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우성태섭명헌] Lost maid (상)

* 수인&현대au

* 연하 흑표범 수인 명헌

X 연상 인간(혹은 다른 것) 태섭

X 연하 눈표범 수인 우성

** Wild Wild 후속편

*** 키워드 확인 필수

- 의도하지 않은 도망, 기억상실, 임신, 출산, 2세 출현, …… 일단 이정도…….

**** 주인공 명태우/우태명 모두 성인

***

순혈 표범 수인 도련님 둘을 관리하는 전속 메이드로 일한지 7년…이었다고 했다. 부모님과 그 윗대의 조부모, 더 위의 세대까지 인간이라고 알고있는데 더 멀리까지 올라가는 세대 누군가가 수인이었던 모양이다. 인간이었던 태섭이 수인들만 존재하는 저택에 지내는 동안 이른바 선조회귀로 토끼 수인이 되었다고 했다. 태섭의 부모 모두 인간이었고, 태섭의 형제들 역시 인간이었기에 가족들은 적잖이 놀랐고, 담담하게 설명한 집사장이 태섭이 토끼 수인으로 발현했어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거라 했다.

그러니까, 온전히 수인으로 체질이 변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순혈의 혈통을 유독 고집하는 가문이었던 만큼 종속된 이들 역시 종이 다를 뿐 대부분 순혈들이었는데, 인간인 태섭이 그 안에 섞여 살면서 희미하게 남은 토끼 수인의 힘이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수인들의 공간에서 발현한 것이기에, 다시 인간들의 세상에서 적응하고 지내다 보면 발현된 수인의 기운이 점차 희미해지고 이내 사라질 거라 했다. 다만 순혈 수인들 사이에서 다년간 지냈던 만큼 온전히 사라지는 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표범 가문은 언젠가 사라질 기운일지라도, 고용인이 인간에서 수인으로 종족이 바뀐 것은 가문의 책임이라며 눈표범 수인 대표와 흑표범 수인 대표, 그리고 태섭을 채용한 집사장이 직접 찾아와 태섭을 집에 데려다 주고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사죄했다. 사죄의 의미로 허리깊게 숙인 사과와 보상으로 태섭의 퇴직금을 세 배로 올려 지급했다.

산 깊은 곳에 위치한 저택에서 지내게 해 바깥 냄새를 묻혀오지 않도록 했으며, 규율에 따라 도련님들을 케어하는 역할이었기에 여성 직원들이 입는 메이드복을 입고 일하게 했고, 한참 어리고 말썽부릴 나잇대의 작은 도련님들만 집중케어할 수 있도록 쉬는 장소를 제한-도련님들의 방 사이를 관통하는 로비같은 방-하는 등 태섭에게 걸린 제약만큼 오른 월급은 아버지와 장남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두 남매를 키우느라 어깨가 무거웠던 카오루에게 진작부터 큰 힘이 되었었는데 7년 어치의 퇴직금을 세 배로 받으려니 액수를 상상하자마자 손이 떨릴 정도였다.

- 도련님들은 제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고있나요?

그리 묻는 태섭의 몸 곳곳에 반창고와 붕대가 적용되어 있었다. 집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애초에 계약기간은 도련님들이 무사히 성체로 성장하실 때까지였으니까요.

- 태섭 군이 저택에서 지내는 동안 하고자하던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 있다면 그 기간만큼 표범 수인 가문에서 지원할 예정입니다.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 아, 아닙니다. 저도 도련님들과 함께해서 즐거웠는 걸요. 월급과 퇴직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가족들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인사를 못 하고 오게 된 건 아쉽지만, 갑작스러운 발현으로 이렇게 부상도 입고 다급한 상황이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죠.

-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집사장이 고개를 숙이자 태섭과 그의 가족 역시 고개를 숙였다. 그 위로 흑표범과 눈표범 대표로 찾아온 주인 어른들의 미묘한 표정이 서로를 보며 잠시 스쳤다.

사죄와 인사를 마치고 수인들이 떠났다. 태섭은 그제서야 몇 년만에 보는 가족들을 품에 안았다. 가족들은 서로의 공백을 밤까지 이어지는 대화로 채워나갔다. 태섭이 발현했다는 시점부터 지금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기억이 없는 게 걱정스러웠으나 후천적 발현 시 종종 있는 일이라고 듣기도 했고, 건강상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 받았으므로 안심했다. 온몸이 엉망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갑작스런 발현으로 수인이 된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해 여기저기 부딪혀 다쳤거나, 돌발행동으로 저택 수인들이 본능적인 방어를 위해 나서면서 위험한 상황이 몇 차례 일어나며 생긴 것이라 했다. 온몸이 긁히고 짐승의 잇자국까지 난데다 손목이며 발목, 허벅지 등에 퍼렇게 멍이 들어있어 후천적 발현한 수인은 참으로 요란하다고 생각했다. 수인들은 자기관리도 힘들겠다고.

