이면 친구 사귀기도 애매했겠다."

"친구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던 우성이 웃으며 말했다.

"1년이면 누구 제대로 사귀어보기도 전에 빠이빠이 해야하잖아요. 딱히 친구 못 사귀었다고 실망하고 그러진 않았던 거 같아요."

***

오랜만에 보는 바다는 좋았다. 날이 좋은 탓인지 해변가에 나와있는 관광객이 많았다. 공기를 빵빵하게 집어넣은 튜브를 들고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는 맑고, 시원하고, 좋았다. 익숙한 듯 지금은 낯설음에 가까운 바다의 짠내가 우성의 후각을 자극했다. 튜브를 끌어안고 물장구를 치며 바다를 헤치며 나아간다. 우성아,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위험해! 하는 동오의 외침에 튜브가 있으니 괜찮다고 대답한 뒤 열심히 물장구 친다. 한참을 그렇게 나아가니 사람들이 멀어 보인다. 바다는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우성이 튜브 밑으로 들어갔다 튜브 속에 몸을 끼워넣고 튜브를 한아름 안았다. 하체에 힘을 빼자 다리가 둥둥 떠올라 바다가 일렁이는대로 몸이 일렁였다. 

우성이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보니 옛날에 살았던 바닷가가 이 바닷가였나? 우성의 기억과 많이 달라진 주변의 모습에 이 곳이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다. 둘러보는 족족 어렴풋한 기억에 남았던 가게들은 모두 사라지고 횟집이나 카페라던가, 하는 곳들이 들어서 있었다. 살았던 시간보다 떠나있던 시간이 훨씬 긴 곳이다. 온전히 남아있을 리 없지. 우성이 생각했다. 파도가 우성의 몸을 떠밀고 지나간다. 우성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다가 이끄는대로 이리저리 떠밀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성이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오래된 팔찌가 우성의 손목에 걸려있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우성이 정신을 차렸다. 선배들과 너무 멀어지면 분명 걱정할 테다.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와 온갖 레슬링 기술을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성이 둥둥 떠있던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악!"

다리에 갑자기 힘을 준 탓인지 종아리 근육이 강하게 수축했다. 쥐가 난 것이다. 우성이 하마터면 튜브를 잡은 손을 놓칠 뻔 했다. 미끄러지다 튜브를 콱 움켜쥔다. 이를 악문다. 다리에 힘을 최대한 풀려 해도 뒤틀린 근육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발바닥까지 뒤틀리는 감각에 우성이 식은땀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전신에서 흐른 땀에 튜브를 잡은 손이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저 멀리 눈으로 봐도 먼 해변가에는 소리를 있는 힘껏 지른다 해도 목소리가 닿을 것 같지 않았다. 우성이 이를 다시금 악물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튜브를 양쪽으로 끌어안았던 한쪽 손을 놓고 닿는대로 허벅지를 주물렀다. 우성이 움직이는 대로 물결과 튜브가 부딪힌다. 튜브를 끌어안은 손에 바닷물이 적셔져온다. 땀으로 미끄러웠던 손이 다시 튜브를 놓친다. 우성이 눈을 부릅 떴다. 다급한 손길이 튜브를 쥐었으나 튜브의 표면을 미끄덩하게 쥐었다 놓치며 그대로 바다에 빠진다. 안 돼. 당황한 우성이 입을 벌렸다. 공기 방울이 우성에게서 쏟아져나왔다. 우성이 입 안이며 코 안으로 가득 들어차는 바닷물에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코를 틀어쥐었다. 눈을 다시 질끈 감는다. 우성이 다른 손으로 쥐내리는 다리를 끌어안았다. 큰일이다. 우성이 눈을 떴다. 따끔한 감각이 눈을 찔러들었다. 느리게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한다.

정우성은 수영을 못 했다.

***

"커헉!"

