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유료

Limited Partner

2024년 센루 게스트북 'One in a Million' 수록작 (에스퍼/가이드)

2024년 센루 앤솔로지 'One in a Million'에 참여한 글을 백업해둡니다.
판매되었던 앤솔이라 중간에 유료선이 있습니다. 앤솔로지를 구매하신 분들은 중복 구매가 되오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운동 선수의 아침’이라고 하면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부터 하고 개운한 아침 샤워를 끝낸 후에 식사를 한다-같은 이미지가 있는 모양이지만, 10대 시절부터 운동 선수로 살아온 윤대협의 평생 일찍 일어난 날이라고는 손에 꼽았다. 학생일 때도 수업 시간에 겨우 맞춰 일어나는 것이 고작이었고, 프로 선수가 되고서는 차라리 늦게 일어나고 늦게까지 훈련을 하는 쪽을 택했으니 은퇴까지 한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대협이 소속된 ‘특수능력병 지원부대’는 따로 훈련도 필요 없고 영내에 머물러 있으면 필수 일과 외에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보장되는지라, 그의 아침은 오전 10시는 지나서야 시작이었다.

‘특수능력병’인 서태웅은 상황이 좀 달랐다, 평소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기초 훈련부터 하고 아침 식사, 또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 다음에 컨디션 체크를 한 후에나 자유 시간이다. 태웅은 그 시간에는 내내 잠을 잤다, 예전에도 잠이 많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틈만 나면 곯아떨어지는 걸 보면 훈련도 임무도 어지간히 고된 모양이었다. 특수능력병-속칭 에스퍼-는 현장에서 호출이 들어오면 훈련을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뛰쳐나가야 하는데, 태웅은 능력의 특성 상 구조대 역할로 하루가 멀다하고 호출되는 터이니 피곤할만도 했다. 오늘만 해도 태웅은 점심 무렵에 호출을 받아 급하게 뛰어나갔다, 그나마 식사는 마친 후라 다행이었다.

‘특능본’에서 대협에게 연락이 온 것은 슬슬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한 올해 초여름 쯤이었다. 자신을 특수능력병 관리 본부의 누구누구라고 밝힌 낯선 목소리로부터, 서태웅의 이름과 함께 그가 자신을 파트너로 요청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대협은 태웅이 그간 보인 의문스런 행보를 납득했다. 시즌이 끝나고 한 달도 더 지난 시점에 은퇴 경기도 치르지 않은 채로 갑자기 은퇴 발표 기자회견만 하더니 완전히 잠적해버려서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시즌이 끝난 후에 에스퍼로 발현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았을 무렵 대협은 다가오는 겨울을 마지막으로 생각하면서 시즌을 준비하던 중이었고, 선수로 보내는 마지막 해이니만큼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서 3년쯤 사귄 애인이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도 내년쯤 생각해보자며 미뤄둔 참이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고려 중이라고 구단에 말해두기는 했지만 1년은 더 해보기로 이미 얘기가 마무리 된 후였다, 특능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저도 태웅과 마찬가지로 뜬금없는 시기에 은퇴를 선언해야 할 테니 구단과 약간은 마찰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서태웅의 파트너-정확히는 ‘에스퍼’ 서태웅의 ‘가이드’가 되면, 가이드가 수행하는 직무 행위의 특성 상 결혼은 아마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대협이 생각할 시간을 며칠 달라고 답한 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서는 아니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후에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을지 예상이 된 터라 신변 정리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그날 밤 서태웅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웅이 미국으로 떠나고 나서는 매번 엇갈리기만 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탓에 14년하고도 3개월만에 듣는 음성이었다. 윤대협, …1년만 도와줘. 태웅은 그렇게 말했다, 아마 대협이 내켜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기한을 정해 직접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한 모양이었다. 태웅아, 나 국대로 메달 따서 군 면제 받았는데. 대협이 웃으며 말했지만 전화 너머의 태웅은 말이 없었다. 원래부터 농담을 잘 하는 녀석이 아니긴 했지…, 생각하며 대협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 날부터 두 주간은 악몽 같은 소란이었다, 구단과는 열흘 만에 기적적으로 협상을 마무리 했지만 애인과는 몇 차례 다툰 끝에 결국 헤어졌다. 사실 ‘결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는데,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한 쪽은 윤대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꼭 당신이 가이드를 해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거절하면 안 되냐고, 당신 커리어와 앞으로의 일도 생각하라고 3년간 만난 애인이 울고 화를 내고 애원도 했지만 윤대협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꼭 당신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다, 가이드는 이론적으로는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일반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갑자기 에스퍼가 되는지는, 돌연변이의 일종이라는 것 외에는 아직 규명된 바가 없었다. 어떤 능력을 부여받게 되는지,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갖게 되는지도 랜덤으로 보일 정도로 전혀 패턴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가이드의 경우는 다르다, 에스퍼가 아닌 일반인에게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약제를 투여하면 누구든 가이딩 기능을 일시적으로 ‘활성화’해서 가이드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이드의 능력은 비등비등했다. 꾸준히 약제를 투여하면 같은 양의 약제로 가이딩 능력이 활성화되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효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가능한 가이딩의 정도나 속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가이딩의 효율을 좌우하는 것은 의외로, 에스퍼와 가이드 간의 감정이었다. 가이딩을 주고 받는 두 사람이 서로 친밀하고 의지하는 관계일 때,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 간에 깊은 신뢰관계인 경우에는 가이딩의 효율면에서 확연한 우위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윤대협은 서태웅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다. 꼭 자신이 아니어도 됐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웅이 14년만에 제 이름을 지목해서 자신을 찾았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을 믿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그리고 5개월, 타는 듯한 여름을 지나 이제 낙엽 지고 바람이 차가워진 계절이다.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시즌은 저 없이 이미 시작되었을 테고, 윤대협은 새로운 일과에 익숙해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가벼운 근육 트레이닝만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오늘 분량의 포션(정식 명칭이 있지만 다들 그냥 이렇게 불렀다, 가이드로 만들어 주는 약이라서 ‘힐러 포션’이라고 한다기에 그렇구나- 했다.) 투약을 받은 대협은 슬슬 걸어서 자신의 전용 단말기가 알려준 태웅의 복귀 위치로 향했다.

