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른 (시리즈)

[명헌태섭우성/우성태섭명헌] 수인/오메가버스 au (1)

* 수인 & 오메가버스 au

* 뱀 명헌 X 코요테 태섭 X 뱀 우성

* 제목은 아직도 못 정해서 미정

차가운 냄새가 났다. 태섭이 느리게 눈을 떴다.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마냥 아팠다. 기절한 건지 잠이 깊게 든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혀를 빼물고 잠들었다 깨어나 늘어진 혀부터 입 안에 집어넣었다. 일반 코요테보다 훨씬 큰 코요테 수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천장이 높고 둥근 형태를 띈 곳이 눈에 들어왔다. 수인이 일반 동물보다 크기가 크긴 하지만 눈 앞에 자리한 물품들은 태섭보다 조금 작거나 혹은 그 이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네 발바닥이 타닥 소리를 내며 바닥을 짚었다. 외상은 없었는데도 허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뻐근하고 둔탁한 통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 치료보다는 압박으로 인한 자세 고정용인 듯 했다. 낯선 환경, 낯선 천장에 이은 낯선 냄새에 태섭의 까만 코가 바쁘게 킁킁거렸다. 가족들이 살던 흙과 풀냄새가 가득했던 곳과는 판이하게 다른 냄새가 났다. 차갑고, 시리고, 아무 향도 느껴지지 않는 냄새.

“가족들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태섭이 문 열리는 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아. 깨어나셨군요!”

“너는…….”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태섭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 그때 보았던 거대 도마뱀이었다.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던.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외관상 큰 부상이 없었는데도 4일이나 잠들어 계셨어서… 다들 걱정을 많이 했어요.”

“가족들은?”

“오메가씨의 어머니와 동생은, 괜찮아요. 오는 길에 마주쳤던 코요테는, 출혈과 부상이 너무 심해서 산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도…….”

“따로 계셨던 분 말씀이실까요? 그 분은… 저희가 발견했을 때부터 이미…….”

태섭이 고개를 떨구었다. 상대적으로 희귀한 오메가를 납치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이 오메가로 발현한 탓에 가족들이 점차 도시의 외곽으로, 외곽으로 이사하는 게 납득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암컷도 아니고, 수컷인데. 오메가여도 약으로 발정기도 무리없이 잘 보냈는데.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싸우는 법과 살아남는 법을 배워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오메가들은 약하기 때문에 납치가 일어나는 거라고,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라는 어디에 있지?”

“두 분은 산왕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계세요. 다들 상냥한 오메가씨가 깨어나기만을,”

“나에게는 송태섭이라는 이름이 있어. 오메가라고 부르지 마.”

태섭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거대한 도마뱀이 난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냥, 태섭씨. 태섭씨만 괜찮다면 우리들의 왕이 있는 곳으로 지금 함께 가요.”

“가족들이 안전한 걸 확인하는 게 먼저야.”

“가족분들은 산왕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계시는데 그 곳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앗!”

태섭이 높이 뛰어올랐다. 뒤에 있는 문만한 크기의 거대 도마뱀을 단번에 뛰어넘은 태섭이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태섭씨! 하는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차가운 돌바닥이 태섭의 네 발바닥에 거칠게 문질러졌다. 어떻게 되어먹은 건물인지 두터운 천으로 된 커튼이 문처럼 달려있고, 그 안으로는 태섭이 깨어난 곳과 동일하게 높고 둥근 천장으로 이루어진 방이 있었다. 올라가는 곳도, 내려가는 곳도 없이 오로지 한 층으로 이루어져있으나 복도 사이사이로 수많은 방이 존재하고 있었다. 개미굴 같았다. 길이 하나로만 나있는데도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낯선 환경과 평소에 맡아본 적 없는 낯선 냄새가 태섭의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듯 했다. 가족들의 안위 생각에 극도로 예민해진 게 가장 큰 원인일 테지만.

