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태섭] Marry

[우성태섭] Marry 5

와따 by 와따

우성태섭 좀아포

곤히 잠들었던 태섭이 정신을 차렸다. 부스스 일어나 간신히 한쪽 눈을 뜨자 베개 커버에 침 자국이 남아있었다. 입가에도 자국이 남았나 손등으로 훔치며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니 다행히 저녁 전이었다.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리자 우성이 창가 옆 의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깼어?"

"너 깨기 전에 나도 깼어."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는데..."

"뭐야? 내 얼굴 디스하는 거야?"

태섭의 걱정에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우성은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눈이 새빨갛게 충혈 되어 토끼 눈 같아 보였다. 태섭이 일어난 것을 확인한 우성은 먼저 나간다며 골프채를 챙겨 방을 나섰다. 태섭도 곧바로 신발을 구겨 신고 빠르게 뒤따랐다. 현관에 와서 신발을 고쳐 신던 태섭은 한쪽 벽 전체를 장식한 액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문을 열었다. 마당으로 나가자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바이크가 초라하게 서 있었다. 우성은 먼저 도착해서 살펴보고 있었는데 바이크를 몰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손을 대진 않았다.

"이거 시동 걸어봐야 뭐가 안되는지 알 거 같긴 한데. 속도 조절이 안될 거 같기도 하고? 여기 좀 뻑뻑할 거 같다."

"그걸 알아? 바이크 타 본 적 있어?"

"고등학생 때 좀 몰았지."

"와, 태섭아~ 너 엄청 잘 나갔구나~"

"왜 좀 다시 보이냐?"

신기해 하는 표정이 재밌어 태섭은 피식 웃었다. 우성은 역시 생긴 대로 놀았구나 하는 작은 오해를 품은 채 노인을 부르러 도로 들어갔다. 잠시 후 노인과 함께 나온 우성은 바이크 열쇠를 태섭에게 달려와 건넸다. 열쇠를 꽂아 돌리니 시동이 거칠지만 금방 걸리기는 했다. 태섭은 그대로 바이크에 올라타 기어를 건드려보았고 예상대로 속도가 안 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태섭이 바이크를 조절하며 문제점을 찾아내던 것을 노인도 지켜보다가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뻑뻑한 것만 해결하면 돼서 큰일은 아닌데, 하필 옆집에 빌려준 공구함을 돌려 받지 못해서..."

"윤활제는 여기 있죠? 필요한 공구는 저희가 가져온 함에도 있을 거예요. 정우성 집안에 놨지?"

"응, 우리 방에 가져다 놨어. 갖고 올까?"

"아냐. 내가 가져올 테니까 선생님 도와서 윤활제 찾아봐. 힘 쓸 일 있을지도 모르니까."

태섭이 공구함을 들고 오겠다며 들어가고 노인은 윤활제를 찾기 위해 창고를 열었다. 다행히 창고는 정리를 안 한 지 오래라 작은 윤활제를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노인은 창고 문 옆에 둔 작은 손전등을 켜 주변을 비추며 어디에다 두었는지 기억을 헤아렸다. 우성은 선반 위를 훑으면서 곁눈질로 노인을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태섭은 겅중겅중 계단을 두 칸 씩 올라가 잽싸게 공구함을 찾고 뛰어내리다시피 내려왔다. 계단 아래 카펫이 태섭의 충돌을 다 흡수해서 소리가 새어나가진 않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현관문을 쳐다봤다가 공구함을 살며시 내려놓고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복도는 딱히 수상해 보이진 않았다. 노인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시간을 지체 않으려 빠르게 안방 문을 열었다. 또 다른 작은 문이 보였다. 우성이 하나 더 들은 잠금장치가 이 문소리인가? 방에 가둘만한 것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며 긴장한 태섭은 입술을 핥아 축였다. 살며시 열어본 문틈 새로 병원 약품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 안에서도 진료를 봤던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해 되지 않을 정도로 소독약 냄새가 강렬했다. 태섭은 마저 작은 문을 개방하고 고개만 빼꼼 들이밀어 두리번거리다 방구석에 누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침대가 아닌 수술대에 구속되어 있는 것은 좀비였다.

