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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 메세지 1
그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일어나고야 말았죠.
마이크 트램프, 2021년 5월 21일 인터뷰 중에서
비토는 딱히 본인을 열성적인 교인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갔던 주일 예배는 언제고 지루하기만 했었고, 무엇보다 성가대에는 기타리스트라는 포지션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차츰 확실해진 진로의 방향성에 힘입어 앞으로도 그쪽과 거리가 가까워질 일은 요원해 보였다. 종종 함께 뒹굴던 여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던 감탄사 따위를 제외하자면ㅡ 이쪽에서 먼저 신을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종교적 가르침에서 기인한 삶의 지침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전례 없는 대홍수로 세상천지에 물난리가 나기 전 유일하게 귀띔을 받은 노아가 그러하였듯ㅡ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계시가 나타난다는 나름의 경험에 따른 지론이 그것이었다. 제법 오래 합을 맞췄던 밴드 드리머(Dreamer)가 해산한 직후 머지않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덴마크 출신 프론트맨이 도로 뉴욕에 돌아왔을 때, 비토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집에 가면 뭐부터 할 거야?”
“잘 건데.”
무엇보다도 오사카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이크와 나누었던 대화는, 그런 종류의 예감을 안겨줄 만한 깊이 있는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설마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할 생각이야?”
“누가 이런 걸 알고 싶어한다고.”
“그런 걸 궁금해하게 만드는 게 요령이지. 예를 들면 밴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해외에서 보내게 된 소감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넌 덴마크인이잖아.”
퉁명스러운 대답이었음에도 어쩐지 그는 한동안 끌끌 웃었다. 공항에 도착한 뒤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휴식기에 관한 합의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반년 가까이 빽빽하게 계속된 강행군이었음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상을 미룰 만한 여유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7개월. 지난해 마지막 일정과 이번의 새 앨범이 발매되기까지의 간격은 고작해야 그뿐이었다. No rest for the wickedㅡ 오지 오스본의 투어에 동참함으로써 여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더없이 좋은 기회였지만, 이를 묘비명으로까지 새기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비토의 주된 감상이었다.
“일단 집에 좀 다녀올까 해.”
캐리어를 트렁크에 옮겨 싣던 마이크의 말에 비토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심한 시선을 가리는 선글라스 위로 저 멀리 꼬리를 그으며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너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마이크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로부터 2주 정도가 지나서였다. 최소한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던 미심쩍은 으름장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적은 없었지만, 스튜디오에 널린 게 기타인데도 부득불 제 것을 챙겨서 나오라는 답지 않은 부탁까지 떠넘긴 바람에 그는 잔뜩 심사가 꼬인 상태였다. 현수교의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차량을 부러운 눈으로 보면서, 이유를 불문하고 이번에는 기름값만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심지를 단단히 굳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윽고 다리의 반대편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가까워지자 비토는 비스듬하게 열린 조수석 창문 너머로 다 피운 담배를 튕겨 던졌다.
그러나 마이크가 그를 불러낸 곳은 녹음실이 아니었다. 어쩌면 비토는 그것이 두 번째 계시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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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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