차가운 냄새로 가득한 이 장소가 태섭에게 낯선 곳이듯, 이 곳에 사는 이들에게도 태섭은 낯선 이였다. 방마다 들어와 가족들을 찾는 태섭에 놀란 수인들이 태섭을 쫓기 시작했다. 바닥을 박차고 달리는 태섭의 다리가 더욱 빨라졌다. 마주치는 이들은 대부분 뱀이거나, 도마뱀 등의 파충류였다. 파충류들은 대부분 동면에 든다고 알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어째서인지 차가운 냄새가 짙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깨어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인이기 때문인 걸까.

태섭은 거대 도마뱀이 지칭한 ‘산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을 떠올렸다. 대부분 따뜻하거나 더운 계절이 많은, 태섭이 사는 ‘북산’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산이 봄과 여름 사이라면 산왕은 한겨울과 같은 곳이었다. 사시사철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추운 지역.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반 짐승들은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거나 일 년의 대부분을 동면하는 것으로 지낸다고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약초와 드높은 산 속 광맥에서 만들어지는 희귀 광석을 캐고 제련하여 만든 것으로 다른 지역에 대규모 상단을 운영하여 음식이나 생필품으로 교환하거나 판매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북산과는 전혀 다른 기후와 환경속에서, 자신은 둘째치고 모친과 여동생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여건만 되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치고 싶은데 그들과 한 약속이 있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가족들의 안전과 안위를 위해 산왕을 택한 것은 태섭 자신이었으니까.

얼마나 더 달렸을까. 소란한 소리에 앞의 방에서 파충류 반인반수들이 튀어나와 태섭의 앞을 가로막았다. 태섭이 제게 뻗어오는 손길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그들의 다리 사이로, 혹은 벽을 타고, 머리를 뛰어넘어 길고 길었던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건물 안보다 훨씬 차가운 냄새와 바람이 태섭의 몸을 덮쳤다. 두터운 옷을 입은 반인반수들의 시선이 태섭에게 향했다. 태섭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허리를 압박한 붕대가 거칠어진 숨을 더욱 조여내고 있었다. 눈을 한 차례 질끈 감았다 뜬 태섭이 같은 외형의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은 큰 건물을 보았다. 산왕에서 가장 안전한 곳. 태섭이 그 곳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열기 가득한 긴 주둥이 주위로 하얀 김이 쏟아져나왔다.

여기저기서 태섭을 가리키며 잡아야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부터 그 익숙한 목소리의 빌어먹을 거대 도마뱀에게 협조하여 순순히 따라갔으면 이렇게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가족들은 산왕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산왕의 우두머리들이라는 자들의 곁에 있을테니까.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의심스러웠다. 태섭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오메가인 자신을 노리고 습격한 이들을 보았다. 눈 앞에서 부친과 형이 자신과 남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가족 둘을 잃고 만난 무리가 북산에서 봐왔던 이들이 아닌 북산과 정반대 지역의 산왕에서 온 자들이라면, 그들은 마음편히 믿어도 되는가?

오메가를 납치하는 이들은 종류무관 종족무관이었다. 코요테를 상대하기 위해 늑대무리가 온 것일 뿐이다. 오메가를 필요로 하는 알파들의 종족도 무관했다. 인간 알파에서도 수인 오메가를 구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인간 오메가보다 수인 오메가가 더 튼튼하니까.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기 위해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서 오메가를 납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산왕의 경우 거대 상단을 꾸려 상업활동을 활발히 하는 곳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오메가를 납치하거나 이 상황 자체도 충분히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멀리, 최악을 상정하는 거라고,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태섭은 자신이 오메가라는 이유로 가족 둘을 잃었으며 눈을 떴을 때조차 남은 가족들을 볼 수 없었다. 그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 했다. 익숙한 목소리의 거대 도마뱀이 사실은, 자신이 일전에 구해주었던 아주 작은 도마뱀이라는 것을 기억해냈음에도 자신을 오메가로 지칭한 이상 의심해야만 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가족을 잃은 태섭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찾았다!”

“캥―!”

