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우성태섭명헌] 맑음인형

* 센가 au

* 센티넬 이명헌 X 가이드? 송태섭 X 센티넬 정우성

** 연령반전(10살… 생각 중, 더 많이 나가면 내 양심이… )

*** 연성 설정 상 캐릭터 붕괴 많으니 캐릭터성이 중요한 분께는 관람을 권하지 않습니다…

**** 이것도 시리즈 예정이라 시리즈 내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 _

***** 작중 등장하는 백호와 호열은 10010입니다.

“야외훈련참관?”

태섭은 제게 내밀어진 같은 내용의 회색 종이 두 장을 보았다. 관리가 귀찮다고 의사와 상관없이 빡빡 밀어버렸던 두 소년의 머리카락은 성장기는 성장기다 싶을 정도로 금방 자라있었다. 어설픈 길이로 너저분해보이는 머리카락에 다시 밀어버릴까 고민하던 태섭이 종이를 받아들었다. 시큰둥한 표정의 태섭이 한쪽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린 채로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센터에서 훈련하는 어린 센티넬, 혹은 센티넬로 발현한지 얼마 안된 이들의 야외훈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센터에서 소중한 아이를, 혹은 소중한 가족을 이렇게 잘 케어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거였다. 또 귀찮은 걸 한다 싶었다. 아이가, 가족이 걱정되는 일반 사람들은 거의 무조건 참여할 것이다. 아직 어리지만 고능력을 지닌 명헌과 우성의 보호자로 지정되어있는 태섭에게 이 종이가 날아온 것처럼.

종이 너머로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는 우성과 아닌 척 하면서도 자신을 계속 주시하는 명헌을 곁눈질로 본 태섭이 다시 종이를 보았다. 태섭이 센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같이 지내면서 적나라하게 느꼈을 것이다. 처음 자신들이 이 곳으로 보내졌을 때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던 태섭을 봤었으니까. 자신들의 양육자, 그러니까 우성의 부모와 명헌의 조모와의 연관성이 없었으면 태섭은 딴 데 알아보라며 자신들을 내쳤을지도 모른다. 태섭이, 태섭의 여동생인 아라가 어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태섭이 센터를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여건만 되면 자신들을 센터에 보내는 것조차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듯 했다. 센티넬로 뒤늦게 발현한 것도 아니고, 태생 센티넬이라면 더더욱 센터의 관리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서로 각인하지 않았어도 태섭에게서 흘러나오는 가이딩 파장이 뾰족해서 더욱 어렸던 그 때의 명헌과 우성은 그에게 센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태섭은 무릎 밑까지 오는 조그마한 어린이들을 내려다보다가, 앓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쓸어넘기더니 ‘능력은 어떻게 관리할래? 센터 가. 등록해줄테니까.’ 라고 말했다. 자신들을 맡는 게 그다지 내켜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는데 책임은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명헌은, 그리고 우성은 태섭에게 이러한 센터 일정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조심스러워했다. 센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태섭의 눈썹 각도가 아주 높게 치솟았으므로. 그렇다고 태섭이 어린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신경질을 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 그런 것처럼 하면서 잘 챙겨줬다. 세심했다. 여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닌 척 신경을 많이 써줬다. 용모 단정에서부터 시작해서, 편식하면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도록 잘게 다져넣어 모르고 먹도록 반찬에 신경을 쓰거나, 센터에서 다녀오면 자칫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는 시선이 익숙했다. 여동생은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닌 일반인이기에 센터 밖 일반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에 여동생과 통화를 하는 태섭은 자신들에게 보여준 적 없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다정한 목소리. 때로는 엄한 목소리. 익살스럽거나 장난스러운 목소리까지. 진짜 가족에게 보이는 표정, 목소리, 감정.

