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 병이 뭔데 씹덕아

내가 아냐 멍청아.

나유 by 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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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예고도 없이 벌어진 사건이었다.

돌연 혼테일이 허리를 숙이고 기침을 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기침은 점차 세기를 키워나갔다. 걸음마저 멈추고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댄 채 쿨럭이는 혼테일에게 세 쌍의 시선이 쏠렸다. 쿨럭, 컥…. 급기야 기침 사이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섞였다. 급작스러운 마룡의 이상에 아무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의아함과 의문 속에서 혼테일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그리고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나풀거리듯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체는 연하늘빛을 띠고 있다.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물체가 혼테일의 발치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침묵 속에서 혼테일이 입가에서 손을 떼자 그와 동일한 것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토해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풀숲에 어지러이 흩어진 것은 인간이 토해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혼테일의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백지장처럼 옅어졌다. 자신이 토해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였다. 그 비이상적인 상황 속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주카였다.

“…꽃잎?”

“그거, 하나하키 병이래.”

“하나하키?”

“혼테일 있잖아.”

급작스러운 돌발 상황으로 일행은 잠시 나아가기를 멈추었다. 혼테일은 당황스러운지 비틀거리다가 자리를 비웠고, 남은 셋은 바위 위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라케니스는 신이 난 듯 눈을 반짝였다.

“예전에 고서에서 본 적 있어. 꽃을 토하는 병.”

“그게 뭔데 씹덕아…. 하여간 잡스러운 거에는 도가 텄다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아무튼, 사랑에 빠지면 꽃을 토한다는 거야.”

“사랑에 빠지면?”

“그래. 나도 가상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실존하는 병이었다니.”

라케니스는 좋은 가십거리를 발견한 표정이었다. 아니면 좋은 물어뜯을 거리를 발견한 표정이거나. 주카는 사랑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턱을 괴었다. 주카가 흥미를 보인다는 걸 알아챈 라케니스는 더욱 신이 난 듯 말을 속사포로 쏟아냈다.

“처음에는 꽃잎들을 토하다가 그 다음에는 꽃을, 더 심해지면 꽃 넝쿨까지 토해낸대. 그정도까지 이르면 꽃에 질식해서 죽는다더라.”

“뭐? 죽는다고? 치료법은 있어?”

“아, 잠깐만. 까먹었다.”

라케니스는 손을 휘젓더니 허공에 책을 띄웠다. 기다려 봐봐. 여기 어딘가에 적혀 있을 건데…. 검지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볍게 쓸자 페이지가 휙휙 넘어갔다. 델리키도 약간 흥미가 있는지 흘긋이며 책을 바라보자 라케니스는 손놀림을 더욱 빨리했다.

“아! 찾았다.”

“어디? 같이 보자.”

라케니스가 탄성과 함께 한 페이지를 펼쳐들었다. 주카는 호기심에 라케니스의 옆에 자리잡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델리키도 아닌 척 곁눈질로 책의 내용을 훑었다.

하나하키 병. 열렬히 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꽃을 토하게 되는 병으로, 그 치유법은 짝사랑을 끝내는 것이다. 사랑을 포기하거나, 좋아하는 상대와 이어지거나. 혹은 상대가 마음을 깨달아 외사랑이 되어도 치유가 가능하다.

“잔인한 병이네…. 사랑하는 사람한테도, 사랑받는 사람한테도. 저 마룡한테 고백받을 상대도 불쌍하다.”

“와,”

“음.”

“저기, 너희들. 왜 나를 쳐다보니?”

주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케니스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너 정말 몰라? 뭐를? 어이가 없다는 듯 라케니스는 실소를 흘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손 끝에는 델리키의 로브를 쥔 채였다. 야, 야. 빽해. 빽. 우리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이상한 말만 하며 라케니스는 델리키를 질질 끌고 사라졌다.

혼테일은 계속 꽃을 토해내면서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점차 심해져가는 기침에 주카조차도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지만 그는 하늘빛 꽃이파리들을 떨구면서 아무 말 없이 발을 내딛기를 반복했다. 나는 저거 일주일 안에 낫는다에 건다. 그 이야기 계속 할거야? …나는 안 낫는다에 한표. 라케니스와 델리키는 뒤에서 그리 수근거렸다. 주카는 그 이상한 내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대신 발자취처럼 땅바닥에 길게 늘어지는 꽃이파리들을 쳐다보았다.

저 마룡과 사랑이라니. 영 동떨어진 단어 같았다. 저자도 누군가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고 몸을 맞대고 싶어할까. 찔러도 피 한 방울, 아니 그건 아니지만, 열렬한 구애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주카는 고개를 들어 혼테일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저 마룡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갑자기 얼마 전에 꾼 꿈이 뇌리를 스쳤다. 하얀 제복을 입은 혼테일과 하늘빛 드레스를 입은 자신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주카는 고개를 털어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려 애썼다. 하지만 꿈 속에서 혼테일은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 나른한 눈을 하고 입꼬리로 느슨한 호선을 그리며….