방심했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낯선 환경과 낯선 냄새로 가득한 곳에서, 자신을 붙잡기 위해 다가오는 반인반수들을 피하면서도 생각이 너무 많았다. 등 뒤에서 소리없이 다가온 거대 도마뱀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 할 정도로. 뒤에서 와락 끌어안은 악력이 대단했다. 태섭의 몸에 부담가지 않을 정도로 꽉 안으면서도 몸부림치는 태섭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태섭의 정수리 위로 거대 도마뱀의 턱이 닿았다.

“안정이 필요해요. 조금만… 조금만 주무세요.”

거대 도마뱀의 턱이 태섭의 정수리 위로 문질러지더니 태섭의 눈 앞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물거리는 눈을 깜빡이니 하얀 가루같은 게 제 머리 위로부터 떨어져내리는 것이 보였다. 젠장, 독을 가진 종이었나. 북산에 사는 이가 아니기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태섭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몸부림 치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든다. 태섭의 몸에 힘이 빠지면서 축 늘어졌다. 온전히 잠에 든 그를 내려다보며 거대 도마뱀이 순하게 웃어보인다. 주위를 서성이는 반인반수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이 각자 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손길이 닿아왔다. 주위가 따뜻했다. 북산과는 다른 느낌의 따뜻함이었다. 태섭이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다시 내려앉았다. 등 뒤로 빗질하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눈 감은 태섭의 꼬리가 느리게 흔들렸다. 붕대를 감아 압박시켜놓은 허리께에 손이 닿아와 저도 모르게 움찔하자, 손길이 멈추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와 태섭이 아까보다 가벼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흐린 시야로 안정적인 모습으로 도톰한 머그 위에 앉아 자신을 보는 코요테 두 마리가 보였다.

“…엄마? 송아라……?”

태섭이 눈을 깜빡였다. 태섭과 두 코요테 사이로 작은 불이 피워져있고, 그 위로 커다란 솥냄비가 끓고 있었다. 멀거니 둘을 쳐다보던 태섭의 눈이 커졌다. 그럼 지금 나를 만지는 건…….

“!!!!”

빠르게 일어선 태섭이 두 코요테의 앞까지 달려갔다. 둘을 뒤로한 채 이를 드러낸다. 태섭의 털을 빗기던 인간의 손이 느릿하게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뿅.”

“…뿅?”

경계를 할래야 할 수 없을 정도의 박 터지는 소리였다. 저도 모르게 되물은 태섭이 헉 하며 다시 경계 태세를 갖췄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힐끗힐끗 뒤를 본다. 코요테 두 마리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우린 괜찮아. 태섭아. 괜찮니?”

“전 괜찮아요.”

“경계할 필요없다 뿅. 가족들을 먼저 살피도록 뿅.”

“…….”

태섭의 노란 눈이 이상한 어미를 붙이는 인간을 노려보다 몸을 돌려 인간형으로 변한 뒤 두 코요테를 살펴보고는 그대로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오빠야, 괜찮아?”

마찬가지로 인간형으로 변한 아라가 태섭의 허리에 감긴 붕대에 살짝 손을 얹었다. 아직 어린 탓에 완전히 인간형으로 변하지 못한 아라에게서 인간의 귀 대신 머리 위로 코요테의 귀가, 엉덩이 뒤로 감추지 못한 코요테의 꼬리가 살랑거린다.

“이 정도는 괜찮아.”

“무사해서 다행이다, 태섭아.”

“엄마…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빠랑 형이…….”

태섭의 말에 모친 카오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태섭의 뺨을 쓰다듬고 아라를 보듬어 안는다. 한참 서로를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던 카오루가 천천히 몸을 물렸다. 태섭이 그를 보다 시선이 향한 곳으로 따라 고개를 돌린다.

“뿅.”

시린 겨울의 환경을 이겨내는데 거리낌 없다는 듯 바짝 짧게 깎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내의 덩치는 아주 컸다. 몸을 감싼 두터운 털옷은 이 곳의 기온을 얘기해주는 듯 했고 산왕에서 나는 광석으로 제련한 듯 색색의 장신구가 달린 검은 베일이 입을 가린 것이 독특했다. 짙은 눈썹에 깊은 눈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검은 눈. 베일 밑에 반쯤 가려져있으나 곧게 뻗은 코가 보이고, 검고 얇은 베일 안으로 달싹이는 입술은 가늘게 눈을 떴을 때 태섭보다 도톰한 느낌이었다. 저런 인상에 뿅 같은 이상한 말을 한단 말이지. 태섭이 생각했다. 그런 태섭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 앞의 이가 입을 열었다.