그것을 볼 때마다 가슴께가 욱신거리는 것은 아직 열 셋의 어린 아이들도 1-2년 전까지 함께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가족이 고팠다. 저도 모르게 웃으며 통화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시선을 느낀 그가 표정 관리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도리어 상처가 되는 것 같았다. 너희는 가족이 아니니까. 남이니까.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억지로 떠맡은 것 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은 특별히 좋아하는 반찬이 올라왔지만,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명헌도. 우성도.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같은 방에서 나란히 누워자다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는 어느 순간이면, 거실에 있던 태섭이 조용히 다가와 소리없이 누워있다 가곤 했다. 가슴을 토닥이거나, 머리를 쓰담아준다거나, 책을 읽어준다던가 그런 건 없었다. 단지 옆에 있기만 했다. 휴대폰을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걸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뒤척이는 두 아이의 옆에 나란히 누워있기만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뒤척인 적 없는 듯 저도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뜨면 항상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잠을 깨우고 있었다. 옆을 보면 아무도 없었고. 처음부터 태섭이 누워있던 적 없던 것처럼.

어린 아이라고 해서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이 쉬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리기에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하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탄력있게 반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훈련을 시켰다. 그러다보면 몸 여기저기 상처를 하나씩 달게 되는 것이다. 센터에 있는 가이드 선생님이 있지만, 아이들은 심하게 다치는 게 아니라면 가이딩을 받지 않았다. 태섭은 가이드였으니까. 태섭에게 가이딩을 받는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센터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훑어보던 태섭이 상처를 발견하면 한 차례 눈가를 찡그리다가 가까이 오라며 손짓하면 쭐래쭐래 다가와 그 앞에 선다. 태섭은 가이딩할 때는 항상 손을 잡아주었다. 태섭은 가이딩 랭크가 높아서 굳이 접촉하지 않더라도 주위에 가이딩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사 가이딩을 사용할 수 있었다. 태섭의 집에 들어오면 태섭의 가이딩 에너지가 명헌과 우성을 항상 감싸안았다. 자잘한 상처는 집에 들어서면 금방 나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태섭의 앞에 서는 것이다. 접촉 가이딩을 원하니까. 센티넬이라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흠.”

상념에 잠겨있던 명헌이 태섭의 목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우성이 마른침을 삼킨다. 종이를 앞뒤로 뒤집어가며 시선을 주던 태섭이 창 밖을 보았다. 태섭의 시선이 움직이는대로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간다. 하늘이 맑았다. 태섭이 입을 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태섭의 입술을 향한다. 도톰한 입술에.

“그 날.”

“비가 안 오면.”

“갈게.”

센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인상부터 쓰는 그에게서 떨어지는 오케이 싸인이란. 우성이 폴짝 뛰고 명헌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던 태섭이 둘을 부른다. 종이를 테이블에 엎고는 시선만 들어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한다. 고개를 끄덕이면 아이들이 가방을 내려놓고 샤워실에 들어간다. 토독토독 발소리를 듣던 태섭이 길게 늘어진 소파 위로 덜렁 누웠다. 한 팔을 들어 이마를 가리며 중얼거린다.

“내가 자꾸 눈치 보게 만드네.”

- 애들 엄청 소심하게 자랄 듯.

“그거 내 탓하는 건가?”

- 그렇지 않아? 애들이 무슨 죄라고.

“야. 송아라. 네가 내 입장이 되봐. 백호랑 태웅이 센터에서 나한테 맡긴 게 언제였냐? 걔들 다 키워서 내보냈더니 또 나한테 애들을 떠맡기잖아.”

- 백호 오빠랑 태웅 오빠 때는 진짜 떠맡긴 거였지만 명헌이랑 우성이는 결이 다르잖아.

“…….”

