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교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카롱
도쿄 리벤저스 린도 드림
“안녕하세요. 사토 소우입니다아…”
어딘지 모르게 힘 빠지는 인사가 사무실에 낮게 깔린다. 나사 열댓 개 빠진 것처럼 풀린 눈매. 분명 공손히 인사하려고 두 손 모아 있는 것 같지만 껄렁껄렁 불량한 자세.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건 화려한 색의 머리카락. 이걸 모두 모으면 오늘의 신입사원 하이타니 린도 되시겠다.
인사하면서 본인도 어색한지 목을 쉼 없이 만지작거린다. 아니, 어색한 게 아니라 목에 붙인 패치 때문에 간지러운 건가 싶기도 하고?
사무실 사람들은 잘 부탁한다고 손뼉을 치면서도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하기에 바빴다.
이거 괜찮은 거예요? 저 사람이 신입사원이라고요? 어떻게 들어온 거지. 혹시 누구 라인 타고 들어왔대요?
그렇게 삼삼오오 속닥속닥. 눈 감고 귀 막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모를 수가 없지.
린도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지는 못하고 적당히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드렁한 표정이 노골적이다. 이런 어색하고 껄끄러운 분위기에 끼기 싫은데. 하필이면 시간이 되는 게 하이타니 린도밖에 없었고, 경찰에 홀랑 넘어가면 하이타니고 범천이고 난리가 나는 자료를 들고 튄 놈의 하나뿐인 혈육이 다니는 회사가 여기고. 뭐 방법이 있나.
어정쩡한 인사가 끝나자마자 무슨… 대리라는 놈한테 끌려서 회사 한 바퀴 터덜터덜 돌고 왔는데, 누가 그놈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어떤 새끼인지만 알면 모가지를 부여잡고 당장 끌고 가는 건데…. 이번엔 경찰이 일을 제법 잘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근데 영 마음에 담기지 않는 일이라도 돌아다녔다고 또 졸려서 하품 쩍 하면서 마우스를 성의 없이 달각달각. 누가 누군지 얼굴이라도 외우려고 사원 목록을 켜서 뚫어져라 보는데, 어라. 잠이 솔솔 오는 게… 고개가 꾸벅 내려갔다가, 핫!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누가 봤는지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아, 아무도 안 봤겠지?
천하의 하이타니 린도가 체면 안 살게 이게 뭐냐고. 뚱하게 입을 삐죽거리면서 모니터만 뚫어지게 본다.
그니까 아까 그 대리가 이 야마토… 였나?
하이타니 린도는 책이랑은 꽤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적도 손에 꼽힌다. 그러니까 잠이 다시 몰려오는 건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는 거지. 일 다 끝내고 씻고 침대에 누워도 이렇게 졸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어. 이건 생리 현상이라고. 마음 편하게 조금 자볼까. 그렇게 결심하고 눈이 감길락 말락, 다시 고개가 내려가려는 순간.
옆에서 불쑥 작은 손이 넘어와서 조심조심 책상을 두드린다.
똑똑, 도 아니고 톡톡. 파티션을 넘어서 빼꼼 넘어오는 작은 얼굴.
어?
어딘가 모르게 울상인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면서 사토 씨, 우물우물 린도를 부르고 종이컵에 든 잔이랑 마카롱과 쪽지를 넘겨준다. 얼음이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선명하다. 근데, 사토? 아, 맞다. 내 이름. 근데 이게… 어라. 왜 이러지. 멋쩍게 웃는 얼굴 따라서 저도 같이 얼빠진 얼굴로 실실 웃어주다가 그 여자애 얼굴 사라지고 나서야… 이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이타니 린도, 올해 24세.
제대로 사랑에 빠지다.
얼빠진 손길로 더듬더듬 쪽지를 열어본다. 평생 무언가 종이를 이렇게 살살 다뤄본 적이 없었는데, 그 생에 주먹으로 힘차게 써 내려간 역사에 알맞지 않은 조심스러움이다. 힘내라는 둥 어쩌라는 둥 쓰여 있는 말은 눈에 스쳐 지나가는데, 사토 소우? 뭐? 인상 한가득 찡그려지려다가 아, 맞다. 내 가명이지… 하고 깨닫고 다시 실실 웃는 하이타니 린도. 쪽지 구석에 그려진 이 망그러진 너구리 그림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쪽지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여기 쓰레기통도 없으니까. 쓰레기를 막 버리면 안 되지. 되도 않는 변명이 길어진다. 막상 그 변명을 늘어놓을 대상도 없는데.
실없이 흘러나오는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반쯤 무아지경으로 빨대를 쭉 빨아들인다. 그 컵 안에 뭐가 담겨있든 그건 이미 관심 밖이었지만, 입 안 가득 차는 특유의 맛이 쓰다.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진다. 뱉을 뻔하다 옆의 눈치를 보고 간신히 삼킨다. 아, 이거 아이스 아메리카노구나. 우웩. 입맛을 다시다가 한입에 마카롱을 집어넣는다. 근데 마카롱은 또 캬라멜 맛이라서. 아까 그 여자애의 얼빠진 얼굴이 생각나서 웃음이 실실. 멍청해 보여서 그런 거니까, 왜. 귀엽잖아.
이거 하나로 이렇게 즐거울 일인지.
이제 회사 다닐 맛 나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가, 다시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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