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크롬 세상

러브라이브! 스쿨 아이돌 프로젝트 시리즈/오사카 시즈쿠X텐노지 리나/논커플링

♪ 이전 포스타입에 올렸던 연성입니다 → https://posty.pe/1kn41y

♪ 논커플링으로 작성한 글이지만, 커플링으로 해석해 주셔도 무관합니다.

찬란한 회색.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회색빛을 두르고 찬란하게 빛나는. 금세 시선을 붙잡혀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 그래.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단 하나뿐인 모노크롬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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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chrome. 흑백 혹은 단색을 뜻하는 의미의 영어 단어. 책 속에 가지런히 늘어져 있는 알파벳을 바라보던 시즈쿠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 대신, 곁에 내려 두었던 대본을 집어 들었다. 맨 앞장에 크게 적어둔 단어를 조용히 소리 내어 읊었다. 표현력. 시즈쿠를 새로운 무대로 이끈 강한 열망. 자신의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싶어서 소망하게 된 재능. 그래서 선택하게 된 두 번째 무대, 스쿨 아이돌 동호회.

그곳은 작고 바라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빛나는 공간이었다. 오사카 시즈쿠의 두 번째 무대는,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흘러갔다. 예상을 엇나가는 혹은 딱 들어맞게 펼쳐지는 두 번째 이야기. 숨을 돌리고 편히 앉아서 쉬려고 하면 다시 상상도 못 한 일들이 일어나는 스테이지였다. 어떤 시나리오를 읽어도 만날 수 없던 존재를 만난 것도 그곳이었다.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피어나는 스테이지 위, 그곳에서 빛나는 당신은 모노크롬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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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쿠 쨩?”

“아, 응. 리나 씨.”

“……어디 아픈 거야?”

그 말이 작은 불꽃이 되어 터졌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급하게 달려오며 제각각 염려의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디 아파? 최근에 무리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연극부랑 억지로 양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시즈코, 감기야? 시즈쿠 쨩, 아프면 안 돼~! 제 귓가로 쏟아지는 무수한 말을 헤아리던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겨우 손을 내저을 수 있었다. 괜찮아요. 댄스가 잘 안 풀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제야 다들 안심한 듯 각자의 자리로 가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소음이 가라앉아, 시즈쿠의 시선은 다시 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시즈쿠 쨩.”

찾던 목소리가 곁에서 울리자, 그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스케치북 위에 그려진 분홍빛 표정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리나는,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구나. 오랜 짐작을 따라 생각을 정리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즈쿠 쨩, 고민이 있다면 말해줘.

“나랑 동호회의 모두는, 시즈쿠 쨩의 이야기 들어줄 테니까.”

잠깐의 침묵. 그러나 그것이 대답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리나에게 지금 시즈쿠는 고뇌에 빠진 배우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굳게 다문 입과 가지런히 모은 손, 단단하지만 여실히 빛나고 있는 표정. 푸르다. 시즈쿠의 모습은 선명하게 푸른색이었다. 하늘의 색을 닮아 있었고, 또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푸름이었다. 자신이 그리는 배우로서의, 스쿨 아이돌로서의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단어 그대로 푸르렀다. 리나가 그 고민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리나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는 서둘러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나 씨는, 회색을 닮았어.”

“회색? 어째서? 그보다, 갑자기?”

“정확히 말하면 무어라고 할까…….”

입 끝이 따가울 정도로 메마른 것이 느껴졌다. 표현력을 더 넓히고 싶어서 동호회에 들어왔어.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리나의 스케치북이 넘겨지는 소리가 울렸다. 팔랑. 가벼운 소리의 끝에서 사뭇 진지함이 서린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응, 알고 있어.

“동호회의 모두가 많은 것들을 알려줘서,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성장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어.”

“응. 그건, 시즈쿠 쨩의 무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시즈쿠 쨩, 매번 굉장한 무대를 보여주니까.”