- 걔들은 우리랑 사정이 비슷한 거, 오빠도 알잖아. 우리가 아빠도, 큰오빠도 잃고 엄마 마저 잃었을 때. 작은 오빠를 거두고 나를 챙겨주던 분들이 돌아가신 거잖아. 다른 사람들을 맡기는 거면 떠맡기는 거라고 해도 되는데, 걔들은 아니야. 작은 오빠는 걔들만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

태섭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라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태섭의 부모가 센티넬과 가이드였고, 우성의 부모와 명헌의 조모 역시 센티넬과 가이드였다. 센티넬과 가이드는 센터의 관리 하에 임무를 받고 활동하는 이능력자들이었다. 이능력을 발휘하는 대신 가이딩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센티넬. 다른 능력이 없지만 센티넬만 살릴 수 있는 가이드. 임무가 경한 강도에서 중한 강도까지 다양한 만큼 목숨까지 오가게 할 정도의 임무 역시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능력자 가족은 서로 위급할 때 아이를 보호하고 대신 케어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그 커뮤니티 안에서 저마다 코드가 맞는 이들끼리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태섭의 부모와 우성의 부모, 그리고 명헌의 조모가 그런 케이스였다. 임무로 부모와 형을 잃고 절망한 태섭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이들이었다. 일반 학교 기준으로 초등학생 정도였던 태섭이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명헌도, 우성도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처음 명헌과 우성이 자신의 집에 왔을 때는 솔직히 놀랐다. 센티넬인 백호와 태웅을 맡게 되었을 때는 일반인인 동생 아라에게 교육적인 부분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나마 받아들인 것이었다. 명헌과 우성을 데려왔을 때는 아무 조건도 걸지 않아서 당연히 거절하려 했다. 침울한 표정의 담당자에게서 임무 중 사망한 이들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담당자는 소리를 차단하는 저랭크의 센티넬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닿는 소리를 차단시키고 태섭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조모의 사망 소식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태섭은 거기서 화를 냈다. 아이들이 어려도 알 건 알아야 했다. 자신들이 어떤 이유로 타인에게 맡겨져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담당자는 아직 임무가 끝나지 않았고, 임무가 모두 종료되고 나서 유족들에게 상황을 전달할 거라고 했다. 임무의 규모는 컸다. 태섭에게도 투입 요청이 들어올 정도였으면 말 다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태섭은 센터를 증오하고 있었기에 임무를 거절했다. 태섭의 거부권에 센터는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둘은 계약 관계였다. 태섭은 센터의 임무 요청에 거절할 권리를 갖는 대신 방사 가이딩으로 필요시 센터의 센티넬에게 우선 가이딩을 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내세운 계약이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태섭은 랭크가 높은 가이드였기에 센터에서 오는 모든 임무를 거절하기 어려운 위치였다. 그렇다고 센터에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 좆같은 일처리로 가족들이 모두 임무 중 사망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하나씩 임무로 목숨을 잃을 때마다 센터는 변하는 게 없었다.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센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태섭 역시 센티널에게 가이드가 필요한 걸 알고 있었고, 자신의 랭크가 낮았다면 또 모를까 높기 때문에 필요도가 높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부상 당한 센티넬들까지 모두 내치기에는 태섭의 마음이 약했다. 센터를 미워하면서도 가이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센티넬을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계약에 응했다. 센티넬은 가이드의 가이딩을 받지 못하면 미쳐버린다. 그러면, 가이드는? 한 명의 센티넬과 맺어지는 한 명의 가이드. 센티넬은 가이드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일상을 유지할 수 없기에. 그렇다면 가이드는? 태섭은 센티넬인 남편을 잃고 누구와도 다시 각인하지 못 한 채로, 마음이 뻥 뚫린 채 살아가며 가벼운 접촉으로 다른 센티넬들을 가이딩하는 모친의 텅 빈 눈을 떠올렸다. 태섭은 그래서 계약에 응했다.

누구와도 각인하지 않는다. 각인을 강요하지 않는다. 센터의 지령을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 대신 필요하면 접촉 가이딩도 시행한다.

그리고, 일반인인 송아라가 안전하게 독립할 때까지 센터에서 모든 지원을 맡는다. 송아라에 대한 안전을 약속한다. 계약 여부는 송아라에게 절대 비밀로 한다. 계약에 대해 송아라가 알게 된 즉시 이 계약은 파기된다. 송아라가 알게 되어 계약이 파기될 시 송태섭은 센터에서 요청하는 모든 임무 및 가이딩 요청을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에 센터는 거부할 수 없다.