“쓰다듬는 느낌이 좋았는데 뿅.”

“뭐?”

크게 드러나지 않는 표정과 다르게 커다란 손이 무언가를 쥐듯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태섭은 그가 말하는 것이 자신임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워 하던 태섭의 뒤로 아라가 작게 말했다.

“해코지하지 않았어. 아프게 하지도 않았어. 오빠도, 우리도.”

“…….”

“저자가 그들이 말한 우두머리라는 존재인 것 같더구나.”

“그때 우두머리‘들’이라고 했었는데…….”

“아까 있었는데, 둘이 얘기 주고받더니 나갔어.”

태섭의 예상대로 눈 앞에 앉아있는 이가 산왕의 두 우두머리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오메가를 필요로 하는 알파. 가족들의 안전을 댓가로, 자신을 원하는 존재. 인간형으로 변하면서 갈색으로 변한 태섭의 눈이 우두머리를 보았다. 가만히 태섭과 눈을 마주하던 이가 말했다.

“다른 가족에 대해서는 유감 뿅.”

“…….”

“네 상황도 이해돼 뿅. 낯선 곳에서 눈 뜬 것도 불안한데 약속한 가족들까지 시야 안에 들어오질 않았으니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예민해질 법하지.”

“…내가 당신과,”

“산왕의 우두머리가 둘인 건 알고 있나 뿅.”

“…내가 당신들의 아이를 낳는 조건으로 내 가족들의 안전과 안위를 책임진다고 했어.”

“산왕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뿅. 이런 상황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쪽도 오메가가 꼭 필요한 입장이라서. 네가 거절하면 우리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뿅.”

태섭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절로 한쪽 팔을 뻗어 카오루와 아라를 뒤로 숨긴다.

“아! 그렇게 말하면 더 오해한다고요!”

“베시.”

낯선 목소리에 태섭이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가족들이 벽에 가까워질 정도로. 마찬가지로 바짝 깎은 머리와 한쪽으로는 스크래치를 낸 독특한 스타일에, 앉아있는 이보다 덩치가 조금 작은 대신 키가 큰 이가 앉은 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찬 기운을 몰고 온 그가 앉은 이와 같은 장식을 한 검은 베일을 써 입을 가렸다. 얇고 길게 빠진 눈썹과 살짝 처진 눈꼬리를 가진 태섭과는 반대로 살짝 치켜오른 눈꼬리. 듬직하고 단단해보이는 앉은 이와는 다르게 미형인 자가 말했다.

“미안해. 놀래키려는 건 아니야. 오해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형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줘. 내가 대신 사과할게.”

“뿅.”

“빨리 형도 미안하다고 해요. 진짜 알 안 낳아주면 어떡하려고.”

“오메가는 또 찾으면 되는데 베시.”

“현필이가 그랬잖아요, 상냥하다고. 그리고 딱 봐도 튼튼하게 생겼잖아요? 중간에 탈나지 않을 거라고요.”

현필? 상냥하다는 단어를 쓰는 걸 보니 자신이 구해준 일전의 그 작은 도마뱀…인줄 알았던 거대 도마뱀을 말하는 듯 했다. 태섭의 경계가 지속되자 연거푸 한숨을 내쉰 그가 말했다.

“어후 진짜 어떡할거에요? 통성명은 한 거에요?”

“아니.”

“이 형이 진짜. 아무리 탐탁치 않은 상황이라도 할 건 해야죠. 좋게좋게 해도 모자랄 판인데… 난 우성이야. 정우성. 여기는 이명헌. 저기, 코요테라는 건 알고있고, 이름이…….”

“…송태섭…….”