초점 없이 하얗게 멀어버린 눈과 혈관이 다 터져 피부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차마 쳐다보기 힘든 몰골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익숙한 이목구비가... 현관에 걸린 액자 속 부인이었다. 태섭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 그만 문턱에 머리를 부딪혀 윽 신음을 내었다. 그 소리에 미동 없이 늘어져 있던 좀비가 반응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짐승 소리를 내며 앓았다. 재갈을 문 좀비는 침을 질질 흘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태섭은 문을 쾅 닫고 공구함을 챙겨 마당으로 달려갔다.

"안에 뭐 있어?"

창고에 있는 노인을 흘끗 살피던 우성은 태섭이 건넨 공구함을 받아들며 속삭였다. 우성에게서 얼굴을 떼고 입 모양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알렸다. 태섭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우성이 들고 있던 공구함을 떨어뜨렸다. 뚜껑 열린 공구함 안에서 나사와 못들이 화단에 뿌려졌고 망치가 화단 틀에 부딪혀 박살 나버렸다. 태섭은 혹시 우성의 발에 떨어지진 않았나 놀라 몸을 숙여 발치 주변을 살폈다. 우성은 태섭의 손질 안 한 곱슬머리를 내려다보다가 창고 벽에 세워둔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돌발 행동에 당황한 태섭이 팔을 붙잡아 저지하려 했으나 우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고로 돌진했다. 그대로 골프채를 휘둘러 뒤통수를 내리 찍으려 하자 태섭은 냅다 우성의 옆구리를 들이 박았다.

좁은 창고에 두 사람이 엉겨서 넘어지자 선반과 부딪히며 잡동사니들이 와장창 떨어졌다. 난리 통에 풀풀 날리는 먼지를 들이마셔 쿨럭 기침하던 노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일어날 수 없도록 태섭이 온몸에 힘을 주어 우성을 제압하고 있었지만 타고난 체격의 차이로 몇 초만 지나면 전세 역전이 될 거 같았다.

두 사람의 육탄전에 말릴 생각도 못 하고 황당해하고 있던 노인의 눈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벌떡 일어난 노인은 가스를 안 끄고 나온 사람처럼 정신 사납게 둘을 스쳐 뛰어갔다. 우성은 태섭이 노인의 뒷모습을 쳐다볼 때 태섭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방심한 태섭이 우성의 가슴팍에 무너진 와중에 일어서는 우성의 팔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가 실수로 턱을 치고 말았다.

"정우성!! 정신 차려!!"

"태섭아... 제정신이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물렁해, 어쩌려고!!"

입술을 까드득 문 우성은 태섭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골프채를 챙겨서 집안으로 뛰어가는 것을 붙잡아야 하는데 창고 밖을 나서기가 어려웠다. 이대로 다시 우성이 살인을 저지르게 두는 게 맞는 것일까? 어떡해야 할지 태섭은 알 수가 없어서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주먹 안에 꼭 쥐어지는 반지의 촉감이 태섭의 정신을 붙잡아주었다.

우성은 안전장치가 없는 총 같았다. 태섭이라도 그의 안전장치가 되어주고 싶었다. 우성이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 난국에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바라며 바깥으로 나왔다.

현관문 밖에서도 우성이 때려 부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 굳게 닫힌 안방 문을 온몸을 쥐어짜서 파괴하는 우성의 등이 보였다. 우성이 골프채로 내리칠 때마다 문짝이 덜컹 거렸다. 몇 번만 치면 금방이라도 노인과 그의 좀비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섭은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털 생각도 못 하고 뛰어가 우성의 허리를 끌어안아 당겼다.