그것이 계약 내용이었다.

- 내 말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 애들 좀 잘 챙겨줘. 나는 걔들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

“…….”

- 애들 괴롭히거나 주눅들게 자라면 한나언니한테 다 이를거야.

“갑자기 거기서 한나가 왜 나와?”

- 내가 거기서 오빠한테 직접 잔소리할 수 없으니까 대신 잔소리할 사람이라도 있어야할 거 아냐.

아라가 얘기하는 한나는 태섭과 같은 가이드였다. 태섭보다 한 랭크 낮은 A급 가이드인 한나가 태섭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섭은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한나에게 유독 약했다. 태섭과 센터의 계약 이후로 더더욱. 명헌과 우성을 맡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등을 밀어준 것도 한나였다.

은혜를 갚는 것. 그리고 태생 센티넬인 만큼 그들의 입지를 확고히 만들어서 센터를 뜯어고치는 것. 한나는 영리했다. 태섭이 센터를 미워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센터는 강한 센티넬에게 약했다. 가이드는 아무리 랭크가 높아봐야 신체 능력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으니 두려워하지 않았다. 등급의 차이가 있으면 낮은 등급의 가이드를 높은 등급의 센티넬에게 여럿 붙이면 됐다. 발에 채이는 것이 낮은 등급의 가이드였다. 그러나 센티넬은 달랐다. 발현한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이능력이 강해졌다. 다양한 이능력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공격력을 가진 것은 자연계 능력이었는데, 태생 센티넬에게서 자연계 능력이 주로 발현했다. 드물게 후천적으로 발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서 센터는 이능력자들을 통제하고자 했다. 어렸을 때부터 관리하여 센터에 대들지 못 하도록. 센터에서 가이드를 매칭시켜 가이드도 관리하면서 가이드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그 뒤의 센터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머리를 썼다. 한나는 이것을 지적했다.

명헌과 우성은 태생 센티넬이다. 태생은 아무리 낮아도 S급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기에 센터에서는 어떻게든 명헌과 우성을 길들이려 할 것이다. 태생 S급, 혹은 그 이상이 될 순수 이능력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같은 등급이나 그 이상의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게 태섭이었다. 센터에 소속된 가이드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섭은 방사 가이딩도 가능하고, 가이드가 각인을 하게 되면 각인한 센티넬에게만 가이딩을 할 수 있었기에 적격자가 태섭 뿐이었다. 태섭과 센터는 계약 관계였으므로 태섭이 못마땅해 하더라도 자신들의 요구에 응할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명헌의 조모와 우성의 부모가 임무중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담당자를 시켜 아이들을 태섭에게 보낸 것이다. 다른 지부 센터에서 침바르기 전에 먼저 선수쳐야 했으니까. 태섭이 화낸 것은 이러한 상황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고 한나는 그것을 꿰뚫어보았다.

센티넬은 자신을 안정시키는 가이드에게 약할 수 밖에 없다. 매달릴 수 밖에 없다. 높은 등급의 센티넬은 아주 예민했다. 폭주라도 했다간 도시 하나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센티넬은 자신이 미쳐 날뛰다 스스로를 불태우고 죽거나 사살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인간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센티넬은 가이드에게 매달렸다. 집착했다. 그러니 그것을 깨닫기 전에 높은 등급의 가이드를 붙여주면, 그에게 매달리고 집착하며 가이드의 옆에만 있길 원하게 만드는 것이 센터의 목적이었다. 명헌과 우성을, 태섭의 옆에. 높은 등급의 센티넬을, 높은 등급의 가이드에게.

“…잘 해주려고 하고 있어. 백호나 태웅이처럼 몇 살 차이 안 나는 것도 아니고, 열 살이나 어리다 보니까…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러는 것 뿐이야. 또 내가 워낙… 인상이 그렇다고, 얘기하잖아?”

- 그건 인정. 저번에 사진 보내준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양아치인줄.

“너 진짜 죽을래?”

