手紙

즐거운 일도 많지만 가끔 니 생각이 날땐 조금은 미안했었어

프랑스 파리 지부의 릴리앙 블랑샤르 님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그동안 바쁘게 지내왔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터를 잡는 걸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늘 새로운 어려움이 생겨나는군요.

언제쯤이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이곳은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겨울이 다가와도 눈은 내릴 수도 없는 날씨들입니다. 내가 살기에는 정말 안 맞는 곳이라고 생각합니까?

편지라는 건 이래서 좋은 거군요. 내 표정을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펜을 들 용기가 납니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으니 그 점 역시 좋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파리를 떠나온 지 벌써 몇 달은 족히 넘겼는데 그동안 아픈 곳은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까?

나도 나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새로 집을 얻었는데, 이전 주인이 담장에 장미 덩굴을 키웠던 것 같더군요.

아직 살아있는 식물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내가 마저 키우기로 했습니다.

‘라 프랑스’라는 품종이라고 하던데, 알고 계십니까?

프랑스 파리를 떠나 새롭게 자리 잡은 곳에서도 당신의 모국이 느껴진다니, 운명이라는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다 끝난 인연에서 운명을 찾는 나도 참 우습긴 하군요.

 

실은 새롭게 얻은 집 근처에서 커피가 맛있는 찻집을 발견했습니다.

차가운 커피를 주문하니 따뜻한 쪽이 훨씬 맛있다며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모처럼 권유라서 마셔 보았는데 따뜻하니 정말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래서 당신이 늘 따뜻한 쪽을 선호했던 걸까요.

조금 더 일찍 좋아하게 되었더라면 당신과 같은 메뉴를 시킬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기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당신이 문득 떠올라 충동적으로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나도 조금은 어이가 없을 만큼 충동적이라 말 할 수 있겠군요.

가게에 머무는 잠깐으로는 이 곳의 커피향이 편지지에 배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당신보다 섬세하지 못한 내가 맡아보아도 좋은 향이니, 분명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간 아테네에 오게 된다면 방문 해보길 권해드립니다.

물론, 당신이 이전에 나를 데리고 간 마레 지구의 카페보다는 못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니 새로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좋은 사람인 것 같더군요.

가까이에서 축하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멀리서라도 축하를 보냅니다.

분명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간 내게도 소개도 해주고, 자랑도 해주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이 나의 자랑스러운 파트너라고.

보리스 안토노프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빛나는 사람이라고.

이 사람이야말로 둘도 없이 소중한, 당신의 유일무이였다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당신을 외롭게 두지 않을 사람은 정말 따로 있었다는 뜻일테니까요.

 

당신이 좋아했던 것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당신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실은 그랬기 때문에 도망치듯 떠났던 것 같습니다.

일상 모든 부분에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담긴 나라에서 당신을 잊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이별하던 그날 밤에 보았던 파리의 풍경은 왜 그렇게 아름답던지요.

아마 그 때문에 돌아서는 당신을 붙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별하던 날의 풍경이 당신과 너무 어울려서.

릴리앙, 내가 그렇게 미웠습니까 이제 와서 이별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겠죠.

당신의 선택이니 분명 틀린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당신은 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으니까……. 이유를 묻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나는 오히려 그 이유를 몰랐기에 당신을 놓아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아버렸다면 분명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추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원인을 고칠 테니 나를 한 번만 돌아봐달라고.

……내게 한 번만 기회를 줄 수는 없겠느냐고.

이 얼마나 보기 추한 말들입니까.

나는, 내가 당신에게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리 편지를 쓰고 있는 나와 달리 당신은 이미 모두 잊었을까요.

아직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과 함께했던 파리의 모든 날은 나 혼자 전부 기억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영영 잊어버리지 않겠습니까?

내가 당신의 공백이 되어버리면 가슴 한 편이 늘 시리겠지만, 당신이 내게 준 것으로 생각하고

늘상 그 시림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이제 와 추위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난 살아있는 모든 계절이 겨울인데.

 

더 쓰려고 하니 커피가 다 떨어졌군요.

카페에 계속 있을 핑계도 없어졌으니, 자리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늘 따뜻하게 지내시길.

 

당신의 파트너였던 보리스 안토노프 올림

 

P.S 릴리앙, 이제 와 미안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사과하면 받아주실 겁니까?

수많은 잘못이 있지만 그중 제일 사과하고 싶은 부분이 지금 생각나서요.

줄곧, 당신의 옆자리를 욕심내어서 미안했습니다.

당신의 가장 큰 불행을 내가 차지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편지 끝에 와서야 이런 말을 적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어차피 보내지 못할 편지이니 이 정도쯤은 괜찮다고 해주실 겁니까?

 당신을 내 욕심으로 설국에 가둬둔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내 모든 걸 다해 사과하겠습니다.

너무 늦었을까요.


2024.03.26. 글쓰기 - 1회차

요근래 자컾으로 가던 세션 배경으로 편지글 형식의 글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써봤습니다 (어!! 씹덕이다!!)

1회차 주제가 커피였는데 사실 그 날 주제 보내던 도중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냅다 보냈다가 운명의 점지 받고 글 씁니다

공항 가기 10시간도 안 남은 새벽에 글 쓰니까 재미는 있는데 저는 우뜨케 하죠?

공미포 1958자 입니다. 목표는 800자였던 것 같은데 신기하네요…….

아마 스터디 기간동안 이 친구들 이야기가 대부분일 것 같아요 ^//^ 모쪼록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아래는 글 쓰면서 들었던 노래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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