그 순간 혼테일도 고개를 돌려 주카를 바라보았다. 놀라 떨어질 뻔했지만 주카는 단단히 힘을 주어 당나귀를 붙들어 맸다. 낙마는 두 번이면 족했다.

“오늘은 여기서 머무른다.”

잦은 기침 때문인지 잔뜩 쉰 목소리가 휴식을 고했다. 주카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당나귀에서 내렸다. 바위 위에 앉아 기지개를 펴는데 혼테일은 힘없이 쿨럭이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안 그래도 지쳐 보이는데. 아니, 내가 저 웬수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 주카는 혼테일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라케니스도 급히 고개를 돌려 주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그리 묻자 라케니스는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면서도 대답을 했다.

“야, 그래도 조금만 있다가 혼테일을 찾아가 봐봐. 나는 혼테일이 일주일 안에 낫는 쪽에 걸었단 말야.”

“그러니까 내가 그 마룡을 찾아가는 거하고 혼테일이 낫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하… 됐다.”

괜히 그쪽에 걸었나. 라케니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얌전히 있기나 해. 네가 도망가면 내가 혼테일한테 목이 날아간단 말이야. 손짓으로 목을 쓱 긋는 시늉을 하며 라케니스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던가 말던가. 애초에 너만 없었어도 그때 도망칠 수 있었어.”

“나만 죽냐? 델리키도 같이 목이 달아날껄?”

“나는 왜 끌어들여?”

저 둘은 항상 싸우네. 저러다가 정들지. 주카는 길게 하품을 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나뭇잎을 깐 땅바닥에 몸을 뉘이자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왜 혼테일 걱정을 해. 저 웬수를…. 내일 아침까지 한숨 푹 잘 요량이었다.

그러나 주카는 그리 오래 자지는 못했다. 또 꿈을 꿨다. 하얀 제복을 입은 마룡이 나오는. 그러나 분위기는 전과 딴판이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부여잡고 쓰러진 혼테일은 분노와 원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했다. 움켜잡은 허리께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하얀 제복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죽음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는 말이 나오지 않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혼테일의 동공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주카는 잠에서 깼다. 주카는 괜히 손으로 옆구리를 매만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자 델리키와 라케니스가 저 멀리서 자고 있는게 보였다. 라케니스 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잘 있는지 보고만 오자. 그런 생각을 하며 주카는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움직일 때마다 나는 철컥이는 소리가 방해되었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기침 소리가 들렸으니까.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곳이었다. 혼테일은 주저앉아 허리를 둥글게 만 채 고통스럽게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첫날 꽃잎만을 뱉어낸 것과 다르게 토사물은 이제 제대로 된 꽃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한참 이어지던 기침이 멈추고 나서야 혼테일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카를 응시했다. 표정으로도 전해지는 통증에 주카는 괜스레 목을 매만지며 조금 떨어진 바위에 앉았다.

“…왜 나왔지?”

“기침 소리 때문에 잠이 안 왔거든요.”

“자리를 옮…”

다시 쿨럭. 컥, 커헉, 컥…! 꽃 몇 송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섯 개의 푸른 꽃이파리가 서로 붙어 꽃을 이루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덕에 주카는 그 꽃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물망초라고 했지. 혼테일이 토해낸 꽃이 발치에 소복히 쌓여 있었다. 심각한 상황과 어우러지지 않는 꽃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혼테일은 헉헉거리며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등 뒤에 달린 잿빛 날개가 무겁게 쳐져 있었다.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 이만 자.”

“그, 저기.”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방금 전 꿈에서 본 혼테일은…. 괜한 참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만히 놔두면 죽을수도 있대요.”

“…”

“치료법은 알고 있나요?”

“그래.”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빨리 해결…해요. 더 심해지기 전에요.”

멍한 보랏빛 시선이 주카를 훑었다. 역시 오지랖이었나. 주카는 작게 목을 움츠렸다. 혼테일은 잇새로 한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신경쓸, 필요, 없어.”

혼테일은 말을 짓씹듯 내뱉었다. 그러니까, 너는… 또다시 쿨럭임. 꽃을 토해내느라 혼테일은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종내 혼테일은 손톱을 세워 신경질적으로 목을 긁어댔다. 주카는 진정하라 외치며 혼테일의 손을 붙들었다. 다행히 혼테일은 순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톱이 지나간 자리에서 붉은 피가 송글송글 맺혔다. 꽃내음과 비릿한 혈내음이 섞였다. 마른 기침과 함께 입밖으로 꽃을 뱉어낸 혼테일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그가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아 주카는 손아귀가 저릿하도록 손을 쥐었다. 목덜미에 맺힌 피는 피웅덩이 위에서 차갑게 식어갔던 꿈 속의 제복을 입은 남성을 연상시켰다. 그에게 결코 호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죽어 버리는 건 싫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굴까.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사랑에 앓는 걸까. 주카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잔기침을 하는 마룡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연애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라 충고할 입장은 되지 못하지만, 상대방에게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하세요. 이러다가 죽을 지도 모르잖아요. 외사랑이 되어도 낫는다니까… 그러니까….”