에스퍼가 임무를 맡아 현장에 나가면 담당 가이드의 단말기로 현장 위치와 예상 소요 시간이, 임무가 끝난 후에는 가이드가 에스퍼를 위해서 대기할 수 있도록 복귀 예상 시간과 지점이 전송된다. 그러나 대협은 그 시간에 맞춰 복귀 지점에서 태웅을 기다린 적이 별로 없었다, 태웅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킨십하는 것을 꺼리는 탓이었다. 어정쩡하게 손가락만 얽은 채 같이 터덜터덜 돌아오는 것보다야, 태웅이 관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안아주는 쪽이 낫다는 게 대협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오늘 전송 받은 복귀 시점은 바로 1분 전, 복귀 지점은 둘이 같이 쓰는 관사로 돌아가는 길목이었다. 이런 경우라면 복귀 지점에서 만나지 않는 한 태웅이 대협보다 관사에 빨리 도착할 터였다, 태웅의 능력이 ‘스피드’라는 걸 생각하면 100%다.

“여우야, 너 또 잔다고 굶지 말고 저녁 먹으러 나와라.”

“…메뉴 뭔데.”

“어…뭐였지, 호열아?”

건물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강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서 오늘 출동했던 인원이 복귀한 것을 알았다, 강백호와 태웅은 합이 좋아서 자주 페어로 출동하곤 했다. 강백호는 태웅보다 1여년 먼저 에스퍼가 됐다, 계속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막 국내 리그로 돌아왔던 시점에 갑자기 발현하는 바람에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게 재작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이 미국에서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연고지가 가까워서 자주 만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으니, 물어본 적은 없지만 태웅이 근무지를 이 지역으로 희망한 것은 아마 강백호가 여기 있어서였을 것이다.