우성이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반사적으로 기침을 했다. 그간 먹었던 바닷물이 침과 함께 입 안에서 터져나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성은 제가 끌어안고 있는 바위를 멍하게 보았다.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질 않았다. 엎드리듯 바위를 끌어안고 있던 걸 깨닫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물을 잔뜩 먹은 탓인지 귀가 먹먹하고 코 안이 따끔거렸다. 눈도 뻑뻑했다. 귀를 탁탁 두드려 최대한 물을 빼던 우성이 멍하게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팔찌가 사라져있었다.

우성이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팔찌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발버둥치다 팔찌가 빠진 듯 했다. 아니면 끊어졌거나.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이었다. 가져오면 안 됐는데. 잃어버릴 거 뻔히 알면서. 우성은 바닷물에 잔뜩 젖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집에서 잃어버려도 못 찾는 물건이 많은데 이 넓은 바다에서 잃어버린 거라면 찾는 건 당연히 포기해야했다. 우성은 낭패감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질책했다. 그러게 멀리 나오지 말았어야했는데. 튜브 끼고 있다고 괜찮을거라고 방심했다. 수영 못 하는 거 뻔히 알면서, 튜브 있으면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안전불감증이었다. 튜브가 있다고 바다에서 무사할 거라고 생각한 바보가 어디있나 했는데 여기 있었다. 우성이 비어있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하하… 웃음이 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잃어버리면 안 됐는데.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끊어지면 잃어버릴 새라 집에 계속 놓고 다녔던 건데. 우성이 제가 서 있는 바위를 내려다보았다. 익숙한 바위였다. 코 끝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그 바위였다. 옛날에, 이사 가기 전까지 항상 올라앉았던 바위. 우성이 바위 위로 철퍽 주저앉았다. 하늘이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선배들은 나 찾고 있으려나. 그치만 못 일어나겠어. 여기서 못 벗어나겠어. 여기는, 여기는…….

순간 우성은 뒤에서 물소리를 들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와는 달랐다. 무언가 솟아오르는 소리. 눈을 크게 뜬 우성이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다. 놀란 검은 눈과 당황한 갈색 눈이 마주친다. 동그란 귀와 다른 지느러미가 팔락인다.

"송태섭…?"

방황하는 갈색의 눈이 우왕좌왕하다 바다 속으로 사라지려 하자 우성이 다급하게 바다에 뛰어들었다. 경악한 목소리가 우성의 귀를 때렸다.

"너 수영도 못 하는 게 어딜 들어와!"

"네가 잡아주면 되잖아! 그 때처럼!"

"……!"

우성이 이미 저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물갈퀴 낀 손을 보다 그를 보았다. 이, 이건… 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하늘에서 우르릉하며 비 소식을 전했다. 깜짝 놀라 우성을 바위 위로 다시 밀어올린 그, 태섭이 외쳤다.

"돌아가! 비 오는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

그대로 태섭이 뒤돈다. 우성이 그를 붙잡을 듯 팔을 뻗었다 멈칫했다.

'다시는 너 보러 안 와!'

"아."

탄식에 가까운 숨을 내뱉던 우성이 머뭇거리다 여전히 뒤돌아 선 태섭을 불렀다.

"태섭아."

"……."

"태섭아."

"……."

"네가 나 구해준 거 맞지? 그때처럼."

우성이 무슨 말을 하든 태섭은 뒤돌지 않았다. 우성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너 보러 안 온다고 했던 거, 사과할게. 네가 그때 너무 미운 말을 해서… 그래서 내가 화를 내버렸어. 너도 나 못 만나게 되면 많이 서운할 거 알면서… 그러고 나서 나 계속 후회했어. 너한테 상처주고 그렇게 가버려서. 후회했어. 줄곧 사과하고 싶었어. 그리고… 나 너 보고 싶었어. 넌 나 안 보고 싶었어?"

"……."

움찔 떨리던 어깨가 한참 뒤에 조심스레 우성을 돌아보았다.

"나, 보고 싶었어?"