학생이던 동생 아라가 대학에 들어가 입학식까지 함께한 태섭은 자취를 시작했다. 조금 더 쉬어야하지 않겠냐는 모친의 말에 적당히 쉬다가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아라는 몇 년만에 만난 오빠와 또 헤어지는 거냐며 아쉬워했고 태섭은 그런 동생의 머리를 헝클이며 웃어보였다. 멀리 가는 게 아니니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얘기한 게 무색해졌다. 태섭은 발치에 매달린 작은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한쪽은 파랗고 한쪽은 노란 오드아이를 가진 두 사내아이. 태섭은 남자인 제가 수인화하면 토끼, 그것도 암컷이 된다는 걸 알고는 기가 찼다. 임신한 상태였다는 걸 배가 불러오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도.

찾아간 병원에서 자궁이 두 개라 아이도 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태섭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뭐가 두 개라고요? 의사가 대답했다. 자궁과 아이요. 태섭이 입을 다물고, 의사가 말을 이었다.

- 드물게 토끼 수인쪽에서 자궁이 두 개인 개체가 있어요. 후천적 발현을 하면서 성별이 바뀌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완전히 성별이 바뀌지 않고 양성이 되는 케이스는 저도 처음입니다.

의사는 실례만 되지 않는다면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싶다고 했고, 태섭은 실례가 맞으니 싫다고 했다. 아쉬워하던 의사는 더이상 실례를 끼치지 않을테니 진료는 자신에게만 받을 것을 권했다. 의사의 반응을 보아 어딜 가도 같은 반응일 것 같아 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어떻게 생긴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태섭은 후천적 발현할 즈음부터 기억이 없었고, 계약 만료를 얘기하던 표범 수인 가문측에도 그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모르기도 했고, 분명 걱정할 것을 알았기에 말하지 않았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걱정끼치는 게 더 싫었다.

배가 불러오는 것 외에는 임신할 때 나타나는 입덧이라던가 건강의 변화가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임신 중의 태섭은 인간 남성의 모습이었지만 속이 암컷 수인과도 같은 상태라고 했다. 수인일 때는 양성이기 때문에 온전한 여성이 아닌지라, 출산 후에 젖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본인이 기억을 하지 못 하니까. 태섭은 답답했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 않았기에 나쁜 사고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들으면 미쳤냐고 할 얘기였지만, 태섭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아이는 생겼고, 제 안에 자라고 있고, 연유가 어찌 되었든 낳게 되면 제 아이였으니까.

출산은 무사히 이루어졌고, 오드아이의 두 사내아이는 인간이었다. 형질 검사를 두 번이나 했으니 맞을 것이다. 아이를 출산했으나 태섭의 신체는 출산에 맞춰진 것 외에는 변한 게 없어 젖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와 충분히 상의한 태섭은 두 아이를 낳고난 후 두 개 있다는 자궁을 모두 제거했다. 수인이 되면 여성기는 남아있을 거라했지만, 더이상 아이를 낳을 일이 없을테니 수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괜찮았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혼자 집을 비울 수 없어 퇴직금을 조금씩 빼서 생활했다. 가족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기에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예민하지 않았기에 천만 다행이었다. 정수리부터 자라나는 까만 머리카락이 고왔다. 태섭은 거울 속 자신의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을 보았다. 아이들을 다시 본다.

어째서일까. 까만 머리카락만 봤을 뿐인데 작았던 두 도련님들이 생각났다. 성체로 자란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보지 못한 건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빨리도 자랐다. 하루하루 쑥쑥 커갔다. 아빠, 아빠- 하며 다리에 매달려오면 그렇게 귀여울 수 가 없었다. 잘빠진 눈썹과 약간 짙은 눈썹으로 아이들을 구별하는 게 재미있었다. 입술은 저를 닮아 둘 다 도톰했다.

어린이집에 가는 순간은 매일이 전쟁이었다. 껌딱지도 이런 껌딱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아빠랑 있겠다고 우는 게 쌍둥이 아니랄까봐 똑같았다.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우는 걸 달래 어린이집에 보냈다. 태섭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오전 파트타임으로 집근처 카페에서 일했다. 퇴직금을 조금씩 썼기에 제법 남아있었지만 무료하게 혼자 집에 있는 게 싫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가 생기면서, 모든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았더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얻은 공허감을 느끼는 게 싫었다.

카페 오픈 담당은 태섭이었다. 사장에게 받은 카드로 문을 열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면서 청소를 한다. 보통은 카페에 비치된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놓는데 뭔가 심심해 카운터 근처에 놓인 TV를 켰다. 뉴스 소리를 들으며 청소를 하는데 익숙한 이름이 들린다.

- 표범 수인을 대표하는 두 젊은 사장들의 행방이 계속 묘연하다고요.

- 네, 그렇습니다. 후계자에서 정식 대표로 올라서자 마자 사라졌다고 하던군요.

- 듣기로는 누구를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종족 수인을 대표하는 자리까지 내팽겨치고 찾아다닐 정도면 정말 대단한 분인가 봅니다. 평소 표범 수인 일가에서 완전무결한 모습을 보였던 걸 생각했을 때 이렇게 뉴스에서까지 언급되는 걸 보면… 큰 일인 것 같네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원만한 해결 보시고 조속히 본래 자리를 찾길 바랍니다.