강백호의 가이드는 그와 중학교 때부터 동창이었던 친구라는데, 대협도 본 기억이 있는 듯한 얼굴이다 싶더니만 북산고 출신이고 시합 때 매번 응원도 왔었다고 했다. 그 덕인지 서태웅과도 그 때부터 제법 가까웠던 모양으로, 다른 가이드들과 달리 그래도 아는 사이라 어느 정도 효율이 나왔던 덕분에 윤대협이 오기 전에 그가 태웅에게 두어 번 가이딩을 해 준 적이 있다고 들었다. 대협은 그 얘기를 해줬을 때 강백호의 얼굴을, 제 파트너가 자랑스러운지 우쭐해하면서도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묘하게 조바심을 내던 그의 표정을 떠올린다. 강백호와 그의 가이드가 예전에는 마냥 친구였을지라도 지금은 그냥 친구이기만 한 것은 아닌 듯했다, 아마 제법 밀접도가 높은 방식으로 가이딩을 하고 있을 테지.

대협은 일단 멀리 선 채로 태웅의 뒷모습을 눈으로 쓱 훑어 다친 곳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코트에서 물러나는 법이 없던 성미가 현장에서도 그대로인지, 제 속도만 믿고 돌진하는 탓에 태웅이 자잘한 상처를 달고 오는 일이 종종 있어서다. 제가 다쳐오면 대협이 싫어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조심하는 것 같긴 한데, 지난 번에는 다치고서도 대협에게 숨기려고 응급처치를 먼저 받고 집에 돌아왔다가 들킨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어디서 긁혔는지 태웅의 셔츠 목덜미에 점점이 검붉은 얼룩이 진 것을 확인하고, 대협은 일부러 발소리를 죽이고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강백호의 가이드 양호열이 가까이 오는 대협을 제일 먼저 눈치채고 눈인사를 건네기에 고개를 까딱여 마주 인사하고, 대협은 태웅의 어깨에 툭 팔을 걸쳐 제 에스퍼를 끌어당겼다. 순간 파드득 놀라서 밀어내려던 태웅은 제 옆에 선 게 대협인 걸 알고서 이내 작게 숨을 내쉬며 힘을 뺀다, 제게 가볍게 기대오는 태웅의 무게가 흐뭇했다.

“다쳤어?”

“…어, 아니, 아냐. …내 피 아니야.”

“으음….”

대협은 목깃을 당겨 태웅의 목덜미에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했고, 태웅은 대협이 하는 대로 제 셔츠 안을 들여다 보도록 목을 쭉 빼고 고개를 숙여준다. 다른 데도 안 다쳤어? 대협이 물어보자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했어, 하는 작은 목소리에 대협은 잘 했네, 대답하고 태웅의 머리를 토닥여 준다. 그걸 보고 있는 강백호가 질린 얼굴을 하는 게 우스웠고, 그런 강백호를 그의 가이드가 꽤나 귀여워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집에 가자, 말하며 손목을 잡고 발을 옮기자 태웅은 대협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끌려온다. 등 너머에서 이따 저녁에 식당에서 보자고 강백호가 외치는 것이 들려서, 대협은 돌아보지도 않고 슬렁슬렁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걸음을 빨리 해 관사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닫자마자 몸을 돌려서 태웅을 끌어안았다, 저를 마주 안아 오는 태웅의 체온이 따끈따끈했다. 적당한 온도와 깊이가 있는 물 위에 유유히 떠 있는 듯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 대협은 가이딩이 제게서 태웅으로 흘러들어가는 찰랑찰랑한 느낌을 꽤 좋아했다. 가이딩을 받는 쪽은 어떤 느낌인지 대협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제가 그런 것처럼 편안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든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어땠어? 많이 구했어?”

“…아홉 명이랑, 개 한 마리.”

“굉장하네.”

“강백호가…불길 누르고 있는 사이에, 내가 들어가서…한 사람씩 데리고 나왔어.”

강백호는 생명 반응을 감지하고 불을 다루는 능력이 있으며, 서태웅은 수백 kg의 무게를 들 수 있고 음속에 가까운 스피드로 달릴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화재나 사고 현장에 종종 페어로 투입되었다, 강백호가 먼저 고립된 인원이 있는 위치를 찾아서 알려준 후에 건물 밖에서 화기를 제압하고 있는 동안 서태웅이 구조해오는 식이었다. 이 두 사람이 현장에 도착하면 적어도 그 이후로는 사상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덕분에 둘 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현장에 불려 나간다. 원래가 유명한 농구 선수였던 데다 둘 다 비주얼도 좋고, 전투 요원이 아닌 구조 요원이라는 것도 어필하기 좋은 포인트라 현재 두 사람은 특능 부대의 홍보 모델이나 다름 없었다.