“고마워. 나, 아까 회색을 닮았다고 말했지.”

“응. 왜 회색이야?”

팔랑팔랑. 몇 장의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소리의 끝에서 펼쳐진 페이지에는 당혹감이 드러난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시야에 그것을 한참 담고 있던 시즈쿠는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흑백 사진 같아서. 짧게 이어지는 말에 리나의 스케치북은 분주하게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회색이지만, 어떤 감정인지 잘 알 수 있거든. 안개가 아니라, 흑백사진처럼.”

그렇다. 리나의 무대는 언제나 확실하게, 회색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가 스테이지 위에서 전하고 싶은 마음은, 섬세한 비유가 담긴 책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감동이 치밀어 오를 때도 종종 있었다. 많고 많은 것 중, 흑백을 이야기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서린 것은 아니었다.

“흑백 사진은, 다양한 색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

리나 씨는 분명, 앞으로 더 많은 노래를 부르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스쿨 아이돌이 되겠지. 그리고, 그 무대는 리나 씨 그 자체의 것일 수도 있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일지도 몰라. 그래도…….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제 리나는 스케치북을 넘기지 않고, 그저 가만히 시즈쿠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이다음의 문장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서였을까. 침묵을 오래 끌지 않고, 시즈쿠는 말을 이었다.

“……그 무대조차, 결국 리나 씨 그 자체가 될 거야. 흑백으로 빛나는 그 풍경에는, 어떤 색을 넣어도 잘 어울릴 테니까.”

우리가 하늘이 푸른색이라고, 구름이 흰색을 하고 있다고 아는 것은 아는 것은 누군가 그 색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리나 씨의 표현력은 그 어떤 색도 아니지. 아마 어떤 물감을 부어도, 어떤 크레파스로 덧칠해도 결국 리나 씨의 색이 될 거야. 조금 가쁘게 이어지던 문장이었다. 겨우겨우 말을 멈춘 시즈쿠는 한 움큼의 숨을 골랐다. 나는, 그런 리나 씨의 표현력이 존경스러워. 결국, 어떤 색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테니까. 나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 길게 이어지는 말의 끝은, 어쩌면 그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고뇌였다.

아아, 말했다. 앞으로 어떤 무대를 하고, 어떤 퍼포먼스를 내보여도 어색하지 않을, 그 어색함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 리나의 표현력이 부러웠다. 자신도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무대를 피로할 수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꽤 두꺼운 생각의 굴레를 만든 후였다.

표현을 잘하는 배우는 많았다. 혹은 부족하더라도 눈속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리나는 달랐다. 매번 예상하지 못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색하거나 억지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원래 그의 것이었는데 그동안 흑백으로 바라보느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시즈쿠는 점점 동경을 품어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말한 것이었다. 리나의 무대를 보며 자신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시즈쿠 쨩.”

고양이의 눈에는 고양이만 보이기 마련이래. 꽤 무거운 음으로 울린 목소리는 천천히, 물방울이 되어 시즈쿠의 귓가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리나는 신중히 단어를 고르는 듯,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시즈쿠 쨩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준다는 건, 분명 시즈쿠 쨩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무대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함께 힘내자. 마지막 말이 유독 흔들렸다. 천천히, 시즈쿠의 눈동자가 담고 있는 것은 리나쨩 보드의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응! 앞으로도, 잘 부탁해. 리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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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어떤 색도 덧칠해 갈 수 있는 잠재력. 상상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용기. 모두가 상상하고 있던 것을 부수고, 더 많은 것을 선보일 수 있는 배우. 깊은 표현을 자아내고 싶어 찾은 그의 두 번째 무대. 그러나, 시즈쿠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성장을 갈망하게 된 순간. 그가 배우로서 성장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다양한 연기를 덧칠할 수 있는 색깔. 모든 것을 바라는 색으로 만들 수 있는 반짝임. 시즈쿠는 다른 이에게 또 다른 모노크롬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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