- 아무튼 애들한테 잘 해줘. 야외훈련참관 일정 나왔다며?

“넌 대체 그런 얘기 어디서 듣는거야? 나보다 정보가 더 빠른 거 아냐?”

- 호열 오빠가 얘기해줬지.

“양호열 그 자식은 능력자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소식을 물어오는 거야.”

- 아, 맞다. 호열 오빠 하니까 오빠 찾던데. ‘큐브’ 더 얻을 수 있는지.

“…그걸 그새 다 썼어?”

- 백호 오빠가 요즘 임무에 많이 들어간다나봐. 태웅 오빠는 다른쪽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거기는 장기 임무인지 연락 못 받은지 좀 됐대.

“일주일 뒤에 택배로 보낸다고 해.”

- 근데 나도 궁금하긴 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가이딩을 ‘큐브’에 봉인하는 거 말이야.

“…….”

태섭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호기심 다분한 목소리에 태섭이 가만히 말했다.

“영업 비밀이야.”

- 가족한테 비밀이 어딨냐!

“여기있다, 왜.”

- 아우, 진짜 송태섭 얄미워서. 암튼! 애들 야외훈련참관 꼭 해! 알았지!

“안그래도 간다고 했어.”

- 진짜? 진짜로?

“맑으면 간다고 했지.”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휴대폰을 거칠게 찌르고 들어왔다.

- 아 오빠! 오빠는 날씨에 대한 촉이 엄청 좋잖아! 일부러 그런거지! 가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내가 꼭 가길 바란다면 날씨가 좋아지라고 기도하겠지, 뭐.”

- 어휴, 진짜! 못돼가지고! 송태섭 최악이야!

끊어! 뚝 끊긴 화면을 쳐다보던 태섭이 킥킥 웃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본다. 창가에 머리를 기댄 태섭이 중얼거렸다.

“내가 가길 원하면, 날이 맑길 바라겠지…….”

정말로 내가 가길 원한다면. 태섭이 참관 소식을 접할 때를 떠올렸다. 종이를 건넬 때 살짝 떨리던 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선. 꼼지락 거리던 손가락. 은연중에 주눅이 들어있던 아이들. 태섭의 손 끝이 창문을 느리게 두드린다.

“이미 나한테 그렇게 주눅이 들어서 눈치를 보는데 내가 정말 가길 바라는 게 맞겠어? 뭐, 초반부터 그런 분위기여서 내가 자초한 거긴 하지만.”

태섭은 날씨에 대한 감이 정말 좋았다. 너무 좋아서, 부모과 형이 임무를 나갔을 때의 날씨도 맞출 정도였다. 부친이 처음 임무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도, 형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모친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빌어먹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기분이 좋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기분이 좋을 정도로 날이 좋을 때면, 누군가는 꼭 목숨을 잃었으니까. 그 날 비가 온다면, 기분 좋을 정도로 좋은 날씨만 아니라면. 적어도 그 날에 죽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쑥쑥 크는 성장기 센티넬 둘을 챙기느라 냉장고는 며칠 만에 동이 나곤 했다. 태섭이 아이들이 센터에 다녀오는 동안 차를 몰고 근처 마트에서 식재료를 잔뜩 사온 어느 날이었다.

“저건 또 뭐야.”

창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희멀건한 것을 발견한 태섭이 테이블 위로 가득 채워진 장바구니 두 개를 내려놓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흰 천 안에 솜인지 폭신한 것을 동그랗게 채워넣고, 그 위로 표정을 그려놓은…….

“뭐야. 맑음 인형?”

요즘 시대에 그런 거 믿는 사람도 있나? 하던 태섭에게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린 애들이라면 믿을 법도 하지. 창문 위까지 어떻게 올라갔는지 야무지게도 매달아놨다. 맑음 인형은 총 네 개가 걸려있었다. 하나하나 잡고 뒤집어 얼굴을 확인한 태섭이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

“내가 무섭게 생기긴 했나보지?”