“태섭. 송태섭. 그렇구나. 다시 한 번 미안해. 놀래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 너도 여기까지 오면서 봤겠지만 여기 산왕이 환경이 참 척박하잖아? 그래서 산왕 인구의 90%가 수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부분 형질인인 알파로 태어나거든. 너도 알겠지만 알파는 오메가와 짝을 이루어야 하는데 여기서 오메가를 보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우리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오메가가 필요하거든.”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

“맞아. 안그래도 너에겐 한 번 찾아가려 했었어.”

“어째서?”

“현필이 기억해? 아주 귀여운 녀석인데, 그 녀석이 처음으로 산왕 상단에 합류했다가 일반 맹금류한테 잡혀가는 바람에 큰 일 난 적이 있었거든. 그걸 구해준 게 너였고.”

“…정말 작은 도마뱀이었는데.”

“아, 그거? 네 뒤에 있는 네 동생이 그렇듯 현필이도 모습을 변화시키는데 익숙하지 않았거든. 그 정도로 어렸어서. 그래서 걱정반으로 보낸 거였는데,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럼 그 녀석은 원래 지금 같은 크기였단 말이야?”

“현필이는 코모도 왕도마뱀이야. 산왕에 존재하는 코모도 왕도마뱀들 중에서 가장 크지. 현철이 형도 큰 편인데 더 큰 녀석이 태어날 줄은 몰랐지만!”

“…….”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거 아니냐고, 아무리 변신에 서툴러도 이건 반칙 아니냐고 말 하고 싶었으나 꾹 참은 태섭이다.

“아무튼 간에, 현필이의 생명의 은인이라 원래도 감사하고 싶어서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현필이가 네게서 오메가의 향을 느꼈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더욱 서둘렀지. 상냥하다고 했으니까, 잘만 하면 짝으로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부랴부랴 내려가는 길에 습격을 당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잠시 말을 멈춘 우성이 까만 눈을 굴려 태섭과 그 뒤의 가족들을 보다 말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미안해.”

“…….”

태섭이 살짝 입을 벌렸다. 적어도 이들은 의심할 자들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정말로 자신만 조건을 잘 이행하면 가족들의 안전은 지켜질 것이다. 태섭이 시선을 내렸다 들어올리며 둘을 보았다. 태섭의 눈빛에서 경계가 사라지자 우성의 눈에 이채가 감돌고, 명헌이 작게 ‘뿅’ 한다.

“조건은 내가…….”

태섭의 고개가 아주 살짝 뒤를 향했다. 명헌이 그것을 눈치채곤 우성에게 시선을 보내고, 우성이 태섭의 뒤에 선 카오루와 아라를 보며 말했다.

“자, 자. 본격적인 얘기를 좀 해야할 것 같은데 어머니랑 동생은 잠깐 나가있을까요?”

“태섭이는 내 아이에요. 얘기 하려거든 내가 있는 곳에서 해요.”

“엄마.”

여태 태섭의 뒤에만 있던 카오루가 결연한 눈빛으로 태섭의 앞에 나섰다. 태섭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베일 속으로 명헌이 입술을 동그랗게 해보였다. 카오루의 반응에 잠시 당황하던 우성이 눈을 휘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산왕의 이름을 걸고 아드님께 해가 되는 일은 시키지 않을테니까요.”

“…….”

카오루가 입술을 깨물었다. 태섭을 돌아보며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태섭이 꽉 잡은 손을 내려다보다 카오루를 보며 옅게 웃어보였다.

“괜찮아요. 이제 우리 집 대장은 저잖아요. 엄마도 아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킬 거에요.”

“태섭아…….”

태섭이 다른 손으로 카오루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잠시 시선을 나누던 카오루가 고개를 떨구고, 아라에게 손짓했다. 아라가 태섭을 지나치며 카오루의 손을 잡는다.

“오빠야.”

“괜찮아. 엄마랑 같이 가있어.”

태섭을 돌아보던 아라가 카오루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간다. 따라나간 우성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에게 카오루와 아라에게 다른 공간을 내어줄 것을 명했다. 카오루가 경비를 따라가고, 아라가 순간 우성을 돌아보았다. 우성이 입술을 움직인다.