"네가 말린다고 달라지지 않아. 태섭아, 생각 좀 해!"

"선생님!! 들리시죠!! 아내 분 상태를 봤어요! 자꾸 저희한테 숨기려고 하시는 거 같아서요!"

"자네들!! 규칙을 물어본지 이제 겨우 반나절이네!!! 하루도 안돼서 이런 짓을 해?!!"

"없애도 모자를 좀비를 집에서 키우는데 그럼 그냥 두는 게 맞나?!"

태섭은 이토록 분노한 우성의 모습이 낯설었다. 상대 편이 인텐셔널 파울을 했을 때도 우성은 결코 이렇게 흥분하지 않았다. 우성이 극도로 화를 내자 태섭은 되려 마음이 침체 되었다. 소란스럽게 뛰던 심장이 고요해져만 갔다. 태섭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우성이 지금 이토록 반응하는 것이 태섭의 안전 때문에 민감하게 구는 것이란걸.

"정우성, 넌 조용히 해 말하지 말아 봐. 제가 묻는 말에 답해주세요! 좀비 된 아내 분으로 뭘 하려 한 거예요?!"

너덜해진 문틈 새로 소리 치며 태섭은 골프채를 우성에게서 빼앗았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으면 골프채 헤드도 덜렁거렸다. 태섭은 헐렁해진 헤드를 쳐다보다가 거실로 내던져 우성이 다시는 잡지 못하게 막았다. 우성은 태섭의 손에 양손이 구속된 채 태섭의 입만 노려보았다. 입맛이 썼다. 왜 이 순간까지 와서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극단적이지만 가슴을 갈라서라도 속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네들은 이해 못 해..."

"아니요, 저희도 가족이 있는 사람이에요! 사정이 있으셨겠죠. 의사시니까 더 잘 아셨을 거 아닌가요? 아내 분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상태인걸요! 그런데도 수술대에 묶어두신 건..."

"...그 날 저 앞 수족관에서 산책 할 때 어떤 꼬마가 아내 다리를 물더군. 광견병 걸린 애였나 싶어서 집에 있는 파상풍 주사를 먼저 맞추려고 데려왔네... 그런데 갑자기 10분 만에 아내가 발작 하면서..."

"...좀비가 되신 건가요?"

"의사소통은 안됐지만... 그때까진 의식은 있었지. 그대로 주사를 맞추기엔 위험해서 수술대에 고정 시켰는데 고정만으로 감당이 안될 정도였다네. 밀가루 포대도 끌지 못하는 여자였어. 그런 여자가 나를 뿌리쳤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아내는 계속 나를 극구 거부하면서 피하라고 했어, 무언가 무섭고 위험한 느낌이란 말과 함께."

"... ..."

"아내가 그런 말을 하는데 어떻게 피할 수 있겠나... 진료 거부하는 환자가 드문 것은 아니니 빠르게 구속하고 주사를 놓기 전 아내 얼굴을 보니...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서 보내줄 수가 없었네."

엇나간 경첩이 거친 소리를 내며 거의 부숴졌던 문이 덜컥 열렸다. 노인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두 사람을 향해 자백했다.

"속여서 미안하네. 자네들 반응이 당연한 거겠지... 알면서도 난."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저희도 워낙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의심하게 되고 확인해야만 마음이 풀리게 되네요..."

"그간 있었던 일을 들어주겠나? 아내가 좀비가 되고 나서 내가 봤던 것들에 대해..."

태섭은 노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우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성은 태섭의 눈을 피하려고 했다가 그 시선을 거부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마지못해 끄덕였다. 태섭은 우성에게 손을 뻗어 팔을 붙잡았다. 이번 만큼은 순순히 이끄는 대로 따라가 태섭이 의자에 민 대로 앉았다. 첫 식사 때와 같은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은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노인은 아내의 변화에 충격을 받아 어떤 병이 이런 증세가 있었는지 서적을 통해 찾아보려다가, 똑같은 증세를 보였던 꼬마를 찾아보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을 내려 다시 뛰쳐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수족관 뿐이 아니라 해수욕장이 가까워질수록 들리는 비명에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걷자, 성경으로만 읽었던 지옥이 도래한 바다를 보았다고 했다. 눈을 감고 창백하게 질린 낯빛으로 회상하던 노인은 벌어진 참사에서 유일한 목격자였다.

