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ml crush

8온스만큼의 미지

 "몰랐어요? 형이 커피 좋아하는거."

 호노카는 그 말을 듣고 건네려던 카드를 든 채 멍하니 눈을 깜빡일 수 밖에 없었다. 10년. 형을 알고 지낸지 자그마치 10년이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맞은 편 커피숍 직원의 한마디에 그 자신이 깨져버렸다.

 '내 앞에선 한 번도 마신 적 없잖아? 애초에...'

 달그락, 얼음이 녹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 풍경이 울렸다. 그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

쓰기만하고, 솔직히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호노카는 빨대를 휘저으며 가볍게 투덜거렸다. 오늘 친구들과 커피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말했더니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거 있지. 그거랑 이건 상관 없는데 말이야. 커피의 카페인을 잘 흡수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다더라고. 난 그렇지 못한거고. 그 취급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대화를 상기하며 말을 늘어놓는 입술이 삐죽거렸다. 그의 형, 아카보시 토오야는 그런 호노카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암묵적인 동의의 웃음.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온 탓일까, 두 사람은 대답을 대신하는 행동들이 퍽 비슷했는데. 그래서인지 호노카는 작은 행동만으로도 형의 의중을 곧잘 파악하고는 했다. 꼭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아무튼...너무 열내서 말했나. 목 마르다. 집에 마실 거 있나?"

금새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그를 바라보다 형은 군말없이 몸을 일으켜 찬장에서 컵을 꺼냈다. 호노카는 오렌지 주스 한 통을 꺼내들고는 금새 형에게 붙어 그 모습을 기웃거렸다.

"형이 커피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네."

"나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거든."

암묵적인 동의가 확언으로 돌아오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공통점이 늘어서일까, 커피를 못 마신다는 사실이 더는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응석을부리듯 가볍게 몸을 붙이곤 미소지었다. 형이 좋아하지 않는 거니까, 나도 더는 관심이 가지 않는 걸. ...그 이후로 커피에게는 그정도의 감상만이 남았다.

분명 그랬었는데.

*

마실 수 있는 걸 넘어서 좋아하기까지 했다니.

자신의 세상이 커피 한 컵 만큼 얕고 좁았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쓰렸다. 이전의 대화는 단순히 커피가 싫다는 자신의 의견에 장단을 맞춰줬던 것 뿐이였을까?

'아니야, 집에선 커피를 찾아 마신 적이 없어.'

생각할 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 명쾌한 해답을 줄 형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그러나 자리의 주인이 곧 돌아올 것임을 예고하듯, 빈 자리를 커피 한 잔이 지키고 있었다.

평범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죄없는 음료를 노려본 호노카는 자신의 몫인 레모네이드를 챙겨 입에 물었다. 오늘따라 유독 셨다.

가만 보면 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토오야는 워낙 호불호가 흐릿한 인간이였다. 밝고, 다정한 행동으로 쉽게 호감을 사지만 딱 거기까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마냥 그는 누구에게나 일정한 거리를 뒀다. 그런 그의 거리두기에 예외가 되는 것이, 10년전의 은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쿠로다 호노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에 꽤나 자부심이 있었다. 욕심도 있었다. 앞으로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내가 되기를. 그래서 그의 모든 걸 이해해주는 동반자가 되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커피 한 잔 만큼의 허전함이 채워지질 않았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동료들과 웃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형이 보였다.

호노카는 창 밖 쪽으로 빈 유리컵을 들어올렸다. 컵 안에 형의 모습이 흐릿하게 담기고, 얼음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금 녹아내렸다.

"호노카? 오후엔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를 발견한 형이 자연스레 말을 붙였다. 호노카는 언뜻 뚱해지는 기분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형이 채가지 않는 커피잔을 불쑥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쭈욱 커피를 마셨다. 토오야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

커피의 향이니, 풍미니 솔직히 아무래도 좋을 것들 투성이였다. 씁쓸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호노카는 형을 바라봤다. 마시는 일 같은 거, 별거 아니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형은 배신자야."

"호노카?"

커피잔을 밀치듯이 건네면 형은 그걸 받아들고 가만히 호노카를 바라봤다. 그의 동생이 왜 토라졌을까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 얼굴로 슬쩍 고개를 기울이면, 호노카는 곧장 표정에서 '난처함'을 읽을 수 있었다.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별다른 행동 없이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의 말대로 오후부터는 사무실을 떠나 현장으로 가야했다.

한 컵만큼의 미지가 그에게 남아 있다면, 오늘처럼 오기로라도 마셔서 바닥을 보면 될 일이였다.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의 형을 뒤로한채, 호노카는 가볍게 혀를 내밀고 문을 나섰다. 씁쓸한 맛을 남기고 넘어간 커피의 뒷맛은 제법 깔끔했다. 어린 시절과는 다른 감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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