삐딱한 눈썹에 화난 얼굴이 뒤집어봐도 자신이었다. 태섭이 이걸 화를 내야할지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인형을 들여다보았다. 짙은 눈썹에 맹한 눈, 벌써부터 두툼한 입술을 그려놓은 건 이명헌일 거고. 씩씩하게 웃는 얼굴을 그려놓은 것은 정우성일 테다. 그리고 그 옆은…….

“응?”

얼굴이 비워져 있었다. 태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이 집에 사는 것은 자신을 포함해 명헌과 우성 셋 뿐이었다. 한번씩 한나와 친구인 달재가 다녀가긴 했지만. 같이 매달린 인형은 다 합쳐도 넷이었다. 똑똑한 놈들이라 누구 얼굴을 기억 못 하진 않을텐데. 태섭이 인형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도톰한 입술이 살짝 벌어진다.

“설마 이거… 송아라?”

유일하게 이 인형만 뒷머리가 까맣게 칠해져있었다. 아랫부분도 가로로 선을 그어놓고 밑부분에 색칠되어 있었다. 명헌과 우성은 아라를 만난 적이 없다. 일반인이니까. 위험구역인 이 곳에 들어올 수 없으니까. 태섭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머리와 치마로 표시해놓은 거겠지.

“…….”

태섭이 말없이 아라랍시고 그려놓은 맑음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내려다보다, 한 손으로 왁스로 깔끔하게 올린 곱슬머리를 긁적인다.

야외훈련참관 당일. 태섭의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야외훈련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렸다. 야외훈련일정은 실내훈련으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참관 자체가 취소된 건 아니어서, 훈련장 곳곳이 사람 소리로 가득했다.

“인형 효과 없었뿅.”

“그치만 그 때 책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하면 비 안 온다고 했는데!”

명헌이 발끝으로 훈련장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우성은 대놓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훈련관의 지시에 익숙하게 자리를 잡는다. 명헌의 시선이 왼쪽으로, 우성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한다. 독특한 머리의 양육자는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리에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발산하는 가이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달콤한 가이딩.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가이딩. 가족이 되고 싶으면서도, 가족이 되고 싶지 않은. 이상한 감정을 갖게 하는 가이딩. 조모와 부모의 상실 이후 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일 가이드.

태섭이 자신들을 내켜하지 않아하는 표정을 봤을 때는 버려질까 두려웠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조모와 부모의 이름이 나왔을 때 안색이 확연히 달라지며 놀란 얼굴로 자신들을 내려다보던 표정을 똑똑히 기억했다. 동시에 확신했다. 그는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겠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당시 담당자가 둘에게 들리는 소리를 차단했다고 생각했을 때. 태섭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때. 둘에게는 소리가 차단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나. 둘의 등급은 태생 S급이었다. B급 센티넬의 능력이 통할 리 없었다. 그것을 담당자도, 태섭도 몰랐다. 자신들에게 집중했으면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태섭은 센터의 행동방식에 분노하고 있었고 담당자는 그런 태섭을 말리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기에 눈치채지 못 했다. 명헌과 우성은 그렇게 조모와 부모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슬펐다. 가족의 상실을 태어나서 처음 겪었으니 슬픈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했다. 어렸던 둘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 했다. 자신들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태섭의 집 자체에 태섭의 방사 가이딩이 퍼져있어 센티넬인 자신들을 감싸안아 가이딩했기 때문이라는 걸. 태섭이 의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화를 내기 바빴으니까. 그러나 센티넬이 본능적으로 가이드를 찾는 것처럼, 가이드 역시 가이딩이 필요한 센티넬을 찾게 되어 있었다. 집 전체가 방사된 가이딩 에너지로 가득 차있다면 더더욱. 고여있던 농축된 에너지가 부드럽게 어린 센티넬 둘을 끌어안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은 큰 위로를 얻었다. 사랑을 얻았다. 가이드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얻었다. 그 때가 시작이었다. 어린 두 센티넬은 사랑을 배웠다. 본능을 배웠다. 가이드를 원하는 센티넬의 본능을. 본능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태섭은 누가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속은 말랑한 사람이었다. 상황을 접한 뒤로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자신들이 다가가는 것에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잠을 설치면 말없이 곁에 다가와주었고, 반찬을 이것저것 하면서 좋아하는 반찬을 눈여겨 보다가 점차 자신들이 좋아하는 반찬들이 자주 식탁에 올라오게 했고, 센터를 미워하기에 센터에 다녀온 직후의 자신들을 날카롭게 보다 황급히 표정을 바꾸고 자신들이 다치진 않았는지 자상하게 살피고. 다친 곳이 있으면 온 집을 메운 방사 가이딩 에너지로 회복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는 걸 꼭 손을 맞잡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신들이 주눅들어하고, 눈치를 보는 걸 느낄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열 살이나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들은 센티넬에고, 그는 가이드였다. 센티넬에게, 가이드에게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여동생과 통화하는 시간은 솔직히 부럽고, 질투도 났지만. 부드럽게 웃는 표정을 잘 보여주지 않기에 몰래 보는 순간이 귀했다. 그러다 들키면 혹여 자신들에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을까 황급히 표정관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자신들을 신경쓰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좀 더 자신들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웃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악몽으로 잠을 설칠 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슴을 도닥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반찬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치지 않아도 손을 잡아주엇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옆에. 그의 옆에 어른이 되어서도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만의 센티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고작 열 셋의 아이들이 사랑을 논하기엔 그저 사소한 연유들일지라도, 센티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넘쳤다. 이미 그가 가이드라는 사실로 끝난 사랑이었다. 센티넬에게 있어 가이드는 그 어떤 존재라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다. 가이드는 센티널의 삶의 이유였다. 사랑이었다.