“피곤할 텐데 일단 씻자. 씻고 나서 소파에서 자, 옆에 있을게.”

“……응.”

“씻다가 졸지 말고.”

“웅….”

평소라면 그냥 혼자 방에 들어가 자겠다고 했을 텐데 순순히 소파에서 자겠다는 걸 보면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태웅은 적극적인 가이딩을-그러니까 스킨십이 늘어나는 것을 꺼려했다. 대협에게 가이드가 되어 달라고 직접 전화해서 부탁까지 해놓고 이제 와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대협은 일단 태웅의 의사를 존중해 천천히 스킨십의 정도를 늘려가고 있었다. 손을 잡는 것에서 시작해 이제 포옹까지는 자연스러워졌고, 얼마 전부터는 대협이 제 머리를 말려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됐으니 머지 않아 한 침대에 나란히 눕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아마 올해 안에는 무리겠지만.

대협의 말대로 씻고 나와서 대협이 하라는 대로 소파에 기대어 앉은 태웅은, 대협이 드라이어를 들고 제 머리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는 동안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대협이 다 됐다고 머리를 토닥여 주자 비척비척 소파로 기어 올라와 잠이 들었다. 태웅이 아직 무릎 베개를 하는 건 곤란해하는 통에 ‘옆에 있을 테니 소파에서 자라’는 건 정말 태웅이 자는 동안 옆을 지키기만 하는 거-라고 태웅은 알고 있지만, 사실 대협은 태웅이 잠든 사이에 발치에 앉아 그가 잠든 걸 구경하며 태웅의 발이며 발목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예전에도 대협은 잠든 태웅을 곧잘 구경하곤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녀석은 그 때부터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혼자 누워도 꽉 차던 자취방의 침대에 둘이 끼어 눕던 게 언제부터였더라, 집 주인 침대를 뺏을 수는 없다고 바닥을 고집했던 태웅이 사양하지 않고 제 침대에 같이 누웠던 게…아마 감기로 앓아누웠던 다음 날에 같이 침대에서 잠든 후부터다. 같이 누워도 먼저 잠드는 건 늘 태웅 쪽이라서 대협은 수면등을 켜둔 채로 태웅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한참만에야 눈을 감곤 했었다.

‘곤란한 걸, 나는 그럴 마음 없는데.’

고등학교 졸업을 두 달쯤 남겨뒀던 겨울, 태웅이 고백했을 때 대협은 이렇게 대답했다. 서태웅은 제가 거절당할 것을 예상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안다고 했다, 대협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는데도.

마지막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봄이 오면 자신은 서울로 돌아가고 태웅은 미국으로 떠난다. 서태웅은 아직 어렸지만, 윤대협은 뭘 약속하고 뭔가를 해보기에 그 거리가 너무 멀다는 걸 알 정도 나이는 됐다. 윤대협은 서태웅과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래서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의연하게 굴 수 있었던 거겠지만, 그 때는 그게 옳다고 믿었기에 태웅을 위해 그렇게 했고 그럴 수 있을 만큼 좋아했다.

저와 태웅의 가이딩 효율은 전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치였으니 태웅이 지금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다. 그런 증거 같은 게 없었어도 실망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태웅의 ‘인증’까지 받은 셈이니 믿는 구석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 덕에 좀 여유가 있는 건지 더 조바심이 나는 건지는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지금은 두 번째로 얻은 기회다, 대협은 태웅의 복사뼈를 살살 쓰다듬으며 속으로 되뇐다. 기회란 보통 한 번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십 수 년이 지나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다니 저는 꽤나 운이 좋았다. 이번에도 태웅이 먼저 손을 뻗어왔으니 또 놓치고 싶지는 않다, 이제 태웅은 어디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자신도 그를 놓아줄 마음은 없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