혼테일은 대답이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혼테일에 주카는 살짝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혼테일은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깨문 채 우뚝 서있었다. 어딘가 원망서린 시선이 주카를 꿰뚫었다. 왜?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한계에 다다른 듯 주카보다 훨씬 큰 몸이 천천히 지면을 향해 기울어졌다. 놀라 지탱하려 쓰러지는 혼테일을 잡았지만 마룡의 체중을 버틸 있을 만큼 주카의 완력은 강하지 못했다. 결국 주카는 혼테일과 사이좋게 땅 바닥으로 놔뒹굴었다. 다행히 바위가 아닌 부드러운 잔디와 물망초가 잔뜩 쌓인 쪽으로 넘어져 크게 아프진 않았다.

혼테일?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며 혼테일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이 바짝 겹쳐지면서 눌리는 느낌에 주카는 윽, 하고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혼테일은 아예 기절하지는 않은 듯 귓가에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울렸다. 놀라서 그런지 심장이 엉망으로 뛰었다. 몸이 틈도 없이 겹쳐진 민망한 자세에 주카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금 혼테일을 밀어내려 애썼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봐요, 좀, 이… 마룡아! 그러나 물에 젖은 것처럼 늘어진 몸은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주카는 혼테일을 힘으로 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몸에 힘을 뺐다.

“주카…”

너무나 작아 집중하지 않으면 바람결에 흩어질 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에 주카는 고개를 돌려 혼테일을 마주 보았다. 남자치고는 긴 은하늘빛 머리카락이 주카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생리적인 고통 때문인지 혼테일의 눈밑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보랏빛 눈동자 안에 주카가 오롯히 담겨 있었다. 풀어진 눈에는 미약한 열기가 실려 있었다. 혼테일은 잠시 주카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주카의 목덜미 쪽에 얼굴을 파묻었다. 가느다란 숨결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방금 꽃을 토내핸 탓인지 그에게서는 짙은 물망초 향이 났다. 주카…. 혼테일은 곧 끊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한 어조로 다시 주카의 이름을 불렀다. 어딘가 애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설마.

주카는 눈을 깜박였다. 설마. 에이, 말도 안돼. 그야 그는…. 쿵쿵 뛰는게 놀란 제 심장인지 아니면 그의 심장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느새 혼테일은 기침을 하지 않았다. 흔한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둘 사이에는 오직 적막만 감돌았다. 혼테일도 기침이 멈춘 것을 깨달은 듯 더듬더듬 손으로 목을 매만졌다.

“어, 그…”

“…”

“음…”

“…”

“우선 일어나 줄래요? 무거워요.”

정신이 든 듯 혼테일이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주카도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주춤주춤 빠져나왔다. 물망초 향이 짙었다. 보답받지 못할 사랑이 깊었다. 주카는 혼테일을 쳐다보지 않았다. 혼테일도 주카를 쳐다보지 않았다. 시선 끝에 걸린 것은 방금 넘어질 때 바닥에 깔렸던 물망초였다. 꽃잎이 짓이겨져 있었다.

“…네가 아니야.”

“네?”

“네가… 아니라, 나는….”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지면에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서있음에도 혼테일은 비틀거렸다. 지금 혼란스러운게 누군데. 주카는 눈을 흘기면서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되돌아온 것은 피막이 펴지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날개를 펼친 혼테일이 날아올랐다. 강한 바람에 물망초 꽃들이 흩어졌다.

…뭐야. 주카는 돌돌 말린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내가 아니라니. 그런 것치고는 혼테일의 병은 완치된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마음에 걸렸으나 주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그 마룡이 좋아하는 사람이…. 얼굴이 홧홧하게 물들어 주카는 머리카락으로 뺨을 감쌌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보면 잔뜩 쌓인 물망초가 무형의 사랑을 유형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발목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에 물망초 하나가 엮여져 있었다. 주카는 허리를 숙여 꽃을 떼어냈다. 바닥에 버릴까 하다가 주카는 마음을 바꾸고 모양이 온전한 꽃을 손에 쥐었다. 내가 아니라니, 그러면 나도 모른 척 해야지. 애초에 나라고 했어도….

이게 다 뭐람. 주카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이게 다 마룡 때문이야. 그렇게 생각을 돌려 버리는게 편했다. 아직 해가 뜨기까지는 멀었다. 주카는 남은 시간동안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 터벅터벅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음날 혼테일은 아무렇게 않게 주카를 들어 당나귀 위에 앉혔다. 출발한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어. 더 이상 기침과 함께 꽃이 울컥 쏟아져 나오는 일은 없었다. 주카의 품에 있는 물망초 한 송이만이 이제는 사라진 그의 병증을 증명했다. 주카는 뒤에서 수근대는 라케니스와 델리키를 애써 보지 못한 척 앞만 쳐다보았다. 것 봐, 내 말이 맞지? 델리키가 눈을 질끈 감고 라케니스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넸다. 라케니스는 희희낙락 동전을 받아들고서는 휘파람을 불었다. 며칠 뒤 라케니스가 한참 기침을 하더니 푸른 꽃잎을 왈칵 토해낸 일은 그와 별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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