‘너, 알파구나.’

아라의 눈매가 순간 매서워졌다. 조용히 양 손을 들어보인 우성이 입술을 다시 움직였다.

‘이 곳에서 너희를, 네 오빠를 위협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도 지켜내고 싶다면.’

“아라야. 앞을 보고 가야지.”

“으응.”

모녀의 실루엣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서야 우성이 소리내어 말했다.

“그런데도 지켜내고 싶다면. 강해져야지.”

그 무엇도 잃고 싶지 않다면.

“…그래서, 조건은?”

태섭이 명헌을 보며 물었다. 우성이 들어와 문 대신 달려있는 두꺼운 커튼을 치고, 명헌이 말했다.

“알를 낳아야해 뿅. 코요테가 아닌, 뱀을.”

“너희는 뱀인건가?”

“내륙 타이판이라고 알아?”

“…몰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진 뱀 뿅.”

“입을 가린 건 그럼,”

“맞아. 자칫하다가 알을 낳아줄 귀한 오메가가 독에 죽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얄쌍하게 생겨도 기능은 좋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의 아이를 낳아줬으면 해. 이 넓은 땅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피를 가진 우성 알파가 필요하거든.”

“여기는 오메가가 없어? 굳이 그 멀리 있는 내가 그걸… 해야해?”

“산왕의 땅은 가혹해. 특히 겨울에는 더더욱. 생존 특화 지역인 탓인지 형질도 대부분 알파가 많아. 산왕의 알파들은 다른 지역의 알파들과는 다르게 베타나 비형질 수인과의 결혼에 거부반응이 없어. 오메가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산왕을 이끄는 우두머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은 아니거든.”

“…….”

방 안에 불이 피어오르는 것과는 별개로 몸이 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속부터 달아오르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이 미묘한 감각은… 히트 사이클이 오려는 징조였다. 태섭이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최근 발정기는 어떻게 보냈지? 어떤 종족이랑 보냈어?”

“…한 번도 발정기를 그런 식으로 보낸 적 없어. 억제제를 먹고 있어서.”

태섭의 대답에 명헌과 우성이 서로를 보았다. 이내 동시에 태섭을 본다.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뜨거운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타닥 타닥 하는 소리만이 셋을 에워싸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발정기가 올 때마다 억제제를 썼다는 건가 뿅?”

“당신들도 알다시피… 오메가는 개체 수가 적기 때문에 도심에 지내기에 위험한 점이 많아. 그래서 우리는 도시 외곽에 따로 살면서 가족들이 내 발정기에 맞춰 병원을 바꿔가며 억제제를 받아왔어. 난 때마다 그걸 먹고 발정기를 잠재워왔고.”

“그럼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억제제로도 충분한데 굳이 타인과 발정기를 보낼 필요가 없잖아. 그러면 안 돼?”

“아니이. 그런 건 아닌데에…….”

괜히 민망해진 태섭이 얼굴을 붉히자, 우성이 말꼬리를 늘이며 말을 흐린다.

“원래는 알을 낳을 때까지 결혼생활 하는 걸 조건으로 하려고 했는데, 생긴 것과는 다르게 귀여워서 계획 변경이다 뿅.”

“생긴 것, 뭐라고?”

태섭이 발끈했다.

“사실 노인네들 잔소리 때문에 빨리 해치우려고 했던 건데…….”

“뭐?”

“알을 낳는 것도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었거든. 알파의 씨를 이어야한다며 산왕의 노인네들이 워낙 강경하게 굴어서 말이야. 근데 데려온 게 현필이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데다가 발정기를 알파와 한 번도 보내본 적 없는 순진한 오메가란 말이지.”

“너네가 원하지도 않는데 알을 낳아야 한다고?”

“노인네들 죽기전 소원 뿅. 진부한 말이야. 산왕의 우두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대를 이어야만 한다는. 그래서 오메가를 찾고 있었던 거 뿅. 알만 낳아주면 되는 거였으니까.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거니 최대한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려고 했던 건데, 네가 있던 거지.”

“대체…….”