어린 두 센티넬의 사랑이 오늘은 찾아와주지 않았지만. 두 센티넬이 무심한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다. 속상한 마음이 티가 나는지 오늘따라 능력이 뾰족뾰족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성의 불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고, 비가 오니 명헌의 물은 더욱 예리한 얼음창이 되었다.

아. 재미없어.

태섭이 없는 모든 곳이 재미없다. 둘은 그렇게 생각했다.

와글와글하게 사람들이 훈련장을 빠져나오고, 명헌과 우성이 가장 마지막에 발을 질질 끌며 훈련장을 나섰다.

“와. 비가 그쳤네.”

“억울뿅.”

우성이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명헌이 조용히 동감했다. 능력이 기분에 동조하기라도 했는지 마구 날뛰는 바람에 우성은 몸 곳곳이 불에 그을리고 명헌은 날카롭게 벼려진 얼음에 의해 곳곳이 베여있었다. 아픈 것도 몰랐다 사실은. 그래도 집에 가면 사랑스러운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다친 곳을 일일히 확인하고 부드럽게 손을 잡아 가이딩해줄 시간만을 생각했다.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어디 가?”

“!!”

“어?”

익숙한 목소리에 둘의 걸음이 멈췄다. 믿을 수 없었다. 뒤돌아 그를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를 증명하는 가이딩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던 태섭이 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희미하게 태섭의 주위로 ‘큐브’의 형체가 비치다 사라진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갇혀있던 방사 가이딩 에너지가 두 센티넬을 덮쳤다. 짜증나던 감정이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심장까지 파고드는 가이딩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다.

“아.”

태섭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투명한 ‘큐브’가 태섭을 감쌌다. 방사 가이딩 에너지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두 아이가 태섭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태섭이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센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지? 분명 내 가이딩 에너지 느낀 센티넬들이 귀찮게 굴 거라서 봉인한 거야.”

가이딩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면 난 그저 일반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태섭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가이딩 에너지를 봉인하고 해제할 수 있다니. 가이드가 이런 능력도 있단 말인가. 놀란 것도 잠시뿐이었다. 우성이 먼저 태섭에게 달려가 안겨들었다. 태섭이 갑자기 달려든 우성을 안으며 두어걸음 물러섰다. 명헌도 다급하게 태섭에게 다가갔다. 우성의 행동에 놀라던 태섭이 안절부절하는 명헌을 보며 우물거리다 팔을 벌렸다.