먼 발치에서 한참을 재앙이 들이닥친 해변을 지켜보다가 발을 돌려 집으로 돌아갈 때. 가까워질수록 아내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달아갔다고 했다. 깨달아가며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 했다고. 제발 기적이 행하여 그간 아내와 저가 지은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지만 목사의 신앙이 모자라서였는지. 그 짧은 길에 기도가 쌓이면 쌓일수록 아내를 잃었다는 것을 지나쳐온 바다를 보며 알 수밖에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니 그곳이 목사의 지옥이었더라. 그렇게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노인의 회상을 잠잠히 듣던 우성은 허벅지에 올려두었던 손을 들어 팔짱을 꼈다.

“계속 관리할 수 있을까 싶은데?”

“야, 말 좀 가려서 해... 정우성.”

틀린 말을 했냐며 우성은 눈썹을 찌푸렸다. 노인은 태섭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애써 미소 지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해서 떠날 수가 없네. 두 사람이 불안하다면 다시 짐을 챙겨서 떠나도... 어떡할 수 없지. 난 죽을 때까지 아내 옆에 있을 거라네.”

노인이 고개를 떨구자 우성은 못 참겠다는 듯 의자를 거칠게 밀고 일어났다. 가자 태섭아. 우성이 태섭의 어깨를 두들겼다. 태섭은 반지만 매만지며 우성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다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저희가 떠나면 선생님 음식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송태섭.”

“지금처럼만...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면 위험하진 않겠죠. 저희 안방 근처에 얼씬 안 할게요.”

“송... 그 말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란 노인은 눈을 크게 떴다가 그렁그렁 젖은 눈가를 훔쳤다.

“정말 고맙네... 실은 두 사람이 가버리면 어떡해야 하나... 이 주택가는 노인들만 살다 보니 벌써 강도 든 집도 있을 거라네... 이 집에도 강도가 든다면 나와 아내 둘 다 멀쩡하지 못하겠지...”

숙연하게 고개를 숙인 태섭의 표정을 본 우성은 기가 찼다. 여기 남아서 어쩌겠다고. 태섭아, 침입한 사람을 네가 죽일 수 있겠어? 우성 자신에게도 비수가 되는 가시 돋친 말들이 성대에 콱 박혔다. 우성은 태섭을 안아 들어 차에 집어던져서라도 끌고 나갈까 상상까지 했다. 그러나 태섭이 완고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결국 우성은 혀를 콱 깨물고 말을 말았다.

12시 땡 치자마자 태섭과 얼굴에 생크림을 묻히고 장난을 쳤던 기억들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 지금 상황이 날조된 거라고 믿고 싶었다. 분명 케이크를 먹던 태섭의 얼굴은 부드럽게 풀려서 말간 웃음을 지었는데. 지금 바로 옆에 앉은 태섭의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 되어 있었다.

생일에 온갖 악재가 들이닥칠 수 있는 건가? 사실 저주받은 건 태섭까지 포함인 걸까. 운수가 없어도 이렇게 재수 없는 하루라니 우성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태섭은 우성이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우성의 한숨을 불만으로 이해하고 말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성의 마음을 덜어주려 붙잡아 오는 손은 묵직했다. 우성은 차마 자신이 그 손을 내칠 수가 없어서 내민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누군가를 죽인다면 차라리 한 명만 하자고. 우성은 자신이 태섭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토록 마음이 괴로운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 댓가로 망가진다면 우성이 망가져야만 했다. 그게 맞다. 태섭에겐 아무 잘못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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