“정리하자면.”

주먹을 들어보여 태섭의 시선을 주목시킨 명헌을 보았다.

“네게는 생존과 가족의 안전을 위한 조건이 내걸린 임신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임신이었기에 알이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산왕이든 어디든 안전을 보장하는 걸로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 뿅. 상황의 특수성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너와 같은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처음부터 시작해보고 싶어졌다는 뜻 뿅. 노인네들이 죽기 전 소원이라고 염불 외던 알을 받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진짜 결혼이라는 게 하고 싶어졌다고. 너랑.”

명헌의 말을 듣던 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섭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뭔가 목숨을 담보로, 가족들의 안전을 조건으로 한 계약 임신… 같은 내용이었는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아니 그 전에. 저 덩치로 왜 쑥쓰러워 하는데? 산왕의 우두머리들이라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을 가진 뱀이라며? 고백을 앞둔 풋풋한 학생 같은 모습 보여도 돼? 이 분위기 뭔데? 얼굴은 왜 붉혀? 이 와중에 나는 왜 얼굴에 열이 오르냐고. 아까 미묘하게 달아오르던 게 덜 빠졌나?

“너만 괜찮으면…….”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우성이 말을 꺼냈다.

“각인부터 하지 않을래?”

“계약이랑 상관없이 알도 낳아줘 뿅. 노인네들 부탁이랑 상관없이 네가 낳는 알들이 보고싶어졌다 뿅.”

사실 명헌이나 우성이 흥미를 가졌기에 망정이지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면 우세는 무조건 산왕에 있었다. 태섭은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산왕에 의탁해야 했고, 산왕의 우두머리가 명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발 붙이고 살기도 어려웠다. 북산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에 알파가 득시글한 이 곳에서 오메가인 태섭이 각인한 알파도 없이 무슨 수로 가족들을 지켜낸 단 말인가. 가족들을 지키긴 커녕 자신의 신변 걱정하는 게 더 급할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저 노인네들의 징징거림을 이기지 못 해 알을 낳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 알을 낳기 위한 존재가 필요해 오메가인 태섭을 데려온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뀌었다. 알을 낳기 위한 수단이었던 태섭에게 명헌과 우성이 흥미를 가지면서, 관계의 우위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이다. 물론 태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어떻게 할래?”

우성의 물음에 고민하던 태섭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 가족들의 안위야. 그 조건만 지켜준다면 나는 상관없어. 북산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산왕에 적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약속할게.”

“알은… 그럼 하나만 낳으면 되는 거야? 당신들은 둘이니까… 알 두 개는 낳아야하는 거겠지……?”

태섭이 저도 모르게 배를 쓰다듬었다. 두 뱀 수인의 시선이 태섭의 아랫배를 향했다. 그러다 허리에 감긴 붕대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그럼 결혼을, 각인을 할 거란 말이지 뿅.”

“그래야겠지? 약속은 약속이니까.”

“그건 내일 이후에 해도 되니까 오늘은,”

“??”

명헌이 태섭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빗질 다 못 한 게 아쉬워서 뿅.”

“앗! 나도!”

태섭이 명헌과 우성, 그리고 제게 내밀어진 명헌의 손을 번갈아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잠시 고민하는 듯 싶다 코요테의 모습으로 변한 뒤 천천히 둘에게 다가간다. 우성이 명헌의 옆에 앉아 눈을 반짝이고, 크게 티나지 않지만 명헌 역시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 수인 앞에 네 발로 선 태섭이 머리는 명헌쪽으로, 꼬리는 우성쪽으로 엎드렸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태섭의 머리 위와 꼬리털을 빗어내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관계가 어떻게 튈 지는 모르겠다. 복잡했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이 머나먼 곳까지 오게 된 것도 기가 막힌데, 오메가라는 형질과 가족들의 안전을 저울질하여 산왕의 우두머리들과 조건부 계약 임신을 하게 되는가 싶더니 도대체 어디에서 마음이 바뀌었는지 연애…까지 하게 생긴 이 상황이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는 이런 걸까. 알파라곤 부친과 형만을 접해본 태섭이기에 알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가족들의 목숨을 볼모로 태섭에게 위협이나 강제적인 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혹독한 환경의 우두머리들이고, 마주친 파충류 수인들의 덩치와 외형만 봐도 아주 거칠고 난폭할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엉뚱하고… 이상하고.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제제로만 발정기를 해소해온 터라 이후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게 불안하긴 했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이들이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해가 되는 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니까.

