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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센루 앤솔로지 청춘콜라주 수록작

2024년 센루 앤솔로지 '청춘 콜라주'에 참여한 글을 백업해둡니다.
판매되었던 앤솔이라 중간에 유료선이 있습니다. 앤솔로지를 구매하신 분들은 중복 구매가 되오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윤대협의 졸업식이 있는 날, 태웅이 대협을 찾아옵니다.
몇 가지 넣고 싶은 설정이 있어서 시간적 배경을 특정 년도로 수정했는데, 너그럽게 보아 넘겨주시면 좋겠어요. ;)



“센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 이상 위로 불쑥 튀어나온 삐죽한 머리통이 뒤를 돌아본다, 느적느적 교문을 향해 가던 센도가 제 이름을 부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씩 웃으며 발을 멈췄다. 표정이 없으면 서늘하기만 한 얼굴인데 그 위로 미소가 걸리자 금세 분위기가 훈훈해진다, 누구에게든 곧잘 보여주는 이 얼굴에 속아서 그에게 고백했다가 산뜻하게 거절당한 사람이 몇이었는지 코시노는 대충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센도의 교복 재킷은 텅 비어있었다, 단추가 있었을 자리에는 실밥만 나풀거리고 있는 터라 잠글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예의 두 번째 단추야 당연하고 소매에 달렸던 단추까지 모조리 내어 준 모양인데, 하의를 후크로 여미는 게 아니었으면 바지 단추까지 달라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센도라면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와서 달라고 했어도 몇 번째 단추가 됐든 선뜻 떼어 줬을 녀석이었다, 단추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코시노.”

“가려고?”

“응, 끝났잖아.”

한 모둠씩 모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나 작별 인사를 하며 손을 맞잡고 끌어안기도 하는 사람들-졸업생과 재학생과 학부모들-로 여전히 교내는 북적였지만, 졸업식은 끝난 지 오래였으니 그가 여태 남아 있는 게 신기한 일이긴 했다. 졸업장과 꽃다발을 한 손에 모아 쥐고 남은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졸업 앨범을 옆구리에 끼고 선 센도는 여느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멀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이 료난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아쉽다던가 고등학교 생활이 끝났다는 아련함 같은 건 한 점도 묻어있지 않은 상쾌하고 산뜻한 표정이었다.

저만 해도 잠깐 친구와 얘기하고 오겠다고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뛰어왔는데, 센도는 부모님이 졸업식에 오시지 않은 덕에 혼자였다. 아주 멀지는 않아도 3년 내내 타지에서 지낸 아들의 졸업식인데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기고 싶지 않을까 의아했는데, 아무렴 센도 본인이 졸업식 날짜를 착각해서 하루 늦게 알려준 탓에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단다. 어제 얘기를 듣고서 어떤 의미로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전개에 코시노가 약간 질린 얼굴을 하자 센도는 하하 웃었다, 졸업식이 뭐 별건가 여기는 모양새가 센도답다면 다웠다.

지금 그가 손에 쥔 꽃다발은 센도의 이런 사정을 들은 농구부 후배들이 저희끼리 돈을 모아다가 사 와서 건넨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주는 꽃다발은 상냥하게 웃으며 친절한 말로 재주 좋게도 거절한 센도였지만(코시노가 본 것만 두 번이었으니 몇 번은 더 있었을 것이다) 후배들이 건넨 마음은 사양하지 않았다. 사교적이고 유연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꽤나 선을 확실하게 그어두는 센도에게 있어서, 농구부의 동료들은 늘 선 하나 안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코시노는 알고 있다. 선 하나 안, 아마 딱 그 정도가 전부겠지만.

센도는 도쿄로 돌아간다, 진작에 Y대 추천 입학이 결정돼 있었다. 코시노는 카이난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후쿠다도 같은 대학이지만, 부 활동도 은퇴한 자신이 학과도 다른 그 녀석과도 자주 볼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둘의 합격 소식을 들은 센도가 ‘마키 상하고 동문이 되겠네.’하는 소리부터 한 탓에 코시노는 저도 모르게 질색하는 얼굴을 해버렸고, 센도는 웃음을 터뜨렸다.

센도와 또 만날 일이 있을까, 3년 내내 매일같이 얼굴을 본 사이인데도 코시노는 그럴 거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그야 센도는 전화하면 받을 테고 길에서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고, 료난 OB 모임이 있는데 오지 않겠냐고 물으면 기꺼이 나와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킬 녀석이긴 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용건이 있지 않고서야 제 쪽에서 연락을 해올 상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받아주는 건 곧잘 해도 먼저 뭘 요구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 성격이었다.

아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 동급생들에게 센도가 흔쾌히 다리를 굽혀주는 걸 봤다, 옆 사람과 머리 높이를 맞춘 센도는 곧잘 그랬듯 웃는 얼굴이었다. 사진을 현상하면 보내주겠다며 ‘앨범에 있는 번호로 연락하면 되지?’하고 묻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코시노는 졸업 앨범에 센도의 지금 자취방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길어야 이번 달이 지나면 없어지고 말 번호라는 걸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

도쿄에 있는 본가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타오카 감독님을 빼면 저와 후쿠다, 히코이치 정도일까. 저와 후쿠다에게 번호를 알려준 것도 지난겨울에 며칠 갑자기 본가에 가 있는 동안의 비상 연락용이었으니, 유난히 추웠던 날씨 탓에 자취방의 수도가 동파되는 사고가 없었더라면 저 또한 센도의 연락처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도쿄 가서도 잘 지내라.”

“응, 너도.”

저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내내 등 뒤의 교문을 슬쩍 돌아보는 것이, 어지간히도 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모양새라 코시노는 그냥 말을 줄였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코시노가 건넨 작별 인사를, 센도는 오늘 수고했다 같은 인사쯤 되는 듯 여상히 받아넘긴다.

졸업장과 꽃다발을 든 손으로 코시노의 어깨를 툭 가볍게 치며 씩 웃고, 센도는 또 보자거나 연락하겠다거나 하는 말도 없이 가볍게 돌아서서 가뿐하게 발을 옮겼다. 료난을 떠나는 것은 센도나 저나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저만 남겨지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코시노는 빠르게 멀어지는 삐죽한 머리와 넓은 등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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