"응."

"그치만 그렇게 말하고 간 뒤로 한 번도 오지 않았잖아."

"바빴으니까. 너도 그랬잖아. 바쁘게 살면 너 같은 거 금방 잊어버릴 거라고."

"그건, 그랬지만…."

"그래도. 바빴어도. 한 번도 너를 잊어본 적 없어."

"…팔찌……."

"봤어?"

"……응."

태섭이 등 뒤로 숨긴 손을 내밀었다. 깨끗하고 하얀 우성의 손과 다르게 물갈퀴가 달린 갈색에 가까운 손 위로 우성이 찾았던 팔찌가 올려져 있었다. 우성이 손을 내밀었다. 태섭이 움찔하며 손을 움켜쥐었다. 팔찌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우성의 시선이 태섭을 향했다. 우성을 바로 보지 못하고 태섭이 바다만 내려다보았다.

"네가, 날 보러 오지 않는다고 하고 정말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아서… 나는 네가 나를 계속 미워하는 줄 알았어."

태섭이 팔찌를 꾹 쥐었다. 

"매일 너를 기다렸어. 기다려도 오지 않는 너를 매일 기다렸어. 그러다가 오늘, 바다에 빠진 너를 봤는데, 너는 여전히 수영도 못 하고, 바다에 빠져서 위험하게……."

"……."

"그래서 너 구하고 나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팔찌가…, 팔찌가 있길래. 그것만 내가 가지고… 너를 보내주려고, 그랬는데……."

"…응."

"정말, 내가 보고싶었어?"

"응."

"내가 밉지 않아?"

"밉지 않아."

태섭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우성이 바위 끝자락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팔을 뻗어 태섭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섭이 망설이다 우성에게 다가갔다. 수면 위로 인간의 상체와 물고기 형상의 하체가 일렁였다. 우성의 손 끝이 태섭의 뺨에 닿았다. 우성의 손 끝이 닿은 부위에 비늘이 돋아났다 사라졌다. 우성의 손에 뺨을 온전히 맡긴 태섭이 눈을 감았다. 우성의 흰 손 위로 태섭의 갈색에 가까운 손이 덮였다. 우성이 말했다.

"고마워. 그때도, 지금도 수영도 못하는 나 구해줘서. 넌 내게 생명의 은인이자 소중한 사람이야."

"응…."

한참 우성의 손길을 느끼던 태섭의 지느러미가 흔들렸다. 태섭이 감았던 눈을 떴다.

"너와 함께 온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어."

"내가 올 때부터 봤어? 어디서?"

"…여기서."

우성은 처음부터 저를 보고 있었다는 태섭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참기 힘들 것 같은 감정이었다.

"…거기서, 내가 왔다가 갈 때까지 보기만 할 생각이었어?"

"네가 나를,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아…."

태섭이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그대로 흐렸다. 우성이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느끼며 상체를 숙였다. 제게 쏠리는 우성의 몸에 태섭이 놀라 고개를 들고 그가 떨어질까 양 팔을 뻗었다. 태섭의 쭉 뻗어진 양 팔 사이로, 우성이 다른 손을 마저 뻗어 태섭의 뺨을 감쌌다. 태섭의 입술에 우성의 입술이 닿아왔다. 태섭이 눈을 둥글게 떴다. 우성의 흰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가볍게 맞닿아 천천히 입술을 뗀 우성이 울면서 웃었다.

"어떡하지. 놀랐지. 미안해. 나 역시 네가 너무 좋아."

나 이제 진짜 자주 올게. 너 보러 자주 올게. 바빠도 최대한 자주 올게. 태섭아, 나는 네가 역시 너무 좋아. 우성의 말에 태섭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다 진주가 되어 바다 속에 퐁당퐁당 빠져들었다. 우성이 울면서 웃은 것처럼, 태섭 역시 울면서 웃었다.

"나도 네가 좋아, 우성아. 너무 보고 싶었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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