“이리 와.”

명헌이 스르륵 태섭에게 안겼다. 태섭이 쭈그려 앉아 두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처음이었다. 태섭에게도, 두 센티널에게도.

“봤어 뿅?”

“봤지.”

“오늘 진짜 엉망이었는데.”

“너네가 저기서 짱 먹는다는 건 알겠더라.”

아이들이 종알거릴 때마다 태섭이 대꾸했다. 어색한 손길로 아이들의 등을 토닥이던 태섭이 몸을 일으켰다. 대놓고 아쉬워하며 아이들이 물러섰다. 태섭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이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쳐다보았다.

“가자. 집으로.”

냉큼 손을 잡아온다. 들뜬 게 확실한 발걸음에 태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외출을 하자. 누나의 얼굴도 모른다면 누나가 많이 서운해 할 거야.”

“우리가 만든 거 봤어!?”

우성이 비명을 질렀다. 슬쩍 본 아이들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더 잘 만들 수 있었다며 있는 힘껏 항변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는 태섭의 발걸음도 어쩐지 가벼워 보였다. 홀가분한 발걸음이 집으로 향한다.

“어라, 오빠! 이게 뭐야?”

“뭔데.”

태섭의 집 곳곳을 구경하며 예전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바뀌었네, 이건 그대로네 하던 아라가 ‘큐브’ 하나를 집어왔다. 제법 크기가 커보이는 것에 태섭의 시선이 닿고, 이내 피식 웃는다.

“기억나냐? 야외훈련참관.”

“아! 그때 결국 비왔지! 진짜 송태섭… 어, 그러면… 아! 이거!”

“누나, 무슨 일- 아!”

“뿃!!!”

아라의 큰 목소리에 식사 준비에 한창이던 명헌과 우성이 다가오다 아라가 들고 있던 것을 보고는 얼굴을 붉힌다. 우당탕거리며 아라에게서 ‘큐브’를 빼앗기 위해 안달이다. 일반인인데 어째서인지 아라는 SS급의 센티널 둘의 손길을 잽싸게 피해다녔다.

“받아라, 송태섭!”

구석으로 몰리던 아라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누워있던 태섭에게로 ‘큐브’를 던졌다. 몸을 일으켜 그것을 받아낸 태섭이 목까지 빨개진 명헌과 우성에게 그것을 보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송아라. 이 맑음 인형에는 비밀 하나가 있어.”

“뭔데? 근데 왜 네 개야? 원래 셋이서만 살고 있지 않았어?”

“바로 거기에 비밀이 숨어있지.”

“왜? 뭔데? 궁금해! 말해줘!”

“악! 악! 악!!!!”

“왜 태섭이 그걸 갖고 있는거뿅!!!”

“아 늬들은 좀 조용히 해봐!!! 오빠 빨리 알려줘!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알지!?”

아라를 구석으로 몰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명헌과 우성이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저 덩치에, 같은 센티넬도 아닌 일반인에게 절절매는 게 웃겼다. 태섭이 맑음 인형들이 담긴 ‘큐브’를 내려다보았다. 얼굴이 비워져있던 인형에 태섭과 비슷한 삐뚜름한 눈썹과 살짝 쳐진 눈매가 그려져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셋이 집으로 돌아간 날. 태섭이 명헌과 우성에게 보여주었다. 얼굴이 비어있는 맑음 인형에 제가 그려넣은 아라의 얼굴을. 그때 두 아이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태섭은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등을 쓸어내리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 아라가 태섭의 집을 찾아왔다.

‘큐브’ 안의 맑음 인형들을 보던 태섭이 명헌과 우성, 그리고 아라가 셋이 엉킨 모습 너머를 보았다. 커다란 냉장고에 붙여진 사진 한 장을 본다. 스물 셋의 태섭과 그의 옆에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열 일곱의 아라. 그리고 태섭의 앞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열 셋의 명헌과 우성이 찍힌 사진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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