“…….”

부드럽게 이어지는 빗질에 태섭이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팔랑거리던 꼬리가 서서히 늘어진다. 몸에 힘이 빠지고, 명헌과 우성의 다리 위로 몸을 완전히 맡기고 잠이 든다. 그에 한참 털을 빗어내리던 명헌과 우성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의 커다란 손이 태섭의 복부를 덮는다.

“다 받아낼 수 있을까요? 오메가니까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글쎄. 해보면 알겠지 뿅. 다 안 들어간다고 해서 안 할 거 아니잖아용.”

“당연하죠! 현필이가 정말 제대로 본 것 같아요 현필이 구해주는 것부터 가족을 우선시하고 지키려는 모습도 그렇고… 전 다 좋아요. 제법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우리보다 많이 작아서 좀 걱정되긴 한데 오메가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아아, 진짜 궁금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잡아먹고 싶은데…….”

명헌과 우성은 같은 내륙 타이판 종으로 이복형제였다. 역대 산왕의 우두머리는 단 한 개체였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수컷끼리, 알파끼리 우위를 점한답시고 싸우지도 않았고 사이도 좋았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피지컬은 명헌이 더 좋았고 독성은 우성이 더 강했다. 산왕에서만 나오는 희귀 광물을 노리는 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최소한의 손해로 최대한의 피해와 이득을 이끌어내는 최고의 조합이었기에 아무도 이례적인 두 우두머리의 존재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다만 알파가 주로 태어나는 산왕에서 드물게 순혈로 태어나 다른 가문 뱀 수인들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강함을 이어나갈 후손이 무조건 필요했다. 명헌과 우성을 비롯해 뱀수인의 피는 모두 뱀으로 이루어졌기에 다른 파충류도 탐탁치 않을 판에 포유류인 코요테를 신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에 나이 지긋한 뱀일족이 술렁거리긴 했으나 산왕은 이전부터 씨가 마르는 수준으로 오메가가 발현을 하지않아 어쩔 수 없이 다른 종의 오메가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당사자인 명헌과 우성의 의사와는 상관 없었고 그들 역시 태섭을 만나기 전까지 대를 잇던지 말던지 아무 관심이 없었고.

그저 누구든 상관없이 제 씨를 품고 세상에 나오게만 한다면.

그걸로 일족의 잔소리를 틀어막을 수 있다면 포유류든 양서류든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알 반가. 어쨌든 원하는 대로 알만 안겨주면 되는 거잖아. 태섭을 만나고 이 목적이 싹 지워지고 알콩달콩 새끼 낳고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명헌도 우성도 몰랐지만.

“노인네들 잔소리 때문에 알만 얘기하긴 했지만… 코요테가 나와도 귀여울 것 같아요.”

“코요테만 나오면 노인네들 지랄해서 피곤 뿅.”

“그럼 알 낳을 때까지 계속 임신 시키면 되는 거잖아요? 태섭이는 튼튼해보이니까.”

태섭의 배를 쓰다듬는 두 손길이 끈적했다. 명헌의 다리와 우성의 다리가 인간의 다리에서 뱀의 하체로 변했다. 반인반수로 변했음에도 잠든 코요테보다 크기가 배는 컸다. 뱀의 꼬리가 코요테의 몸을 감싼다. 코요테에게서 앓는 소리가 나자 몸을 감싼 힘이 약해졌다. 상체를 숙인 두 뱀 수인이 코요테의 뺨이며 이마에 베일로 가려진 입술을 부빈다.

“알 뺏기는 것도 좀 싫긴 한데.”

“노인네들 다 죽을 때까지만 코요테 낳았으면 좋겠다.”

“뿅.”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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