- …….

무슨 뉴스가 이렇지? 인터뷰도 아닌 것이 기사도 아닌 것이… 태섭이 눈썹을 찌푸리며 화면을 보았다. 폐쇄회로에 익숙한 저택을 빠져나가는 두 남성의 모습이 찍힌 화면이 보였다.

- …….

성체가 된 도련님들은 정말 잘 생겼구나. 음. 그때도 엄청 귀엽긴 했지. 속으로 생각한 태섭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딴 생각을 하고 TV로 한눈을 팔지만 청소하는 손이 야무지다.

실내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정리하러 나오는데 카페 앞에 못 보던 검은 차가 서있었다. 누가 이사라도 왔나? 이 시간에 보던 차가 아니네. 태섭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의 카페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정 되어있어 태섭은 그들의 방문 시간에 맞춰 미리 음료나 디저트 등을 준비하곤 했다. 검은 차를 힐끗 보던 태섭이 카페에 들어섰다. 진열대 뒤로 들어가려는 순간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태섭의 고개가 문쪽을 향하기도 채 전에 시커먼 무언가가 그를 덮쳤다.

- ……!!!

당황하던 그가 자신을 덮친 이를 밀어내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 …도련님?

TV에서 봤던 성체로 성장한 두 도련님이었다.

태섭이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두 도련님이 양쪽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리에 매달려오는 아이들만큼이나 작았던 도련님들은 성장기부터 이미 자신보다 컸었는데, 성체가 된 지금은 더 커져있었다. 키도, 덩치도. 털갈이 자주 한다며 항상 빡빡 깎아 짧게 유지했던 머리도 제법 길러 스타일링한 것이 보기 좋았다.

- 으음. 제발 좀 떨어지실래요…….

태섭이 말했다. 성체… 그러니까 성인이 된 두 도련님은 입도 열지 않고 고개만 저어댔다. 불편하고 무겁고 더웠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 뉴스에서 요란하던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습관이 무섭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태섭의 손은 자연스레 토라진 어린 도련님들 달래던 그때와 똑같은 손길로 뒷머리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있었다. 잔뜩 일어선 어깨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머리카락의 존재가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었다. 태섭이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을 내려 둘의 등을 토닥였다. 어깨와 목덜미에 이마를 부벼오는 감촉이 익숙했다.

- 태섭.

- 네에, 도련님.

- 태섭아.

- 네에, 말씀하세요.

공부하기 싫다고 울면서 매달리는 어린 도련님들을 달래던 목소리가 부드럽게 늘어진다. 그제서야 태섭의 어린 도련님들이 고개를 들었다.

- 왜 우릴 떠났어?

아이 달래듯 둘의 등을 토닥이던 태섭이 눈을 떴다.

- 네?

금시초문이었다. 애초에 태섭은 그때의 기억조차 없었으니 더 뜬금없는 말이었다.

- 발정기 때 억지로 해서 우리가 싫어졌어? 그래서 말도 없이 떠난거야?

- 네? 잠깐, 잠깐… 발정기? 억지로? 네?

-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고백 먼저 하려고 했다 뿅. 근데 태섭 냄새를 맡으니까 갑자기 이성을 잃은 거다 뿅…….

- 예? 뭐요? 뭘 해? 고백? 흥분? 아니, 잠깐만. 이게 대체…….

- 무섭게 해서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성체가 되기 전에 찾아오는 첫 발정기가 진짜 심하다고 듣긴 했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 그 상황에서 토끼 수인으로 발현하는 바람에 그 정신에 씨를 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뿅……. 상처줘서 미안해 뿅…….

- …아?

태섭이 굳었다. 집 밖으로 어린이집 차량이 빵빵! 하고 소리를 냈다. 태섭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 아이들의 아버지가… 너희들이라고?

이게 무슨 일이지. 태섭이 낡고 지친 얼굴로 멍하게 앞을 보았다. 두 사내와 두 아이가 서로를 빤히 보고 있었다. 태섭의 시점에서나 빤히 보고있는 거지 두 사내와 두 아이 사이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왜 생각을 못 했을까. 파란눈과 노란눈. 까만 머리카락. 곧은 눈썹과 짙은 눈썹. 왜 떠올리지 못 했을까.

- 하아…….

태섭이 한숨을 내쉬자 네 쌍의 노랗고 파랗고 노랑파랑하고 파랑노랑한 눈이 모두 태섭을 향했다. 진짜 왜 몰랐지?

태섭이 불편하고 어색한 메이드복을 입고 처음 출근했을 때. 처음 만났던 얼굴을 그대로 갖고 태어났는데. 왜 몰랐을까. 마른 세수를 한다. 손바닥에 가려졌던 시야가 걷혔다. 눈 앞의 네 남자가 그대로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Lost maid (상)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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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

댓글 1


  • 사랑스러운 플라밍고

    후속작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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